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존 스토트 지음 | IVP
제1부 원래의 예수
4복음서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4복음서가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가! 예수 그리스도는 한 저자가 포착하거나 한 관점에서만 묘사하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인물이시기 때문이다. 복음서들에 나오는 예수님은 네 얼굴을 가진 초상화, 네 면을 가진 다이아몬드이시다.
마태가 말하는 예수님의 주된 특징은 성취라는 단어로 말할 수 있다. 구약 선지자들은 성취를 예상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실제로 성취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선조들이 보고 듣기를 갈망했던 것을 그들의 눈으로 실제로 보고 있었으며, 그들의 귀로 실제로 듣고 있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을 또 다른 선지자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모든 예언의 성취로 보았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하나님 나라가 바로 예수의 사역 안에서 그 사역과 함께 임한 것이다.
마가는 예수님을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으로, 그의 백성의 죄를 위해 죽으시는 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마가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십자가이다. 마가는 예수님에 대하여 세 가지 기본적인 주제를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그분은 무엇을 하러 오셨는가? 섬기고, 고난을 받고, 죽으러 오셨다. 셋째 그분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명하시는가? 자기 부인이라는 죽음을 통해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우리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것을 명하셨다.
누가는 신약을 쓴 사람 중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예수를 마태처럼 성경의 그리스도로 제시하거나, 마가처럼 고난 받는 종으로 제시하지 않고, 인종이나 국적, 사회적 지위, 성별, 필요, 연령에 상관없이 온 세상의 구세주로 제시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누가복음의 핵심 단어는 '구원'이라 할 수 있으며, 누가는 구원에 두 가지 구성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소극적으로는 죄책이 제거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성령이 주어지는 것이다.
요한이 복음서를 쓴 목적은 무엇이었나?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라는 견지에서 보고 있다. 요한은 특정한 '표적들'을 골라서 기록했는데, 그 이유는 그의 독자들이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의 독자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요한은 이처럼 증거는 믿음으로, 믿음은 생명으로 이끌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복음서에 예수님이 행하신 7가지 기적을 기록하였다.
바울의 열세 서신바울은 신약의 1/4을 차지하는 그의 서신서들에서 비범한 다재다능함을 보여 준다. 13개의 서신이 그의 저작으로 여겨지는데(히브리서를 빼고), 일반적으로는 그 중 7개만이 확실한 바울의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즉, 갈라디아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데살로니가전서이다. 가장 많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목회 서신이다.
나는 갈라디아서가 바울이 쓴 최초의 서신이라고 믿는다. 갈라디아서는 '논증' 서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 서신서 전체에서 바울이, 복음을 왜곡해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거짓 교사들에게 매우 분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저주를 선포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최고의 해방자로 보고 구원을 자유라는 견지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유라는 것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육체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제2차 선교 여행 동안 데살로니가를 방문했으며, 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첫 번째 편지는 분명 그가 방문한 지 몇 달 이내에 써 보낸 것이었고, 그리고 그 직후 그는 바로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그러므로 두 서신 모두 갓 회심한 사람들에게 보낸 것이다. 첫 번째 편지에서 바울의 일차적인 목적은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며, 어린 데살로니가 신자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두 번째 목적은 목회적인 것이었다. 그는 구원하시고 심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을 강조하였다.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 동안 고린도에서 2년, 에베소에서 3년을 보냈다. 두 도시 모두에서 그는 먼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면 비로소 세속적 장소로 옮겼다. 고린도에서는 디도 유스도의 집으로, 에베소에서는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다. 이 5년 간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에 보낸 2개의 편지를 썼다. 이 세 서신의 내용은 풍성하고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서신들의 지배적인 주제는 '구원-구세주 그리스도'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바울이 서너 번에 걸쳐 "주 안에서 갇힌" 자로 투옥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매였다." 또한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열정적인 선교적 생활 방식에서 벗어난 그가 조용히 묵상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감옥의 창살이 그의 몸을 가둘 수는 있었겠지만 그의 영혼은 가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더 많은 도시를 복음화하지도 못했고 교회들을 방문하지도 못했지만, 마음만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사람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신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며, 골로새서에서도 우주적 그리스도의 절대적 탁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빌립보서 역시 대단히 숭고한 기독론적 믿음과 그리스도인의 선행을 결합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높이 올리우셨으나 동시에 가까이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옥중 서신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목회 서신이 정말로 바울의 것인가에 대해서는 끊이지 않고 이의가 제기되어 왔다. 어쨌든 디모데전서에서 바울은 건전한 교리, 공적 예배, 목회적 감독, 지역교회의 리더십, 사회적 책임, 물질적 소유에 대해 교훈하고 있으며, 디도서에서는 디도에게 목사를 어떻게 선정하고 임명할 것인가, 어떻게 가정과 공적 생활에서 의무와 교리를 연관시킬 것인가에 대해 지시한다. 한편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처형되기 직전 감옥에서 쓴 듯하다. 바울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디모데에게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삶과 사역에서 근신하며, 어려울 때 구약성경과 사도의 가르침을 붙잡고, 말씀을 전파하라고 권면한다.
세 명의 유대인 저자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 중 하나였으며, 에수님의 생전에는 믿지 않았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을 통해 믿음에 이르게 된 듯하다. 그는 후에 예루살렘 교회와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인정을 받는 지도자가 되었다. 야고보는 개인적인 의와 경건함 때문에 '의인 야고보'로도 알려지고 있는데, 예수님을 본질적으로 도덕 선생으로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의 관심사가 가장 잘 요약된 곳은 1:26-27인데, 거기에서 야고보는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혀를 제어하는 것, 둘째는 곤궁한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 셋째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그 서신서의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신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목적은 확실하다. 그는 예루살렘 안이나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의 배교를 막기 위해서 서신을 썼던 것이다. 그들은 부분적으로는 핍박 때문에, 더 엄밀히 말하자면 신학적 혼란 때문에 유대교로 다시 빠져 들어갈 명백한 위험에 처해 있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의 궁극성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세우려고 했다. 저자는 서신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죄를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영원한 제사를 드렸고 그래서 영원한 언약을 확립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과 영원한 속죄와 영원한 기업을 가져다준다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첫 번째 서신에서 다른 주제들도 많이 다루지만, 주로 강조하는 점은 박해에 직면한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한 것이었다. '고난받다'와 '고난'이라는 단어가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7번, 그리스도인과 관련해서 9번이나 나온다. 베드로는 박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온갖 종류의 시련을 겪고 있으나, 불이 금을 시험하고 강화하고 정련하는 것처럼 고난이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강화하고 정련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말한다. 그의 결론은 고난은 우리를 성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좀더 기꺼이 고난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제2부 교회의 예수
서론 : '다른 예수'"다른 예수." 이 표현 자체가 도발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예수는 오직 한 분뿐이며, 그분은 신약에서 사도들이 증거하는 예수다. 다른 예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오직 '한 주'만이 있다.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5-6)
하지만 사실은 여러 세기 동안 이어진 기독교 시대에, 수백 명의 서로 다른 예수가 세계의 종교 시장에 제시되어 왔다. 그 중 어떤 예수상은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지만, 성경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있다. 또 어떤 예수상은 성경에는 충실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또 다른 예수상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성경과 문화 양자와 성공적으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신약에서 다양하지만 통일성 있게 증거해왔던 '한 주'와는 대조적으로, 교회는 놀라운 재간을 발휘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채택하고 형성하고 제시해 왔다.
·완전한 성취 그리스도 : 순교자 저스틴저스틴은 사마리아에서 이교도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지적으로 조숙했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진리에 대해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플라톤의 철학에 연이어 빠져들었다. 하지만 진리도 평강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베소 바다 부근에서 한 노인을 만났으며 그 노인으로부터 그리스도를 소개받았다. 그 후 그는 회심하여 로마에 기독교 학교를 설립했고 2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가 되었다. 저스틴 신학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완전한 성취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구이다. 요한복음 1:9은 저스틴의 확신을 요약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즉 그분은 성육신하여 '오시기' 전에 오고 계셨으며, 지금도 오고 계시면서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신다는 것이다. ·독특한 신 그리스도 : 초기 공의회들4-5세기까지 교회 지도자들은 진지한 기독론적 토론을 벌였다. 니케아 공의회(AD 325년)는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를 확증한 반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AD 381년)는 예수님이 참으로 인간이시라는 것을 확증했다. 에베소 공의회(AD 431년)는 예수님이 비록 하나님이면서 또한 사람이긴 하지만 유일한 한 분이시라는 것을 확증했고, 칼케돈 공의회(AD 451년)는 예수님이 한 분이긴 하지만 신적 성품과 인간적 성품이라는 두 성품을 모두 가지고 계심을 확증했다.
·봉건 채무자 그리스도 : 안셀름서너 세기 동안 '몸값' 속전론이 지배적이었다. 즉 죄가 인류를 마귀의 속박아래 들어가게 했으며, 그리스도께서 마귀에게 몸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는 것이다. 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을 안셀름이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비로소 반박하고 있다. 그는 빚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께 지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셀름은 1033년 이탈리아에서 출생했으며, 1093년에 랑프랑의 뒤를 이어 캔터베리 대감독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은 마귀에게 벌 외에는 아무것도 빚진 바 없으시다."는 것을 근거로 초기 기독교 교부의 속전 이론을 거부했다. 그 대신에 사람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빚지고 있으며, 이것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부채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갚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하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늘의 신랑 그리스도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기독교 신비주의는 12-14세기 사이에 유럽에서 활짝 꽃피웠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연인,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었으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가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 인물이다. 베르나르는 영혼의 완전을 향해 진보하는 세 단계를 상징하는 세 번의 입맞춤(발, 손, 입에 하는)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발에 입 맞추는 것은 겸손한 참회로 그분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손에 입 맞추는 것은 그분이 모든 선한 은사를 주시는 분이며, 우리와 그분의 관계는 그분의 자비에 근거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 번째 입맞춤은 "최고의 입맞춤"으로 신비주의자들이 갈망하는 영혼과 하나님의 궁극적인 연합을 표현한다.
·자비로우신 구세주 그리스도 : 마르틴 루터중세 교회의 사람들이 얼마나 무거운 죄와 죄책의 짐을 지고 괴로워했는지 오늘날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 심판의 두려움, 연옥과 지옥의 고통 등에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의로운 선행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확보하고자 애쓰면서 두려움 가운데 살았다. 교회의 가르침이 바로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 자신의 친구가 벼락을 맞아 죽는 것을 보고는 죽음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주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자신을 드렸으며,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분명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금욕적인 생활은 고뇌를 줄여 주는 것이 아니라 더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당시 그에게 그리스도는 정다운 존재가 아니라 화가 나 있는 상태였으며, 자비로운 분이 아니라 위협적인 존재였고, 구세주가 아니라 심판자였다. 어디에서 인자한 하나님을 발견할 것인가? 고뇌에 찬 그의 부르짖음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루터는 성경을 살펴보게 되었다. 시편과 로마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루터는 마침내 하나님의 의가, 은혜와 순전한 자비를 통해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라는 진리를 파악했다. ·사회 해방자 그리스도 : 구스타보 구티에레즈1970년대에, 소위 '해방 신학'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전했다. 해방 신학의 가장 유명한 대표자는 『해방 신학』을 저술한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와 『인간 희망의 신학』을 저술한 루벰 알베즈 등이 있다. 구티에레즈의 『해방 신학』의 배경은 라틴 아메리카가 억압받는 대륙이라는 사회적 실상이었다. 라틴 아메리카는 19세기 초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정치적,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었다. 구티에레즈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으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착취를 당해서는 아니 되며 섬김을 받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모든 경향에 대항하고 인간의 자유와 성취를 저해하는 모든 것에 대항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전 세계의 주님 그리스도 : 20세기의 선교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는 위대한 주장을 하신 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 그 결과 교회는 언제나 그분의 우주적 주권에 대해 증거해왔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최고로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으로 그에게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를 "주"라고 고백하게 하셨기 때문이다(빌 2:9-11). 이것이 교회의 범세계적 선교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1974년에 스위스 로잔에서는 빌리 그레함 목사가 주관하는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가 열렸으며, 150개국으로부터 약 2,700명이 참석했다. 그리고 로잔 언약에서는 "전 세계적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구세주는 오직 한 분이시요, 복음도 오직 하나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혼합주의도 거부하며,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든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는 식의 논의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이를 거부한다. …예수님의 이름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이름 위에 높임을 받으셨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입이 그분을 주로 고백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