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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

데이빗 스툽 지음 | 예수전도단
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

데이빗 스툽, 제임스 매스텔러 지음/정성준 옮김

예수전도단/2001년 8월/383쪽/1,100원



제1부 가정의 보따리를 풀어라

1장 가정: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때때로 가족 패턴은 이해하려고 아무리 시도해도 알 수 없었던 수수께끼를 풀어내기도 한다. 무엇을 찾을지, 또 어떻게 그것을 해석할지 일단 알기만 하면 대다수는 자신이 속했던 가정의 역기능적 역학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과거가 신체적 학대, 성 학대, 이혼 등과 같은 형태의 역기능에 의한 상처로 얼룩져 있는지의 여부를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냥 도피해서 마치 그런 가정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체 할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도피해서 그런 가정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체’ 하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되는 가족 모델에 끌리는 본능적인 인간의 성향은 그러한 구성이야말로 지혜와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디자인해 주신’ 모습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정상적인 가정이란 “자율적인 개인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안정감과 자유를 마련해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정의를 완성할 수 있다.

또한 가정은 두 가지 언약이 교차되어야 하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수평적’ 언약,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수직적’ 언약이 그것이다. 역기능 가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역기능은 언약적 사랑의 결속,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결속이 손상을 입거나 깨어진 상황을 말한다. 어떠한 유형의 가정에서 자라났는지는 어른이 되고 난 뒤에도 우리의 사생활의 중요한 역학관계에 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와 변화는 가능하다. 그 열쇠는 가정생활의 역학관계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더 철저히 이해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이해를 위한 다음 단계는 새로운 방식으로 가정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바로 가정을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2장 가족 시스템

환자들의 행동은 실질적으로 가족의 맥락 속에서는 완전히 이치에 맞고 정상적인 행동인 것 같았다. 다시 말하면 역기능이었던 것은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었던 것이다. 가정은 단순히 어쩌다가 같은 성(姓)과 주소를 쓰는 분리된 개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가정은 그 속에서 각자의 태도와 가치, 행동이 다른 모든 일원들과 상호작용하는 유기체이다.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우리의 행동 패턴은 우리가 속한 특정한 가족 시스템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 많다. 가족 시스템과 그 속에서 맡겨진 역할에 대해 이해한다면 결코 설명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테네시 윌리엄의 고전극 <유리 동물원>은 가족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전형적인 예이다. 극중에서 딸인 로라는 정신적인 질환, 심지어 정신분열증을 가진 환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 특히 그녀의 가정을 바라보면 - 그녀의 ‘미친’ 행동은 완벽한 논리성을 띤다. 정말로 그것은 가족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머니와 오빠의 긴장이 위험 수위에 이를 때마다 로라는 그들이 싸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이상야릇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의 ‘기괴함’에 초점을 옮기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병든 것은 단순히 개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이다.

가족을 역기능적인 패턴에 묶여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한 가지 주된 요소는 관성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들은 이전과 똑같은 상태를 스스로 고수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서로의 습관적인 역할과 태도, 행동도 더 강화되게 한다.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변화의 필요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주된 원인은 ‘가족 비밀’과 ‘가족 신화’이다.

‘가족 비밀’이란 과거에 일어났고 아직까지도 일어나고 있지만 모두가 알면서도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신은 절대로 물어서는 안 될 질문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습득했다. “왜 우리 집 거실에는 코끼리가 있죠?”라는 질문이다. 친구들이나 외부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물으면 올바른 대답은 “무슨 코끼리 말이야?”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나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가족 신화’란 “우리 가족은 매우 친근해요” 등과 같이 말은 하지만 결코 말한 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경우 가족 신화와 가족 비밀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가족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그들이 신화로 은폐하고 싶어하는 것일 것이다.

3장 가족과 나

잘 조정된 가정은 첫째, 겉으로 보기에는 상반된 역학관계, 즉 친근함과 분리 사이에 균형을 이룬다. 둘째, 문제를 개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가족 차원에서 다룬다. 셋째, 세대 간에 견고한 결속이 있다. 넷째, 개개인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유지된다. 다섯째, 가족들은 서로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대면한다. 여섯째, 차이가 수용되고 격려된다. 일곱째,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수용한다. 여덟째, 각 사람은 그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홉째, 긍정적인 감정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시한다. 열째, 가족들이 가정을 ‘살기 좋은 곳’으로 평가한다. 열한 번째, 각자는 서로에게서 배우고 피드백을 장려한다. 열두 번째, 개개인이 자신의 공허감을 경험하는 것을 허락한다.

완고한 가정은 매우 권위주의적인 가정이다. 지도력은 분명하게 정의되고 인식되며, 누가 대장인지, 어떤 규칙이 있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또한 혼란한 가정에서는 자녀를 키우고 훈계하는 것이 매우 변덕스럽다. 유연한 가정이란 완고한 가정과 혼란한 가정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이루는 상태로 명확하면서도 융통성 있는 리더십과 건강하면서도 조절이 가능한 훈계가 있는 가정이다. 이탈된 가정은 독립성과 가족 외부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밀착된 가정은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을 주고 이탈된 가정은 개개인에게 고립감을 남기는 반면, 애착된 가정은 건강한 균형감각을 느끼게 한다.

4장 아비의 죄

가계도는 여러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가정의 관계적․정서적 측면을 도식화한 일종의 확대된 가족 계보이다. 이 가계도를 통해 분명해질 수 있는 가족 역동관계의 첫 번째는 경계선의 역동관계이며, 두 번째는 역할의 역동성과 그 역할이 수행되는 방식이다. 현재 우리가 떠맡고 있는 역할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의 가정에서 떠맡았던 역할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떠맡았던 역할을 이해하고 그 역할들이 모두 어떻게 상호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체를 보게 되면 특정한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가계도를 그리려면 몇 가지 기본적인 기호들을 알아야 한다. 먼저 남성 가족 구성원은 네모로 표시된다. 여성은 원으로 표시된다. 네모나 원 위에 ‘X’표를 한 것은 그 사람이 죽었음을 뜻한다. 사람들 사이의 가까운 관계는 선으로 표시된다. 예를 들면 남자와 여자 사이의 수평 실선은 결혼했음을 의미한다. 그 실선 위에 짤막하게 그려진 두 겹의 사선은 이혼했음을 뜻한다. 자녀들은 가장 나이 많은 쪽은 왼쪽에, 가장 나이 어린 쪽은 오른쪽에 순서대로 나열한다.

가계도를 바라보면 볼수록 패턴은 더 분명히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가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양쪽 원가족에서 세대 간의 경계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각각의 경우 자녀들은 부모들의 문제에 얽혀 있게 된다. 그들은 성장하면서 습득한 패턴 속에 자신들을 가두어 버린 셈이다. 그들 모두에겐 거기에서 벗어나 다른 결혼 유형이나 가족생활 유형을 개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알고 있었던 역동관계를 현재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에서 얼마나 명확하게 재현하고 있는지 알고 나서는 깜짝 놀란다. 남편이 감지하기 훨씬 이전부터 아내에게 불만족이 자리잡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남자는 대개 관계적인 문제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쏟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버려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더 적합하고 융통성 있는 역할로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 부부간의 관계와 자녀와의 관계 모두에 대해서 말이다.

성경의 아브라함 가문에서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재생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각각의 세대에서 아들 중의 한 명은 가정을 떠나야만 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은 사라의 질투로 인해 강제로 추방당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생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을 떠나야만 했다. 야곱이 에서의 장자권을 속여서 뺏은 후에 형 에서가 그를 죽이기로 맹세했기 때문이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질투 때문에 강제로 집에서 쫓겨나 노예로 팔려갔다. 또한 각각의 세대에서는 결혼한 배우자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 자녀들과 제휴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게 등을 돌리고 이삭과 제휴한다. 이삭은 리브가와 야곱에게 등을 돌리고 에서의 편에 선다. 야곱은 다른 아들들에게는 등을 돌리고 요셉과 제휴한다.

각각의 세대에서 이전 세대의 가족 역동관계에 뿌리를 둔 문제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가? 이것은 통상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며, 가계도는 이것을 명확하게 보도록 도움을 준다.

5장 삼각관계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은 그 본질상 불안정하다. 두 사람 사이에 불안과 갈등이 있으면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곧 제3의 인물이 들어가 삼각관계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의식적인 성찰이나 의지가 없다면 물리학의 법칙처럼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가족 시스템 연구가들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최선책은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집단, 즉 삼각관계를 살펴보는 것임을 발견했다. 제3의 인물을 전후상황에 포함시킬 때 비로소 관계의 숨겨진 작용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며 우리의 부인(否認) 시스템을 ‘폭로’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가족 관계에서 ‘삼각관계’를 점검하는 것은 가족 시스템을 이해하는 최선책이 된다.

가족의 가계도를 완성한 뒤에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삼각관계를 그리는 것’이다. 삼각관계는 두 개의 기본적인 기호를 사용하여 그린다. 두 사람 사이에 직선을 긋거나 파동선을 그릴 수 있다. 직선은 결속이나 매력을 느끼는 관계를 말한다. 파동선은 갈등을 느끼거나 결속력이 없는 관계를 가리킨다.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 편안하게 느끼고 서로에게 끌린다고 느끼면 직선으로 연결한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서로에게 ‘결속’되지 않는다면 파동선으로 연결한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관계 속에 엄청난 갈등이 있는데도 서로에게 매우 강하게 끌리는 상태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서로 싸울 때만 행복해 보이는‘ 부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진실에 실질적으로 좀더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반대로 전혀 싸우거나 말다툼하지도 않는 부모와 자녀관계를 묘사하는데도 파동선을 사용할 때가 있다. 또한 어떤 경우 ’제3의 인물‘은 매우 상징적일 수 있다. 그 자리에 없는 제3의 인물의 유령이 어떤 관계에 매우 실제적으로 현존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베티라고 하는 여성을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어렸을 때 이혼하고 재혼을 했다. 베티는 자신이 어머니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항상 냉담하고 매사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관계는 좋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자신도 의붓아버지에게 항상 가깝게 느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그녀에게 탐색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엄마가 이혼했을 때 그녀는 어떻게 느꼈는가? 의붓아버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녀는 진정 어떻게 느꼈는가?

점점 안절부절 못하는 베티의 반응은 겉보기와는 달리 뭔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베티의 의붓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상화하지는 않았는지 베티에게 물어보았다. 그것은 참으로 이해할만한 것이라고 우리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어머니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이혼 후에 아버지와 분리되는 사건을 경험했다.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상화시켜 거기에 묶여 있는 것은 정서적인 고아와 같은 느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계속 대화하는 도중 베티는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분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다만… 한 번씩…” “다만 한 번씩 어떻다고요, 베티?” 우리는 부드럽게 질문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표면에 떠올랐던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베티의 의붓아버지는 그녀를 성적으로 이용하곤 했던 것이다.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고,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일어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실제적인 성적 착취였다. 그 기억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그녀는 그것을 몇 년 동안 조심스럽게 묻어두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의붓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한 ‘좋은 사람’이었다고 맹렬하게 자신에게 말해 왔던 것이다. 물론 여러 면에서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를 사랑하긴 했다. 그러나 또한 그는 그녀에게 심각한 손상을 끼치는 학대를 행하기도 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러한 진실을 직면하기란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베티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족을 배신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다. 사실,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그녀는 일어났던 일을 정면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진실을 직면하는 일은 수년 동안 그녀를 괴롭혀왔던 우울증을 극복하는 열쇠인 것으로 증명되었다.한두 가지 정도 삼각관계에 빠져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에겐 항상 자신이 자란 가정(또한 다른 곳)에서 지고 온 ‘보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지만 다른 관계들에 짐을 지우는 것들이다. 삼각관계를 다룬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까지 불안을 촉발하는 어린 시절의 가정에 있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핵심적인 가족 삼각관계 속에서 지금까지도 떠맡고 있는 역할을 분별하고 개선하는 것을 뜻한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가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데 힘을 쏟았다. 특별히, 때때로 가정이 어떤 식으로 ‘잘못되어 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형성하는 데 가족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정상적’ 또는 ‘건강한’ 가정이 어떠한 것인지 살펴보았고, 가정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역기능적’으로 되는 가장 통상적인 방식들도 어느 정도 살펴보았다. 또한 우리는 가정에서 존재하고 있는 역할, 규칙, 신화, 비밀 등도 살펴보았다.

당신 자신의 가정에 대해 가계도를 그렸고, 가능한 많은 관계에 대해 삼각관계를 찾아냈다면 이제는 당신의 가정에서 잘못된 것은 무엇이며, 좋은 것은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여러 가지 역동성을 발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그 영향이 당신에게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경우에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정을 점검하다 보면 과거에 ‘악한’으로 보였던 특정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들의 약점, 한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점.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여전히 어려움을 가지도록 기여하는 것들일 것이다. ‘악한’은 부모나 다른 성인일 수도 있다. 오빠나 누나일 수도 있다. 심지어 하나님에게 화가 난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한 하나님께 말이다.

그러나 어디에 문제가 있으며 누가 ‘악한’인지 발견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얻게 된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나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에게 행해진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지금 우리는 자신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한’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그들의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에게 행해진 일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배울 수는 있다. 과거의 부정적인 영향을 딛고 일어서는 데 도움을 주는 방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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