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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감정의 치유

데이빗 A. 씨맨즈 지음 | 두란노
상한 감정의 치유

데이빗 A. 씨맨즈 지음/송헌복 옮김

두란노/1999년 4월/220쪽/5,500원



1. 상처 난 감정들

우리는 아픈 상처가 남아 있고 마음속에 억눌려져 있던 기억을 생각과 감정의 나이테 속에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우리의 사고와 감정과 대인 관계의 영역 속에 직접적으로 깊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 영향력은 인생에 대한 것이나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 다른 사람이나 자신을 보는 태도에 나타난다. 설교자들이 종종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 주는 것이 있다. 즉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구원이나 성결케 되는 체험으로 이러한 정서적인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극적인 경험이 아주 귀중하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서적으로 입은 상처가 곧장 낫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인격에 손상을 받은 정서적인 문제들은 빨리 낫지 않는다.

정서적인 상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러한 문제들을 빨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스스로가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의 상처들과 혼동된 상태들을 고치실 수 있도록 맡겨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날카롭게 비난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오래 참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그 사람들은 가짜 그리스도인이나 위선자가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다만 그들의 행동이 지금 올바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과거에 받은 상처와 잘못 형성된 사고가 그 원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원이 우리의 정서적인 문제들을 즉시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화의 교리에 대해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든지 꿈틀거리는 것은 마귀라고 보고 쫓으려 하는 반면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끼게 함으로써 죄의식과 실망하는 마음을 더욱 가중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 양극단의 견해 모두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것은 마음에 아픔이 있는 사람에게 오직 더 부담을 갖게 할 뿐이며 그 결과 정서적으로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의 문제를 잘못 다루게 된다.

그러면 이러한 상처 입은 감정이란 무엇인가? 가장 공통된 감정 중의 하나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즉, 계속적인 근심을 안고 있고, 자신을 부적합하게 여기며, 열등감을 가지고 “나는 좋지 못해”라고 자신에게 늘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완전주의자 콤플렉스(perfectionist complex)’를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항상 찾아다니고 항상 애쓰지만 항상 죄의식을 느끼며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 빠져 있게 된다. 또 여기에 지나친 ‘예민감(supersensitivity)’이라고 부르는 또 하나의 손상된 감정이 있다.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은 항상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하나님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한 유명한 신학자가 기자와 인터뷰를 하였다. 기자가 물었다. “당신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가 대답했다. “하나님이요? 나에게 의미하는 하나님이란 내 속에 항상 이렇게 말하는 작은 음성이지요. ‘아직도 부족해.’” 그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손상된 인격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다. 그렇게 병들어 있는 사람들로부터 잘못된 신학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처를 고치시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고치신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에 관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롬 8:26). 이 말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동반자와 상담자가 되시어 우리의 연약함을 고치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이 일에 동참하여 일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의 상처 난 감정들을 고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①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②어떤 문제든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

③고침을 받기 원하는지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 보라. “네가 진정 낫기를 원하느냐”.

④문제에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

⑤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⑥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또한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성령님께 구하라.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마땅할지 모르나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2. 죄책감, 은혜, 그리고 빚진 것 거두어들이기

예수님께서는 용서받지 못한 사람들과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책감, 원망하는 마음, 애쓰며 갈등하는 것, 그리고 근심하는 마음의 네 가지 어려운 문제 가운데 빠진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네 가지 요소들은 긴장감 및 갈등과 다른 모든 종류의 정서적 문제들을 낳게 한다. 데이빗 벨굼 박사는 현재 신체적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 중 75%가 정서적인 문제 때문에 병이 생겼다고 주장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들이 경험하는 신체적 증상과 문제들은 자신도 모르게 생긴 죄책감의 발로라는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문제에는 두 가지 주요한 원인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용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활에 적용시키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용서해야 할 대상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가리는 세 가지 테스트를 해 보라.

①제일 먼저 원망하고 있는 대상이 있는가를 테스트한다.

②책임감 테스트는 조금 더 까다롭다.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을 용납하는 것과 자기 스스로가 책임감을 갖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서 이 둘은 동시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③기억을 상기시키는 것과 나의 반응을 시험하는 것에는 매우 미묘한 면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에 자기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연상케 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감정이 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노출된다.

우리가 과거에 받은 모든 상처를 성서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하나님의 방법은 내가 누구를 용서하는 것과 원망을 포기하고 항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이전에 경험했던 상처들과 죄와 허물을 담당하셔서 그것들을 싸매시고 그의 사랑으로 그것들을 변화시켜 주신다. 이 사실을 설명하는 가장 위대한 예가 십자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십자가에서 가장 악한 불의와 가장 슬픈 비극을 당당하신 후 그것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선물로 변화시켜 놓으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이다.

그가 우리를 자유케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사람을 자유케 하며 더 나아가서 은혜와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바울 사도는 이것을 짧게 이렇게 요약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 또한 예수님 말씀 가운데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말씀이 있다.



3.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는 치료자

우리에게는 죄와 유혹에 마음이 쏠리는 내적 연약함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도 유혹을 받으셨고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한 감정을 이해하시는 대제사장이 계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 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7-8).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 고통과 수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시고 그 감정을 함께 나누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발견하며 긍휼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용서를 구해야 할 때도 나아갈 수 있고, 우리의 죄 때문에 나아갈 수도 있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연약한 감정에 의해서 시달리며 괴로워할 때도 나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신이 친구에 의해서 배척당하거나, 실연당하거나, 놀림을 받고 비통해 할 때의 느낌이 어떤가를 아신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중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2-3)

예수님은 기도조차도 할 수 없는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실까?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포기하시고 버렸다는 느낌이 들 때의 우리의 감정을 알고 계신가? 사도신경에서는 “그가 지옥에 내려가셨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고뇌의 부르짖음을 외쳤으나 아무런 응답이 오지 않았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는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시 22:1-2). 하나님은 절규의 부르짖음을 이해하신다. 예수께서는 성육신하여 모든 것을 경험하셨으며, 이제는 성령님을 통하여 그 모든 경험을 가지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이때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게 된다.

4. 사탄의 치명적 무기

사탄은 영의 세계에 속해 있는 존재이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있다. 성경은 사탄의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의 놀라운 교묘함과 술수, 속임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실망, 낙망, 실수, 포기를 하게끔 우리의 약점을 들추어 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다니며 배회하는 자로서 묘사되고 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싸움이 어두움에 속한 악의 세력에 대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쉽게 공격을 받고 속임을 당하는 것은 어두움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탄의 가장 무서운 심리적 무기는 죄책감, 열등감, 불만족,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낮은 자존감’이다. 놀라운 영적 경험과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감정들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속박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위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열등감에 의해서 꽁꽁 묶여져 있고 깊은 무가치감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다. 사탄은 다음의 네 가지 방법으로 모든 정서적, 심리적인 무기 중 가장 치명적인 무기인 ‘낮은 자존감’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패배와 실패로 이끌어 간다.

①낮은 자존감은 당신의 잠재력을 마비시킨다.

②낮은 자존감은 당신의 꿈(이상)들을 파괴시킨다.

③낮은 자존감은 당신의 대인 관계를 해친다.

④당신의 낮은 자존감은 하나님을 위한 당신의 사역에 방해가 된다.





5.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위한 치료 (1), (2)



수년 전에 맥스웰 멀쯔라는 유명한 성형외과 박사가 쓴 『새로운 미래를 소유한 새 얼굴』이란 책이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누렸다. 얼굴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애의 문이 열렸다는 개개인의 경험담을 모은 것으로 한 사람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을 때 놀랍게도 성격의 변화가 동반되었다는 것이 저자가 다룬 주제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멀쯔 박사는 또 다른 사실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그가 경험한 성공적인 경우들이 아니라 실패한 경험들을 통해서였다. 그는 얼굴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수술 후에도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저 보통도 아니고 실제로 매우 아름답게 된 사람들이 계속 자신을 못생긴 오리라고 생각하며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변화되었지만 변화되지 않은 옛 성격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각 사람의 자화상이 그의 행동과 태도를 좌우하며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자화상 혹은 자아 개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의 자화상은 우리에 관해 우리가 수집한 우리의 모습과 감정들을 종합한 것을 의미한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잠 23:7) 당신성격의 가장 밑바닥 중심에서 당신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서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이 결정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정된다. 머리스 와그너 박사는 그의 훌륭한 저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된 느낌』에서 건전한 자화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를 언급했는데 그 중 첫째 요소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속감이고, 두 번째 요소는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는 것이며, 세 번째 요소는 자신감이라고 했다.

위대한 심리학자인 조지 허버트 미드는 인간이 외부 세계와 맺는 관계를 흥미로운 구절로 묘사했는데 그는 그것을 ‘자아의 창문(looking-glass self)’이라고 부른다. 갓난아이는 자아에 대한 개념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으나 성장해 가면서 점차로 자기의 생애 가운데 존재한 중요한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진 영상으로부터 자신의 자화상을 얻게 된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 전서 13장 9절과 12절 사이에서 장성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같은 아이디어를 사용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낮은 자존감이 그 인격 속에 형성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이나 자신을 받아 주신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사역을 위해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영적 갈등으로 보이는 많은 문제들이 그 원인을 살펴보았을 때 전혀 영적인 문제가 아닌 것들이 있다. 그들이 경험하는 죄의식을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온 정죄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자신의 낮은 자존감이 원인이 되어 스스로를 정죄하고 상하게 하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 개념(self-concept)이란 자신에 관해 세워 놓은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의 체계이다. 우리의 자아 개념이 형성되는 네 가지 근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 근원이 외부의 세계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외부의 세계로부터 받게 되는 것들은 가족들의 거울에 반사된 우리 스스로에 대한 느낌과 영상이다. 우리는 어릴 때 가졌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대우와 사랑과 보호를 받았는가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또한 우리가 성장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배운 말에 의해서도 결정되는 것이다.

두 번째 근원은 우리의 내부 세계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육체적․정서적, 그리고 영적인 감각들을 통해서 밖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우리의 오관과 신경들, 그리고 배우고 기억하고 응답할 수 있는 기능들을 포함한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이러한 내적 세계에 결함과 흠과 결점을 가지고 있다.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심리학과 다른 점이 바로 영적인 요소인데 인간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선하며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심리학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근본적으로 악에 치우치며 잘못된 것을 행하고자 하는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하며, 우리는 이것을 원죄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단순히 죄의 희생물이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지만 우리가 현재 어떠한 사람이고 앞으로 어떠한 사람이 될 것인가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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