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지만 깨지지 않는
박상아 지음 | 부키
투명하지만 깨지지 않는
박상아 지음
부키 / 2026년 4월 / 224쪽 / 17,500원
거침없이 뛰어드는 어린이
그냥 해 봐도 돼요?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에게 댄스학원에 보내 달라고 생떼를 썼다. 상당히 귀찮게 졸라댄 모양이다. 결국 엄마는 문화센터 서예반 옆 강의실에서 하는 재즈 댄스반에 등록해 주었다. 사실 내가 생각한 건 방송 댄스였지만 상관없었다. ‘댄스’를 배우는 내가 된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2학년 1반에 박상아라는 애가 있는데… 걔 댄스 배운대!’가 중요한 것이었다. 학교 장기자랑 무대에서 춤을 추는 꿈은 달콤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수업 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딱 두 번의 수업만 나가고 그만뒀다.
푸른 꿈에 부풀어 있던 나를 무릎 꿇린 건 ‘웨이브’였다. 양팔을 뻗은 채 관절 단위로 하나씩 꺾어 가다, 몸통을 한 번에 S자로 빠르게 꾸물거리는 동작이었다. 선생님은 거대한 통거울 앞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웨이브를 시켰다. 나는 양팔을 뻗고 순서대로 야무지게 꺾어 춤처럼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뻣뻣함 그 자체의 로봇이었다. 위잉 탁, 삐그덕. 후한 마음으로 봐 줘도 재능이 없었다. ‘이게 한다고 될까?’ 아홉 살의 나는 자문자답 끝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선을 그어버렸다. 이 길은 아니라고. 댄스는 내 인생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그 이후로도 나는 꾸준히 선을 그으며 살았다. 짝꿍과 책상 한가운데 삐뚤빼뚤한 선을 긋는 일도 잘했지만, 내 선 긋기의 진가는 잘할 수 있는 일과 못할 것 같은 일을 나누는 것에서 빛을 발했다. 될성부른 떡잎만 선택해서 만끽하는 놀라운 재주였다. 재즈 댄스반에서 겪었던 불편한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의 크기는 혹시나 선을 넘었을 때 느낄 불편함의 크기보다는 늘 작았다.
나의 선 긋는 습관이 얼마나 지독했냐면…. 엄마가 주로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주었기에, 나에게 미역국은 딱 한 종류였다. 급식 메뉴로 바다 향이 나는 황태 미역국이 나와도 입에 잘 대지 않았다. 옷 입는 일도 그랬다. 평소에 중청색의 청바지만 입고, 엄마가 상큼한 ‘연청’과 멋들어진 ‘흑청’을 사줘도 잘 입지 않았다(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잘 입는 척만 했다). 친구들의 반응이 괜찮을지 별로일지 알 수 없으니까. 굳이 불확실한 일에 도전할 이유가 없었다. 실패하면 불쾌한 기분이 들 게 뻔했다. 이때까지의 경험을 기준으로 선을 긋고, 동그라미 쪽에 놓인 일만 골라 하는 방법이 나를 지켜 준다고 믿었다.
한평생 선 긋기를 하며 살아온 나는 어느 해, 유달리 고집스럽고 자기애가 강한 열두 살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제 막 사춘기 눈빛을 장착할락 말락 하는 나이대의 아이들과 일 년을 꾸려 가야 하는 숙명 앞에서는 어떤 성향의 아이들을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해는 내성적인 아이들이 많아 고요하게 지내는가 하면, 텐션이 천장을 뚫어 버릴 것만 같은 해도 있다. 반 분위기는 일장일단이 있으니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그해 5학년 아이들은 유독 거침이 없었다. 특히 뭔가 해 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회전목마인데, 아이들은 냅다 공중으로 뛰어 버리는 번지점프였다. 그 당시 우리 학교에는 타악기 합주부가 있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는 서양악기 중심의 오케스트라를 편성하거나 국악기를 중심으로 사물놀이부나 난타부 정도를 운영한다. 그에 반해 우리 학교 합주부는 전체 타악기로만 구성된 독특한 팀이었다. 학교의 자부심인 합주부를 운영하는 일이 내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학교의 아낌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신입 단원 모집은 어려웠다. 스무여 명의 아이들끼리 합을 맞춰야 하니 생각보다 연습량도 많았고, 악기 자체도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편이었다. 악보를 보고 계이름을 술술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도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유독 그해에는 합주부를 하겠다는 아이들이 없어서 골머리를 앓았다. 무대까지 서려면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해서 아무한테나 들어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없는 대로 꾸려 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윤채가 등장했다. 동그란 안경과 주근깨가 트레이드 마크인 윤채는 숱 많은 까만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다니던 여학생이었다. 마라탕처럼 개성 강한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활기차고 익살스러운 아이였다. 그런 윤채가 평소와 달리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선생님, 그 학교에서 하는 합주부요…. 추가 모집 하길래요. 저 신청해도 돼요?”
“어, 좋지! 윤채 악보 볼 줄 알지?”
“저… 아니요.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아는데, 더 깊게는 몰라요. 제가 피아노학원을 안 다녀 봐서요.”
“…그래? 부모님께도 하겠다고 말씀드렸어?”
“네, 근데 엄마가 악보도 못 보면서 합주 같은 걸 할 수 있겠냐고, 일단 선생님께 여쭤보라 하셨어요.”
윤채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좀 난감했다. 합주부에서는 소악기뿐만 아니라 음계가 있는 타악기도 다뤘다. 기본적인 계이름과 박자 기호는 볼 줄 알아야 수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는 강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음악을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치이면 어떡하지? 중간에 안 하겠다고 포기하면 곤란한데.’ 내 고질적인 선 긋기 습관이 또 발동하려 했다.
“윤채야, 저기….”
“그런데 배우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집 가서 오디션 영상 보내도 되나요?”
윤채의 말이 내 선보다 먼저 허공에 그어졌다. 오디션은 자신 있는 악기로 자유곡을 연주해 영상으로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취미로 배운 피아노, 바이올린으로 영상을 찍어 보내는데 윤채는 리코더로 음악 교과서에 실린 <나무의 노래>를 연주했다. 콩쿠르에 나가는 아이처럼 배에 번호표까지 붙이고 연주하는 윤채의 모습이 진지했다. 신청 인원이 적었던 탓에 윤채는 합주부 단원으로 뽑힐 수 있었다. 윤채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학원 시간도 겹치지 않게 부모님이 바꿔 주셨다고 온 교실에 자랑하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던 나는 첫 연습이 끝난 다음 날 윤채를 불러 물었다.
“윤채야, 어제 어땠어?”
“재밌었어요!”
“그래? 어렵진 않았어?”
“진짜 어려웠어요. 다른 애들은 잘 따라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저는 점심시간에 와서 연습해야 한대요.”
“그래도 계속할 수 있겠어?”
“네! 잘 안되는데 그냥 해 보려고요. 악기 연주 같은 거 진짜 해 보고 싶었어요.”
예상과 달리 윤채는 씩씩했다. 윤채에게 남들이 자신보다 더 잘하는 것은 아예 상관없는 일처럼 보였다. 몇 번 나오다 그만둘 거라 여겼던 내 예상과 달리, 윤채는 계절이 바뀌어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한 번은 강사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내 여쭤본 적도 있다.
“선생님, 윤채 어때요? 잘 따라오나요?”
“윤채가 확실히 배우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도 제일 재밌게 해요. 몸도 막 흔들면서요.”
그해 10월, 지역 연주회의 무대에는 여느 때처럼 머리를 하나로 묶은 윤채가 서 있었다. 스무 명의 아이들과 함께 박자를 맞추며 악기를 두드리는 5분. 윤채는 자신의 자리에서 당당히 소리를 냈다. 윤채의 진지한 눈빛과 몰입하는 모습에 나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선생님, 엄청 떨렸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내년에는 언니 오빠들 하는 다른 악기에 도전해 보려고요!” 무대가 끝나고 해맑은 웃음을 짓던 윤채의 얼굴이 내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밥 먹듯 선 긋기를 해온 사람이었다. 도전과 변화보다는 안정과 유지가 현명하다고 믿었는데, 연주를 즐기는 윤채의 모습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채의 마음은 ‘악보를 잘 읽지 못한다’라는 현실 앞에서 꺾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훨씬 잘하는 모습에 주저앉지도 않았다. 그저 하고 싶으면 해 보는 것. 그게 전부였다.
몇 해 전, 친한 친구가 발레를 함께 해 보자고 했을 때, 재즈 댄스로 그어진 선을 넘지 못하고 포기한 적이 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지레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 그저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합주부에 들어갔던 윤채를 보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그어 왔던 선은 오히려 나를 가두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제는 그어 두었던 선을 조금씩 허물어 볼까 한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재지 않고 일단 해 보려 한다. 뒷북도 아니고, 앞북 치며 포기해 버리는 삶이 얼마나 아쉬운가. 혹시나 나처럼 부지런히 선 긋기를 하며 살아온 세상의 동료분들이 있다면, 윤채의 질문을 건네고 싶다. “그냥 해 봐도 돼요?” 아마 윤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다.
생각보다 더 괜찮을지도 몰라나는 결혼식에 대한 딱 하나뿐인 로망이 있었다. 내 유일한 로망은 바로 ‘맑은 날씨’였다. 나는 햇살의 뜨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아마 결혼식 날, 밝은 빛이 내리쬐어 준다면 그것이 하늘의 축복을 의미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심지어 나는 실내 예식장을 예약해 두고도 그날만큼은 꼭 날씨가 맑기를 원했다. 서론이 장황한 걸 보면 눈치챘겠지만, 일기예보 사이트에는 딱 결혼식 당일에만 비 소식이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던 나는 전 세계의 날씨 사이트를 섭렵했지만 모두 무심하게 비 표시가 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결혼식을 앞두고 날씨 때문에 시름시름 앓는 신부가 되었다. 결국, 어지간하면 큰소리를 내지 않는 엄마가 화를 버럭 내신 뒤에야 포기했다. 미련은 끈적끈적한 딱풀처럼 마음 한구석에 붙어 있었다. 그렇게 다가온 5월의 결혼식 날, 예상대로 비가 내렸다. 회색 하늘 아래에서 식은 무리 없이 끝났지만, 결국 나의 로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혼식을 생각하면, 설레는 모습보다는 비가 올까 봐 전전긍긍하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돌이켜 보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날씨’라는 불가항력에 매달려 마음을 소모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불쑥 찾아오는 변수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지?’라는 생각이 튀어나온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내게 어려운 숙제다. 그런 나에게, 그 방법을 깨닫게 해 준 아이가 있다. 아직도 내 마음속 롤모델로 남아 있는, 열 살의 주아다.
학교에서 학예회를 크게 열었던 적이 있다. 학예회와 전시회를 함께 여는 방식이었다. 강당의 벽면을 반별로 나누어 아이들의 미술 작품으로 꾸며야 했다. 우리 반은 ‘책 인형’을 만들기로 했다. 책 인형은 손에 작은 책을 들고 있는 모양의 종이 인형이다. 색지를 정사각형으로 잘라 몸통을 만들고, 길쭉한 직사각형 종이로 팔다리를 붙인 뒤 얼굴을 그리면 완성이다. 손에 들릴 책은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한 권을 골라, 표지 그림을 따라 그린 미니어처로 만들기로 했다. 3학년 아이들에게 정교한 가위질은 어려운 일이라, 나는 몸통과 팔다리용 색지를 잘라 준비해 두었다. 아이들은 몸통 한 장과 팔다리가 될 두 쌍을 짝지어 가져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이 작업에 진심이었다. 진짜 인형을 만드는 것처럼 색깔을 통일하려고 애썼다. “부모님이 오셔서 보실 거니까 열심히 만들어 보자!” 나의 이 한마디가 도화선이 되었는지, 아이들의 얼굴마다 의욕이 번졌다. 그때, 문제 하나가 생겼다. 마지막 순서였던 주아가 종이를 고르려는데 남은 색지가 한 세트로 묶이지 않았다. 몸통은 노란색, 팔은 분홍색, 다리는 보라색으로 남아 있었다. “주아야, 색깔이 이것밖에 안 남았는데 괜찮겠니?” 원하던 색을 고를 기회를 공평하게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 속상해 한다면 다른 학년에서라도 색지를 빌려 와야겠다고 혼자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아는 이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선생님! 저 그냥 하면 돼요!”
“이것만 있어도 정말 괜찮아?”
“네, 원래 노란색 인형을 만들려고 했는데요…. 그런데 색깔이 다르면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네, 이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주아는 발랄하게 대답하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곧장 받아들일 수 있다니! 어른인 내가 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주아는 자리로 돌아가 책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손을 움직였고,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며 흡족해했다. 주변의 아이들도 다가와 물었다.
“주아야, 네 인형은 색깔이 다 다르네?”
“응! 예쁘지?”
주아는 밝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인형을 그렇게 만들기로 마음먹었던 것처럼.
학예회 날, 우리 반이 꾸민 벽에는 스물여섯 개의 책 인형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그중 다채로운 색을 가진 인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묘하게도 가장 예뻐 보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면, 나는 마음속에서 주아를 불러낸다. 그러면 주아가 명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 준다. “선생님, 색깔이 다 달라도 예쁘게 만들 수 있어요!” 주아의 모습은 교사로서의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나는 그 이후로 수업 속에 변수를 심어 둔다. 읽기 자료나 미술 도안을 무작위로 나눠 주고, 토의 주제도 가끔은 제비뽑기로 정한다. 모둠 활동 역시 새로운 조합으로 꾸릴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투덜거리지만, 어느새 자기가 할 일에 몰입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덧붙인다. “얘들아,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오늘은 그냥 이렇게 해 보자.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몰라!”
다정한 어린이의 세계
다정한 상상력12월의 어느 날,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학교 복도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난 뒤 와글와글함이 사라진 오후의 학교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복도를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평소 같았으면 복도를 걸으며 무심코 신발장을 들여다보고 우산 정리함이라도 살폈을 텐데, 추위 앞에서는 별수 없었다. 나의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목적지는 오직 화장실 한 곳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복도 왼편 창틀에 놓인 어떤 물체가 시선을 끌었다. 그것은 어른 주먹 크기의, 연분홍색 털을 가진 직립보행 토끼 인형이었다. 인형은 아무렇게나 놓인 것이 아니라, 마치 진열장에 귀한 사기그릇을 세워 둔 것처럼 곧게 서 있었다.
토끼 인형에 대한 호기심은 화장실을 향한 급한 발걸음조차 멈춰 세웠다. 정면으로 인형과 마주한 순간,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팔다리 관절이 움직이는 형태의 토끼 인형은 마치 사람이 엎드려 우는 자세처럼 두 팔이 얼굴 쪽을 향해 들어 올려져 있었다. 두 번째, 토끼 인형의 옆에는 공책을 뜯어서 쓴 듯한 쪽지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우리 주인 찾아요! 주인 어딨어ㅠㅠ?”라고 적힌 말풍선이 그려져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애처로운 토끼 그림까지 함께. 어떤 아이가 복도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인형을 발견하고 지나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홀로 있는 인형이 외롭지 않도록, 주인을 찾는 목소리까지 만들어 주고 간 귀엽고 사랑스러운 상상력에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멈춤’ 버튼이 없어서 생각보다 더 자유롭게 교실 안을 흘러 다닌다. 그리고 낙엽이 이곳저곳에 내려앉듯 교실 곳곳에서 반짝반짝 존재감을 빛낸다. 그 기발한 상상력을 맞닥뜨리는 순간, 나는 속수무책이 된다. 상상력에는 여러 결이 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떠올리는 똑똑한 상상력도 있고, 독특한 발상을 해내는 기발한 상상력도 있고,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한다고?’ 싶은 대단한 상상력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순간은 다정한 상상력을 목격할 때다. 인형의 주인을 찾아 주려고 복도 구석에 쪼그려 앉아 종이를 끄적였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의 상상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