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의 초상
김의경 외 지음 | 동아시아
일하는 사람의 초상
김의경 외 지음
동아시아 / 2026년 5월 / 304쪽 / 19,000원
만들다
“10월에 짜는 올리브오일이 가장 맛있으니까요”―올리브오일 생산·판매자 백수진 (글: 한은형)서울을 방문한 백수진(가명) 씨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사람을 팔다가 이제는 올리브오일을 파는 사람이라고. 그는 원래 스포츠 에이전트였으므로 프로선수들을 ‘사고파는’ 일을 중개했다. “이 선수 얼마에 팔 수 있어?”라는 말이 지긋지긋해졌을 때 사고파는 대상을 바꾸기로 했다. 스포츠 선수에서 올리브오일로.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에이전트가 되기 전까지 운동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던 백수진 씨는 인맥으로 움직이는 프로 스포츠계에서 ‘인맥’을 갖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어렵게 얻은 인맥을 두고, 완전히 다른 업종으로 이동한 것이다.
왜 올리브오일이었을까? 그가 사는 곳이 스페인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삶에서 먹는 즐거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 스페인의 소설가 세르반테스가 쓴 『돈키호테』의 주인공 돈키호테는 수입의 4분의 3을 먹는 것에 지출한다. 돈키호테가 미식에 관심 있는 인물이 아니라서, 읽으며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스페인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집착하는 것이 올리브오일이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올리브오일은 한국인들에게 쌀, 된장 같은 필수 식재료다. 스페인은 세계에서 올리브오일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전 세계 생산량의 50퍼센트가량이 스페인에서 생산되고,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각각 10퍼센트 내외를 차지한다고.
백 씨가 스페인에 간 건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백 씨는 공부하러 간 스페인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책과 영화,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인문대 학생이었던 그는 스페인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스포츠 에이전트 일을 잘한 게 문제였을까? 스페인에서 하고 싶었던 공부는 마치지 못하고, 한동안 스포츠 에이전트로 살았다. 그러다 지금은 올리브오일을 팔고 있다. 올리브오일을 팔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올리브오일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는데, 스페인에는 맛있는 올리브오일이 너무도 많았다. 백 씨는 관심 분야가 많지는 않지만 좋아하게 되면 집요하게 파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 성격 때문이었을까. 올리브오일 학교까지 가게 되었다. 1년 과정의 올리브오일 테이스터 학교를 백 씨는 그렇게 부른다. 학교의 공식 명칭은 ‘에스쿠엘라 수페리오르 델 아세이테 데 올리바(Escuela superior del aceite de oliva)’로, 올리브오일 카타도르 학교라는 뜻이다.
백 씨가 올리브오일을 팔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올리브밭도 갖고 있다. 그가 파는 올리브오일은 직접 밭에서 생산한 것이다. “어떻게 스페인에서 올리브밭을 사게 되셨어요?” 나는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백 씨가 올리브오일 학교에서 만난 토마스 할아버지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건축가로 성공한 토마스 할아버지가 땅을 샀는데, 마침 그 땅이 광활한 올리브밭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올리브에 관심을 갖게 된 토마스 할아버지는 올리브오일 학교 동급생으로 백 씨를 만났고, 백 씨는 토마스 할아버지로부터 땅 일부를 샀다. 그뿐이 아니다. 두 사람은 올리브 농사에 필요한 여러 시설과 장비를 공유하는 동업자 사이가 되었다. 토마스 할아버지에게 동업자로 인정받기까지는 1년이 넘게 걸렸다. 냉철한 사업가인 토마스 할아버지는 백 씨가 함께 일할 만한 사람인지 지켜보았다고. 토마스 할아버지와 매주 같은 요일에 함께 점심을 먹었는데, 토마스 할아버지는 식사 자리에서 올리브밭 이야기는 못 하게 했다. 꼬박 1년을. “오랜 시간에 걸친 면접이었던 거네요”라고 내가 말하자, 백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쯤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그리스 올리브오일과 스페인 올리브오일은 어떻게 다른가요?”라고 물었다. “다 달라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스 올리브오일은 좀 심심해요. 그리고 이탈리아 올리브오일은 복잡한 면이 많아요. 반면 스페인 올리브오일은 직설적이에요. 직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스페인 레드와인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올리브오일은 여러 가지로 레드와인과 비슷한 면이 있다. 좋은 품질을 얻으려면 기후와 토양, 강수량이 중요하고, 어떤 조건에서 수확한 올리브를 얼마나 실력 있는 사람이 오일로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좋은 올리브오일을 생산하려면 올리브가 가장 신선할 때 따서, 지체 없이 즙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생산자마다 신선함에 대한 관점이 갈린다. 그에 따라 올리브를 따는 시기도 갈린다. 백 씨는 ‘추수’라고 표현했다. 백 씨와 토마스 할아버지가 동업 중인 알 알마(Al Alma) 농장에서는 10월 중순부터 추수가 시작된다. 참고로 ‘알마’는 영혼이라는 뜻. 농장 이름을 ‘영혼’이라고 짓는 것도 스페인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하고도 직설적이다!
“왜 10월인가요?” 하고 내가 묻자, 뼈대만 있는 답이 돌아왔다. “10월에 짜는 올리브오일이 가장 맛있으니까요.” 10월에 올리브를 짜면 과육의 10퍼센트 정도만을 오일로 얻을 수 있다. 11월에 짜면 올리브가 더 익어서 더 많은 오일을 얻을 수 있지만, 맛은 떨어진다고. “그런데 스페인 올리브오일 하면 남부를 알아주지 않나요?” 알 알마 농장은 스페인 중부에 있어서 그렇게 질문했다. 백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라고 했다. 나 또한 스페인 올리브오일의 최고봉은 남부인 안달루시아산이라고 들었다. 남부의 태양이 정말 뜨겁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저희 올리브밭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라만차예요. 돈키호테에 나오는 그 라만차요.” “라만차라고요?”
『돈키호테』를 좋아하는 나는 작품의 도입부를 특히 좋아한다. 라만차의 어느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는, 하지만 동네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그 신비로운 서두를. 백 씨는 세르반테스와 달리, 알 알마 농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었다. 카스티야라만차주 톨레도에 위치한 라과르디아산에 있다고. 백 씨는 자신의 올리브오일을 어떻게 소개할지 고심하다 『돈키호테』 이야기를 가져왔다고 한다. 온라인 판매 페이지의 제품 설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카스티야라만차를 일컬어 겨울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을, 여름에는 타오르는 태양을 겪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백 씨는 극심한 기온 변화가 품질 좋은 올리브 열매를 열리게 한다고 했다. 스페인 중부 지역은 추위와 더위가 모두 악명 높은 지역이라고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올리브 품종은 300종가량으로 포도만큼 다양하고, 품종마다 재배에 적합한 기후가 다르다. 농장에서 백 씨가 생산하는 오일은 중부 지방의 기후에 어울리는 올리브나무에서 얻은 것이다. 코르니카브라는 중부의 토착 품종. 또 피쿠알과 오히블랑카 품종도 재배하고 있다. 피쿠알과 오히블랑카는 원래 주로 남부에서 자라는 올리브나무인데, 기후 변화로 인해 생산지가 북상하고 있다고 했다. 알 알마 농장에서 재배하는 피쿠알 품종은 지난해에 생산량의 3분의 1이 급감했다. 한국과 스페인 두 나라 모두 기후 변화라는 재앙 앞에서는 같은 처지였다. 당연히 먹었던 것들을 앞으로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백수진 씨를 인터뷰한 2025년 12월 겨울, 그의 올리브밭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잠든 것처럼 보일 뿐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땅속에서. 그리고 백 씨의 일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잇다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일해요”―국립현대미술관 영상관 학예원 제이 (글: 이서수)날마다 일하러 가는 장소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애사심이 아니라 일터에 대한 사랑을 묻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나에게 그런 상상을 촉발시키는 곳이다. 넓고 조용하고 깨끗한 공간, 일방향의 동선을 그리며 천천히 걷는 관객들, 통창 너머의 아름다운 중정. 특히 여느 미술관과 다르게 영화관이 갖추어져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일하는 공간에 대한 가상의 애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혹적인 장소다. 2025년 2월 어느 날, 미술관 내 영상관(MMCA필름앤비디오)에서 일하는 학예원 제이(가명)를 만났다.
“필름앤비디오 학예원은 전시과 소속이에요. 상영작 조사부터 출판물 제작까지 영화 상영과 관련된 전반적인 실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미술관 직원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무기계약직인 공무직이에요. 공무직은 호봉제가 아니라서 직급이 오르지 않고, 기본급으로는 최저 시급을 받을 뿐이죠.”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진행된 인터뷰는 시작부터 진솔했다. 제이는 원래 영화를 연출했으나 진로를 변경해 미술관으로 오게 되었다. 학예연구사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예산을 짜고, 계약과 행정 업무 등을 총괄한다면 학예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실무적인 진행을 나눠 맡는다. 아마도 미술관 안에 영화관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곳만의 장점이 뭔지 궁금했다.
“영화관의 관람 환경이 훌륭해요. 실력 있는 영사기사님이 계시거든요. 디테일 하나하나를 최적의 상태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세요. 이를테면 요즘 영화관들에서 거의 하지 않는 ‘마스킹’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마스킹이란 개별 영화의 화면비에 맞춰 스크린의 비율을 조정하는 거예요. 스크린의 양 사이드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검은색 커튼을 정확한 위치에 놓아두어야 해요. 커튼 맨 아래쪽에는 납으로 된 추가 있어서 그 무게로 커튼을 고정시키는데, 저는 종종 그 사실을 잊어먹는 바람에 물건을 옮기다가 추에 머리를 여러 번 부딪히기도 했어요. 참고로 굉장히 아픕니다. 그리고 객석의 단차가 커서 앞 좌석 관객의 앉은키와 상관없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어요.” ‘마스킹’부터 단차까지 오롯이 작품 감상에만 초점이 맞춰진 공간이었다. 이 공간의 의의를 제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영화계에서는 영화를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요. 작품을 대할 때 일종의 ‘상품’으로서 영화를 대하거든요. 그래서 영화제에서 작품을 출품받을 때도 제작연도에 제한을 걸어두죠. 영화에 유통기한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요. 하지만 만약 그해에 발견되지 못한 좋은 작품이 있다면요? 그런 측면에서 미술계가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이 제게는 새롭게 다가왔어요. 작품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는 게 아니라 작가가 인생에 걸쳐 만들어 가는 궤적을 통해 작품을 바라봐요. 한마디로 예술로서 작품을 대한다는 것이죠. 최신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든 작품에서 동시대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요.”
제이는 관객들이 영화와 만나는 방식이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미술관에 자리한 영화관은 상업적 실적에 상관없이 비교적 긴 기간 의미 있는 상영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관객과 접촉면을 넓히는 효과를 만들 수 있다면서.
상영 전에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겠지만 영화관에서 작품을 다시 보면 남다른 감정을 느낄 듯싶었다.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스크리너’라 부르는 영상 링크를 받아 사무실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봐요. 그런데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영화관에서 다시 보면 훨씬 더 좋게 느껴져요. 큰 화면과 풍부한 사운드에 압도되는 느낌이 있지요. 어두운 공간 안에서 높은 집중력으로 시간을 공유하는 느낌은 특별하게 다가오고요. OTT 등이 보급되면서 개인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공적인 경험으로서의 영화 보기가 갖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 관람이 개인화될수록 영화관이라는 환경에서 타인과 함께 영화를 ‘경험’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공적 경험의 영역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런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문득 제이가 일하는 곳이 공공기관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음가짐부터 다른 게 있지 않을까.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해요.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도 작가군이 다양하게 구성되도록 의논하죠. 작가나 작품이 특정 성별이나 국가에 치중되지 않도록 안배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요. 유명 작가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소수자의 시선을 반영하고 예술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뜻깊은 작품을 더 많이 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이가 생각하는 공공성엔 공정성과 다양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우리 사회의 큰 화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MMCA필름앤비디오의 방향성에만 국한된 말로 들리지 않았다.
“계속 누군가가 좋아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홍보물을 만드는 일도 저의 일인데 그것들은 미술관에서 만들어지는 다른 출판물과 마찬가지로 아카이브에 영구 보관되거든요.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일해요. 먼 미래에 누군가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미술관 아카이브에서는 과거 전시 및 프로그램의 포스터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요. 공동체 안에서의 의미와 방향성,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흐름에 대한 고민 등은 미술관에서 일할 때 고려하게 되는 문제예요. 이야기가 거창해지는 것 같은데 직원 한 사람으로 일하고 있지만 작게나마 공적인 영역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감을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만족감이 결코 금전적인 보상에만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일을 하며 아쉬운 점은 없는지 물었다.
“MMCA필름앤비디오가 생긴 지 10년 정도가 되었는데요. 초창기부터 인력 부족 문제가 대두되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학예연구사 1명, 학예연구사를 보조하는 학예원 1명, 그리고 영사기사까지 이렇게 3명이 전부니까요. 연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기에 인력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올해(2025년)부터는 전담 학예연구사 체제가 아닌 전시과 소속의 여러 학예연구사가 1년씩 돌아가면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되었어요. MMCA필름앤비디오의 특수성과 전문성, 지속성을 간과한 결정인 듯하여 조금 우려가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외부 기관과의 협력이 불가피할 것 같은데 오히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기획자들이 프로그래밍에 참여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죠. 다가오는 여름에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과 함께 로버트 비버스의 작품 상영을 계획하고 있어요. 비버스의 작품은 디지털화되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관람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번 프로그램은 귀한 자리가 될 거예요. 이런 프로그램이라면 일하기가 까다로워도 꽤 보람이 있지요.”
다른 영화관에서 보기 어려운 좋은 작품을 상영하고 있지만 MMCA필름앤비디오의 관람료는 무료다. 온라인으로 예매하고 가면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고물가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시기일수록 무료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 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공간성을 감각하며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제이의 모습을 많이 떠올렸다면,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는 공공성을 의식하며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세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제이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성껏 마련해 주는 이와 즐거이 향유하는 이가 캐스터네츠처럼 맞물리며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 이어가기를.
지키다
“비행기를 탈 때는 저희 비행기를 타요”―항공정비 검사원 전지혜 (글: 장강명)주인공이 비행기를 조종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몇 편이나 댈 수 있는지? 나는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만 8편을 댈 수 있다. <탑건>, <탑건: 매버릭>, <나잇 & 데이>, <아메리칸 메이드>,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엣지 오브 투모로우>, <오블리비언>. 조종사는 대중문화의 영웅이다. 자유로운 영혼이며, 전문가인 동시에 낭만주의자로 그려진다. 승무원도 대중문화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들은 매력적이고,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