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필립 얀시 지음 | 요단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
필립 얀시 지음
요단출판사/1998년 9월/480쪽/10,000원
제1부 그는 누구였는가?
1. 내가 알고 있던 예수
유년시절 나는 '예수님' 하면 사이다와 과자 그리고 교회출석을 잘 했을 때 주는 황금별 스티커를 연상했다. 주일학교 시절 교회 콘크리트 벽에 걸려 있던 유화 속에서 예수님의 두 팔에는 어린양이 안겨 잠들어 있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지복스러운 그 어린양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초로의 찰스 디킨스가 쓴 예수의 생애에 관한 책에서 예수는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타이르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마음씨 좋은 유모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유년시절 내가 품고 있던 예수의 이미지는 늘 친절하고 위안이 되며 날카로운 면이라고는 전혀 없는 미스터 로저스 같은 인물이었다.
세월이 흘러 신학교 다닐 무렵, 나는 좀 다른 이미지와 만났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서 있는 예수의 그림이 뉴욕시 소재 유엔 빌딩 전면에 걸려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주적 그리스도, 그 안에 만물을 담고 있는 존재, 변화하는 세계의 정지점이었다. 유년 시절 양을 안고 있던 목자로부터 이 세계적 존재로서의 이미지를 얻기까지 나는 먼 길을 왔다.
신학교 시절을 되돌아보건대, 예수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제 아무리 강조해도 신학교의 예수는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는 나의 탐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1960년대의 10년간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해방신학자들은 예수를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동렬선상에 놓고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1971년의 파솔리니 영화 <마태복음>은 1960년대에 발생한 예수 재평가 운동을 제대로 포착해 내고 있다. 파솔리니 영화의 충격은 전위예술 극장을 비웃던 사람들을 침묵시킬 만큼 대단했다. 급진주의 학생들은 반물질주의, 위선에 대한 폭로, 평화와 사랑의 정신이 담긴 거침없는 메시지를 최초로 선포한 선구자가 자신들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예수가 자신을 일러 사람들의 삶을, 내 삶을 갈라놓는 분기점이라 했기 때문에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그에게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눅 12:8)." 예수가 말한 바대로, 나 자신이 그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내 운명이 영원히 결정될 것이다.
어떤 경우 나는 예수의 그 거침없는 주장을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어떤 경우에는,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천 년 전 갈릴리라 이름하는 곳에서 한 인간이 살았다는 그 사실이 오늘날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의심과 사랑이라는 이 내적인 길항을 나는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주로 나의 의심과 대결하는 수단으로 글을 쓴다. 이따금씩 나는 생각한다. ‘욥처럼 나도 강력한 회오리 바람 가운데서 울리는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으면’ 아마 이런 생각 때문에 나는 지금 예수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말씀이 말한다.
예수를 찾는 사람들은 흔히 주관적 견해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학자들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신학교 서점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학문적인 서적들을 정독해 보면 우리는 아마 수없이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는 예수와 만날 것이다. 정치혁명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 마법사, 갈릴리 출신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랍비, 촌티 나는 유대 견유주의자, 바리새인, 반바리새적 에세네파 사람…. 이 수많은 예수들은 현대의 근엄한 학자들이 아무런 고민 없이 만들어 낸 소산이다.
예수의 모습에 대한 이 혼란스러운 이미지들 가운데 둘러싸인 우리는 과연 “예수는 누구였느냐?”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내 자신이 연구를 하면서 일관되게 발견한 사실이 있었다. 말하자면, 복음서 그 자체로 돌아가면 언제나 안개가 걷히는 듯한 느낌 말이다. 어떤 경전이나 고전들은 다소간 자기 광고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복음서는 그렇지 않다. 복음서에는 예수 가족과 이웃들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여겨 배척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가 만일 성인전을 쓴다면 그처럼 이상한 장면들을 포함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예수를 가장 열렬히 따랐던 추종자들은 대개 머리를 긁적이며 ‘이 사람은 과연 누구냐?’라고 번민하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복음서는 진정 놀랍게도 결정을 독자들에게 일임한다. 복음서는 말하자면 “그 일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에 대해 추리해 가는 탐정소설로서 기능한다.
교회에서 수없이 암송되는 교리들은 물론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재성과 부활 이후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의 지상 삶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는 동시대 사람들의 강팍함에 좌절했고,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모습에 격분했고, 단순한 믿음에 감동했다. 진정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감정적이고 열정적이고 인간미 넘쳐 보였다.
‘따분한 인물’과 ‘예측 가능한 인물’이라는 두 표현만큼은 결코 우리가 복음서의 예수에 대해 적용할 수 없다. 그러면 교회는 어찌해서 그러한 인물을 순화시켜 왔는가?
내가 내린 결론에 의하면, 예수에 대한 우리들의 사고와 글쓰기에서 드러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그와 같은 사전 삽입의 태도에 있다. 우리는 니케아, 칼케돈 회의라는 사전 삽입의 렌즈를 통해서, 혹은 예수를 이해하고자 교회에서 수없이 진행되어 온 학습이라는 사전 삽입의 렌즈를 통해서 복음서를 읽으려 한다. 나 자신은 교회 교리를 부인하는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는 공식적인 교리적 측면을 넘어서고자 한다. 나는 그를 따라다녔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한 구경꾼으로서 가능한 한 예수의 삶을 밑바닥에서부터 보고 싶다.
2. 탄생 : 방문받은 별
대부분의 성탄절 카드 그림이 보여주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거룩한 절기를 보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다. 그런데,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로 돌아가 보면 분위기는 사뭇 달라진다. 그곳의 크리스마스는 주로 혼란과 분열이 주조를 이룬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 들뜬 분위기를 떠나 복음서의 황량한 현장으로 돌아간다.
천사가 나타나자 마리아는 몹시 놀라며 무서워했다. 해마다 백만 명의 소녀들이 혼외임신을 하는 오늘날의 미국 같은 사회에서 마리아가 처한 어려움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될 수 있지만, 결속력이 강한 1세기의 유대 공동체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천사가 전해 준 소식을 믿거나 환영할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약혼한 여자가 임신할 경우, 율법은 그것을 돌로 쳐죽여 마땅한 간음으로 규정했다.
엘리사벳은 기적적으로 소생된 자궁으로 인하여 온 마을 사람들로부터 경하의 말을 듣지만 마리아는 수치를 당할까 두려워 자신의 기적을 숨겨야만 했다. 세례 요한은 온 동네의 축하 속에 태어나지만, 여섯 달 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서 예수가 탄생했을 때는 산파도, 친척들도, 마을 사람들의 축하 노래도 없었다.
말콤 머거리지는 예리한 관찰 하나를 내놓고 있다. “산부인과 병원들이 널려 있어서 가족의 명예를 더럽힐 ‘실수들’을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요즘 세상 같으면,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예수가 출생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마리아의 경우 낙태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성령의 간섭으로 잉태하게 되었노라고 얘기한다면 부모들은 필시 불쌍한 딸을 정신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받게 할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대보다도 한층 구세주의 필요성이 절실한 우리 시대이건만, 너무나 인간적인 배려 탓에 오히려 그 구세주 아기의 출산은 결코 허용되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일이란 종종 큰 기쁨과 큰 고통이라는 두 측면을 동반한 채 진행해 왔다. 그리고 마리아는 사실상 양자를 모두 끌어안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자신이 감수해야할 개인적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먼저 나서서 예수를 인정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절기에서 성적인 추문이라는 측면은 완전히 제거한 채 부드럽고 감상적인 면, 우리에게 익숙한 면만을 보려 한다. 무엇보다도 베들레헴에서 시작된 그 이야기가 갈보리에 가서는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 2:34-35)."라고 예언했다. 즉 전혀 새로운 한 세력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멸하기 위해 이미 당도해 있었다. 예수와 로마 사이의 투쟁은 시종일관 일방적인 것처럼 보였다. 예수를 처단함으로써 이제는 그 어떠한 위험 요소도 명백히 제거된 듯 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그렇게 보였다. 그리고 폭력정치가 또다시 승리하는 듯 했다. 예수의 그 끈질긴 추종자들이 로마제국보다 더 오래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예수의 탄생기사들을 또 한 번 읽고 난 후, 나는 자문해 본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해 예수가 왔다면, 그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통해 내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바는 무엇인가?“
겸손 - 하나님은 지상에 오시되, 급한 회오리 바람이나 삼킬 듯한 불의 세력에 의존해 오시지 않았다.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만물을 만드신 그분께서는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마침내는 하나의 난세포가 되기까지 작아지는 형태로 오셨다. 시인 존 돈은 “그대의 존귀한 태중에 광대한 존재가 은둔해 있나니.”라고 탄복했다.
이사야 시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부와 권력의 이미지를 가진 메시야를 기대했지만 나타난 메시야는 종류가 다른 영광, 즉 겸손이라는 영광을 입고 있었다. 신부 네빌 비기스는 그렇게 쓰고 있다. 우주를 호령하시던 하나님, 세상의 모든 군대와 제국을 장기판의 말 다루듯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의 한 아기로, 말도 못 하고, 딱딱한 음식을 못 먹으며, 대소변도 못 가리고, 어느 십대 소녀의 품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고, 그 소녀에게서 음식과 사랑을 공급받아야 하는 연약한 아기로 오셨다. 하나님의 지상방문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웅장한 팡파르에 맞춰, 온갖 보석과 호사스런 의복을 걸치고 등장하는 세상 통치자들과는 달랐다. 한 짐승의 거처에서, 구유말고는 탄생한 왕을 누일 곳조차 없는 비천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가까이 갈 수 있음 - 유대인들에게 ‘신에 대한 예배’는 두려움을 연상한다. 죽음을 면치 못하는 광야의 거룩한 산, 잘못 만지면 누구든 죽는 언약궤, 함부로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하는 지성소. 그러나 구유의 한 아기라는 놀라운 모습으로 사지를 옹송그린 채 누워 있는 신생아에게서 무서움을 느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되 이제는 결코 두려움이 개입되지 않는 방식을 찾아내신 것이었다.
사실, 두려움의 효과는 그렇게 크지 못했다. 구약에는 선한 것을 적극 권장하기보다는 악한 것을 금하고 부정하는 장치들이 훨씬 많다. 뭔가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했고, 그 접근방식이란, 성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광대한 심연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로 가교를 놓는 신약이었다. 물질을 만드신 그 하나님이 물질의 형태를 취하셨다. 마치 화가가 자신이 그린 그림의 한 점이 되듯.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비천한 자 -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비록 세상은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 쪽으로 기울지만 하나님은 패배자들 쪽으로 기운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는 자신의 찬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눅1:52-53)." 성장해 가면서 예수의 감수성은 가난한 자, 힘없는 자, 압박받는 자, 말하자면 한 사회의 열패자요 희생자인 기층민들에게로 깊이 침윤되어 갔다.
용기 - 갈릴리에서 메시야가 나왔다? 목수의 아들이 메시야다? 예수가 오만과 회의주의적 태도로 자신을 대접할 그 인간들 사이로 들어오시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엄청난 일을 하실 수 있을까? 체스터톤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교의 가운데서 유일하게 기독교 교의만이 창조주의 성품에 용기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예수가 지상에서 보낸 첫날밤부터 그토록 필요했던 용기는 그가 세상을 마치는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내내 필요한 것이었다.
3. 배경 : 유대적 뿌리와 토양
교회에서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 만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 분, 참된 하나님의 참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적 진술들은 예수가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는 복음서의 기사와는 몇억 광년이나 떨어진 초월적 진리이다. 우리 이방인들은 예수의 유대적 정통성은 물론 그의 인간성조차 늘 놓쳐 버릴 수 있는 지속적인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나는 마하트마 간디를 인도라는 상황과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듯이 예수를 그의 유대적 정통성과 떼어놓고 이해할 수 없다.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문화와 그의 가족과 그의 배경에 대해 배워야만 하듯, 예수의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도 역시 같은 방식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는 ‘유대인의 자긍심’이 부활하던 시기에 성장했다. 독실한 유대인들 앞에서 ‘메시야’라는 단어가 얼마나 중요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떠벌린다면 어불성설이리라. 강대국들 틈새에 끼인 하찮은 지역에서 세계적인 지도자가 나오리라는 그 꿈이 어이없어 보일지 몰라도 유대인들은 정녕 그렇게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옛 영화의 시대로 되돌려 놓은 그 왕에게 미래를 걸었다. 그 분은 이사야가 외친 대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사64:1)"하게 하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사64:2)"하실 터였다.
그러나 우리 모두 솔직해지기로 하자. 요한이 지목한 그이가 등장했을 때 산들도 진동하지 않았고 열방도 떨지 않았다. 예수는 유대인들의 열렬한 소망을 거의 만족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사태가 발생했다. 한 세대가 못 되어 로마군인들은 예루살렘을 초토화 시켰다. 막 태동하던 기독교 교회는 성전파괴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이 끝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1세기 이후에는 극소수의 유대인들만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의 경전들을 도용했으며, 그 경전들에 ‘구약’이라는 명칭을 달아놓고 유대인의 모든 관습들은 폐지했다.
교회로부터 거절당하고,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몇몇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천사들이 지상의 평화를 선포함으로써 그 탄생을 축하했으나 그 탄생의 당사자는 정작 인류역사를 크게 분열시킨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천 년간의 대분열에도 불구하고, 금세기 들어 들불처럼 번져 갔던 광란의 반유대주의 열풍과 그로 인해 발생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 사이에서 예수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만 가고 있다. 현대 이스라엘 어린이들은 예수가 위대한 선생, 아마도 유대인으로서는 가장 위대하다고 할 선생이며, 이방세계에 의해 지속적으로 흡수된 인물이라고 배운다.
가림막 없이 복음서를 읽을 수는 없는 걸까? 유대인들은 늘 의심을 품고, 미리 분노할 준비를 하고서 읽는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역사라는 굴절렌즈를 통해 읽는다. 내 생각에는 양측 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마태의 첫마디를 반추해 봄이 좋을 듯하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야로슬라브 펠리컨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기독교 교회와 가정들이 마리아의 성상과 그녀에 대한 신앙을 하나님의 어머니요 하늘의 왕녀로서만 아니라 유대인의 처녀요 새로운 미리암으로서도 강조했더라면, 그리스도의 성상을 전능한 창조주로만 아니라 요셉의 아들 랍비 예수, 나사렛의 랍비 예수로서도 강조했더라면 그와 같은 반유대주의가 가능했을까? 그토록 많은 학살이 자행되었을까? 과연 아우슈비츠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