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데이팅
조슈아 해리스 지음 | 두란노
NO 데이팅
조슈아 해리스 지음/이마리 옮김
두란노/1998년 12월/276쪽/7,500원
현명한 사랑
켈리와 헤어졌을 때 나는 열 일곱 살이었다. 연애에 대한 나의 환상은 불명예와 씁쓸함 그리고 후회로 끝이 나고 말았다. “연애란 이렇게 끝나야만 하는 건가?” 기분이 침체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울부짖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위해 예비하신 최선의 것을 갖고 싶어요! 이보다 나은 것을 주세요!” 그 후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그러나 내가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다. 지난 4년 동안 나는 하나님께서 연애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꾸려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달라지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독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새로운 생활 습관과 태도를 갖기 원하셨던 것이다.
이런 새로운 태도의 기본이 되는 것을 나는 ‘현명한 사랑(smart love)'이라고 불렀다. 현명한 사랑은 실제적인 지식(knowledge)과 총명(insight)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고 깊어지게 한다. 현명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되며 허물없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위해 예비하신 최선의 것을 볼 수 있도록 그 눈을 열어준다. 상대방에게 헌신할 준비가 될 때까지 연애를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현명한 사랑의 실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랑이 지식 속에서 성장할 때, 우리는 더 쉽게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현명한 사랑은 개인적인 욕망과 순간적인 만족을 넘어 커다란 그림을 본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는 것을 구한다.
과거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에서 관계를 시작하였다. 나는 나의 필요에만 신경을 썼고, 내 목표에 다른 사람들을 끼워 맞추곤 했다. 나는 태도를 바꿔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을 관계의 우선 순위에 두었다. 그러자 비로소 진정한 평강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자들을 미래의 데이트 상대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와 동일한 자녀로서 대하자. ‘누구와 결혼하게 될까?’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계획하신 그때를 신뢰하기 시작하자, 나는 순결함이 주는 평강과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데이트에 작별의 키스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 훨씬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데이트의 7가지 습관과 새로운 태도
어릴 적 엄마는 내게 시장을 갈 때 지켜야 할 수칙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다. 첫째, 배고플 때 시장가지 말아라. 둘째, 반드시 좋은 카트(cart)를 골라라. 첫 번째는 잘 지켰으나, 두 번째는 그리 잘 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는 ‘제 멋대로 가는’ 카트를 골랐을 때다. 나의 데이트 경험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크리스천에게 데이트란 마치 ‘제 멋대로 가는’ 카트와도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장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이끄는 가치와 태도들이다. 세상적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관계에 접근 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방법은 실패한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새로운 태도를 배워라.
‘불완전한 데이트의 7가지 습관’은 데이트에서 흔히 일어나는 ‘제멋대로 가는’예를 소개한다.- 데이트는 서로를 친밀하게 만들지만 반드시 헌신케 하지는 않는다.
- 데이트는 종종 ‘우정’이라는 단계를 건너뛰는 경향이 있다.
- 데이트는 육체적인 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하게 한다.
- 데이트는 다른 중요한 관계들로부터 두 사람을 고립시킨다.
- 데이트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만든다.- 데이트는 하나님의 선물인 독신(singleness)에 대해 불만을 품게 한다.
- 데이트는 상대방의 성품을 평가하는 데 인위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한 사람의 성품이나 자질에 대해 그 어떤 얘기도 해주지 않는다.
오늘날 데이트에 대한 태도와 관습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현명한 사랑의 방식과 상충한다. 그러므로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불완전한 데이트라는 진창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데이트의 나쁜 습관들을 버리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태도들을 소개하려 한다. 이 태도들은 각기 순결, 사랑, 그리고 독신이라는 세 가지 영역에 대한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 모든 관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을 수 있는 기회다.
- 나의 미혼 시절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 친밀감은 헌신의 약속에 대한 보답이다.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연애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결혼하지 않고는 상대방을 ‘소유’할 수 없다.
- 나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인 순결이든 타협하는 상황을 피할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것은 너무 극단적이야!’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식의 삶을 살고 싶다면 혁명적인 생활 패턴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믿는다. 하나님 식의 삶은 순종을 갈구하므로 비열함, 불성실, 시간 낭비, 이기심 등이 끼여들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나의 삶을 그분께 맡겨드리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최선의 것을 주셨을까?”라는 의문에 시달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에 먼저 대답을 해야한다. “나는 하나님께 최선을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 관점에서의 사랑과 적절한 시기
2천년이라는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 문화와 고린도 문화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성이 생활 필수품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은 정열과 로맨스에 관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 스크린으로 데려가 “이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발가벗겨지고 피에 젖은 남자가 매달려 있는 나무 아래로 우리를 데려가 “이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이란 우리를 이리저리 흔드는 어떤 이상한 힘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참사랑은 무모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고 남을 섬기는 행동으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본래 우리의 본능은 우리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 관계의 성격이나 진전 속도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이기심을 버리고 지혜와 인내가 자신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은 삶을 함께 하는 관계를 맺겠다고 맹세하기 전까지는 단기간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과 상대방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이다. 참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다. 섹스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참사랑은 요동치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온전히 헌신하는 하나님 식의 사랑을 맹세할 정확한 제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 ‘사랑’이라는 영적인 주제로부터 ‘타이밍’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주제로 옮겨 가보자. 독신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고 교제에 대한 그분의 타이밍을 신뢰할 때, 우리는 연애를 추구해도 되는 적절한 때를 결정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면서 미래에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임을 믿고 인내심을 키워 나가야 한다. 참지 못하여 어리석게 결혼으로 돌진하거나 독신 시절을 후회로 돌아보게 되는 대신, 독신의 잠재력을 100% 사용하는데 전념하도록 하자. 독신은 은총이다. 오늘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이 주는 기회를 즐기도록 하라.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그분께 모든 계획을 맡김으로써 그분을 신뢰하는 연습을 하라.
순결의 방향
대부분의 사람들과 수많은 크리스천들까지도 갈 데까지 가되 선만 넘지 않는다면, 자신은 아직 순결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참된 순결이란 단호하고 끈질기게 의를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과 같다. 이런 결정은 마음속에서 시작되며, 타협이 요구되는 기회를 피해 가는 생활 방식을 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다윗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부정이란 갑자기 들어서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맞춘 초점을 잃어버릴 때 부정은 시작된다. 데이트에 있어서 부정은 두 사람이 자동차 뒷좌석에서 애무를 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동기, 태도에서 시작된다.
순결한 삶을 살고 싶다면 순결이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한다. 오히려 우리는 계속 순결을 추구해야만 한다. 많은 커플들은 성적 순결을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생활 방식을 택하는 대신, 그들은 육체적인 애정 표현을 부추기는 관계를 지속하며 자신을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 넣는다. 순결을 원한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하고 태도와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제 순결을 향한 여정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지침을 소개한다.
- 육체적 친밀감이 갖는 깊은 의미에 유의하라.
- 죄의 기회와 동기를 애초에 죽이기 위해 우리의 기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아 파멸을 피하자.- 다른 사람의 순결을 우선 순위에 두라.(남자들은 여자들을 장난삼아 사귀지 말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과 행동을 조심함으로 자신이 여자들을 위해 보초서는 전사라고 생각하라. 여자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눈길이 남자의 마음에 얼마나 쉽게 정욕을 불러일으키는지 깨닫고 자신의 눈과 싸우는 남자들을 위해 야한 옷을 입지 않음으로 그들을 도와라.)
경건한 라이프 스타일 유지와 이성과 친구 사이 되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당신이 관계에서 경건한 라이프 스타일을 시작하여 유지하려면 첫째, 빗나간 관계들의 초점을 다시 맞추거나 잘못된 관계를 끝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좋은 것들을 모두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죄와 실수를 청산해야만 한다. 둘째, 자신의 책임감을 상기시켜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부모님과 믿음이 깊은 친구들 같은 팀이 필요하다. 겸손하게 그들의 조언과 충고를 구해라. 셋째, 유혹과 타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보고, 듣고, 어울리는 사람들이 주는 영향력을 정직하게 평가하자.
이성과 ‘단지 친구 사이’가 되는 것은 아주 혼란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성 친구와 건전한 우정을 유지하려면 우정과 친밀감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우정은 그 관계에 관련된 두 사람 이외의 다른 무엇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친밀감은 서로에 대한 것이다. 진정한 우정에서는 두 사람의 외적인 요소, 즉 취미, 신앙 등이 둘을 하나로 모은다. 친밀감이란 멋지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헌신에 대한 약속 없이 친밀감을 추구해선 안 된다. 헌신에 대한 약속 없이 친밀감을 추구하는 것은, 산을 절반쯤 올라간 상태에서 당신의 밧줄을 잡아줘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과 함께 등산을 가는 것과 같다.
이성과 단지 친구로 남기 위해, 그 사람과만 있음으로 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지 말고 그들을 관계에 포함시켜야 한다. 데이트 커플들이 단둘이 있고 싶어하는 욕구를 우정을 추구하는 친구 사이에까지 가져와서는 안 된다. 다른 친구들이나 가족 심지어 낯선 사람들까지도 관계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함으로써 이런 요구를 피할 수 있다.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생각에 기초한 우정은 일시적인 욕구만 충족시키려는 이기적인 연애 관계로 변질되기 싶다. 그러나 관계의 방향을 오락에서 봉사로 전환하면, 우정의 초점 또한 우리 자신에서 우리가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로 바뀌게 된다. 즉 진정한 우정은 봉사를 통하여 찾을 수 있고, 봉사를 통하여 친구에 대해 훨씬 더 깊이 알 수 있게 된다.
이성과 친구 사이가 되는 것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정을 얻기 위해 투쟁하고 그것을 보호해야만 한다. 남자와 여자는 마치 자석처럼 서로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녀 사이의 우정이 갖고 있는 한계를 존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틀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제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며 자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서로를 섬기고 존경하며 봉사하면 된다.
마음 단속하기
개인 병원에서 접수원으로 일하고 있는 열 아홉 살 줄리는 원장에게 깊이 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유부남인데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끌리는 대로 그의 유혹에 응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신념은 마음의 속삭임을 이겨냈다. 그녀는 병원을 그만두고 신앙이 있는 친구에게 그 유혹에 대하여 털어놓았다. 그 친구는 그녀와 함께 기도해 주었다. 줄리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검토해 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현명하게 지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우리를 오염시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깨닫게 해달라고 구하며 마음의 순결을 점검해야만 한다.
이성관계에서 오는 대부분의 갈등은 갈망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갈망하고, 하나님께서 금한 것을 탐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과 상관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오염 물질’들이 관계에서는 도취와 정욕 그리고 자기 연민이라는 형태로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그 세 가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 도취
당신의 눈을 사로잡은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으며, 그 곁을 지나가게 될 때면 가슴이 뛰고, 그 사람과의 미래를 설계하는 꿈을 몇 시간이고 꾼다. 즉 도취된 것이다. 도취는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도취했을 때 우리는 상상 속에서 그 사람을 완벽한 남자나 여자로 만들어 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도취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인간 관계가 자신을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어떻게 도취를 이겨내는지 물었을 때 뉴욕 브루클린에서 온 한 여자는 “사람에게 반했을 때 그 감정을 키우지 마세요!”라고 했다. 맞다. 사람에게 반하여 끌리는 감정을 소중하게 여길 때 그것은 도취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 정욕
정욕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성적으로 갈구하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번화가에 있는 컨벤션센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동성연애자인 남자 세 명이 휘파람을 불고, 윙크를 하며, 나의 당황하는 모습을 비웃었다. 그들은 결국 그냥 가 버렸지만 너무나 그릇되고 더러운 일이었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그 사람들은 너무 혐오스러워요!”라고 하나님께 호소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서 부드럽게 꾸중하시며 “조슈아, 이성애자인 네가 품는 정욕도 내 눈에는 그들만큼이나 그릇되고 혐오스럽단다.” 할 말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에 있는 정욕을 혐오하시는 것에 비하면 내가 그 세 남자들의 정욕을 경멸했던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평가하여 마음속의 정욕을 깨닫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슬퍼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정욕을 없애고 싶어할 것이다.
- 자기 연민
어떤 의미에서 자기 연민이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숭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자기 연민에 빠진다. 외로움을 느끼거나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을 때 불평하고 화가 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포기한 것 때문에 한숨짓는 행동은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가 기뻐하며 순종할 때에만 감동하신다. 외로움을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는 법을 배우라. 최근 결혼한 20대 중반의 어떤 여자는 외로움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는 소리라고 내게 말했다. 외로울 때 그녀는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 붓고 그분과 대화하는 것을 배웠다.
데이트를 안 해? 제정신이니?
친구나 가족 또는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관계에 대해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따르라는 압박감을 느낀다.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가 데이트하기를 기대한다. 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준을 의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고, 때로는 조롱하기도 하며 어김없이 많은 질문을 퍼부어 댄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