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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건축가

로렌스 J. 크랩 지음 | 두란노
결혼 건축가

로렌스 J. 크랩 지음/윤종석 옮김

두란노/2001년 3월/202쪽/6,000원



서문

오랫동안 부부 상담을 해오면서 참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친밀함과 만족을 방해하는 부부 관계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부부를 많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진정한 친밀함을 지켜 주는 실제적 해답은 있는 것입니까? 이런 만만찮은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의 기존 결혼관에 숨어 있는 몇 가지 위험한 성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 실패했다며 찾아오는 부부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대개가 이런 잘못된 성향에 피해를 입고 있음을 봅니다. 나는 그 성향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넷으로 나누어 보고, 이 책을 통해 이런 성향을 바로잡는다는 맥락에서 결혼을 재고해 보려 합니다:

1. 가정 문제가 단순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수고와 노력 없이도 공식과 단계만 따르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성행하고 있습니다.2. 만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책 다수가 만족의 약속으로 유혹하고 있으며, 주님께 순종함으로써 생기는 고난을 견디는 문제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3. 사람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필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채워짐을 믿고 단순히 그분 말씀대로 살려는 태도보다는, 결혼이란 피차 만족을 주고 피차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4. 결혼 문제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치 퍼즐 게임이나 되는 양 결혼을 조각조각 단편적으로 취급하는 책이 많습니다. 이렇게 조각에만 치중하다 보니 자연히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전체 그림이 흐릿해지고 말았습니다.



제1부 결혼의 목표는 무엇인가?

1. 결혼은 연합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격을 가진 존재이며 서로 관계 맺도록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의존적 인격체이기에 관계의 경험 없이는 창조의 본뜻대로 제 기능을 다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바대로 살려면 반드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성경은 관계의 두 가지 필수요소를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줍니다.

․안전감(security) : 내가 진정 사랑받고 있으며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중요감(significance) :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계속 중요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

이 두 필요는 현실적인 것이며, 진정 성경적 행동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먼저 채워져야 합니다. 안전감과 중요감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은 이에게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 있게 살라고 하는 것은 후두염 환자에게 고함을 지르라고 하는 것보다 무모한 일입니다. 내적 안전감이 무엇인지 모르며 거기에 대한 희망도 전혀 없는 여자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남편에게 자신을 내줄 수 없습니다. 자상하지 않고 이기적인 남자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준다거나, 약점 때문이든 무관심 때문이든 사랑에 인색한 남편 앞에서 기꺼이 약자의 자리에 처한다는 것은 이미 확보된 안전감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늘 남편의 생각을 무시, 비판, 거부하고 저만치 거리를 두며 걸핏하면 화내는 아내를 계속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기존의 중요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공급으로 자신을 무장하기 전에는 그분의 계획대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안전하게 하셨고 중요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필요가 이미 채워졌으며 따라서 이제 이타적으로 타인의 필요에 관심을 두며 살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이루신 일에 의지하며 살수록 나는 그분 안에서 안전감과 중요감을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바는 남녀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서 서로 이타적 관계를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관계라면 남편의 사랑은 아내를 참으로 감동시킬 것이고, 남편의 사랑이 아내 속에서 빚어내는 기쁨을 보며 남편은 한껏 중요감을 느낄 것입니다. 아내의 사랑은 남편에게 안전감을 느끼게 할 것이고 그것은 남편에게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아내 역시 남편의 깊은 필요를 채워 주는 일로 중요감을 느낄 것이며 남편에게서 받는 사랑으로 인해 안전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참으로 삶의 모든 부분을 철저히 파괴시켰습니다. 우리의 결혼은 분명 어딘가 잘못돼 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필요가 이미 채워졌다는 사실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아내를 제대로 대할 수 있으려면 아내 쪽에서 먼저 남편의 안전감과 중요감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에야 아내에게 자신을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그를 채워주지 못하면 아예 뒤로 물러나거나 혹 아내를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받아 주리라 생각되는 만큼만 아내에게 마음을 열어 사랑할 것입니다. 아내도 부부 관계를 똑같은 눈으로 봅니다. 남편의 사랑이 안전감을 느끼게 해줄 때에만 사랑과 순종으로 남편에게 자신을 내주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경우에는 거부당하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둘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결국 비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은 친밀한 관계를 위해 결혼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의 안전감과 중요감의 필요는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만 채워질 수 있다는 진리를 그 안에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남편 아담에게 데려오시자 그들이 한 몸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온전한 연합의 관계를 경험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관계를 이루는 것이 결혼의 목표입니다. 하나님이 연합을 통해 기대하시는 것은 부부가 결혼을 통해 단지 서로 필요의 충족을 경험하는 것 이상입니다. 부부의 연합을, 죄가 지닌 분리의 속성을 이기고 죄인을 구하시는 당신의 사랑의 힘의 한 실례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2. 영적 연합 - 나의 인격적 필요는 배우자가 채울 수 없다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나를 찾아와 자기 아내가 쌀쌀맞고 화를 잘 내고 꼬박꼬박 말대꾸한다며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계속 아내의 잘못만 늘어놓기에 중간에 말을 잘랐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내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사랑하라 하셨고, 그것도 그리스도가 그 백성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의심쩍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한테도 얼마간의 사랑과 존경이 필요합니다. 아내한테서 오는 거라고는 쌀쌀맞은 반응과 비난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랑하란 말입니까? 그럼 내 필요는 누가 채워 줍니까?”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봉착합니다. 남편이고 아내고 자신의 갈망을 채우는 최고의 길로 오직 주님만 의지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럴듯한 말 같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밀려오는 감정의 고통 중에도 늘 우리를 지켜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려면 어느 정도 영적 성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몸으로만 국한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살과 뼈와 터럭과 각종 기관은 인격적 자아가 잠시 머무르는 장막 집의 요소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가장 깊은 부분, 바로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란 한 인격으로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격적, 영적 존재로서 사랑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이 죄로 타락하기 전만 해도 하나님과의 깨어지지 않은 교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온전히 채워졌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면서 그 공간은 채워지지 않은 필요로 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필요 혹은 앞서 말한 안전감의 필요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시며 그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안전감과 진정한 중요감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안전감과 중요감을 더 깊이 인식하고 실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배우자를 채워 주기 위해 나를 온전히 내줄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상대의 반응이 어떻든 계속 기쁘게 섬길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분히 믿어야 합니다. 둘째, 배우자가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느끼고 수용하는 데 내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방면에 전문가라는 나도 유감스럽게 방어와 공격으로 맞선 대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나 :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는 거요?(아내의 과민 탓인 듯 교묘히 몰아세운다.)

아내 : 사람들 다 있는 데서 당신이 ...라고 말한 건 나를 혹평한 거였어요.

나 : 여보, 그건 혹평이 아니었소! 당신은 지금 내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거요!(방어와 공격)(3초 정도 침묵이 흐른 뒤)

아내 : 어쨌든 저는 정말 상처받았어요. 속상해 죽겠어요.

나 : 좋소, 미안하오. 그밖에 무슨 말을 더 하겠소.(대화를 끝내려는 심산으로 사과한다.)(30분간 침묵이 계속됨).



두 번째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영적 연합의 길에서 벗어나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아내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서로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오직 그 사실을 느끼는 것뿐이었습니다. 내가 훌륭한 남편인지의 여부를 떠나 주님의 사랑과 나를 향한 그분의 계획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나의 가치는 아내로부터 물러나는 태도가 아니라 아내를 섬기려는 노력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목적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 : 여보, 오늘 밤 당신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소. 그 말이 당신에게 왜 그토록 상처가 됐는지 알고 싶은데, 말해 주지 않겠소?아내 : 잘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하도 속상해서….

나 : 받아들일 수 있소. 당신이 사랑을 느끼도록 당신에게 더 잘해 주고 싶소. 오늘밤은 당신을 실망시켰지만 이것을 통해 뭔가 배우고 싶소.아내 : 당신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과 늘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한다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가끔 보면 당신은 너무 둔해요.

우리는 서로의 깊은 필요에 대해, 그리고 상대를 상처 아닌 치유로 대함에 있어 어떻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한 시간 남짓 이야기했습니다. 영적 연합을 향하여 나아간 것입니다. 영적 연합이란 내면의 필요의 차원에서 만날 때만 누릴 수 있는 깊은 친밀함의 세계입니다. 부부 각자가 자신의 인격적 필요를 채워 주는 분으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의지하는 관계입니다. 상대방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자신을 내줌으로써, 그리고 상대방의 안전감과 중요감의 경험에 자신이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충분히 인식함으로써, 서로를 돌보는 관계입니다.

3. 정신적 연합 1 - 이용하려 들지 말고 섬기라

영적 연합의 개념에서 자연스럽게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것이 부부의 ‘정신적 연합’의 개념입니다. 성경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가리킬 때는 주로 인간을 영혼이나 본질상 영적 존재로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인간 존재의 비물질적 부분을 가리켜 정신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는 세상 환경과 관계 맺고 있는 인간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영적 연합이란 부부 각자와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그 영적 관계를 통한 안전감과 중요감의 충족에 초점이 있습니다. 반면 정신적 연합이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부부가 영적 연합에서 그치지 않고 관계의 연합 즉 정신적 연합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연합은 상대의 인격적 필요를 깊이 채워 주는 독특한 도구로서 부부간의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간단히 말해 영적 연합의 기초가 인격적 필요의 충족을 주님께 의지하는 데 있다면 정신적 연합의 기초는 상대의 인격적 필요를 채우려 서로 기꺼이 섬기는 상호 헌신의 관계에 있습니다.

정신적 연합을 이루어 가는 부부는 결혼 생활에서 섬김의 기쁨을 맛봅니다. 한 인격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온전함을 충분히 깨닫도록 깊은 도움과 영향을 준다는 것은 놀라운 스릴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지구상 수십 억 인구 중 나를 뽑아 그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으신 그 어떤 사람에 대한 섬김의 사역을 감당케 하십니다. 바로 남편의 독특한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섬김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책임을 당위와 의무로만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타인에게 자신을 내주려 할 때 생기는 자연스런 반항 심리는 인간의 집요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이 두려움으로 인해 내면에서는 자신을 방어하고 아내를 비난하며 다른 조작적인 반응을 보이고 싶은 강한 욕망이 꿈틀댈지 모릅니다. 그런 내면의 격동 중에도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줄 반응을 결정해야 합니다. 일단 결정하면 성령께서 수행할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결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상처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하거나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높이려는 조작적 노력이 바탕이 된 관계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연합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조작의 원리에서 섬김의 원리로 과감히 옮겨가는 것이야말로 정신적 연합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인정하고 그것을 아내에게 표현해야 합니다. 아내는 비판 없는 수용의 분위기를 만들어 배우자로 하여금 어렵지만 자신의 필요를 내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결혼의 환경이 어떻든 하나님은 그것을 각 남편과 아내가 특별한 방식으로 상대를 섬길 수 있는 독특한 기회로 보십니다.4. 정신적 연합 2 - 화풀이보다는 대화를 하라

배우자로서 우리의 ‘목표’는 섬기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상대에게 섬김 받기 원하는 ‘갈망’이 있기에 상대가 바람대로 해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고통을 느낍니다. 대화 문제는 대개 이 ‘목표’와 ‘갈망’의 혼동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바라는 갈망이 목표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특정한 태도를 요구하다 채워지지 않으면 복수의 방편 내지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뜻으로 부정적 감정을 표출합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는 남편은 아내의 따뜻한 응대를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귀가가 늦어져 아내가 화내고 얼굴 찌푸리면 그 목표는 물거품이 됩니다. 남편은 분노를 느낍니다. 이 분노를 아내에게 말해야 합니까? 만일 분노 표출로(“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사람한테 좀 웃어 줄 수 없소?”) 아내의 불쾌한 응대에 맞서려 한다면 그 순간 남편의 목표는 아내에게 똑같이 상처를 주거나 잔소리를 그치게 하거나 죄책감을 유발시켜 행동을 바꾸게 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같이 다 섬김의 목표에 어긋나는 조작적 동기입니다. 그러면 그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단계 : 분노를 참습니다. 성경은 화날 때 신중해야 한다고 거듭 말합니다. 홧김에 바로 터지면 범죄하기 쉽습니다. 2단계: 분노를 인정합니다. 무분별한 즉흥적 표출은 일단 삼가야 하지만 분노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3단계: 신중히 생각하여 목표를 정합니다. 대체로 분노란 목표가 무너질 때 생긴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의 희망 사항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고 그것이 갈망으로 인정되면 섬김의 목표를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4단계 : 정당한 목표에 책임집니다. 섬김의 헌신이 현실이 되려면 아내를 섬기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정해야 합니다. 무너진 갈망에 대한 상처의 표현보다 섬김의 목표가 언제나 먼저입니다. 우선 아내의 짜증에 충분한 공감을 보인 뒤(“저녁 계획을 망쳐 놓았으니 당신이 화내는 것이 당연하오”) 수고에 고마움을 표할 수 있습니다(“날 위해 늘 애써 주어 정말 고맙소”).5단계 :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부정적 감정을 표현합니다. 이 시점에서 비로소 남편은 문간에서 느낀 분노를 아내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분노가 쓰디쓴 앙금으로 남을 것 같거든 미리 털어놓아 분노로 인한 위축을 막아야 합니다. 남편의 분노 표현을 통해 아내는 자신의 태도가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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