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

박정훈 지음 | 생각의힘
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

박정훈 지음

생각의힘 / 2026년 3월 / 224쪽 / 18,800원





인생은 확률 게임인가



인생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다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들, 준비하지 않았던 선택들, 우연처럼 보였던 수많은 만남과 이별들이 이상할 정도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방송 일을 천직으로 알고 일해 왔고, 아들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살아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경험한 수많은 일들을 돌아보다 보니, 확률이라는 개념이 인생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인생은 미리 짜인 각본처럼 흘러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한 무질서 속의 우연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는 상태에서, 어떤 선택과 어떤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며 현실로 펼쳐지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 그 결과를 나중에 ‘운명’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늘 내 앞에는 수많은 변수가 얽히고 중첩되어 있었다. 우리 인생은 아주 작은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카오스’라는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인생의 작동 원리를 경험을 통해 밝히고 싶은 ‘고백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실제로 겪은 일들이다. 이 경험들을 최대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대로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 방송인의 삶이라 거짓이나 과장도 있기 어렵다. 성공할 확률이 높아 보이지 않았던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이 예측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정신 건강에도 좋을 수 있다. 출근길에 차가 막혀도 ‘안 막히면 빨리 가다 사고가 날 수도 있지’ 하고 너그럽게 생각하면 화낼 일이 없게 되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불편과 변수들 앞에서도 편안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다.

실제로 9·11 테러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늦잠을 자서, 차가 막혀서, 주문한 커피가 늦게 나와서, 혹은 뭔가 사소한 일이 지연되어서 직장이 있던 그 건물에 제때 도착하지 못해 사고를 면한 경우가 다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세상의 사건들은 내가 의도한 대로, 내가 예상한 시간의 흐름대로 돌아갈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그저 좋은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시쳇말로 ‘안 되면 말고’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확률, 가장 겸손한 언어

나는 죽음과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생명체는 그저 살아가도록 놓아두고, 죽음에 도달하면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축하하면 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인간을 안심시켜 온 천당에 갈 확률, 다시 태어날 확률, 그냥 완전히 소멸될 확률, 혹은 우주의 먼지가 되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확률들이 각각 알아서 작동할 것이다. 어떤 가능성도 미리 배제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직접 겪은 후에 보면, 어떤 것들은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이미 죽었으니 그 사실을 다시 전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오늘 내가 만들어 낸 하나의 경험이 이후의 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누구나, 그리고 얼마든지 각자의 행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확률은 우리가 여기까지 살아왔다는 사실을 가장 겸손하게 설명해 주는 언어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배신인가 운명의 결단인가


누구나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결단의 순간들을 맞는다. 이 사건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운 좋게 들어간 MBC는 당시 ‘우주에서 가장 좋은 직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급여나 복지 제도가 국내 최상위에 속하는 꿈의 일터였다. 공채 출신인 나는 탄탄대로가 보장된 성골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입사 5년 차 조연출 시절, 존경하던 L 선배가 술자리에서 던진 한마디가 내 운명을 바꿨다. “이 세상에는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진짜 PD와 남이 만든 것을 이어받는 PD가 있는데, 진짜배기는 아주 극소수”라는 말이었다. 그 순간 머리가 맑아지며 내 머리로 기획한 프로를 만들겠다는 에피파니(Epiphany; 통찰, 직관)를 경험했다.

이후 신생 민영 방송사 SBS의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나는 안락한 미래 대신 진짜 PD가 되는 길을 택했다. 이직을 완강히 말리던 L 선배와 국장님의 벽을 넘기 위해 행정반에 사표를 내고는 가족과 함께 인천의 한 호텔로 피신하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새 직장에서 지상파 최초의 정규 장애인 프로그램인 <사랑의 징검다리>를 기획하며 나만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꿈을 이뤘다.

자업자득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인생은 점(dot)에서 점으로 이어진다”라고 역설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과거 내가 찍은 점, 즉 내 결정이나 경험들이 미래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과거에 내가 만든 어느 한 점들이 영향을 주어 미래의 또 다른 점을 만들어 내고, 그 점들이 또 새끼를 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메커니즘은 초기 조건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져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은 계산할 수 있는 방정식이 아니라, 지나서야 비로소 패턴이 보이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 당시에는 내가 찍은 과거의 점들이 미래의 어느 점들로 연결될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과거의 점들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점을 연결하면 직선이 되지만, 인생은 직선이 아닌 비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노력하고 행동한 그대로 진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외부 변수들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내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 근무지, 윗사람의 성향, 타이밍, 운 등이 개입해 나의 기대와는 다른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종종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엉뚱한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나의 인생을 돌아보니 방향이 옳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패턴이 그리는 굵은 곡선 중 하나가 나에게는 ‘자업자득’이라는 사자성어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는 내 인생의 모토가 되었다.

몸을 쓰는 수양법

SBS로 옮기고 나서도 6년을 더 좀비처럼 굴러야 했다. 달콤한 휴식은 늘 꿈속에나 존재했고, 나에게는 집이 회사였고, 회사가 집이었으며, 편집실이 안방이던 전쟁 같은 시절이었다. 특히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하던 시절은 그야말로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은 8명의 PD가 돌아가며 8주에 한 번씩 방송을 하지만, 당시에는 4주에 한 번 방송을 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스케줄이었다. 그런데 그 전쟁터에서 찍었던 여러 ‘점’들이 인생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을 다해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던 1996년 말, 뜻밖에도 호주 시드니로 연수를 가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호주에 가서도 일 중독을 버리지 못했다. 6.25 특집을 만들겠다고 카메라며 촬영 장비를 구입하고 한국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군인의 가족을 섭외하러 다녔다. 그러다 마침내 아내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았다. “당신은 애초에 결혼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아내의 차가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날 이후 모든 가사 노동을 전담하겠다고 선언했고, 지금까지 29년째 청소와 요리, 장보기를 도맡아 하고 있다. 몸을 쓰는 집안일은 정신과 신체의 균형을 맞춰주었고, 이는 오히려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수양의 시간이 되었다. 시드니에서의 상식적인 정치 문화와 아름다운 환경은 귀국 후 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적>을 기획하는 영감이 되었다.

수많은 가능성의 중첩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좋은 직장을 버리고 회사를 옮겼던 일이나, 연차를 건너뛰어 시드니로 연수를 갈 수 있었던 일은 모두 일어날 확률이 매우 낮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두 사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회사를 옮기면서 남다른 각오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더 노력한 점을 인정받아 그 시기에 시드니 연수를 갈 수 있었으며, 거기에서 다시 인생작들의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삶까지, 이 모든 상황들이 ‘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하나의 정해진 미래나 확정된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잠재적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다가 터닝 포인트를 맞게 되면 결정적 상황 변화가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시드니는 내 인생의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다준 터닝 포인트였다. 그 시절을 추억할 때마다 그저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



낙태 실패와 나비 효과


1990년 딸아이가 태어날 때, 나는 제작 스케줄에 맞춰 편집이 없는 날에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당시에는 제왕절개가 아이의 머리에 좋다는 근거 없는 속설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아내도 반대하지 않았다. 딸아이는 내가 정한 날짜에 태어났고, 병원 측에서는 산모가 수술 후 항생제를 복용한다는 이유로 모유 수유 대신 분유를 권했다. 그런데 아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태어나서부터,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아토피를 달고 살았다.

자연 친화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일상화된 시드니에서 살면서,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시드니의 좋은 공기를 마시며 친환경 음식을 접하자, 아이의 아토피는 씻은 듯이 치유되었다. 귀국 후, 나의 실수를 시청자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생명의 기적>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그 바탕에는 나의 특별한 출생 이야기가 있었다.

나의 부모님은 1·4 후퇴 때 부모님과 친척 대부분을 북에 남겨두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전쟁 통이라 모든 것이 힘들고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전시 상황이 안정되자 우연히 소개팅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 먹을 것도 부족하고 직업도 변변치 않던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당시에는 결혼하면 당연히 곧 아이를 낳는 것으로 알았고, 그것도 생기는 대로 많이 낳았다.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보충하려면 자식들을 많이 낳아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보통 한집에 아이들이 네 명에서 여섯 명은 족히 되었다. 어머니도 내 위로 아들, 딸, 아들 순서대로 낳았는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큰 문제 없이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둘째 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기저귀를 갈려고 두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양발을 힘차게 찼던 아이의 오른발이 갑자기 아래로 툭 떨어진 것이다. 어머니의 심장이 순간 천 길 낭떠러지로 내려앉았다고 한다. 아이가 당시 유행하던 소아마비에 걸린 것이었다. 어머니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어머니가 칠순이 되기 2년 전쯤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나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둘째가 아프고 나서, 네 위로 두 명이나 아이를 지우는 한약을 먹고,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지. 살기가 정말 힘들었거든.”두 명의 내 형 혹은 누나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는 도저히 아이 넷을 키울 형편이 못 되었으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전에 먹었던 그 독한 약을 또 먹었는데, 글쎄 애가 떨어지지가 않더구나.”생활고 때문에 아이를 낙태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으랴마는, 내가 어머니 손에 죽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졌다.“그래서 할 수 없이 애를 낳을 수밖에 없었단다. 그 아이가 바로 너야.”

당시 어머니의 배가 유독 크게 불어 주변에서는 쌍둥이가 아니냐며 겁을 주기도 했다. 약 때문에 아이가 잘못되었을까 봐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던 어머니는, 막상 태어난 내가 4.5킬로그램의 건강한 우량아인 것을 보고 이 아이를 지우려 했던 것을 눈물로 후회했다.

생명에 대한 경외

이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나의 존재가 우연인지 운명인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만약 그때 낙태약이 통했다면 나라는 우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특정 개인인 내가 태어날 확률을 AI를 통해 계산해보았다. 부모님의 만남부터 특정 정자와 난자의 수정, 그리고 착상 확률까지 모두 곱해보니 결과는 “0.0000000000000000000633”. 소수점 뒤에 0이 19개나 붙는, 약 1,579경 7,780조 분의 1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이는 사실상 0에 수렴하는 기적이며, 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과 비슷하다.

결국 지구상의 80억 인구 모두가 이토록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태어난 존귀한 존재들이다. 일란성 쌍둥이조차 유전자가 완전히 같지 않을 만큼 생명은 희귀하고 독창적이다. 이렇게 모두가 기적 같은 존재인데도 인간은 왜 서로를 증오하고 전쟁을 벌이는지 의문이 든다. 비극적인 상처를 입기 전에, 칼자루를 쥔 자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가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금 인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실패할 확률을 줄이는 방법



자기 객관화 경쟁력


누구나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 대중이 열광하는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그냥 열심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모두가 스타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수 자신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는지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것이 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프로그램을 정확히 보는 눈을 갖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해 왔지만, 솔직히 아직도 아내와 같은 대중의 판단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전문가로서 모니터를 하지만, 아내는 소비자의 눈으로 시청하기 때문이다. 이 간격을 좁히는 것이 대중성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방송뿐 아니라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나 국민들을 상대하는 정치인도 입장은 대동소이하다. 아무리 똑똑한 생산자나 정치인도 국민들의 마음을 절반 정도밖에 알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왜 생산자와 소비자,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 이런 괴리가 반복될까. 그것은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20년 전, 편성기획팀장으로 재직하던 내게 뜻밖의 인사 명령이 떨어졌다. 예능 제작 경험이 전무한 나를 돌연 예능국장으로 발령한 것이다. 예능 경쟁력이 나락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 대부분이 경쟁사 대비 동시간대 꼴찌 수준이었으니,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것이다. 교양 출신을 예능국장으로 발령 낸다는 것은 방송사에서 거의 없는 일이다.

첫 신규 프로그램의 시사회 날, 나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내가 보기엔 별로 재미도 없는데, 예능 PD들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대체 저들은 무엇을 보고 웃는 걸까?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재미 요소가 어디에 있는 걸까?’그때 나는 생산자인 전문가 집단의 정서와 소비자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 나의 생각을 PD들에게 전달할까 고민하다가 “전문성과 대중성은 반비례한다”는 말로 정리해서 설명했더니, 똑똑한 PD들이 단박에 알아들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