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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밭이 황무할 때

프랭크 다마지오 지음 | 예수전도단
나의 밭이 황무할 때프랭크 다마지오 지음/현문신 옮김예수전도단/247쪽/2001년 9월/7,000원

1. 불임학교를 통과하는 개인적인 여정대부분의 다른 젊은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선 결혼 생활의 성숙과 재정적인 안정, 그리고 우리의 삶의 질서가 확립되고 난 뒤에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포틀랜드 성경대학에서 전임으로 가르쳤던 27살 되던 해 그리고 아내가 포틀랜드 시 중심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임 법률 비서로 일하고 있던 24살이 된 당시 우리는 이제 아이를 낳을 때라는 것에 서로 동의했다. 그러나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2년간 임신이 되지 않자 우리는 이 문제가 불임, 조루증 등 어떤 질병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가능성을 고려해보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해서 임신이 되지 않자 우리는 여러 가지의 자책감으로 갈등했다. 또한 악한 세력의 영적 방해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 감정적인 고통과 해답없는 영적 의문들은 우리에게 큰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처음의 고통은, 그 후 12년에 걸쳐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 더욱 깊은 사랑을 갖게 했으며, 자연적인 불임과 영적인 황폐함의 대응(對應)에 대한 놀라운 견해를 계시해 주었던 여정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열매없는 지도자들, 황폐한 교회들, 열매 없는 교단들, 열매 없는 사역들 -이러한 것들은 내가 많은 사랑과 이해와 진정한 해답을 가지고 사역하게 되었던 문제들이었다.

샤론과 나는 좌절했고, 지쳤고, 화가 나서 드디어 ‘아마도 자녀들, 가정, 그리고 정상적인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닌가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계심이 분명하다’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의사, 친구, 예언자들, 그리고 상담가들과 함께 몇 차례 감정의 기복을 겪고 난 뒤에 우리는 할 만큼 다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의사들이나 상담 혹은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안식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든든한 부부관계를 이루어 가는 일을 계속해 나가고, 그리고 불변하는 우리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사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이 시기에 나는 한 교회의 특별 모임을 인도하면서 “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불임으로 고통 당하는 모든 자매들을 위해 기도해라.”는 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주제를 언급하신 것에 대해 다소 화가 났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필 개인적으로 실질적인 결과도 얻지 못했고, 그리고 분명한 믿음도 갖고 있지 않은 내게 이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그러나 결국 성령께서 이기셨다. 나는 적어도 14명 이상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매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그 경험은 내가 1년 반이 지난 뒤에 같은 교회를 다시 방문하게 될 때까지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역사하셨고 아이를 낳지 못하던 어머니들이 자신의 갓난아이들을 내게로 데려와 보여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자연적인 상황을 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역사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하셨다. 이때부터 불임에 대해 성경을 연구하는 긴 여정이 시작되면서 나는 ‘이 주제가 자연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샤론과 나는 이제 우리의 불임에서 눈을 돌려 입양을 통해 가정을 이룰 계획을 했다. 우리의 첫 번째 입양은 입양하기로 한 과테말라 아이가 입양직전 아기 침대 안에서 죽음으로 끝났다. 눈물이 흐르고 좌절감이 몰려왔다. 마지막으로 나는 기도하고 찬양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그곳에서 나를 만져 주셨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우리는 다른 과테말라 여자 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다. 우리의 첫 아이, 니콜 룻 다마지오와 드디어 한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현재 니콜은 15살이며 건강하고 주님을 믿어 세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우리의 청소년 전도 사역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자그마한 기적이 아닌가! 2년 뒤에는 태어난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은 둘째 딸이 우리에게 오게 되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베다니 미쉘 다마지오이다. 베다니는 현재 13살이며, 학교생활도 잘하고 명석하고 음악적인 재능이 많은 아이다.

그 당시 샤론과 나는 만족했다. 1987년 봄이었고 나는 포트랜드에서 열리는 목회자 모임의 오전 시간 강사였다. 말씀의 주제는 “황폐함의 묶임을 끊는 것”이었다. 그 모임은 열매 없는 목회자들과 황폐한 교회들을 위한 기도시간과 개인적인 사역시간을 가지며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주제의 말씀을 전하고 다니는 동안 내 아내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영적인 황폐함의 묶임을 끊는 동안 우리의 신체적인 묶임을 끊고 계셨던 것이었다. 샤론과 나는 믿기 어려웠지만 임신을 하나님의 신실하신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앤드류 데이빗 다마지오는 우리의 결혼 12주년 기념일이 되기 몇 달 전인 1988년 1월 12일에 태어났다. 이제 10살 난 앤드류는 능동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아주 활달하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 동물들 그리고 운동을 사랑한다!

4년이 지났다. 놀랍게도 아내가 또 다시 임신하게 되었다. 제시카 페잇 다마지오가 태어났다. 우리가 어떻게 이 네 아이를 보살필 수 있을까? 아이가 넷이면 대 가족이었다.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제시카가 태어난 뒤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렸다. “주님 네 명이면 충분합니다. 다마지오 가정의 자녀를 구했던 수천 번의 기도 중에 아직도 주님의 보좌 앞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취소하기 원합니다.”

2. 불임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구약의 히브리어들과 신약의 희랍어들을 살펴보면 불임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를 알 수 있으며, 이 주제를 좀 더 정확하게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된다.

히브리어 정의․아가(Aqar): 신체적으로 생산기능이 결여된 사람을 가리키는 형용사, 잉태하지 못하는․샤콜(Shakol): 자연유산하다. 빼앗기다와 유사함, 공허하게 되다. 열매를 맺지 못하다. 때가 차기 전에 열매가 떨어지다 ․멜레카(melechah): 소금기 있는 땅, 황무한 불모지, 생명없음, 씨를 맺지 못함․옷서(Otser): 속박하다, 가두다, 봉하다, 잠잠하다․샤쿨(Shkkuwl): 결여된, 공격 받은, 이용당한․찌야(Tsiyah) : 문자적으로는 갈라진 땅, 가뭄이 든 땅, 광야

희랍어의 정의․스테이라스(Steiras): 위축, 경직 그리고 부자연스러움, 불임․아르고스(Argos): 사용되지 않는, 쓸데없는, 한가한, 느린이와 같은 정의가 현재 당신의 사역이나 섬기고 있는 교회를 묘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황폐한 교회, 황폐한 사역을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어떤 공식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확실히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황폐함을 극복하는 성스럽고 비밀스러운 열쇠를 쥐고 계신다. 현재의 황폐함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미래에 당신이 누릴 성공을 암시하는 더 큰 징조일지도 모른다.

황폐함은 성공을 위한 하나님의 비밀스런 학교이다. 깨어짐과 황폐함은 한 가족이며 이 둘이 협력하여 겸손과 믿음, 인내 그리고 소망과 같은 매우 건전한 열매들을 생산해낸다(잠 15:33; 약1:2~4). 또한 황폐함은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다. 현재 당신은 매우 공허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축복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희망찬 21세기를 맞아 당신의 교회는 어떠냐고 누가 묻는다면 “우리는 큰 영적 기쁨과 대단한 영적 생산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눈앞에는 그것과는 거리가 너무 먼 현실만이 드러나 있을 뿐이다. 미국 전역에는 사역이 전성기의 껍데기에 불과한 정도로 퇴보한 교회들이 수천 개나 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함께 당신의 사역과 섬기는 교회들의 황폐함의 묶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병들었거나 황폐해진 교회들에는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3. 교회의 영적 낙태와 자연유산샤론과 내가 진단을 받는 긴 과정을 시작했을 때 의사들은 먼저 우리들의 신체적인 배경부터 조사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황폐함을 진단하는 일도 ‘영적인 배경’을 조사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반드시 던져야 할 두 가지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 안에 영적인 낙태가 있었는가? 둘째, 교회 안에 영적인 자연유산이 있었는가?

비유적인 의미에서, 영적인 혹은 교회적인 낙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아서 발육되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계획에 고의로 불순종함으로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를 비롯하여, 때가 차기 전에 조산하도록 강요됨으로써 성숙되지 못한 열매나 결과를 의미한다. 이러한 영적인 낙태는 교회에 흉터를 남긴다. 어느 정도의 성공을 경험한 비전이 있는 지도자에 의해 설립된 교회가 낙태를 경험하게 되면, 그러한 교회는 성공적이지 못한 교회보다도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교회의 비전이 생명을 맛본 후, 지도력의 결여나 잘못된 결정, 지혜롭지 못한 예산 책정이나 부도덕한 일로 인해 낙태를 경험하게 되면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깊은 혼돈이 야기될 수 있다.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아이를 가지려는 대화가 아니라 회복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유산은 한 과업이 실패하거나 패배함으로써 전혀 예상치 못한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사람이나 과업, 일들에 적용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영적인 자연유산은 현대교회들이 당면하는 흔한 문제 중에 하나이다. 교회가 잉태의 기쁨을 경험하고 나서 출산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때, 교회 안에는 원망과 두려움, 쓴 뿌리가 생길 수 있다. 자연유산을 경험하는 교회가 나타내는 정서적, 영적 증상들은 다음과 같다. 끈질긴 슬픔, 해결되지 않는 죄의식으로 눌려있는 당치않은 죄책감, 구체적 가르침이나 글들을 통해서 아니면 예언의 은사를 가진 자나 중보기도자를 통해서 답을 찾으려는 해결책을 향한 끝없는 추구, 교회생활의 다른 모든 부분을 가리워 균형 잃더라도 하는 교회 성장에 대한 집착 등.

영적인 낙태 또는 자연유산을 경험했거나 현재 경험하고 있는 교회를 섬기는 데는 특별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열망에 가득 찬 젊은 목회자를 낙태나 유산으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에 있는 교회로 부임시켜서는 안 된다. 슬픔에 잠긴 그들에게 변화라는 것은 전혀 쓸모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유가 되지 않은 몸 안에 비전을 심어주고자 하는 시도는 더 많은 상처만을 유발시킬 뿐이다. 교회의 연륜과 본질에 따라 목회자의 반응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각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지도자적인 전략과 기술이 필요하다.

4. 황폐함의 원인 분별하기우리의 불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동안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분의 손길이었다. 마찬가지로 사역을 하는 지도자들도 끝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고도 타는 듯한 여정과도 같은 메마른 계절을 지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지도자는 ‘이런 황폐함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가 아니면 마귀의 소행인가?’라는 의문을 가진 채 계속 하나님의 사역에 종사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황폐함의 기본적인 원인을 두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은혜로 덮어주신, 하나님이 사용하신 일시적인 황폐함이다. 둘째는 반항, 인간의 실패, 사단적인 방해와 하나님을 대항하는 노골적인 불순종의 결과로 오는 황폐함이다. 원인 없는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황폐함의 원인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표면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을 감지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구하고, 그것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적인 분별력을 추구할 때 연구해야할 중요한 성경구절은 에베소서 1장 17~19절이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이 구절에서 영적인 분별력을 구할 때에 어떻게,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하나님 나라의 명령들을 살펴보자. 첫째, 우리 마음의 눈이 빛으로 환하게 밝혀져 우리의 속사람이 지혜와 비전의 영적 능력으로 민감해지게 되는 영적인 조명이다. 둘째, 하나님의 원칙이 우주적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타협할 수 없으며, 참되고 영원한 성공의 길임을 보는 지혜이며, 또한 우리의 본능적인 성향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의 원칙과 직접적으로 어긋나는지 볼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갖도록 해주는 지혜의 영이다. 사람에게 황폐한 것이 반드시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열매가 없는 것은 아니며, 사람에게 풍성함, 형통함, 성공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반드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동일한 것은 아니다. 셋째, 성령의 조명을 받아들이려는 열의가 있는 태도,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기로 뜻하신 것을 포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계시의 정신이다. 넷째, 영적인 분별력인데 그것은 우리가 성경과 경건한 원칙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일할 때, 우리의 영광을 함께 증거하고 계신 하나님의 영과의 연합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영적 감지력이다. 분별력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끈질긴 노력의 결과이다.

무엇보다도 황폐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첫째 단계는, 나아서 건강을 되찾고 성장하여 제 기능을 발휘하는 교회가 되고자 하는 소망 그 자체이다. 그러한 결정은 목표를 결정해 준다. 당신은 그런 결정을 내렸는가? 그렇다면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서 황폐함의 원인을 생각해보자.

5. 사라: 믿음의 연단의 교훈잉태하지 못하던 사라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황폐한 상황 가운데 행하실 일에 대한 확실한 약속을 받았다. 두 사람 다 그것에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의 반응에는 자신들의 황폐함으로부터 해방되는데 정말 필요한 요소인 믿음이 부족했다.

그들이 첫 번째로 보인 반응은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적인 것이었다. 무엇이 옳은지를 규명하여 견해를 구성하고 자신의 이성으로 결정을 내리려 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논리의 연단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첫째, 사라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아이를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의 기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자신의 여종 하갈을 이용하여 이스마엘이라는 아이를 낳게 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려는 종교적인 논리를 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종교적인 해결책을 존중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둘째, 사라는 자신의 ‘자연본능적’ 논리에 의거하여 이제 그 일을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해보자고 아브라함에게 제의했다. 셋째, 사라가 제의했던 것은 그 당시에 사용되는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그것은 불임이라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처리하는데 있어 용납될 수 있는 문화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문화적인 논리에서 나온 ‘문화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결책’인 믿음을 사용하기를 원하셨다.

사라의 황폐함은 하나님께서 단 한번 찾아오심으로 그 묶임이 끊어져버렸다. (창 21:1~2)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하심이 우리의 깨어짐과 황폐함, 그리고 우리의 인간적인 실패를 돌아보실 때에 우리의 교회들은 변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행하신다.

‘흔들린다’라는 단어는 우리가 이성적인 경향에 의존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거듭 지적한다. 또한 불신은 일을 성취하고 이루고 실현함에 있어 자신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강한 믿음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부한 논리의 뒷받침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거짓말을 할 수 없으시다. 그분은 전능하시다. 믿음의 태도는 오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한 신중한 신념이다.

6. 리브가: 모순과 중보를 통한 교훈모순. 우리의 불임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열매 맺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나의 깨어짐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은 온전함을 받았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창세기 24장 60절에서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천만 인의 어미가 될 것이라는 전대미문의 성장의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잉태하지 못하는 모순을 경험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축복과 초자연적인 성장과 영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약속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리브가와 같이 우리도 황폐한 상태라는 모순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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