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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웬디 밀러 지음 | 요단
초대

웬디 밀러 지음/최봉기 옮김

요단/2001년/232쪽/7,000원



1. 마음

예수님의 거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지어진 집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마음이었다. 예수님은 거기에 가려져 있고 감추어져 있는 것들을 다 들추어내셨으며 사람들은 이로 인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서 결코 예수님을 떠나보낼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자신의 거처로 삼겠다고 하셨으며 그들은 그분의 이와 같은 사랑의 임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마침내 마음 속 은밀한 곳에서 치유와 희망을 주시는 그분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사람들은 이제 무엇보다도 마음속에서 그분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분 안에서 치유 받고 하나님 나라를 맛볼 수가 있었다.

말씀 속으로

귀를 기울이며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하시니라(마 13:3-9).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에 관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처음부터 귀기울여 듣는 것에 대하여 교훈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왜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이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셨다. 그것은 마음의 상태 때문에, 즉 사람들의 내적인 귀가 막혔고 영적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너희의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4-16)

말씀을 깊이 깨달아

하나님과 만나기를 기피하는 고집으로부터 치유되어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은 주의력의 집중에서 시작된다. 영적인 훈련은 급히 서두르지 않고 주의를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머리에서 마음으로 와 닿도록 하는 것을 돕는다. 우리는 거기에서 마침내 하나님의 임재로 열려지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육체적으로나 마음으로나 치료받아야 할 대상인 것을 잘 알고 계신다. 이와 같은 치유를 통해 우리는 신실한 삶의 표시로서 걷고 말하고 노래하게 된다.

공동체 속의 믿음을 찾아

우리의 여행코스는 성서와 교회사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며 그분께로 다가갔던 수많은 남녀 순례객들과 함께 기도의 세계로 안내되는 것이기도 하다.

* 구약성서로부터: 구약성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욜 2:12)”는 부르심을 듣게 된다. 우리는 평화와 치유를 바라면서도 내면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숨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며 위로하시고 치료하기를 즐거워하신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 26)” 우리가 모든 것을 멈추고 이들 순례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도에 함께 귀를 기울인다면 하나님의 치유하심의 초대에 응답하는 기도로 안내될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 신약성서로부터: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마굿간, 마리아 곁 조용하고도 고즈넉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예수님이 이 세상으로 오신 복된 복음의 장소로 초대하여 그 사건을 마음속에 담아두게 한다. 한편 요한, 베드로, 바울은 자신의 마음 세계를 열어 자신에게 있었던 갈등, 긴장들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대항했던 내적인 갈등 속에서도 마침내 주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평안과 쉼을 가져다주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 21-25)

* 교회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구원이야말로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따라서 우리들의 어떤 수고도 헛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이 결국 영적 훈련과 같은 실천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러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아야 하는 동시에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사랑과 기도 안에서” 자라도록 부름받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로 하여금 귀기울이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초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들어가라는 초대이기도 하다. 거기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재로의 초대

삶에 뿌리내리기: 수용적 독서의 실천

로버트 뮬홀랜드의 두 가지 독서법을 소개하자면, 그 중 하나는 고도의 정보화 시대에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하여 읽는 것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변화를 추구하는 독서법이다. “변화를 위한 독서”란 성경을 읽을 때 귀를 기울이는 방법으로서; (1) 읽는 양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 그 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둔다. (2) 깊이를 추구하며 그 구절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의미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3) 언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며 그분에 의해 통제됨으로써 개방적인 수용성을 경험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격으로 창조되고 형성되기를 추구한다. (4) 내용은 우리들의 존재의 질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읽는 이는 하나님의 실재, 그분의 나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발견하기 위하여 개방적이 된다. (5) 성령의 임재에 수용적이고 시간을 갖고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신비에 마음을 연다. (6) 성령께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우리의 내면 공간, 마음의 공간에 비추어 주시기를 바란다. (7) 성령의 은사, 계시를 수용한다. (8) 우리가 그분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

수용적 독서: 변화를 위한 독서

변화를 위한 독서는 우리에게 우선 잠잠히 머물러 주님의 씨뿌리는 비유에 귀를 기울일 때 마주치는 것에 열린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경험은 강박적인 충동적 욕구를 통제하도록 도와준다. 우리에게는 물론 정보를 위한 독서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정보와 기능들에만 익숙해진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것들에 의해서 통제당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생명이 부여하는 선물들, 우리의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기능적 무신론”이라는 죄를 짓고 있다. 언어를 통해서 입술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기능적 무신론은 우리 자신이 무언가 만들어내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로 하여금 읽고 듣는 것을 돕는다. 요한 웨슬리는 성령에 의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듣기 전에 기다리는 기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진지하고 온전한 기도가 먼저 있어야 한다... 성경은 말씀을 주시는 성령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2. 하나님을 위한 시간과 장소

말씀 속으로

귀를 기울이며

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것에 몰두하거나 분주해하는 것, 혹은 무의식중에 정작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한다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이와 같은 부재의식이야말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집중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사람들의 이러한 경향을 지적하셨다.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마 13: 18-23)

말씀을 깊이 깨달아

분주하고 뭔가에 몰두해 있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부인하고 있는 우리들의 허망하기 짝이 없는 시간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씨뿌리는 비유는 들음에 관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초청하셨다.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 10: 3-4)

여기서 초청은 고독 속에 귀를 기울이는 것, 즉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예수님께로 나아가 그분에게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고독이란 분리된 조용한 장소, 하나님께로만 열려 있는 마음을 뜻한다. 이럴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점차 우리의 전반적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구체화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삶 속에서 기도할 수 있는 장소를 발견하고 그러한 삶의 리듬을 지키셨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임재해 계시며 항상 듣고 계심을 알고 계셨지만, 사람들과 소음, 그리고 사람들 가운데서 해야 할 일들로부터 분리된 시간을 필요로 하셨다. 고독 속에서, 그리고 조용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예수님은 그러한 일들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정하셨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보고 유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있으셨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이 기도를 위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공동체 속의 믿음을 찾아

* 구약성서로부터: 우리들의 생명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들을 찾아와 부르신다. “네가 어디 있느냐... 나를 청종하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창 3:9, 사 55:2-3)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호 2:14)

* 신약성서로부터: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장소, 다양한 시간에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락방에서 기도하기도 했다. 성전은 매일 정규적인 시간에 기도의 장소를 제공했다. 함께 하는, 또는 개인적인 기도는 교회가 교회이게끔 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이해되었다.

* 교회로부터: 그들은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기대 아래 기도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기도했다... 그들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서 시간을 정해두고 하루에 세 번에서 일곱 번씩 기도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기도했으며, 성경을 근거로, 특별히 시편에 기초해서, 그러나 구약과 신약을 읽으면서 기도했다.

임재로의 초대

삶에 뿌리내리기

* 장소: 우리는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항상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과 분주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집중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기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지속적인 기도의 훈련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기도 하다.

* 시간: 하루에 15분에서 30분 정도만 성경을 읽고 조용히 묵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에 말씀을 간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하나님께로 집중: 기도할 때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나님께로 향하기 위하여 몇 가지 간단한 연습을 시도해 보도록 하자.

(1) 호흡 - 편안히 앉은 다음,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쉰다. 숨을 들이쉴 때 하나님의 숨결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숨을 내쉴 때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내보낸다고 상상한다. 이를 천천히 여섯 번 정도 반복하는 가운데 숨결을 고르게 유지한다.

(2)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께로 다가왔을 때 그 모든 것들을 그분의 임재 앞에 내려놓고, 다시 그분의 말씀을 들어 보라.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멍에를 같이 메자고 하시는 그분의 초대에서 예수님은 무거운 멍에의 한 쪽을 메고 있는 노련하고 강한 황소를 상징한다. 그분은 가야 할 방향을 이미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멍에의 가벼운 한 쪽을 메고서 함께 가자고 초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예수님께 가까이 붙어 있어 그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고 그가 멈추는 곳에서 함께 멈추면 된다.)

(3) 쉼 - 긴장과 피로를 느끼는 몸의 각 부분들에 주의를 기울여 긴장을 풀고 하루 동안 자신에게 해준 일들에 대해 감사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4) 음악 -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거나 콧노래나 찬송가를 불러 긴장을 풀고 하나님께로 집중해 나아간다.

깨달음의 기록

한 주간 동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게 되었던 시간과 장소를 기록하라. 그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셨는가? 영적 일기에 그러한 내용들을 몇 개의 짧은 문장으로 기록하면 된다.



3. 경험을 위한 기도

말씀 속으로

귀를 기울이며

예수님께서 오른손 마른 사람을 치료하셨을 때 당시 종교적인 지도자들은 안식일의 전통을 깨뜨렸다는 이유로 그분을 배척했다.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제자들은 그분을 떠났으며, 베드로는 심지어 그분을 모른다고 부인하기까지 했다.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은 외로우셨으며 거기서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으셨다.예수님은 우리들의 고통, 상실, 적대, 포기와 같은 경험들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적대감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고통이 우리 마음을 강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 아시고 관심을 갖고 우리들을 인도하고자 하셨다.

말씀을 깊이 깨달아

시편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경험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시편은 그러한 말씀을 통해 그들의 경험으로 기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좋지 않은 형편의 삶, 그리고 그러한 삶에 대해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가 겸손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때만, 혹은 적극적이고 받아들일 만한 기도를 할 때만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신다고 배운 사람들의 경우, 이와 같은 용기는 더욱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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