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경제와 경영
김진홍 지음 | 두레시대
성경의 경제와 경영 (1)어느 경제학 교수가 이야기하기를 성경은 어떠한 경제학 교과서보다 경제에 대해서 더 강조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경제와 경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무려 1만 5천 6백 번이나 나옵니다. 어떤 경제학 교과서가 그만큼 경제와 경영을 강조하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성경은 탁월한 경제학 교과서요, 경영 교본입니다.
성경적인 경제를 말할 때 적절한 예는 이스라엘입니다. 강원도 정도의 크기의 이스라엘은 인구가 5백만이 조금 넘는 준사막 지대의 나라입니다. 농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땅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농업은 대단히 발전하여 5백만 인구가 식량을 자급하고, 2년 전에는 32억 달러의 농산물을 수출했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외교관을 만난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그 비결이 뭡니까? 저도 농촌에서 두레마을이라는 농업 공동체를 경영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이처럼 척박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식량자립과 그렇게 많은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겁니까?" 그랬더니 그가 선뜻 대답하기를 "그 이유는 토라 농법 때문이지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외교관이 말하는 토라 농법은 이사야서 43장 18∼21절에 근거한 말씀 농법이라는 얘기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사 43:18)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 말씀을 적용하여 '사막에서는 농사가 안 된다. 황무지에서는 수확이 안 된다.' 하는 고정관념을 버렸다고 합니다. 즉 발상의 전환을 이룬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사막에는 물이 없고, 매우 덥기 때문에 농사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 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그들을 이 말씀을 근거로 갈릴리 호수에서 400km까지 물을 끌어들였습니다. 400km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 트랙터가 다니는 농로를 닦으니까 사막에 강이 열린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자신들의 농업 발전에 구체적으로 적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때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사막에 물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곡식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과학자와 농학자들을 데려와 조사해 보니 염기와 알칼리성 때문에 염도가 너무 높아 수확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책을 세워 나갔습니다. 염기를 줄이는 동시에 염기에 강한 작물을 심기로 했습니다.
연구 결과 귤과 오렌지가 염기에 강하다는 것을 알아 내고 귤나무를 심어 키운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귤나무로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재배할 수 없는 최고 수준의 귤을 생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의 과일가게에서 다른 귤보다 최고 3배 이상의 값을 더 받는 것이 이스라엘 과일입니다.
성경의 경제와 경영 (2)성경적 경제와 경영의 모델로 토라 경제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 경제의 특징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입니다. 성경은 소유와 경영을 처음부터 분리합니다. 그렇다면 소유주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경영자는 누구입니까? 경영을 위임받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물질을 위임받아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일컬어 '청부사상'이라 합니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저서에서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로부터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맡긴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직업에서 열심히 일하며 절약하고 저축을 합니다. 그러면 돈이 모이고 자본이 축적됩니다. 이 축적된 자본으로 재투자를 하면 더 많은 자본이 축적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여 결국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가 이루어졌다고 막스 베버는 말하고 있습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은 "경영의 요체는 골목에 있는 구멍가게나 대그룹의 회장이나 같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바로 성경적인 얘기입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나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나 소유주인 하나님에게 위임받아 최선을 다하는 원리는 다 같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이처럼 경제적인 성공과 직결됩니다. 그런데 복 받을 만한 됨됨이가 안 되면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한국경제도 그렇습니다. 1964년 1억 달러를 수출했고, 30년 뒤인 1994년에는 천억 달러를 수출했습니다. 세계 역사에 전무합니다. 너무 잘 나갔습니다. 문제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998년 IMF를 맞게 된 것입니다.
아주 가난한 집에 사는 여 집사님 한 분이 씀씀이가 헤펐습니다. 이 부인이 어쩌다가 돈 이 생겼는지 쇠고기 스물댓 근을 사서는 양념에 지지고 볶고 구우니까 그 부인이 사는 판 자촌 동네에 냄새가 퍼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투덜거렸습니다. "언놈이 고기 안 먹어 본 놈 있나. 와 이리 냄새를 피워 쌌노?" 그런데 이 부인이 구운 고기를 온 동네에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모 처럼 목에 기름칠 좀 했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이 부인이 3일 뒤 우리 집으로 쌀을 꾸러왔습니다. "아니, 집사님. 사흘 전에 고기 잔치 해 놓고 쌀자루 도둑 맞았어 요?" 그랬더니 "아이고, 남사시러워라. 그때 지가 모처럼 돈이 생겼길래 죽기 아니면 살 기로 먹어 버렸지요."
3일 뒤의 양식 준비도 안 해 놓고 먹어 버린 것입니다. 모처럼 돈 생겼으니 원수 갚듯이 먹어보자. '마침내' 쌀 꾸러 다니는 꼴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 나라 경제도 그렇습니다. '마침내' 망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 극복하려면 '마침내'라는 말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바닥부터 다시 올라가서 마침내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그 섭리를 몸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의 경제와 경영 (3)영국의 경제학자인 알프레드 마셜은 세계사의 흐름에서 볼 때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두 분야는 '종교'와 '경제'라고 했습니다. '건전한 종교윤리', '건전한 경제원리' 두 가지가 합쳐졌을 때 사회가 안정되고 복을 누린다고 마셜은 말합니다. '건전한 종교윤리'와 '건전한 경제원리'가 합칠 때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개신교 윤리에서 나온 경제체재가 자본주의입니다. 개신교 윤리는 '자본주의의 모체'입니다. 그런데 이 경제구조에서 '자본주의의 모체'가 되는 '개신교 윤리'를 빼 버리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러한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 자본주의 사회, 한국의 경제위기는 사실상 경제위기가 아닙니다. 도덕의 위기이고, 정신의 위기입니다.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개신교 윤리'가 빠져버리면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가 된다고 베버는 말합니다. 이 '천민 자본주의'에는 3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가 '정경유착'입니다. 정치와 경제가 합쳐져 같이 부패해 버리는 것입니다. 정치가 금융을 좌지우지하고 금융가와 정치가들이 결탁하니 대한민국의 은행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양만 갯벌 960만 평에 1,200세대가 살고 있는데 이들은 15개 마을에 신용조합을 만들고 각 마을을 다니며 저축을 권유했습니다. 처음엔 모래벌판에 천막 치고, 가마솥 걸어놓고 보리쌀 한말 풀어 서해안 갯벌에 망둥이 건져다 넣고, 질경이 같은 짐승이 먹는 풀을 뜯 어 넣어 꿀꿀이죽을 해 먹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신용조합의 자산은 이제 180억입 니다. 이 조합의 이사들은 중학교를 중퇴한 아줌마, 고등학교 졸업한 농부들입니다. 그래 도 아주 탄탄합니다. 부실채권은 5% 이하입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두 번째 특징은 '빈부격차'입니다. 우리 사회는 IMF 이래 있는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되고 중산층과 없는 자들이 바닥에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도덕성의 타락'입니다. 도덕적 부패가 천민자본주의의 특징입니다. 여러 가지로 산업구조가 이상해졌습니다. 길을 다녀보면 러브호텔이며 식당, 사우나 등 먹고 자고 씻는 산업만 번창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자본주의의 모체인 프로테스탄티즘을 내용 면에서 살펴보면 다음의 세 가지 측면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첫째, '성경적인 생활관'입니다. 둘째는 '성경적인 직업관'입니다. 셋째는 '성경적인 재물관'입니다. 이 세 가지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적인 밑거름입니다.
'성경적 생활관'의 핵심은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절약하여 검소한 정신을 갖는 것입니다. 두 번째인 '직업관'의 핵심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제사장, 공장에서 일하는 제사장처럼 각자 자기 직업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당당해 지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인 '재물관'의 핵심은 물질의 소유주는 하나님이고 나는 관리인이라는 것입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입니다. 성경의 경제가 일반 경제와 다른 점은 일반 경제가 '버는 것'을 주로 공부하는데 반하여 성경은 '바르게 쓰는 것'을 먼저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경제와 경영 (4)한국이라는 땅은 자원이 없습니다. 자원이라곤 강원도에 무연탄 조금 있고, 골짜기에 자갈, 모래가 있고, 산에는 송충이 먹는 소나무밖에 없습니다. 결국 남는 자원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자원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잘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투자할 재산은 사람입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 창조, 식물 창조, 동물 창조,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 창조 등의 순서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땅은 히브리어로 '아다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인 아다마를 창조하셨는데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람은 히브리어로 '아담'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땅, 아다마를 창조하셔서 사람, 아담이 그 땅을 경작하여 문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문화에서 무엇이 빠져 버렸습니까? 하나님이 빠져 버리고, 아담, 사람이 땅, 즉 아다마를 경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대리하여 하나님이 주신 아다마, 땅을 잘 경작해서 훌륭한 문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지금 세계는 하나님 없는 문화이기에 병든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광야로 나갔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정이 60만 명입니다. 남녀노소 다 합치면 200만에 가깝습니다. 연신 사고가 터졌습니다. 이들이 모두 다 모세한테 와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이 그 많은 인구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세한테 말 한 마디 들으려고 하루종일 줄 서 있습니다. 모세도 지치고 사람들도 지칩니다.
교회 일에서도 가장 장애를 주는 사람은 혼자 일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일은 팀워크를 이루어 공동체로 나누어 일해야 하는데 혼자 일하는 사람이 특별히 제일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교회 일은 더불어 같이 해야 하는데 모세가 그런 식으로 혼자서 다 재판하니 일이 되겠습니까? 모세의 장인이 다음과 같이 충고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적인 경제와 경영에 대한 하나의 원칙인 것입니다.
"그대는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 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백 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일이면 그대에게 배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 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대에게 쉬우리라."(출 18:21∼22)
이것이 경영의 요체입니다. 시스템을 짜서 역할을 분담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경제 경영은 더불어 같이 함께 하는 것이지 혼자 일 잘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일을 독점하는 사람은 조직에 장애를 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시스템 경영을 채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하신 일 중 70∼80%가 열두 제자를 훈련시켜 세상으로 내보낸 일입니다. 제자들을 불러 그들과 같이 살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며 전도자로 내 보내고, 권위와 영권을 주고는 팀워크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가시고 땅 끝까지 제자들이 복음사역을 맡은 것입니다.
민주적 경영자본주의의 참된 정신과 윤리를 잃어버리고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한 우리 경제의 실상황을 많은 곳에서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외국 기업인이 한국에 와서 기업을 하려고 약 6개월 애쓰다 도저히 한국에서 기업활동을 못하겠다며 손 털고 미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분이 "목사님, 미국에서 기업을 하다가 한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문제가 크게 세 가지 있습니다. 이게 고쳐지지 않으면 한국은 세계 수준의 선진 경제를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각 기업체에서 발표하는 재무제표가 투명하지 못한 점입니다. 수입, 지출, 세금을 비롯해 각종 이익금과 부채 등을 발표하는 재무제표를 실제로 조사해 보면 터무니없이 엉터리입니다. 바로 '정직성'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각종 규제가 너무 많아 '비효율적'입니다. 행정규제가 너무 많아 외국에서 기업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노조의 강경한 태도'와 '지나친 요구'입니다. 노동자들이 생산성은 생각하지 않고 요구를 지나치게 합니다. 생산성 대 노임의 비율은 안 맞고, 노조는 너무 강경투쟁의 자세로 나오니까 외국 기업들을 힘들게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경영인들은 거짓말 잘 하고, 탈세도 잘 하고,뇌물도 주고 해야 기업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의 비극입니다. 한데 지금 와서 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으로 들어가려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융실명제와 토지실명제를 하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선진국 경제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경제구조가 정직하지 못하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정직한 경제 시스템, 정직한 거래, 정직한 납세가 있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이 단계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20대에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LA에서 하루는 동족 두 사람이 상투를 서로 쥐고 싸우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백인들이 신기해서 "원더풀, 원더풀."하고 구경 하고 있습니다. 안창호 선생이 싸우는 한 가운데로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인삼 장사꾼들인데 서로 자기들 인삼 장사 구역을 침범했다고 길 한복판에서 싸운 것입니다. 안창호 선생은 '내가 조국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지, 학교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 날부터 작업복 입고 동포 집들을 찾아다니며 문안하고 페인트칠 해 주 고, 커튼도 달아주고, 잔디도 깎아 주며, LA에 있는 동포들을 바닥에서 섬겼습니다. 그렇 게 하자 한인 사회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 한인이 모여 살던 골목의 백인 부자가 한인들이 와서 지저분하게 사는 것이 늘 못마땅했는데 갑자기 달라진 것에 놀랐습니다. 그가 하루는 한인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당신 민족 지도자가 여기에 왔소?" "왜 그러시는데요?" "당신들 달라졌소. 페인트칠도 하고 잔디도 깎고 그러는데 지도자가 온 게 아니오?" "그 사람 좀 만나게 해 주시오." 미국인 부자가 안창호 선생을 만나보니 새파란 28세 청년이었습니다. "당신이 한인의 지 도자요?" "지도자가 아니고 사실은 여차저차 되었습니다." 당신은 미국 땅에 왜 왔소?" " 우리 나라 백성들이 잘못 살아 일본에게 나라를 뺏겼는데 제 소원은 우리 조선 국민이 독 립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춘 국민,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 가서도 정직한 국민이 되며, 민 족의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백인 부자가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백지 수표책 한 권을 주면서 "당신 민족 운동에 당신이 알아서 쓰시오." 수표책 한 권을 통째로 주었습니다. 안창호 선생은 이 수표책을 정말 공적인 일에만 썼습니다. 결국 이 백인 부자는 안창호 선생이 민족운동을 하는데 마지막까지 재정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 윤리인 정직과 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