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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도 축제는 벌어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 부키


인생의 오후에도 축제는 벌어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부키 / 2026년 4월 / 196쪽 / 17,000원





1부. 이제야 나답게 산다



나는 내 속도대로 간다


딸이 시집간 뒤로 혼자 산 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혼자 사는 건 음, 단조로운 일상이다. 지겹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가끔은 그렇다. 24시간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자유로움이 기쁠 때가 있는가 하면, 문득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진다.

요즘엔 유난히 친절한 온수기며 전기밥솥이 “완료되었습니다” “밥이 다 되었습니다” 하는 목소리로 나를 맞아 준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오케이” “알았다니까” “좀만 기다려” 하고 대답한다. 그러고 나면 ‘어, 목소리에 힘이 있네, 나도 아직 괜찮네’ 싶어서, 그럼 오늘은 걸레질이라도 해 볼까, 냉장고 정리를 할까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의자에 앉아 있다. 앉아서 뭘 하는가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다.

어릴 때 다섯 살 위 언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넌 세탁기 돌아가는 걸 보면서 반나절은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아이야.” 그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건 정곡을 찔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참 절묘한 말이어서일까. 나는 정말이지 한없이 멍하니 있는 걸 좋아했다. 결과적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다. 게으르달까,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실생활에 별 도움 안 되는 인간 말이다.

언젠가 물가에 몸집이 크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 새가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새가 이상하리만큼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내가 나를 ‘인간계의 넓적부리황새’라고 생각하고 살아와서인 것 같다. 넓적부리황새에게 실례이려나.

인생의 대부분을 멍하니 보냈지만, 이것도 타고난 성격이다. 탓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아니, 나는 애초에 잘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게는 내 나름의 속도가 있다. 그래서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뻔뻔하게 버티고 있다. 나는 이미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산다. 세상은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권하지만 내 생활은 그와 정반대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만 먹는다. 부끄럽지만 그게 내 생활 방식이다. 제멋대로 사는 할망구. 앞으로 남은 내 미래가 손가락으로 셀 만큼일지, 아니면 발가락까지 세어야 할지, 괜히 셈을 해보곤 한다. 어느 쪽이든 남은 인생을 기분 좋게 보내고 싶다.

내 인생, 결과적으로 마음껏 멍하니 살아왔다. 멍하니 살다 보면 가끔은 ‘펑’ 하고 터지는 순간도 있다. 극히 드물지만 그런 때가 분명히 있었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조금 더 분발해 보자고 인간 넓적부리황새는 생각한다.

롤러코스터 인생


연말에 심한 요통이 찾아왔다. 누굴 업은 것도 아닌데 그 무게에 울면서 세 걸음을 걷지 못했다. 하지만 눈물이 그렁한 눈을 하고도 내 마음만은 밝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을 만큼 그해의 내게는 뜻밖의 행운과 우연한 복이 한 덩어리가 되어 몰려들었다.

5월, 서른다섯을 훌쩍 넘긴 아들이 드디어 결혼했다. 6월, 오랫동안 염원하던 첫 유럽 여행,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과 함께한 프라하와 부다페스트 여행은 더없이 즐거웠다. 야홋,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보름도 지나지 않아 내가 쓴 소설이 문예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와, 무려 60년 동안 아무런 빛도 보지 못하던 내가! 하며 놀라는 사이 문예상 수상. 게다가 오는 봄에는 첫 손주가 태어난다는 소식이 날아들더니, 글쎄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뽑혔단다, 내가.

앗, 앗, 이게 무슨 일이람, 신이시여. 절에 공양도 넉넉히 하지 못하고, 날 선 말도 서슴없이 내뱉던 내가 지금 와서 이런 엄청난 복을 받다니요. 마치 롤러코스터의 상승 기류에 몸을 실은 듯한 한 해였다. 그러나 잠깐만, 그렇다면 하강 곡선도 있겠지. 어쩌지, 이 눈부신 상승 노선에 걸맞은 하강 노선. 악, 무서워. 인생이 좋은 일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건 뼛속까지 아는 바. 그래서 스스로 달래며 말했다. ‘그래, 요통, 우후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이쯤이야 가스 빼기지.’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방심했다. 날이 갈수록 허리의 통증은 더 심해져서 연말 대청소도, 내내 미루던 창호지 바르기도, 창문 닦기도, 도저히 할 지경이 아니었다. 남편이 좋아했던 찜은 간신히 만들었지만, 그 뒤로는 누워만 있었다.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고, 병원에 가려고 해도 연말연시. 그저 천장만 노려보고 있을 뿐인 연말연시. 아쿠타가와상 후보가 된 연말연시. 그러다 보니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속 이대로인 건 아닐까. 이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겉모습은 볼품없을지 몰라도 그동안 기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통증 같은 건 평생 거의 모르고 살아왔다. 나, 건강만큼은 자신 있었다.

내 고향에서는 아이들에게 “밥 마이 묵고 마이 커야 한데이” 하고 말했다. 그 말을 순순히 들은 나는 진짜 마이 먹으며 자랐다. 그래서 결과가 이 모양. 게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로는 나를 봐 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외모는 거의 포기하고 살았다. 먹고 싶은 대로 먹는 습관이 굳어졌고, 위는 그런 내 욕심을 너그럽게 받아 주었다. 하지만 뒤에서는 허리와 관절들이 울고 있었겠지.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진짜 문제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노화라는 것을. 멋들어지게 ‘노년 소설’을 쓰겠다고 떠벌리며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같은 글을 썼지만, 그때만 해도 노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미안하네, 모모코 씨. 그렇게 다리를 아끼라고 했는데 장거리를 걷게 하다니.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주인공인 모모코 씨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모모코 씨만 아프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나도 이를 악물고 함께 걷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딱지가 떨어지듯 조금씩 나아져서 지금은 회복률이 70퍼센트쯤 된다.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아프더라도 움직이는 편이 몸에 좋은 것 같다.

이제야 폭음, 폭식이 옳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지금 내 몸과 지내는 방법을 고쳐야만 하는 때에 접어들었다. 내 팔다리와 입, 허리, 그리고 몸속 모든 장기와 함께 노화를 대비해야 한다. 서로 사이좋게 배려하면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의논하며 지내야 한다. 그래서 5년, 10년, 15년, 아니, 잘만 하면 20년까지도 거뜬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즘 최대 고민이었던 요통에 한 줄기 빛,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한 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뭐랄까, 마음이 완전히 개운해지진 않았다. 나라는 여자의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었다. 이거라니까, 이거, 에세이.

나는 지금까지 달팽이처럼, 아니, 달팽이에게 미안할 만큼 느리고 태평스럽게 소설을 써 왔다. 60여 년 동안 단 한 편뿐. 그런데 이렇게 의뢰를 받고 마감일까지 정해진 매수의 글을 보내야 하니 ‘우후, 나도 프로가 됐구나, 그것도 문예지에서 의뢰가 오다니’ 하고 기쁜 한편, 의외로 압박이 크다. 이를테면 나는 지금까지 모아 둔 돈은 많지 않아도 빚 없이 살아온, 나름 건전한 재정 운영을 자랑해 왔다. 그런데 원고 마감이라는 빚이 어깨를 짓눌러 옴짝달싹할 수 없어졌다. 계속 쫓기는 듯한 이 기분. 내 요통의 원인과 빌미도 사실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노려보고 있다.

나의 앞날은, 말하자면 이제 막 계약에서 풀려난 나이 든 기생이 다시 빚을 지고, 겨우 다 갚았다고 안도하는 순간 또 새로운 빚이 생겨나는 그 무한 반복의 삶. 그것이 어쩌면 내가 두려워하는 하강 기류의 실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몸이 떨린다. 각오는 되어 있나. 괜찮은가, 나여. 잠시 침묵 끝에 그래도 좋다, 해보고 싶다, 하는 소리가 내 안에서 울린다. 과연 어디까지 갈까. 사실 글을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작가, 줄곧 동경하지 않았던가. 그 기회가 뜻밖에도 이 나이에 찾아왔다. 기회, 기회, 기회, 기회,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바보야.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 죽음에 이르러서야 멈추리,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결심하고 나니 허기가 밀려왔다. 왠지 입이 심심하네. 찬장에 있는 찹쌀떡이라도 먹자.

슬픔 속의 결실


사람에게는 그때를 빼고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내게는 남편의 죽음이 그러했다. 슬펐다. 절망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안에서 기쁨도 발견했다. 슬픔은 단지 슬픔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속에는 결실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절대 버릴 수 없었던 소설가의 꿈, 비로소 무르익었다. 이제는 그저 써내기만 하면 되었다. 내가 향하는 길 끝에는 늙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홀로 살아가며 고독과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노년의 여인을 그렸다. 작품을 완성했을 때, 눈물 너머로 “치사코, 해냈구나” 하고 웃는 남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주저앉지 마라, 나여.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마음을 다잡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마음을 노트에 적으면서 위로받은 적이 있습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슬픔 속에 잠겨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시간에 저녁을 차리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고,

스물네 시간 오롯이 나를 위해 써도 된다는 해방감도 있었습니다.

가족의 ‘부반장’ 역할을 마치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내 인생을 다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 나쁘지 않겠지요.





2부. 상실 이후에도 삶은 흐른다



신인이라는 말


나는 지금 예순세 살의 신인이 되었다. 도대체 어떤 하늘의 인연이며 무슨 배려일까. 중장년에 접어든 한 개그맨이 “별로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내리막이라니” 하고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그 말처럼 예순을 넘기고는 이제 천천히 사라져 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에 반쯤 체념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소설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내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친구나 지인과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나날에서 어느새 일터의 최전선으로 불려 나갔다.

내 책을 내준 곳은 가와데쇼보신사라는 출판사였다.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는데 무척 가정적인 분위기의 회사라 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그곳의 여성들이 생기 넘치게 일하는 모습이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나이로는 선배로서, 그게 진심으로 반갑고 조금은 부러웠다. 나도 한때는 결혼 후에도 직업을 가진 ‘직업 부인’을 꿈꾸다 좌절했던 터라, 여성의 일할 자리가 늘어난 것이 그저 기뻤다. 덕분에 미래의 희망이 조금은 보이는 듯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여성 편집자는 눈치도 빠르고 재능도 뛰어났다. 어머니의 연세를 물어보니 내 나이와 비슷했다. 인상도 좋고 성품도 온화한 남성 편집자는 내 아들과 같은 나이였다. 편집장도 이름으로 보아 마흔을 갓 넘긴 용띠쯤 될 것이다. 내 아들이나 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이들이 지금 세상 한가운데서 한껏 빛나고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렸구나. 그래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하다 보면 뜻밖에도 나이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나, 꽤 잘하잖아. 제법인데’ 하고 혼자 뿌듯해한다. 그럼에도 세대 차이가 드러날 때가 가끔 있다.

아쿠타가와상 발표회 당일. 상을 받든 못 받든, 오늘은 예순 해 동안 단 한 번뿐인 축제라고 생각하며 고향 기사라즈의 맛있는 찹쌀떡을 선물로 들고 출판사로 갔다. 회의실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러 말을 건네주었다. 모두가 내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모여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침내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다들 함께 환호했는데, 정작 나는 차분했다. 그러다 아무도 없는 사장실에 들어섰을 때서야 눈물이 흘렀다.

기쁨과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 사람은 오히려 무표정해지는 것 같다. 마음속에서 여러 감정이 뒤섞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멍해지는 게 아닐까. 나는 그저 이 사람들과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이 젊은이들과 함께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쯤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글을 쓴다는 건 생각을 비틀어 짜내는 일이다. 머릿속 주머니를 뒤집어서 탈탈 턴다. 과연 무엇이 나올까. 나는 무엇을 쓰고 싶은가. 재미있는 소설. 듣기만 해도 즐겁고, 읽으면 더 즐거운 그런 소설. 그래서 또 생각에 잠긴다. 아, 그건 그렇고 ‘신인’이라는 말. 참 좋다. 저절로 등이 펴지고, 아직은 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운이 솟아오른다. 말은 역시 마법의 지팡이다.

한바탕 축제가 끝난 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고구마죽」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고구마죽을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인 남자가 그 바람이 이루어지고 나니 오히려 말로 다할 수 없는 허무에 사로잡힌다는 이야기다.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한바탕 떠들썩하던 시간이 지난 뒤의 내 마음도 그 「고구마죽」의 남자와 비슷했다.

나는 남편의 너무 이른 죽음을 겪었다. 남편은 내게 혼자의 시간을 남겨 주었고 나는 결코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다면 어릴 적 품었던 꿈을 이루자.’ 상실로 인한 공허를 마음속에서 다른 에너지로 바꾸어, 나는 무모할 만큼 몰아붙이며 살았다. 포기하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언제나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갈망이 있었다. 10년이 지나서야 내 싸움은 끝났다. 꿈은 뜻밖의 모습으로 이루어졌고, 깊고 고요한 만족이 찾아왔다.

그러자 나를 몰아붙이던, 이를 갈게 만들던 그 강렬한 감정이 사라졌다. 머리로는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는데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 껍데기처럼 텅 빈 내가 되어 어떻게 달래고 다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즈음 몸에도 변화가 왔다. 발이 차고 굳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진 것이다. 어제까지 당연히 했던 일을 오늘은 할 수 없었다. 아찔해졌다. 먼 미래라 여겼던 노년이 어느새 코앞에 와 있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5년 뒤는커녕 2~3년 뒤의 내 모습조차 상상하기 어려웠다. 혹시 누워 지내게 되는 건 아닐까. 몸이 줄어들고 기운이 쇠해 가는 나날 속에서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끌며 그래도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막막한 물음이 고개를 들었다. 남들에게 비참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집 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형외과며 한의원이며 병원에도 다니고, 산소탕까지 생각나는 대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

그런 상태가 반년쯤 이어지자 나도 좀 진정되었다. 아니, 이 상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 싶었달까.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참 절묘하다는 생각에 감탄하기도 했다. 나를 몰아세우던 슬픔이 어느새 부드러운 슬픔으로 변하자 더 이상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자신을 다시 흔들어 깨우기 위한 새로운 과제를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때 불현듯 찾아온 이 다리의 이상. 그건 아마도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나는 괴로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그 괴로움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고 나면 이 괴로움도 결국 내게 필요한 것이었구나 하고 스스로 납득하며 맞선다. 인간의 지혜로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섭리 같은 것이 있다. 그 섭리가 나를 이끌어갈 때면 나는 그 부름에 온몸으로 응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미숙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한 생각의 방식이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그 믿음대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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