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넘어서
캐롤 스타우다처 지음 | 청양
일주일이 지난 후에 다시 출근을 했어요. 의사들이 왜 왔냐고 묻더군요. 나는 화가 났습
니다. 출근하는 것 말고 달리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말했어요, "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거든요."2 부 사별의 고통
불신과 마비상태분노의 경험무슨 일이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수많은 다른 감정들과 현상이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분노, 죄책감, 슬픔, 좌절, 두려움, 긴장 등. 때로는 죽은 사람의 음성을 듣거나 그 모습을 보기도 한다. 나는 지금 미쳐가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가 겪는 아픔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과정'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성격, 기질, 혹은 상황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슬픔의 과정에는 쓰라린 상처, 두려움, 부정, 절망, 비애, 분노, 긴장, 정체성의 변화, 갈망 등이 수반되지만 이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이 중에서 몇 가지만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고,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둘 혹은 그 이상의 상태를 오가거나, 그중 몇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 좀더 일반적이다.
일반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세 가지 주요 단계를 거친다. 충격, 삶의 해체, 그리고 삶의 재구성이 그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상실의 언저리를 배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한가운데, 고통의 핵심을 통과해야 하며,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보 받는 순간, "그럴 리가 없어요, 뭔가 잘못 아셨겠지요." 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 비록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그 엄연한 현실을 연기하려고 한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 극단적인 불신과 무감각 상태에 빠지기도 하며, 이런 경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도 못한다. 어떤 부부는 아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의 두 친구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 두 친구는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른 지 일주일 후, 중년의 한 과부는 두 명의 사촌이 이틀 동안 자기 집에 머물면서 장례식 이후 여러 문제를 처리해 주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만일 이와 비슷한 경험,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외부와 '차단'되었던 경험을 한다면, 그것은 "보지도, 듣지도, 맛보지도, 만지지도 못한다면, 아무 것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외부적 사건을 인식하지 않고, 외부적 사건으로부터 자신을 절연시킴으로써 다시 말해 육체적·정신적 자아를 죽은 상태에 둠으로써 감정적인 죽음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무감각 상태는 분노나 죄책감과 같은 불편한 감정을 억눌러 준다. 분노나 죄책감은 무감각 상태가 아니라면 대단히 압도적인 감정이 될 수도 있다.
몇 달 혹은 1∼2년이 지나서도,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고 있는 자신,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므로 사용하던 물건을 계속 보관해 두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놀랄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일시적 위안을 얻기 위한 자연스런 행동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해버리는 불신이나 부정, 오랫동안 지속되는 불신이나 부정은 정상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애도의 과정이 중지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 손상된다. 불신의 극단적인 예로, 죽은 남편의 외투를 20년 동안 같은 자리에 걸어두었던 과부의 이야기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사별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선행절차로 장례식이 있다. 장례식은 죽은 이를 추도하고 완전한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의식이다. 현대 서구 사회에서 죽음이 처리되는 절차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는 살아남은 이들이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애도에 필요한 시간이 적절히 주어질 수 있도록 하는 확고한 장례의식이 있다. 이런 문화권에서는 살아남은 이들이 병리학적 징후, 가령 만성 우울증이라든가 사별의 고통에서 기인한 육체적 질병의 징후를 내보이는 일이 흔치 않다.우리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살아야 했던 사람, 인생을 즐겨야 했던 사람, 더 많은 시간을 우리와 함께 보내야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의 남편, 아내, 동생, 아이, 친구가 죽는다. 이렇게 죽음이 찾아오면, 세상에 이보다 더 잘못된 일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 나름의 생각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서로 삶을 공유했는데, 이제 그 사람은 여기에 없다. 세상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은, 실제로 세상은 이렇다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의 생각은 틀렸다. 우리가 분노하는 까닭은 우리의 신념체계가 틀린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현실과 대면하며 적대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여읜 사람에게는 정상적인 행동이다. 분노는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논리적이며 자연스러운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사별의 고통이 갖는 보편적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노는 여러 양상으로 표출된다.
"하느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다. 또는 "세상이 공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처럼 부당한 일이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가?" "내가 그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배워왔던, 인생의 공정성이라는 게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너무나 부당하다. 어느 누구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왜 내 딸이 죽어야 했습니까? 자기 일을 그토록 잘 해나가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던 내 딸이 왜 살 권리를 박탈당해야 하는 겁니까? 내 딸은 훌륭한 학생이었고, 집안 일도 많이 도왔고, 친구도 많았고, 유머감각도 뛰어난 아이였습니다. 그 버스에 타고 있던 사 람 중 누군가 죽어야만 했다면, 왜 길 건너에 사는 저 애가 아니라 우리 딸입니까? 그 애 는 무단 결석을 일삼고, 마약에 빠져있고, 제 부모 속을 긁어놓는 아인데요, 왜 그 애가 아니라 우리 딸이어야 했냐구요? - 버스 충돌 사고로 딸을 잃은 어머니이 대목에서 이 어머니는 좌절감과 극심한 고통이 배어나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물론 자신의 딸 대신 다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논리적이며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이 어머니는 삶의 부당함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고 있었으며, 동시에 자신의 분노를 다른 사람을 향해 표출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리고 그 상황과 관련하여 우리가 갖게 되는 의문들에는 답이 있을 수 없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헛되이 애쓰는 동안 번민, 격렬한 증오와 적의, 환멸, 불합리한 생각은 우리의 감정적·정신적 상태의 일부가 된다.
우리가 가장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피하거나 수동적으로 행동한다면 이것도 분노를 촉발하는 계기가 된다. 장례식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구들, 친척들, 이웃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게 보통이다. 충격적 사건이 남긴 상처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도 우리가 느끼는 슬픔을 인정해 주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살아남은 우리에게 세상은 결코 똑같은 곳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잃은 한 어머니는 그녀가 아주 잘 견뎌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우리의 분노가 어디를 - 의학계, 우리 자신, 가장 친한 친구, 어머니, 이웃, 그 사람이 죽었던 사고에서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 등 - 향하는가에 상관없이, 분노를 표현함으로써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몇 달이고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는 상태에 빠져 있을 필요는 없다. 분노는 우리가 그것을 없애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을 소모시킨다. 하지만 분노를 해소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많다.
신체의 지구력을 요하는 활동, 가령 달리기라든가 수영, 자전거 타기, 테니스 등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활동이 반드시 스포츠와 관련된 것일 필요는 없으며,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 물건을 던지고 치는 것도 괜찮다. 어디론가 가서 혼자 소리를 질러보는 것도 좋다.
항상 '예의'를 앞세우는 집안에서 자랐던 한 영국 여성이 있었다. 어린 시절, 감정을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이런 주의를 듣곤 했다. "얘야, 넌 영국 사람이야." 그랬던 그녀는, 오십대 중반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격한 감정이 치미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숲을 지나 강둑을 따라 걸으면서 고래고래 소리 를 질렀어요, 전에는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날 야단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군요. "조용히 좀 해라, 얘 야, 넌 영국 사람이야!"일단 분노가 누그러지면 우리 자신의 내면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을 향한 비난과 분노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예컨대 사랑하는 이를 살려내지 못한 '그 사람들' 즉 오진을 했거나, 과속 운전을 했거나, 가서는 안 될 곳에 가도록 부추긴 사람들만이 분노를 촉발시킨 대상은 아님을 서서히 인정하게 된다. 대체로 분노는 무력하고 버림받았다는 느낌에서 기인한다.◎ 우리가 왜 수술을 고집했을까? ◎ 아이들이 술을 마신 것 같다고 짐작했으면서도 왜 운전을 못하게 말리지 않았을까?
◎ 그의 불평을 막무가내로 무시해 버리지만 않았더라도.
◎ 정시에 도착해야 한다고 못박지만 않았어도, 서둘러 오느라 무단 횡단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위의 이야기는 남편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통보를 받고 미리 장례식 계획을 세웠던 과부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죄책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죄책감은 과부들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사별 이후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여러 징후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죄책감이다. 사람들은 죄책감을 자극할 수많은 이유들을 스스로 만들어낸다.직장에 갔다가 해질 무렵 집에 들어오는 일이 너무나,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게 나한테는 가장 힘든 일이었죠. 시골 언덕에 있는 빈집으로 돌아와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 남편과 사별한 한 여인
아내가 없는 집은 집도 아닙니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이에 요. 아내와 나는 38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느낌이에요. - 아내와 사별한 한 남자상관없어요
언제쯤 이 꿈이 끝나
악몽의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악한들을 지나고
저 울긋불긋한 알약, 칼과 주사, 윙윙거리는 기계를
의학 연구를, 도와주고픈 사람들의 노고를
지나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이제 가세요, 이제 그래도 돼요, 가서 보세요, ...
당신이 떠날 때, 결코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거예요.
이런 말을 적고 있어도, 여전히 나는 당신을 떠나 보낼 수 없어요.
하지만 그때, 그 음악을 향해
나는 무릎을 꿇고 당신을 위해 기도할 거예요.죽음을 경험하기 전까지 우리의 인생에는 어떤 방향이 있었다. 이것이 죽음으로 인해 달라진다. 나의 스케줄, 환경 그리고 여러 상황들이 변한다. 이 같은 변화로 인해 나 역시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내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한 사람을 잃었다. 나는 마이클의 어머니였거나, 존의 삼촌이었거나, 앤의 언니였다. 나의 이 부분은, 이제 더 이상 손을 잡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 사람을 잃음으로써 내 자기 정의의 한 부분이 삭제된 것이다.
이 같은 정체성의 혼란의 시기에는 자기 정의의 재수립이 필요하다. 사랑하던 사람과 사별한 이들은 대개는 사회 활동과 개인적 목표에서 우선 순위를 바꾸게 된다. 당신은 인생의 소중했던 세월을 무엇을 위해 보냈는지 생각해 본다. 지난 세월을 현재와 비교하면서 당신의 시각이 바뀐다. 한때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 파티, 클럽, 쇼핑, 골프, 심지어 직업마저도 이제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실제로 당신은 그게 무엇이든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사회적·물질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활동에는 무관심해지는 대신 인간적 가치들 즉 사랑, 연민, 봉사, 사회 정치적 활동 등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다. 사별한 이들을 돕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 자신이 사랑하던 이와 사별한 후, 그 경험의 영향으로 직업을 바꾼 경우가 많다.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업가들은 업무상의 시간을 줄이고 대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심리학이나 사회학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가는 주부들도 있다. 당신의 개인적 욕구가 변함에 따라 당신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 어떻게 바뀌든 당신은 서서히 슬픔을 딛고 성장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 성장은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또렷해진다.남편 또는 아내가 죽고 난 다음 느꼈던 감정들을 털어놓을 때, 살아남은 배우자들은 완전히 혼자 그리고 불완전한 감정에서 오는 극도로 황폐한 상태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이런 감정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자신의 본질적인 한 부분에 대한 상실감이 고통과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손을 뻗치기만 하면 닿는 현실 세계가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자신이 없다. 배우자의 죽음 직후 얼마 동안은 우울증, 오랫동안의 격한 울음, 불면증이 가장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슬픔과 절망, 피로감이 생활전반에 스며들고, 허무감이 몸과 마음에 영향을 끼친다.
우선 사별 이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 고독과 그리움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마지막 나날들을 돌이켜 볼 수 있다. 그러나 때 이른 죽음으로 배우자를 상실했다면, 한가지 중대한 문제가 떠오른다. 살아남은 아내나 남편은 자기 몫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는 한편, 아이들에게 정서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격렬한 고통이나 슬픔을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이 엄마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 역시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필요했던 눈물을 흘리는 데 두려움이 없어진다. 감정을 부인하고 감정 표현을 삼가는 부모는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면서 자기에게도 필요한 위안을 구하다 보면 심리적 균형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 표현이 정직하다면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얼마나 표현하는가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나 친척, 이웃이 없다고 해도 아무도 만나지 않은 채 "혼자서 헤쳐나가려고" 하면 안 된다. 목사나 신부, 또는 카운슬러를 찾아가면 된다.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글쓰기로 표현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 수 있다. 정돈된 글, 자기 검열적인 글을 쓰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