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기세
서울라이터 박윤진 지음 | 윌북
다정한 기세
서울라이터 박윤진 지음
윌북 / 2026년 1월 / 212쪽 / 17,800원
1│회사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카피라이터라는 낭만조금 특별한 모임을 알리는 초대장을 받은 적이 있다. 재직 중인 회사의 모든 카피라이터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소식이었다. 새롭게 입사해 적응하느라 눈치를 살피며 고군분투하던 내겐 희소식 중 희소식이었다. 소식을 듣곤 곧바로 탁상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며 제발 이날만은 야근하지 않게 해달라고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했다.
모임 장소는 회사 근처 작은 주점. 옛날 대학가에 있었다면 학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만 같은 푸근한 분위기였다. 문을 열자 오래된 책방에 가야 맡을 수 있을 법한 시간과 낭만의 냄새가 풍겼다. 주점 안쪽 작은 방에 들어서니 벌써 스무 명 남짓한 카피라이터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테이블마다 전통주와 따끈한 국물 요리가 올려졌지만 사실 그날의 진짜 메뉴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무르익자 모임을 기획한 선배님이 일어나 첫마디를 꺼냈다. “자, 한 사람씩 이름이랑 소속 말하면서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입사 전부터 이름을 알 정도로 동경하던 선배들도 있었고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다. 흥미로운 건 여기 모인 카피라이터들의 시작이 비슷비슷했다는 것이다. “사실 저는 원래 기자가 꿈이었는데….” “저도 기자 시험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카피라이터가 있다는 걸 알고….” “저도 실은 기자를….”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때는 글 쓰는 직업하면 떠오르는 게 기자뿐이었던 걸까. 지금도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아주 대중적인 건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카피라이터가 뭐 하는 직업이에요?” 묻곤 한다. 나도 처음부터 이 직업을 꿈꾼 건 아니었다. 어릴 때는 방송반 활동을 하며 막연히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PD라는 직업을 꿈꿨다. 그러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친구의 우연한 말에 흥미를 느낀 것이다. ‘라이터(writer)’라는 단어에 이상하게 마음이 갔다. 어릴 때부터 TV광고 카피를 줄줄 따라 외우던 나였기에 카피를 쓰는 일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카피라이터의 꿈을 키우며 틈틈이 챙겨 보던 사보 속 사람들이 지금 내 눈앞에 앉아 있었다.
그날 모임에는 특별한 준비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가장 좋아하는 시’였다. 자기소개를 마친 사람들은 다들 종이를 꺼내 자기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낭독했다. 처음 듣는 작품도 있었고 익숙한 작품도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게 없었다. 어떤 시를 준비할까 고민하다 내가 고른 건 네스카페 브랜드 광고에 쓰여 유명해진 다니카와 슌타로의 <아침 릴레이>였다. 이 시는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한 줄 카피가 덧붙은 광고로도 만들어져 일본의 권위 있는 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캄차카의 젊은이가 / 꿈에 기린을 보고 있을 때 / 멕시코 아가씨는 / 아침 안개 속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 뉴욕에서 잠든 소녀가 / 미소 지으며 몸을 뒤칠 때 / 로마의 소년은 / 기둥머리를 물들이는 아침 해에 윙크한다 / 이 지구에서는 / 늘 어디선가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 우리는 아침을 릴레이한다 / 경도經度에서 경도로 / 교대로 지구를 지키는 것이다 / 잠들기 전 잠시 귀를 기울여보면 / 멀리서 우는 자명종 소리 / 그것은 당신이 보낸 아침을 / 누군가 단단히 받았다는 증거다
_다니카와 슌타로, 『사과에 대한 고집』, 요시카와 나기 옮김, 비채, 2015.
뜨끈한 바닥에 철퍼덕 마음을 내려놓고 술잔에 시를 담아 마시며 낭만적인 시의 릴레이가 이어지던 겨울밤이었다. 누군가 마음에 들어온 시의 구절을 이야기하면 미소와 끄덕임으로 답하는 포근한 마음의 릴레이. 시를 읽던 그 밤은 직장 생활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작은 하늘처럼, 회사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낭만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다. 그날의 공기와 함께 나눈 대화의 온도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크리에이티브 근력 기르기뇌에는 근육이 없다. 하지만 몸을 쓸수록 근육이 붙듯 머리도 쓸수록 크리에이티브 근육이 강해진다. 사실 나도 원래는 창의력 근육이 부족한 약골 크리에이터였던 터라 잘하고 싶은 마음만큼 결과물이 따라주질 않았었다. 제작 회의를 앞두고는 언제나 고만고만한 발상들만 머리를 맴돌았고, 순간 떠오르는 대로 얕은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아이디어와 카피들만 회의에 가져가게 됐다.
광고 회사 초년생 시절의 나는 최선의 정도를 잘 몰랐다. 이번엔 진짜 좋은 아이디어를 내보겠다며 책상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지만 좋은 생각은 안 나고 머릿속만 답답했다. 꽉 막힌 도로처럼 정체된 생각을 풀어보려고 집중할수록 머리에선 열만 나고 벼락 같은 피로만 몰려들곤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 순간이 바로 크리에이티브 근육을 강화하는 시간이었다. 뇌과학에서 창의성이란 중복 신경망의 과부하가 만들어낸 별종 신경이라고 한다. 별종 신경이 만들어질 때까지 신경망을 과부하시키는 것, 그게 바로 창의력을 키우는 근육 운동인 것이다. 어느덧 20년 이상 경력의 어엿한 카피라이터로 살아가는 지금은 나만의 크리에이티브 근력 운동 루틴을 꾸준히 수행해나가고 있다.
먼저 본격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기 전 머릿속 스트레칭 시간을 갖는다. 운동 전 굳은 근육을 푸는 것처럼 머릿속도 가볍게 풀어줘야 한다. 굳은 머리를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가벼운 읽기다. 꾸준히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 몸의 변화가 느껴지듯 책을 세 권 이상 꾸준히 읽으면 뇌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머릿속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마치고 나면 언어 근육 활동을 촉진하는 크리에이티브 유산소 운동을 시작한다. 이 시간엔 좋아하는 책의 문장을 필사하는데 확실히 두뇌 회전 속도가 빨라지는 느낌이 든다. 눈으로 읽고 끝내는 것보다 손으로 기록하며 읽는 게 확실히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따라 써보면 그들의 생각과 문장 리듬을 체화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 문장을 적을 땐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의도로 이 단어를 택했는지 작가의 심정을 헤아리며 사각사각 펜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생각이 샘솟기 시작한다.
좋은 문장을 읽고 반복적으로 새겨 넣다 보면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그럼 이제 생각의 근력 운동에 집중할 차례다. 일단은 깨끗한 종이에 아무 말이나 생각을 쏟아붓는다. 마인드맵 형태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가지를 그려도 좋다. 핵심은 생각 없이 생각을 뱉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본 듯한 단어, 내가 봐도 별로인 표현,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문장,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상한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수많은 생각의 불순물을 걷어내면 언젠가부터 맑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쓰며 단단한 땅을 곡괭이로 파내듯 이쪽으로 저쪽으로 계속 생각을 파낸다.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단계는 정리 운동이다. 잠시 시간을 두고 쏟아낸 생각들을 살펴보면 의외로 괜찮은 것도 있고 괜찮다 싶던 게 별로인 것도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살펴보고 살릴 만한 것들을 따로 묶으며 아이디어의 틀을 잡는다. 큰 콘셉트가 잡히면 그다음에 세부적으로 카피를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꾸준한 반복 운동이다. 조금만 방심해도 근 손실이 일어나듯 크리에이티브 근육도 반복적으로 단련하는 게 중요하다. 식단 관리를 하듯 좋은 콘텐츠들을 섭취하고 쓰는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공간에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결국 ‘반복적으로, 꾸준히, 오래’가 답인 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아침 여섯 시간씩 글을 썼고, 강수진은 프리마 발레리나가 된 후에도 매일 열 시간 이상 연습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아흔의 나이에도 하루에 한 장씩 그림을 그린다. 세계적인 거장들도 매일 갈고닦는데 나 같은 범인이 무슨 다른 도리가 있을까. 처음에 근력 운동을 시작하면 5킬로그램짜리 덤벨도 무겁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씩 더 무거운 것을 들 수 있지 않은가.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1킬로미터도 힘들지만 꾸준히 달리다 보면 점점 더 오래, 더 멀리 달릴 수 있게 된다.
조금 힘들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 내 안의 숨어 있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어쩐지 실력이 는 것 같은 뿌듯함을, 생각을 풀어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놀라움을. 하루하루 쌓인 노력은 어느 순간 분명히 우리를 바꾼다.
2│내 이름으로 홀로서기
직업이 여러 개인 삶언제부턴가 여러 직업으로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카피를 쓰고, 광고 아이디어를 내고, 콘텐츠를 만들고, 툰을 그리고, 강의를 하고, 가끔은 번역도 하면서. 여러 개의 일을 하며 살리라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짐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자연히 그렇게 살고 있다.
이런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건 언젠가 읽은 손석희 교수님의 「지각인생」이라는 칼럼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철학자 칸트보다 칼같이 시간을 지키고 스티브 잡스보다 완벽을 추구할 것 같은 그분께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고백처럼 느껴졌다. 거기엔 대학도 결혼도 남들보다 늦은 편이었던 자신이 마흔이 넘어 유학에 도전하며 느낀 마음과 소회가 담겨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시험을 망치고 억울함에 찔끔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에선 얼마나 절실한 노력으로 그 시간을 버텨냈는지가 깊이 전해졌다.
당시 나 또한 입시와 취업에서 이미 한발 늦은 지각인생을 살고 있었다. 앞서가는 친구들의 등을 바라보며 조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내게 그 글은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담담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인생의 갈림길마다 방향을 잡아준 메시지 덕분에 나 역시 늦게나마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고 늦은 나이에 창업을 했으며 뒤늦게 해외 살이까지 경험했으니, 이쯤 되면 원조를 넘어선 지각인생이 아니냐고 진지하게 여쭙고 싶은 심정이다.
지각인생은 내게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해보자는 덜 완벽한 시작에 대한 관대함을 남겼다. 늘 계획대로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는 게 인생의 묘미 아니겠는가. 실수하면 고치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는, 실수와 실패의 연대기였던 나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자산 하나가 남았다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일단 시작해보는 덜 완벽한 출발에 대한 너그러움과 뻔뻔함일 테다. 뭔가에 마음이 꽂히면 부족해도 일단 시작해보자는 용기, 모자란 부분은 차차 채워나가면 된다는 너그러움이 결국 나를 여러 일에 뛰어들 수 있는 ‘N잡러’의 인생으로 이끌었다.
요즘은 조기 은퇴를 위해 여러 직업을 병행하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게 필수라고 하지만 아무리 직업이 여러 개라 해도 중심이 되는 본업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코스 요리에도 메인이 있고 아이돌 그룹에도 센터가 있듯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을 때 가장 먼저 답할 수 있는 본업이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엔 가장 오래 해온 일이자 가장 좋아하는 일인 카피라이터가 그것이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일의 중심을 잡아준 덕분에 본업으로는 급여를 벌고 부업으로는 즐거움을 번다는 마음으로 다양한 일을 이어올 수 있었다. 자신을 대표할 수 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하나쯤은 꼭 지켜나가는 게 좋다.
인생이 무수한 단추가 달린 나만의 옷을 입는 일이라면 일단은 마음이 가는 단추를 과감히 채워보면 어떨까. 잘못 끼웠다면 조금 늦더라도 다시 끼우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우리는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며 성장하는, 연약하면서도 끈질긴 존재다.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하고 싶은 일이라면 용기를 내는 사람, 자신만의 풍부한 삶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인공지능 광고의 시대칸 라이언즈에 다녀온 다음 해인 2024년에는 운 좋게도 서울에서 열리는 칸 라이언즈 행사에 연사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누구나 A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호기 넘치는 제목으로 주제를 던져놓은 뒤 과연 내가 인공지능에 관한 강연을 할 수 있을지 후회와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심지어 연사 라인업에는 그야말로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다면 바닥이라도 반짝이게 닦자는 심정으로 무한 긍정 회로를 돌리며 나는 전문가들 틈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최근 몇 년간 광고계의 화두는 단연 AI였다. 몇 날 며칠이 걸려야 완성할 수 있었던 고퀄리티의 이미지가 단 몇 초 만에 생성되기 시작하자 디자이너들은 불안해했고,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던 작업자들은 일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카피를 전문적으로 써주는 AI가 등장하고 거대언어모델 AI가 눈부신 성장을 보여주자 카피라이터의 일 역시 위협받았다. 업계마다 AI 때문에 큰일이라며 아우성이었다. 사람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일에 더 큰 두려움을 갖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시험 결과 확인을 미루는 아이처럼 막연한 두려움에 AI 공부를 미뤄오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된다는 옛말처럼 AI를 이해할수록 AI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준비를 위해 일단 전 세계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코세라(Coursera)’에 접속하니 AI와 관련한 여러 강의가 눈에 띄었다. 유튜브에서도 AI와 관련된 정보들이 넘쳐났다. 조금씩 공부하며 인공지능을 알아갈수록 AI란 인간의 뇌 구조를 따라 그린 디지털 드로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드로잉은 나날이 세밀해져서 결국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로 현실화되고 있었다.
보통 영상 제작은 콘티-촬영-편집-2D&3D-녹음 순서로 진행된다. 인간이 단계별로 각기 다른 역할을 담당하듯 나도 AI 프로그램 각각의 역할부터 익혀나갔다. 먼저 챗GPT에겐 영상 콘티 제작을 의뢰했다. 슬럼프에 빠진 카피라이터가 AI라는 요정을 만나 답을 찾아가는 내용의 스토리를 제작해달라 입력하자 1분 길이의 스토리보드에 대사까지 야무지게 정리되었다. 미드저니에겐 90년대 스타일의 빈티지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요청했다. 한 컷 그리는 데 며칠은 걸렸을 이미지들이 단 몇 초 만에 계속 생성되었다. 이렇게 뽑아낸 이미지들은 런웨이에 넣어 짧은 영상으로 전환했다. AI의 고질병 같은 실수 때문에 매번 캐릭터의 손가락 개수를 세어보느라 바빴지만 결과물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랜덤 뽑기처럼 흥미롭기도 했다. 수노에겐 배경 음악 제작을 부탁했다. 나의 요청 사항은 지브리 느낌의 오케스트라에 모험을 떠나는 스토리텔링이 느껴지는 레트로풍 시티팝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실제 녹음실에서 이런 요청을 했다면 그 자리에서 쫓겨났겠지만 수노는 요청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어냈다.
이 모두를 합치자 마침내 최종 영상이 완성되었다. 파일명을 ‘천만번의 삽질’이라 이름 붙인 이 영상은 여러모로 엉성했지만 태어나 처음 AI로 직접 만든 결과물이기에 한편으로는 한없이 뿌듯했다. 몇 주 동안 애정을 쏟아부은 나의 첫 AI 영상은 행사장이었던 영화관에서 무사히 상영되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팔이 반대로 꺾여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공포에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말이다.
광고는 더 이상 아트와 카피의 결혼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광고는 스토리와 디자인, 크리에이티브와 기술의 동거다. AI를 사용하는 건 최고의 업무 파트너가 생긴 것과도 같다. 요즘도 새로 맡은 프로젝트의 배경이 궁금할 땐 정보를 묻기도 하고 내가 낸 아이디어가 어떤지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카피를 쓰다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시안 이미지를 만들 때도 AI는 없어선 안 될 친애하는 동료가 되었다.
먼 옛날부터 인간은 도구로 신체를 확장해왔다. 도끼는 팔의 확장, 자동차는 다리의 확장이었듯 AI는 두뇌를 확장하는 도구인 셈이다. 우리의 창의력을 증폭시켜주는 도구에서 출발한 AI는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율형 인공지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슈퍼인텔리전스, 즉 초지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등장했다. 앞으로 AI는 과연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가고, 내 일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하지만 AI가 누구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시대를 열었기에 이젠 만드는 사람보다 만든 것을 해석하고 큐레이션 하는 인간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다시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결국 인간의 가치관이 다시 존중받는 시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