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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

롤프 가복 지음 | 두란노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

롤프 가복 지음/이기승 옮김

두란노/1997년 8월/211쪽/6,000원



제1부 가족을 축복하는 일

어떻게 우리 가정이 축복을 알게 되었는가?

지금도 그 광경이 생생하다. 18년 전 1월 어느 날 푸에르토 리코의 산 후안 마을에서였다. 어린 아들 칼튼이 곤히 잠든 침실의 열린 창문으로 밤거리의 소음이 밀려들고 있었다. 칼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보배인지를 생각했다. 그날 밤 아들의 침대 곁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 기억이 없다. 칼튼이 태어나기 전, 아빠들이 어린아이를 목마를 태우거나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 마냥 부러워하면서 내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했었다. 어느덧 세 살바기가 된 아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훌륭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아들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 작은 몸을 만지면서 나는 생각했다. '주님, 당신이 소자들을 팔에 안고 축복하셨을 때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셨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제 아이에게 주님이 하신 바로 그 일을 하기 원합니다.' 그런 다음 나는 손을 그 아이의 머리에 부드럽게 올려놓고 지금까지 교회에서 수없이 들었던 축복 기도를 귀에다 속삭였다.

“여호와는 칼튼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의 행동은 매우 자연스러웠고, 마치 내가 행동으로 하나님께 순종한 느낌이었다. 칼튼의 방을 떠나기 전 나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내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나서 어둠 속을 서성거리며 이 아들을 선물로 주심과 내게 축복하게 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런 광경이 이후로 수천 번 반복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그것이 내가 아들을 축복한 첫 번째 밤이었다. 당시 내게 축복이란 전혀 새로운 것이었고, 그 의미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매일 밤 아이들을 축복한다는 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된 후, 이 단순한 행위가 우리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아마도 1972년이었을 것이다. 그 해 느지막이 출간된 래리 크리스텐슨의 베스트셀러 『크리스천 가정』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시 목사였던 저자는,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정 안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의 성경적 근거와 실례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한 순간에 그 책이 주는 단순한 메시지에 매료되어 버린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래리를 푸에르토 리코에 초청할 기회가 왔을 때, 나는 기뻐하며 그 기회를 활용하였다. 그는 우리 선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또한 그룹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가르치며 일주일을 보내기로 하였다. 나의 아내 메리와 함께 래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자리에서 나는 그 책에서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독특한 요점에 대해서 물었다. '부모의 제사장직'을 다룬 장의 마지막 부분 “축복을 통해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내용이었다. 매일 밤 아이들을 침실로 데리고 가서 개인적으로 축복하는 크리스텐슨 자신의 습관을 다룬 것으로 내가 좀더 알기를 갈망했던 부분이었다.

래리는 무척 신이 나서 자신의 많은 경험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래리와 그의 아내 노디스가 축복에 관해 처음 들은 것은 1959년 네 명의 어린 자녀와 서독에서 살 때였다. 독일인 부부 한스 요헨과 엘리자벳에게서 그들의 관습을 배우게 되었다. 한스 요헨은 여섯 아이들이 침실로 갈 때 그들을 어떻게 축복하는지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래리 부부에게 말해 주었다. 어쩌다 너무 늦게 귀가해서 아이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지라도 그는 아이들에게 가서 한껏 축복해 주었다고 한다.

래리 부부는 그들에게서 가정 내의 축복 사역에 깊이 감명 받고 돌아온 그날 밤부터 아이들을 축복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저 아이들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네 아이들을 한 사람씩 개인적으로 축복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아이들이 모두 성장하여 가정을 떠나기까지 매일 밤 성실하게 축복 사역을 하고 있다.

목회자가 축도로 회중을 축복하는 것처럼 부모는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유사한 특권을 갖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때 깨달았다. 목회자가 교회 회중을 향해 하는 축복을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에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날 밤늦게까지 래리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이 가정 축복 사역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축복하는 이 헌신이 우리에게 훗날 얼마나 많은 유익을 가져다줄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왠지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즉시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었다.

그 즈음 메리는 둘째 아이의 출산을 석 달 남겨 놓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몰랐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는 그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내와 마주앉아, 매일 밤 이불을 덮어 주면서 두 아이를 축복하며 살 일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하는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 때 한 가지 깨달음이 왔다. '오늘 밤 우리는 아직 축복하지 않았어! 나는 이미 아이가 둘이잖아.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축복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나는 즉시 메리의 배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이 생명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이 선물을 주님께 드립니다." 그리고는 아내 배 위에 손을 얹은 채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축복하였다. “귀한 아가야, 주님이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기를 원하신단다..." 칼튼에게 했듯이 우리는 태아를 축복했다.

1972년 4월 23일, 리자 페이스 가복은 ‘찬란한 태양빛이 비치는' 이 세상에 태어났고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는 날이 없다. 의심할 여지없이 리자에게 기쁨이 있는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 이 땅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 모두 출생하기 전부터 그를 매일 축복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

구약 성경에서 축복이라는 히브리어는 베라카(berakah)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베라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의 힘을 전달하거나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개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 전달되며 안수 행위를 수반하였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베라카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하는 선포였는데,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온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위대한 민족으로 만드셨다. 히브리인들은 입술로 하는 말에 힘이 있어서 선이나 악을 창조한다고 믿었다. 사실 고대인들은 히브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말한 것은 그 자체로서 생명을 가진다고 믿었다.

축복이 지닌 특수한 의미는, 가끔 사람 위에 안수하는 상징적 동작을 수반하여 그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기를 말하는 의도적인 행위이다. 이는 이삭이 아들 야곱에게 행한 종류의 축복, 그후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한 축복이다. 또한 예수께서 제자들과 아이들에게 주신 축복이다.

가족을 축복하라

유명한 뮤지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가족간의 사랑과 갈등을 담은 매력적인 이야기로 수많은 부모의 심금을 울렸다. 유대인 부부 테비와 골데가 자녀를 경건하게 양육하는 모습, 그리고 자녀들에게 행복하고 생산적인 미래의 성인 생활을 준비시키느라 분투하면서 경험하는 희망과 공포, 확신과 의문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는 안식일 식탁에 둘러앉은 유대인 가정의 모습이다. 식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그들은 안식일 식탁에서의 고대 관습을 따른다. 어머니는 안식일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며 남편이 아이들에게 불러 주는 노래를 함께 부른다. ‘안식일 기도’는 아이들에 대한 소망을 담은 단순한 축복의 노래이다.

“주께서 너희를 보호하고 지키시며

주께서 항상 너희를 수치로부터 보호하시며

이스라엘의 찬란히 빛나는 이름에

이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룻과 에스더같이 되기를 원하며

찬양 받게 되기를 원하노라

오 주님, 이들에게 힘을 주옵시며

낯선 자의 길에서 지켜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축복하사 장수하게 하시며

주께서 너희를 위한 안식일 기도를 충만케 하시기를 비노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로 만드시고

너희를 돌볼 수 있는 남편을 보내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너희를 보살피고 지키시며

고통에서 보존하시기를 원하노라

오 주여, 행복과 평강의 은총을 내리시며

우리들의 안식일 기도를 들으소서 아멘.“



그리스도인 부부가 좀처럼 듣지 못하는 내용이 이 축복에,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축복에 나타나 있지 않은가?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와 같은 힘있는 축복의 말을 일상에서 표현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도 이 성경적 관습을 따라 각 가정의 필요대로 말로 축복할 수도 있고 노래로 축복할 수도 있다. 매일, 매주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당신 자녀를 축복해 보라. 성경에 있는 축복을 암송해도 좋고 당신 고유의 축복을 만들어도 좋다. 가정의 축복 사역은, 이 극의 무대에서 훌륭하고 아름답게 연출되었듯이, 우리들 자신의 가정도 그 무대가 될 수 있다.

과연 효과가 있는가?

축복 사역의 긍정적인 영향을 가늠하는 척도는 축복이 행해지고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축복에 대해 취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가정만 해도 칼튼과 리자는 축복에 엄청난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축복에 대해 아이들이 보이는 적극적 태도의 관점에서만 그 의미를 찾는다면, 축복의 말이 자녀들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지그 지글러가 중국산 대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대나무의 씨앗은, 여느 씨앗과는 달리 땅에 심으면 싹을 내뻗치는 게 아니라 수면에 들어가 버린다. 아무리 영양분을 많이 공급해도,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중국산 대나무는 어떤 뚜렷한 성장의 조짐도 없이 5년 간 수면 상태에 들어간다. 그런 뒤에 한 해 동안 급속히 자라서 자그마치 18미터의 큰 나무가 된다. 그 나무는 비록 수년 간 눈에 띄는 성장은 없었지만 다른 씨앗과 마찬가지로 양분과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수면 기간에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않으면 그 씨는 결코 나무가 될 수 없다. 농부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씨앗 돌보는 일을 계속한다. 어린아이는 중국산 대나무와 거의 흡사하다.

이 기간을 아이들을 축복하는 사역에 바치는 변함없는 헌신을 통해 당신은 부모의 신앙, 곧 역경 속에서의 인내를 자녀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당신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표명하는 것은 아이들로 하여금 긍정적 기대를 갖게 해준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말은 하나님의 힘과 은총을 전달할 수 있으며, 수년 간 가정 축복이 아이들에게 주는 큰 유익들을 보아 온 결과, 아이들이 자신의 부모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낼 줄 알고,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으면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 잘못을 시인할 줄 알았으며, 안정감과 만족감 그리고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사해야 할 신비스런 사실이다. 그러나 매년 신실하게 축복하는 자들이 동의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우리는 가정 축복이 옳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다. 옳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축복하는 자들에게 보상하신다.

이제 우리가 궁극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가정 축복이 효과가 있는가?”가 아니라, “내 자신을 축복 사역에 헌신함으로써 내 안에서, 그리고 나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신비스런 일에 마음을 열 것인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결과를 맡기고 믿음 안에서 그 일을 행한다. 그 결과는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더 크다. 우리의 경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경험들이 가정 축복의 효력을 증명해 주고 있다.

지금 시작하라

자녀를 축복하는 사역에는 옳고 그른 길이라는 게 없다. 어떤 형태의 축복이든 그것은 아름답고 강력하고 값진 것이다. 단 한 가지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은, 당신이 뭔가 그르칠까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축복이 좀 미숙하더라도 진실하고 사랑이 담긴 것이라면 전혀 축복하지 않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당신이 축복 사역을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실 것이다.이제 막 시작하려는 당신을 돕기 위해 몇 가지 유익한 지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 자녀의 연령에 제한받지 말고 곧 시작하라. 그리고 멈추지 말라.

* 매일 밤 잠잘 시간이 자녀를 축복하기 좋은 시간이지만, 반드시 그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일과나 축복하는 횟수와 관련하여 당신 가정에 가장 적당한 시간을 정하라.* 성경 속의 축복 가운데서 택하든지, 아니면 당신만의 고유한 것을 창작하되 당신이 할 수 있는 축복의 말을 택하라.* 축복이 결코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다. 축복과 자녀를 위해 드리는 기도, 그리고 자녀와 함께 하는 기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대화에 자녀를 참여시키는 중요한 방법들이다.* 자녀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를 설명해 주라.

* 자녀를 축복할 때, 그들을 안고 머리 위에 손을 얹으라.

* 자녀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라.

* 가정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임을 가르치라.



제2부 축복하는 사람들

(1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축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즉 축복의 말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 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는 축복이었다. 2부에서는 일반적 의미의 축복에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말의 힘이 우리 일상에서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강화시키기도 하고 상하게도 하는지 좀더 광범위한 범주에서 고찰할 것이다.)

자녀들을 축복하라

일상 생활 속에서 심지어 우연한 대화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은 그들의 어린 심령을 질식시키고 나쁜 영향을 끼치든지, 아니면 자녀를 양육하고 강화하는 환경을 만든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인해 삶은 황폐화될 수도 있고 자랄 수도 있다.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잠언 12:18)

또 한 가지, 자녀나 다른 사람을 칭찬의 말로 축복하는 목적이 그들을 통제하거나 구속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밝혀야겠다. 만일 그런 의도에서 축복하고 있다면 축복 받는 당사자는 즉시 축복의 동기가 조종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것이고, 그들은 축복하는 우리에게 당연히 역반응을 보일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축복하는 일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축복한다. 우리가 되돌려 받는 축복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순종에 딸려 오는 보너스임을 기억하라. 성경은 “되돌려 받기 위해 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름에 축복이 있다

좋은 이름을 갖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나쁜 이름은 저주이다. 성경 속의 인물들 이름은 불가피하게 사람됨의 본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름을 부여하는 권세는 어떤 의미에서 이름을 부여받는 사람을 지배하는 권세였다. 이름을 부여하는 일은 신중한 사안이었다. 그 이름이 가족의 성이든, 별명이든, 애칭이든, 혹은 명성이든 간에 사람의 이름은 오늘도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름을 바꾼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바뀐 이름은 대체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이 변화되어 그들의 정체성에 일어난 중대한 변화를 시사한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창 17: 5), 사래는 사라(15절), 야곱은 이스라엘(창 32: 28), 솔로몬은 여디디아(삼하 12: 24-25), 시몬은 베드로(마 16:18), 그리고 사울은 바울(행 13:9)이 되었다. 이들 모두, 새 이름은 부분적인 축복이자 그들 삶에 부어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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