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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R.T. 켄달 지음 | 예수전도단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R.T. 켄달 지음/이우열 옮김

예수전도단/2003년 1월/230쪽/7,500원



1. 응답 받은 기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결혼한 직후 이 부부는 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자녀를 허락하시지 않는지 못내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엘리사벳은 아이를 임신할 수 없는 몸이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들을 간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수 년이 지나갔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 같은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부부는 자신들의 기도를 잊게 되었다. 가브리엘 천사장이, “너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하자, 사가랴는 이렇게 말한다. “기도요? 무슨 기도 말씀인가요?” 천사가 이어서 “너희 부부가 아들을 위하여 한 기도 말이다.”라고 하자, 사가랴는 “아! 그 기도요. 한 25년, 아니 30년 전에 한 그 기도 말이군요.”하고 대답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국 사가랴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천사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왜 그가 입씨름을 하였는지 아는가?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목하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그때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가랴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2.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자 아브라함은 순종할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가 칼을 들어 아들에게 내리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멈출 것을 명령하셨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하셨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은 죽음에 처한 아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시리라 믿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진정으로 순종하는지 시험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직접 역사하셨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에게 한 일로 인해 오랫동안 마음속에 쓴 뿌리를 지니고 있었다. 형들이 자기를 노예로 팔아 버렸으며, 그 후에는 이집트의 관리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기에 이른다. 이어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고 요셉이 이를 거절하자, 그는 이 여인을 욕보이려 했다는 거짓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마음속에 원망의 쓴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와 함께 옥에 갇힌 자 중에 애굽 왕의 떡과 술을 맡은 관원장이 있었다. 요셉이 이 술을 맡은 관원장에게 말한다. “당신은 이제 삼 일 안에 이곳에서 풀려날 터인데, 바로에게 나의 사정을 고하여 나로 하여금 풀려나게 하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로 옥에 갇힐 이유가 없나이다.”

그러나 마음속의 쓴 뿌리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요셉아, 너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지하 감옥에서 한 2~3년은 더 있어야 하겠구나”라고 말이다. 석방되지 못하고 옥에 갇혀 있던 2년 동안 요셉은 자신의 마음속의 쓴 뿌리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자신의 형들을 진정으로 용서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이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요셉에게 다가왔다. 바로 왕이 자신의 꿈을 해몽하기 위해 요셉을 찾았고, 그 결과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요셉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응답하셨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기에게 상처와 괴로움을 주었던 이들을 요셉이 완전히 용서하자, 용서를 통해 요셉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82년에 십자가를 지고 전 세계를 순례하던 아더 블레씨트가 이곳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찾았을 때를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사람들은 웃으며 “그는 하이드 파크 공원에나 가야 제격이야”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강단에는 절대로 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나타내시고자 하는데 우리가 이를 간과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그를 강단에 세웠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그는 우리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통에 사로잡혀 열정이 없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내려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진으로, 바람으로 그리고 불을 통해서 일하셨다. 그러나 이번에 하나님께서 만약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3. 하나님께서 비밀리에 나타나실 때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는가로 영적인 능력을 정의하는 것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랐다고 하자.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어떤 일이 있는 경우에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영적인 능력이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임한 순간과 우리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차리는 그 시간의 간격을 줄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여러분도 처음에는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고 확신했던 일에 대해 마치 야곱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여기에 계셨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오류를 범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결코 하나님의 임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열왕기하 5장에 문둥병을 앓고 있던 나아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자기 아내의 이스라엘 출신 계집종으로부터 유명한 선지자 엘리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아이가 말했다.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왕하 5:3). 나아만이 이 말에 따라 모든 준비를 갖추고는 마침내 엘리사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러나 엘리사는 일국의 군대 장관인 나아만에게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자신의 종을 시켜 메시지만을 전달한다.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으면 상처가 낫고 몸이 깨끗해질 것”이라는 전갈을 받고는 분을 내며 돌아가려고 했다. “감히 나를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 뭐.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그에게 그의 종들이 그를 설득하였고 마침내 나아만은 요단강에 들어가서 몸을 씻었다.

그러나 여전했다. 두 번째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세 번째 씻고 나오면서 그는 이번에는 상처가 조금이라도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심지어 여섯 번째 몸을 씻고 나올 때까지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마침내 일곱 번째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몸을 씻기를 마치니,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처럼 완전히 깨끗하게 치료된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한 말씀을 하셨어도 우리가 그것을 싫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다른 말씀을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라. 결국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알겠는가? 비록 지금 당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극심한 고난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며, 지금 이 고난의 현장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



4.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이를 들어 쓰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거나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겸손한 자세로 시련을 통과하는가, 혹은 징징 울면서 내내 하나님을 원망하며, 시련에 줄곧 끌려 다니는가 알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요셉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정도로 영적으로 성장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의 총리로 들어 쓰셨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이를 찾으실 때에, 우리가 그분의 이런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시험하실 수 있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의 아내는 법률사무소에 근무하게 되었다. 하루는 변호사가 아내에게 책상 위에 있던 돈에 대하여 물었다. 실은 그가 내 아내의 정직성을 떠보기 위하여 꾸민 일이었다. 아내는 보관하고 있던 돈을 변호사에게 돌려주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신실함을 아시기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신다. 시험을 통과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우리가 고난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통과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들어 쓰시고 더욱 신뢰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더 큰 사역, 더욱 품위 있는 일, 건강과 물질의 풍부함 등으로 우리에게 축복하실 것이다. 또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우리를 더욱 영적으로 성숙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상황이 때로는 그분의 진의가 아닌 경우도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너도 알다시피 너를 따르는 이 백성은 패역한 백성이라 내가 이제 행할 바를 네게 이르노니 이 백성을 모조리 멸하고 너로 새로운 백성을 이루어 그들을 강한 백성이 되도록 하리라.”

어떤 면에서 모세에게는 이 말씀을 환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어쩌면 목회를 하고 있는 교역자들 중에도 이러한 심정을 이해하는 분이 있으리라. 만약 하나님께서 “네 말썽꾸러기 집사들을 모조리 쫓아버리고, 내가 새로운 성도들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실 때 “오, 예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목회자들도 많으리라.

모세에게 드디어 골칫거리 백성들에 대한 앙갚음의 기회가 왔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그는 반대하고 나섰다. 모세는 자신에게 항상 불만을 토로하며 불순종하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렸다. 사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던 것이었다. 이러한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간됨을 밝혀 드러내신다.



5. 유혹을 당할 때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가진 이들이 있으며, 사단은 이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절친한 친구들이 결혼에 실패하고, 가정은 무너지고, 영적으로도 타락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은 모두 이들이 돈을 빨리 벌 수 있는 길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돈에 집착하는 이들이 유혹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역시 본성적으로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던 자였다. 예수님을 삼 년 동안이나 바로 옆에서 모시던 자가 마지막에 자신의 스승을 은 삼십에 팔아 넘기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는 예수를 주로 시인한 자들이었다. 성령께서는 초대 교회의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바치도록 함으로써, 이들이 재물에 집착하지 않도록 인도하셨다. 하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의 소유를 판 것의 일부를 뒤에 숨기고 나머지를 가지고 전부인 양 거짓말을 함으로써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성도덕 기준에 합격할 수 있는지 아시기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신다. 부부가 아닌 이들의 성적인 접촉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 이러한 시험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은 곧 쓰라림을 맛보게 된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얼마 전에 내 친구에게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시는 이들의 3/4정도는 사단이 성적인 유혹으로 넘어뜨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았다. 이것은 유혹을 받아들이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왜냐하면 요셉은 고향과 아버지와 형제들을 떠나온 외로운 처지였고,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할 경우 어느 누구도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은 이 여인에게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섬기는 당신의 남편과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신에게 들통나지 않고 바람을 피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혹시 ‘그래, 이건 누구도 알 수 없겠지’라고 하지 않겠는가?

야망이란 어떤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야망’이란 성령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이는 우리가 어떤 것에 사로잡히도록 하여 ‘저것을 꼭 하고 말 거야’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다면 이러한 야망으로 인해 중요한 직책과 존경받는 지위, 그저 겉보기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일 등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야망에 너무도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는 “저런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혹은 “저런 이들과 어울려 다녀서는 안 되는데” 또는 “저렇게 교만하게 자신을 떠벌려서는 안 되는데”라고 말씀하시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6. 사단과 마주치게 될 때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거나 시험할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경우에 한정된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사단이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1:8-9).”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1:12).”

우리가 사단의 공격을 받을 때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단은 언제나 술책을 부리다가 실패하는 존재다. 사단의 이러한 전형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그 결정적인 증거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그 ‘멋진 금요일’에 있었던 일을 꾸민 장본인은 사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사단이 의도한 바였다. 사단은 자신이 한 일 중에서 가장 멋진 일을 했노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이었다. 이 세상이 생긴 이래 가장 은밀하게 숨겨진 비밀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는가’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 8절은 말씀하고 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사단은 교만히 행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7. 예기치 못한 혼란을 겪을 때

만일 당신에게 좋은 직장과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나를 위해 새로운 일을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실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그분께서 당신을 전임 사역자로 부르시거나, 혹은 선교사로 부르셨다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에이, 제가 어떻게요. 저는 못합니다‘라고 말하겠는가?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야겠다. 나와 아내는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남부 침례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플로리다의 포터 로더데일의 한 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성령님께서 며칠 동안 나를 특별히 다루고 계셨다. 나는 당시에 매주 삼십 분씩 라디오에서 설교를 했으며, 텔레비전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신학교에 가길 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가 무엇 때문에 신학교엘 가야 합니까? 저는 지금 설교할 수 있고, 성경을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신학교를 가야 한다.” 나는 생각했다. “제 나이가 몇인데요? 학교를 졸업하면 사십은 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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