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수집가들의 인생 가이드
강명경 외 지음 | 미다스북스
문장 수집가들의 인생 가이드
강명경 외 지음
미다스북스 / 2026년 2월 / 216쪽 / 18,500원
질문하는 독서, 답하는 삶을 시작하라
실패를 마주할 용기 (강혜진)“노력해서 이기는 것 못지않게, 노력했지만 실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야.” 『빨강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휴일, 모처럼 늦잠 자는 딸을 깨우기 위해 딸아이의 방문을 열었는데 방문이 열리지 않았다. 힘을 주어 문을 밀었더니 방문 앞에 쌓여 있던 책더미가 스르륵 쓰러졌다. “어이구! 아가씨 방이 이게 뭐야? 얼른 일어나서 좀 치워.”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져 있는 딸아이의 방. 딸아이의 방은 말끔할 때보다 어질러져 있을 때가 더 많다. 한번 청소했다 하면 반질반질 윤이 나게 정리하는 딸이다. 그런데 딸은 그렇게 완벽하게 정리할 엄두를 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딸의 책상 서랍에는 쓰다 만 다이어리가 여러 권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다이어리지만 그런 다이어리를 쓸 때조차 딸은 제3의 눈을 의식한다. 글씨가 예쁘지 않거나 꾸미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 버린다. 대회에 출품할 것도 아닌데 예쁘게 남기고 싶어서 애를 쓰던 딸은 어느 순간 지쳐버린다. 기록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완벽하게 기록하려다 결국 몇 페이지 채우지 못하고 서랍 행이다. 그렇게 쌓인 다이어리가 한두 개가 아니다. 365일을 다 완벽하게 채울 수 없으니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딸아이의 이런 완벽주의 성향은 중학교 원서를 쓰는 중대한 일에서부터 펜 하나 고르는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사안을 가리지 않는다.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지나쳐서 100% 에너지가 차오를 때까지는 섣불리 시작하지도 못하는 딸을 보며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딱 강혜진이네!” 이 말은 인정. 딸아이는 나를 쏙 빼닮았다. 완벽하고 싶은 욕심과 강박. 만약 이런 성향이 유전된다면 그 유전인자는 분명 나에게서 물려받은 것일 테다.
어릴 적 나는 그림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혼자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지우고. 조금이라도 어색하면 누가 볼까 봐 얼른 찢어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수업 시간,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들고 대답할까 말까 망설이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혹시나 내 답이 틀리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소심한 성격, 완벽해 보이려 머뭇대다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아쉬워했던 적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런 성격은 어른이 되고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몇 년 고민하다 시작한 수영, 수강생 중에 가장 빠르고 멋지게 자유형을 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자 두 달 만에 그만뒀다. 서예를 배우려고 몇 달 벼르다 문화센터에 등록했는데 그것도 석 달 만에 포기했다. 다른 수강생들의 작품과 비교하며 좌절하다 지레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확신이 없어서 내 능력을 시험해 보지도 못했던 일들은 더 많았다. 준비는 철저히 해 놓고, 결과를 내지 못할까 봐 두려워 도전의 순간에 머뭇거렸다. 그림책 출간, 유튜브 채널 운영, 독서 모임 운영까지. ‘이번엔 잘할 자신이 없어.’, ‘조금 더 준비해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은 도전을 늦출 좋은 핑곗거리였다. 빛바랜 계획이 한 해 두 해 쌓여갔다. 실행에 옮길 기회들이 많았지만 아직 아닌 것 같아 미뤄놓았던 순간들.
이제 와 아쉬운 건 그때 시작만 했었더라면, 조금이나마 성장했을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나를 준비가 철저한 사람, 신중한 사람, 한번 하기만 하면 해내는 이미지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뛰어넘기 힘들 만큼 높은 벽이 쌓여갔다.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망설임이 더해질수록, 벽의 높이는 조금씩 높아졌다. 수많은 가능성은 벽 뒤편에서 사라져 갔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빨강 머리 앤』. 여러 번 읽었는데도 어째서 그날은 이 문장이 그토록 새롭게 와닿았을까. 머뭇거리던 나를 책 속 앤의 말 한마디가 바꾸어 놓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이기는 것 다음으로 좋은 것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지는 것이라 말하는 앤을 보며 ‘열심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열심히 한다면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다는 말은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었다. 이기는 것이 아니면 의미 없다고 여기던 나는 앤의 말에 밑줄을 긋고 필사하며 완벽하고 싶은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최악은 이기지 못할까 봐 도전도 하지 않는 거라는 걸, 완벽하고 싶어서 꾸물대기만 하는 건 도전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란 걸 마음에 새겼다. 결과에만 집착하던 나는 완벽하지 못할 거면 시도하지도 말라며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런 나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부회장 선거에 나갈까 고민하던 딸에게 열심히 해서 당선되라는 말 대신, 떨어져 보라고 말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으니 도전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라고 했다.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 딸은 후보로 출마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후보자 연설을 준비하고 선거운동을 했다. 보란 듯이 떨어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딸은 나보다 지혜로웠던 게 분명했다.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투표 결과를 전하며 “나 엄마 말 잘 듣는 효녀지?”라고 쿨하게 웃으며 농담까지 건넸다. 나를 쏙 닮아 완벽하고 싶어 하는 딸이 앞으로 만날 많은 실패 앞에서도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마주하게 될 숱한 시험에서 매번 성공하지는 못하겠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도전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용기를 만끽했으면 좋겠다. 나처럼 오랫동안 머뭇거리지 말고 실패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딸은 조금 이른 나이에 만났으면 좋겠다.
삶이라는 진열대 (고지원)“더 이상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필체 뒤에 숨지 말자.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라 그저 그 일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더 빠르게 실패하기』, 존 크럼볼츠, 라이언 바비노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아이들이 소리친다. “이거 살래요!”, “놀이터 갈래요!”, “맛없어 안 먹을래요!”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말하는 아이들이 부럽다. 누군가 내게 도넛을 먹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고민할 것이다. ‘달아서 맛있다. 자주 안 먹으니 맛보고 싶다. 그런데 칼로리가 높다. 지금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도넛 한 조각 앞에서도 수많은 생각에 주저한다. 오늘도 삶이라는 진열대 위에 놓인 수많은 도넛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본다. 하고 싶은 것, 해야만 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지 않은 것. 모든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해야 할 일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행운은 자주 오지 않는다. 마흔 중반이 되니 하고 싶은 것을 잘 가려내는 지혜가 절실하다. 시간은 나의 망설임을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가기에.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였다. 2012년 겨울, 둘째를 출산하자마자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며 3개월간 독서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사이 몸무게는 결혼 때보다 25kg이나 늘어났다. 이후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감량했지만, 여전히 남은 10kg과 함께 10년째 살고 있다.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었다. 장롱 속 주인을 잃은 옷들을 다시 입고 싶었다. 헬스장 1년 권 끊기, 간헐적 단식, 탄수화물 끊기까지. 수술만 빼고 살을 빼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 지속 기간은 3개월이었다. 남편은 “어차피 실패할 거잖아!”라며 약을 올렸다. 결과를 바라면서도 힘든 과정은 피하고 싶었다. 10kg을 감량해 얻는 성취감보다 눈앞의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 더 컸다. 꾸준한 노력이 없으니 결과도 없었다. 더 간절해야 했다. 부끄럽지만 박사 논문도 마찬가지였다. 2022년 의학 박사를 수료하고 졸업 논문을 쓰지 못했다. 수료 후 6년 안에만 쓰면 된다는 생각에 안일해졌다. 주제가 어려워서, 공부하기 싫어서, 다른 일들이 바빠서. 핑계는 수십 가지였다. 머리로는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칼은 뽑았으나,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25년 초, 야심 차게 산 다이어리를 펼쳤다. 4월까지는 일정이 빼곡했지만, 그 뒤로는 빈 페이지들만 휑하게 남았다. 남들처럼 예쁘게 꾸미고 성실히 쓰고 싶었다. 비싼 다이어리를 사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나였다. 결국 또다시 ‘다이어리 꾸준히 쓰기’에 실패했다. 작년 4월,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강연에 참석했다. 일기장 사용법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곧바로 3년 일기장을 샀다. 활용법은 단순했다. 요일이 적힌 페이지마다 같은 날짜 아래에 네다섯 줄의 일기를 쓰는 방식이었다. 내년 그리고 내후년에 같은 날짜에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기대가 됐다. 처음 일주일은 매일 썼다. 하지만 2주쯤 지나자 밀려 쓰는 날이 잦아졌다. 쓰고 싶은 마음으로 써야 했는데, 기록에 끌려다니는 느낌이었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과는 없었지만 그럴싸한 핑계들은 나를 안심시켰다.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면 되지. 이제 와서 박사 학위가 무슨 소용이야. 다이어리는 안 써도 휴대폰 캘린더 보면 되잖아. 너 같은 완벽주의자는 원래 이런 거 못 해.’ 끝없이 이유를 나열하며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게으르고 완벽주의자적인 내 성격만 탓했다.
그때 책 속 문장이 나를 향해 말했다. “사실 넌 하고 싶지 않았던 거잖아!”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온갖 미디어와 SNS가 넘치는 시대에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산다는 건 어렵다. 광고를 보면 나도 그들처럼 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6시간 단식을 하면 살이 빠지고, 미라클 모닝을 하면 하루를 36시간처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계획이 실패한 이유는, 내가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선택의 책임은 내게 있었지만, 진심으로 해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결과가 없어도 그저 살아가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시행착오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실패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같은 실패를 반복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아깝다. 이제는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냉정하게 걸러내고 싶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며 살고 싶다. 촘촘한 망으로 돌을 거르듯, 나에게 남길 것과 흘려보낼 것을 구분하고 싶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오래 망설이기보다 직접 해본다. 2025년 10월, 독립서점의 시집 필사 모임에 참여했다. 하루 세 편의 시를 읽고,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필사해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며칠은 정성껏 썼지만, 시간이 지나자 밀린 분량을 급히 채우는 나를 발견했다. 즐거움보다는 의무가 되어가고 있었다. 3주간의 과정이 끝났을 때 다음 모임은 신청하지 않았다. 그래도 해봤기에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삶은 늘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즐거움이다. 미각에서 얻는 단순한 행복부터, 생각으로 얻는 쾌감까지. 다행히 마음은 훈련할 수 있다. 참 다행이다.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선택을 정말로 원하고 있는지. 나를 기쁘게 하는 목록을 하나씩 늘려가다 보면, 실패의 시간이 있더라도 결과는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는다. 2026년에도 다이어리를 쓸 계획이다. 요즘은 나를 살피고 기록하는 일이 재미있어지고 있다. 이번엔 오래 이어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시간을 흘려보냈던 과거의 나에게 작별을 고한다. 이제는 내 마음에 안부를 묻고, 그 대답에 따라 움직이려 한다. 내가 골라낸 고운 흙으로, 멋진 인생 작품을 빚어가고 싶다. 그렇게 즐겁게, 후회 없이 살고 싶다.
습관이 된 밑줄, 습관이 된 인생
영원불멸의 도서관 (김하세한)“글을 쓰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작업이다.” 『수시로 수정되는 마음』, 전수영
전수영 작가의 『수시로 수정되는 마음』에서 만난 롤랑 바르트의 문장이다. 그렇다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불멸화된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생겨났던 순간을 떠올리면, 어쩌면 바로 이 말이 나를 움직였던 최초의 기척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한다.’ 그 말에 오래 머물렀다.
엄마는 소란스러운 한바탕의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늘 같은 말을 꺼내곤 했다. “내 기막힌 인생을 누가 알까. 책으로 써도 열 권은 되겠다. 내가 글을 쓸 줄 알아야 쓰지….” 말끝은 흐려졌고, 뒤따르는 한숨은 늘 깊었다. 그 한숨이 들릴 때마다 가슴 한편이 저릿하게 조여왔다. 정말 엄마의 삶은 이렇게 아무 데도 닿지 못한 채 넋두리로만 흩어져도 되는 걸까. 그 말 속에는 분명 바람이 숨어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살아낸 세월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기를. 그 말을 수십 수백 번 듣는 동안 알게 되었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쉽게 잊힌다는 것.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도, 억울했던 순간도, 묵묵히 버텨낸 세월도 남기지 않으면 결국 사라진다.
흔히들 말한다.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우리 엄마. 엄마의 평생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헤아릴 수 없었다. 웃음과 눈물, 억울함과 인내, 사랑과 포기, 다시 일어섬까지…. 그 모든 결이 엄마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이야기들.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더는 세상 어디에도 남지 않을 이야기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에서 결심이 올라왔다. 엄마의 도서관만큼은 내가 지켜야겠다. 엄마가 스스로 글을 쓰지 못한다면, 내가 엄마의 인생을 다시 세상에 올려 세워주자. 마침내 결심은 말 한마디로 터져 나왔다. “엄마, 내가 엄마 인생 써줄게.”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런 걸 누가 본다구….”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는 오래된 체념을 품고 있었다. 누가 기억해줄까, 누가 알아줄까, 누가 내 인생을 들여다볼까…. 그런 마음들이 겹겹이 쌓인 목소리였다. 그 순간 알았다. 엄마에게 ‘글’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밑줄을 긋는다. 누군가의 말, 누군가의 문장, 누군가의 인생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못한다. 아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울리고 있는 한 소망 때문일 것이다. 엄마라는 도서관을 지키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이, 지금의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남게 했다.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2024년 11월, 엄마의 인생이 글이라는 형태로 다시 태어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 인쇄본 중 첫 권을 엄마께 건넸다. “이게 뭐냐?” “뭐긴, 책이지. 엄마 책.” 엄마는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불을 하나 더 켜셨다. 책 표지에 새겨진 제목, 『인생 꽃을 피우는 시간』.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펼쳤다. 그러더니 바로 덮어 옆으로 치우셨다. 예기치 못한 엄마의 반응에 나는 서운했다. 적어도 몇 마디의 말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반응이라도 듣고 싶었다. 나 역시 이유를 묻지 못했다. 왜 옆으로 치우셨는지. 멋쩍게 다른 이야기만 오갔다. 나의 시선은 엄마 모르게 자꾸만 밀쳐져 있는 책으로 향했다. ‘말 몇 마디 해주는 것이 뭐 어렵다구.’
며칠이 지났을까, 작은딸이 가족 카카오톡방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엄마가 등을 구부리고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손에 들린 책은 낯익은 그 표지 『인생 꽃을 피우는 시간』. 외가에 간 딸이 책을 읽는 할머니 모습이 신기하다며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차마 누구 앞에서는 펼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가슴이 뛰어 무섭기까지 했다는 말을 뒤늦게 들었다. 긴장과 두려움, 설렘과 조심스러움이 한꺼번에 얽힌 감정이었다. 집에 돌아간 뒤에야 엄마는 천천히 앉아 책을 펼쳤다고 한다. 처음에는 혼자만 읽다가, 어느 순간 딸아이 앞에서도 자연스레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 속 엄마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엄마의 인생을 누군가 글로 써주는 일,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떨림을 동반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