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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고든 맥도날드 지음 | IVP
함몰 웅덩이 증상



플로리다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어느 날 아침 창 밖에서 일어나는 두려운 광경을 목도하 게 되었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 앞의 지반이 내려앉아 플로리다 사람들이 '함몰 웅덩이' 라고 부르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계속 꺼져 들어가는 웅덩이 속으로 자동차와 도로 그리고 잔디밭이 함몰되어 갔고 그 다음은 아파트가 무너져 들어갈 차례였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도 이 플로리다의 함몰 웅덩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함몰 웅덩이와 같이 무너져 내리려는 자신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이 점에 대해 숙고해 본다면 이전에 알아채지 못했던 내적 영역, 즉 내면 세계가 우리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면의 존재를 무시해 버린다면 그것은 내리누르는 외부 압력을 오래 지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 외부 세계 혹은 공적 세계는 다루기가 쉽다. 외부 세계는 일, 오락, 소유, 그리고 대인관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공이라든가 인기, 재물, 미모 등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한 부분이다. 반면 우리의 내면 세계는 본질적으로 영적이다. 이 세계는 선택과 가치가 결정되는 중심부이며, 고독과 성찰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예배와 신앙고백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세상의 도덕적, 영적 공해가 침투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의 공적 세계는 뚜렷이 눈에 들어오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많은 시간과 충성심, 물질과 정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내면 세계는 외적 세계만큼 큰 소리로 외치지 않기 때문에 도외시되고 무시된다. 이 내적 세계는 함몰 웅덩이처럼 무너져 내릴 때까지 방치되는 것이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고백에서 이 같은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신들은 내게 거의 모든 것을 선사하였다. 나는 내 자신을 오랫동안 무분별하고 육체적인 향락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었다. 나의 사고는 모순으로 가득 차고 나의 정열은 도착되어 갔다. 나를 기쁘게 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쾌락을 추구했고 쾌락이 나를 지배하도록 허용했다. 그리고 그것은 무서운 수치감 속에서 내 인생을 마감 짓게 하였다." 와일드의 고백은 극적인 단면을 말하고 있으나 내면적인 존재를 무시해 버린 많은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무거운 책임들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유능한 사람들이나 대단히 지쳐있다. 그들 역시 오스카 와일드처럼 내면 세계를 너무 늦게까지 무시한 채 공적 세계에만 치중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조종실에서 보는 시각



미 해군 핵잠수함 장교로 근무하는 나의 가까운 친구가 지중해를 지나던 어느 날의 일이다. 잠 수함 위로 많은 배들이 지나고 있었고 잠수함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여러 차례 요동쳤다. 급작 스럽게 비정상적이면서 심한 격동이 일어나고 있어 함장이 돌연 조종실에 나타나 물었다. "아 무 이상 없나?" "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친구는 대답했다. 함장은 잠깐 조종실 안을 둘러보 더니 "내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군."라며 승강구를 통해 나가버렸다.

함장과 해군 장교와의 이 대화는 내적 세계의 단면을 명확히 설명해 주고 있다. 잠수함 주위에는 충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함장이 나타나 돌아볼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배의 운명을 결정짓는 곳은 잠수함 내부에 있는 조용한 조종실이었다. 함장이 본능적으로 들여다본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조종실 내부는 당황의 빛이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오직 고도로 숙련된 탑승원들에 의해 차분하고 재빠른 동작만이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아무리 바깥 상황이 위험해 보이더라도 잠수함의 안전은 보장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긴장과 압력이 삶에 가중될 때 삶의 조종실로 가지 않고, 대신 더 빨리 뛰려 하고, 더 박력 있게 우기고, 더 많이 쌓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위해 뛰고 있다. 실상 우리의 내면 세계는 그 어떤 폭풍이라도 헤치고 파괴해 버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데 말이다. 사람들에 있어 내면 세계의 조종실에 이상이 생기면 신경쇠약, 정신파탄, 자아 붕괴, 삶의 포기 등의 침몰 위기가 도래하게 된다. 외부 압력들을 견뎌내기 위한 안전과 힘의 원천이 없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단련을 위한 실수나 성숙을 위한 실패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성경 기자들에게서 참다운 내적 질서의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성경 기자들은 원칙을 알고 있었다. 창조주는 우리가 내면 세계로부터 외부 세계를 지향할 때 가장 능률적으로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시편의 기자는 이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내면 세계에 질서를 잡음으로써 외부 세계를 변화시키려 하는가? 아니면 내면 세계를 소홀히 함으로써 외부 세계로 하여금 우리의 모습을 결정짓도록 하려는가?

메리 슬레서는 미혼으로 19세기 말경 스코틀랜드를 떠나 형용하기 어려운 위험이 들끓는 아프리카에서 특별히 지치고 힘든 일과를 보냈던 어느 날 밤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요즈음 나는 나뭇가지 몇 개를 얼기설기 얹어서 침대를 삼고 더러운 옥수수 껍질로 이불을 하고 쥐들과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방에 세 명의 여자와 난지 사흘 된 아기가 누워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이때 내가 잠을 설쳤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는 아주 고요하고 편안한 밤을 지냈다." 메리의 고백은 내면 세계의 질서에서 오는 평화를 말해 주고 있다.

황금 새장에 갇혀서



미국 「타임」지에 실린 기사 가운데는 스트레스가 매년 미국 산업계에 500억 내지 750달러 상당의 지출을 발생시키고 있는데 이는 근로자 1인당 750불 이상이라고 쓰고 있다. 또한 스트레스야말로 심장병, 폐결핵, 우발적 사고, 간경화, 자살 등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보도하였다.

토마스 홈스 박사는 스트레스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통해 홈스 스트레스표를 개발하였다. 홈스 스트레스표는 특정인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와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초래할 위험도를 나타내는 측정법이다. 홈스는 1년 총점이 200점을 넘으면 심장병, 정서 장애 및 건강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사망은 가장 높은 점수인 100점, 해고당했을 때는 47점, 새로이 가족 구성원을 맞게 될 때는 39점이 주어진다.

내 경험으로는 200점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최근 만난 한 목사는 324점이며 어느 실업가는 412점이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쫓겨다니는 사람의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늘 어떠한 목표와 목적을 향해 쫓기고 있고, 이러한 삶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몸에 어떠한 폐해를 주고 있는지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쫓겨다니는 삶에 대하여 말할 때 단지 경쟁적인 사업가나 직업적인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는 운동선수나 직장인에 대해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 중독'의 증상보다 훨씬 깊이 침투해 있는 과거의 상처들과 심각한 상실감과 결핍 의식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지도자가 되기 위해, 어쩌면 섬기는 사람이기 위해서 쫓겨다니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쫓겨다니는 사람들의 양상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 있을 수 있는가? 문제는 쫓겨다니는 사람 자신이 그러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오늘날 우수하고 재능 있는 많은 지도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세평에 유착하려는 끊임없는 유혹을 받고 있다. 그들이 일단 그 유혹을 받아들이게 되면 메시아적 환상이 서서히 그들의 인격과 지도 형태를 오염시키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왜곡된 자기 인식을 키워 나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너무 바빠서 내면 세계를 정돈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보낼 시간이 없게 될 것이다. 조직체는 압도적으로 그를 필요로 하게 되고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찬사는 그들을 황홀케 한다. 이렇게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그것들의 주인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것들을 잃는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심각한 위기가 된다.

이러한 예를 구약성서의 사울왕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사울왕은 자신의 황금새장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는 무엇인가를 일단 소유하면 그것을 꼭 쥐고 고수해야만 한다고 여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의 삶을 '청지기의 삶'으로 여겼던 대표적인 한 인물은 세례요한이다. 한 때 군중은 요한에게 속해 있었고 그의 카리스마는 군중들을 사로잡았다. 군중들이 그를 떠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해 갈 때 요한은 무엇인가를 잃고 있었는데 그것은 예언자로서의 인기였다. 그러나 요한의 관점은 사울왕과는 달랐다.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았고 대중의 인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요한의 시각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직위나 재산, 재능, 은사, 건강일수 있다.

나 자신 역시 직업상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정신적 불구가 되어 있었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요동치 않는 내면 세계라는 기반 위에 그들의 삶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일이라는 기반 위에 쌓아왔음을 드러내 준다. 요한에게는 그의 내면 세계 안에서 들었던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실체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다른 어떤 소리보다 컸고 잘 정돈된 조용한 내면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요한의 내면 세계는 광야에서 건축되어 갔다. 갈등 가운데 처한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면 광야야말로 가장 심오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광야는 고독과 고난, 때로 고통을 의미한다. 광야는 사람에게 자유롭게 사색하고 준비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새롭게 충전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광야에서 형성된 내면 세계는 요한에게 판단력과 지혜의 독립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누구 내 시간 본 사람 있어요?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어요!



이 세상은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윌리엄 버클레이가 쓴 사무엘 콜로리지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한 재능과 뛰어난 지력,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화술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시간을 관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탕진한 채 끝나버린 사람의 예이다.

콜로리지가 자신의 천직인 문학에서 결국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처럼 가정이나 교회, 직업에서 부름받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런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자기 훈련 없이는 누구도 탁월한 인물이 될 수 없으며, 그러한 인물이 되었다 해도 자기 훈련 없이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없다.

사실 우리 중 그 누구도 콜로리지처럼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며 이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씹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질서한 생활의 습관을 깨뜨리지 않는 한 우리의 내면 세계는 철저히 무질서의 도가니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다스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시간의 예산 작성



개인적인 모든 시간 사용을 위해서도 예산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돈에 대해 예산을 세우는 것은 익숙해져 있다.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할만한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어디에다 우선 순위를 두고 돈을 써야 할지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이 한정되어 있는 시간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젊은 목사 시절의 나는 시간 계획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까닭에 그저 방문하는 사람, 위원회 참석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 다니고 있었다. 스스로가 세워둔 시간 예산이 없는 상태에서 다른 이들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뭐 있었겠는가? 더욱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젊은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렇듯 무질서한 시간 사용탓에, 내가 독자적으로 내 시간을 통제하지 않았기에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내 시간을 주도하게 되었다. 나는 연회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다른 나라까지 비행기로 날아갈 때도 있었다. 그것은 시간을 잘못 쓴 경우였다. 한 때는 어느 유명한 정치가를 위한 조찬 기도회의 상석에 앉거나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담하는 것이 화려해 보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시간 사용에 있어 우선 순위를 차지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직장이나 사회 또는 교계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즉각적인 관심을 끌려고 아우성치는 사건들에 늘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사실 가장 크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라 해서 반드시 가장 급한 일은 아닌 것이다. 계획되지 않은 시간에 대한 법칙은 스스로가 계획된 시간 사용을 결정하기까지 무질서한 상황으로 계속 진행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 사용을 위한 올바른 기준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의 사역에서도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사명에 대해서도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즉, 우리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지 않으면 안될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원칙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하다. 성패가 이 원칙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할당된 중요한 시간들이 갖는 공통점은 그 시간들이 무시되었다 하더라도 절대로 즉시 소리를 치지는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영적 훈련을 소홀히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당장 큰 소리로 고함을 치시지는 않으며, 얼마 동안은 잘 버텨나가게 된다. 가족을 위한 시간이 사라졌어도 훨씬 관대한 편이다. 또 연구하는 시간을 우선 순위에서 빼놓더라도 얼마간은 별 탈 없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큰 어려움 없이 얼마동안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오래 전에 그것들을 위한 시간 예산을 짜지 않으면 다른 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불행히도 그것들이 너무 장기간 무시되고 나면 마침내 가족관계나 영적 훈련 등이 심각한 지경에 처하게 되고, 모면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오전 여섯 시에 나의 시간을 요구하는 한 사람의 요청을 미룬 일이 있다. 계획표를 들여다보고 나서 그 사람의 요청을 한 시간 뒤로 연기하자고 말했다. 오전 여섯 시에 나는 하나님과 만날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나는 두 달 후의 계획을 세운다. 달력에 표시되는 것들은 나의 내면 세계에서 타협해서는 안될 요소들, 영적 훈련, 지성 훈련, 안식일적 휴식, 그리고 가족과 특별한 친구를 위한 시간들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순위의 일들이 달력에 적혀진다. 그것들은 설교 준비, 글쓰는 것, 지도력 계발, 제자 양육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적어도 수 주 전에 표시되도록 한다. 이러한 약속이야말로 우리가 타협해서는 안 될 약속들이다. 이것들은 질서 잡힌 하루와 질서 잡힌 삶 그리고 내면 세계의 시작인 것이다.

정신을 훈련해야 할 필요성



억압된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쉽사리 인간의 영혼과 인간관계를 파괴시키는 사상과 제도의 희생자가 된다.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 의존하게 된다. 생각없는 행동은 인격적인 무질서를 야기한다. 사고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위험하게도 주위의 문화에 흡수되어 버리는데 그의 정신은 훈련되지 않고 채워지지 않았기에 세상에 도전을 줄 수 있는 질문들을 풀 능력이 결여되게 된다.

이들 가운데는 20년 전에 "그는 실패할 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이름났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젊은 나이로 단상에서 비상한 능력을 보였던 설교자일수도 있으며, 괄목할 만한 실적을 올린 사업가일수도 있다. 그들은 사고력이 그 기능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계속 단련되어야 하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며, 넓혀지고, 강화되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자연적 재능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 유지해 주지만 경주가 끝나기 훨씬 전에 주저앉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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