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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이름 붙이기

윤주은 지음 | 문예춘추사


감정에 이름 붙이기

윤주은 지음

문예춘추사 / 2026년 4월 / 336쪽 / 18,000원





자주 자존심이 상해요


과거의 저는 누군가에게 지적을 들으면 견딜 수 없어 했습니다. 그때 제 속마음은 이랬지요. ‘당신은 얼마나 잘나서 날 지적하냐? 내 삶과 나의 아픔을 아냐? 감히 네가. 너부터 잘하고 나에게 지적질해라.’ 네가 틀렸고 나는 맞다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지적을 견디지 못하고 몸서리친 날들이 많았습니다. 만일 실수하지 않았다면 지적받지 않았을 거라 후회하며 자기혐오로 괴로워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내 실수를 주위에 말할 것 같아 불안해했습니다. 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적한 대로 내가 몹쓸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더 죽을 맛이었습니다. 나의 전체를 부정한 그 사람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생각은 과잉되어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시달리며 살 수는 없었습니다. 이 고통에서 나오기 위해 자존심이 상할 때마다 나의 생각을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관찰해보니 특히 많이 쓰는 것이 ‘감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감히 내게 지적을, 감히 나를 평가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감히’라고 생각할 때, 나는 위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늘 내가 피해자라는 느낌이었는데, 내 안에 교만한 자아가 있다니요? 사람들에게 무시당해서 괴롭다고 생각했는데, 괴로운 만큼 내가 사람들을 무시했던 교만한 자아가 숨어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내 실수를 들킬까 봐 두려웠던 것은 실은 내 안의 교만한 자아를 들킬까 봐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그들을 탓하고 있을 때, 그들은 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미웠던 건 내 안에 있는 감히라는 자아를 들켜버렸음에도 들켰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나에게 교만한 자아가 있을 리 없다는 부정과 회피는 자존심이라는 괴물을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 부끄러워졌습니다. 마음의 시끄러움으로 폭풍우에 시달렸건만 실은 나의 그림자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모습임을 인정할 때 상당히 아픕니다. 인정할 인(忍)을 파자하면 칼 도(刀)에 삐침(?)과 마음 심(心)으로 되어 있습니다. 심장을 칼로 찌르는 것으로 해석해봅니다. 인정하는 것은 심장에 칼이 꽂히는 것처럼 아픕니다. 나의 민낯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에 대한 통증을 인내할 때, 어른이 되는 것 같고 양심이 회복되는 듯하여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쁨이 됩니다.

이제 ‘감히’를 하고 있는 교만한 나를 알아차립시다. 내가 뭔데 사람들을 아래로 본다는 말입니까? 자존심이라는 고통에서 나오는 일은 ‘내가 뭔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했던 만큼 열등감이 컸습니다. 나의 열등감을 보기 싫었던 것입니다. 열등하면 어떻습니까? 나라도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비, 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듬읍시다.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자존심이 올라올 때마다 읊조립시다. ‘내가 뭔데? 지적받을 수 있어. 지적받은 것은 개선하면 돼. 지적받은 것은 부분에 불과해. 나 전체가 아니다. 정신 차리자.’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신생아적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경상도 사투리를 빌려 ‘쌍알라’라고 명명합니다. 아이를 뜻하는 ‘알라’ 중에서도 갓난쟁이 같은 녀석이라는 뜻입니다. 쌍알라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대사를 읊조립니다. ‘나는 잘못할 수 있어. 하지만 내 허물을 들추는 건 용납 못 해. 너희는 날 존중해야만 해!’ 만약 여기까지 알아차렸다면 강한 저항이 일어납니다.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을 리 없어. 저 사람이 무례한 거지’라며 펄펄 뛰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 거부감은 에고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내놓는 ‘방어기제’입니다. 우리가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는 이유는 사실 이 쌍알라의 정체를 들켰기 때문입니다. 날것의 나를 만나는 이 작업은 의외로 재밌습니다. 내 안에 괴물 같은 알라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 아이는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쌍알라를 방치하지 말고 따뜻하게 그러나 엄격하게 키워내야 합니다.



불편하지만 익숙한 감정 - 거부, 배척


교류 분석의 창시자 에릭 번은 우리가 2세 무렵부터 ‘인생 각본’을 쓰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각본은 성취를 지향하는 승리자 각본, 굴곡 없는 삶을 택하는 평범한 각본, 좌절을 반복하는 실패자 각본으로 나뉩니다. 각본들은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데, 특히 실패자 각본을 따를 때는 그 결말을 완성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심리 게임’이라는 방식으로 소통합니다. 이 게임은 비극을 완성해줄 상대를 필요로 합니다. 심리 게임의 바탕에는 ‘이면 교류’가 깔려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대화가 오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무의식을 자극하는 또 다른 소통이 일어납니다. 에릭 번은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상대와 나 사이에 불쾌한 감정을 남기는 소통 방식을 ‘심리 게임’이라 부릅니다.

심리 게임 중에 ‘Kick me(나를 차주세요) 게임’이 있습니다. 에릭 번은 우리가 ‘나를 차주세요’라는 옷을 입은 사람을 알아보고 매력을 느낀다고 합니다. 배척할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고, 서로가 사랑에 빠지는 게임이 시작됩니다. 차고, 차이는 역할을 하는 게임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합니다. 사디즘(S)과 마조히즘(M)이 만나서 사랑을 합니다. S는 M을 가스라이팅하고 술을 마시면 때리며 술이 깨면 미안하다고 합니다. M은 계속 S의 학대를 참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M은 S에게 편지를 남기고 도망갑니다. S는 왜 이런 일이 또 일어났지 하며 M을 원망합니다. 서로가 단번에 알아보았고 게임은 시작되어 S가 배척당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 교류의 끝엔 찜찜함과 고통만 남습니다.

그러면 왜 S와 M은 이런 심리 게임을 하는 걸까요? 에릭 번은 ‘과거의 낡은 전략’을 따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각본 신념을 정당화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게임 마지막에 느끼는 감정을 통해 자신의 기존 각본 신념을 정당화하고자 한다는 것이지요. S는 배척당하는 고통스러운 감정만이 남지만, 과거의 낡은 전략을 따르기 위해 M을 학대하고, 학대당한 M은 S를 배척할 것입니다. S는 자신을 배척할 M을 단번에 알아보고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심리 게임을 시작합니다. 배척과 거부라는 감정은 고통스럽지만 S에게는 익숙합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고통스러운 감정이 익숙해져서, 누구든 자신을 배척하고 거부하게끔 하는 언행을 하여 결국 파국화되는 각본대로 무의식적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라안 씨가 격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분노가 실패자 각본으로 향하는 ‘심리 게임’의 일부인지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안 씨의 사례도 S와 흡사한 사연이었습니다. 친모로부터 유기당했으며, 양모로부터 배척당하며 양육되었습니다. 그녀에게서 ‘불편하지만 익숙한 감정’은 배척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녀는 거부당하고 싶지 않지만, 익숙한 감정이기에 이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싶어 합니다. 무의식 속에서 ‘불편하지만 익숙한 감정’이 앞장서자 라안 씨는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자녀를 남편 협박을 위한 도구로 삼았고, 심지어 남편을 죽이고 싶다는 감정에 매몰되어 극단적 언행을 했습니다. 그녀는 ‘격노 중독자’가 되었고, 남편으로부터 거부당했습니다. 상담이 거듭될수록 라안 씨는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교류 분석의 틀이 그녀의 삶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맞춰보며 에릭 번의 이론을 설명했습니다. “라안 씨, 지금 상황은 역설적입니다. 대개 관계가 안정될 때 평온을 느끼지만, 실패자 각본을 따르는 이들에게 안정은 생소하고 불안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관계가 깨질 위기에 처하고 타인에게 거부당할 때 무의식은 ‘익숙한 세상’에 와 있다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그 비극적인 순간에 역설적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라안 씨와의 상담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심리 게임의 판을 짜고 있는지 그 구조를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라안 씨의 내면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폭발하는 감정 앞에서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라며 자책했지만, 이제는 ‘내가 지금 불편하지만 익숙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심리 게임을 벌이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감정과 반응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화가 나지만 이제 모든 화가 격노로 치닫지는 않습니다. 배척당하고자 하는 심리 게임이 앞장서려는 순간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주는 찰나의 멈춤은 과거의 각본을 찢고 새로운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통제하고 싶은 마음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엄마 카안 씨의 호소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말을 잘 들었던 큰아이가 점점 말을 안 듣고 마음대로 하는 것이 너무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등교, 식사, 학원, 잠드는 시간까지. 아이들이 이 스케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했고, 불안은 곧 분노로 바뀌어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본인도 아이도 망가질 것 같은 불안과 화가 있다는 호소였습니다.

카안 씨의 삶에서 불안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코올 중독과 학대가 있던 아버지, 그 아래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을 책임져야 했던 어린 시절. 그녀의 삶에서 타임 스케줄은 생존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생각은 이렇게 굳어져 있었습니다. ‘타임 스케줄을 지킨다 = 살아남는다’, ‘타임 스케줄이 무너진다 = 다시 무너진다.’ 이것을 종이에 적어 건네며 물었습니다. “타임 스케줄대로 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일까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생존하고 있습니다. 타임 스케줄이 때에 따라 필요하기는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러지 않고도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제 말을 경청하던 그녀가 말했습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타임 스케줄이 절대적으로 인간을 살리는 도구라고 믿고 있었군요. 왜 여태까지 내 생각을 종이 위에 써볼 생각을 못 했던 걸까요? 내 생각을 눈으로 확인만 했더라도 이상한 오류 속에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앨버트 엘리스의 당위성을 언급하며 나와 타자, 조건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이는 반드시 타임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믿음이 카안 씨에게는 생존의 기억과 결합되어 절대적 신념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이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고 믿게 된 사고가 어떻게 인지 오류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때는 도움이 되었던 경험이 ‘항상 그래야 한다’는 규칙으로 굳어질 때 얼마나 큰 불안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줍니다. 이런 인지 오류는 대부분 하나의 경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식을 타자에게도 그대로 적용해야만 한다고 믿는 생각입니다. 이런 절대화된 믿음이 당위적 사고입니다. 아이가 스케줄을 지키지 않아 불안해진 것이 아니라,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이 불안을 만들어냈습니다. 감정은 어떤 생각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먼저 할 일은 방금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생각을 눈 밖으로 꺼내 바라보고, 묻습니다. ‘이 생각이 정말 맞는 건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생각을 달리해볼 수 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감정도 달라집니다.

다시 카안 씨에게 물었습니다. “카안 씨, 이런 당위적 생각이 카안 씨에게 도움이 되나요?” “아뇨,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극단적이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토록 아이 때문에 괴롭다고 호소했는데, 살펴보아야 할 것은 나의 생각임을 오늘 알았습니다.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 부여잡았던 타임 스케줄이 아이를 잡는 쇠사슬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아이에게 빚 따위의 짐을 지워주지 않을 것인데 말입니다. 남편과 성실히 일하여 저금도 하고 어느 정도 살 만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됩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으로 지난 몇 년간 괴로웠습니다. 이제 알았으니 다시 타임 스케줄을 운운한다면 엄마 실격인 것이겠지요.”

“카안 씨, 타임 스케줄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올라오면 알아차리고 바로 반문합니다. ‘이 생각이 나에게 도움이 돼?’라고요.” 카안 씨는 자신을 옥죄던 ‘당위적 생각의 틀’을 관찰하며 알아차림의 근육을 키워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가계의 무게를 짊어진 채 버거워하던 어린 날의 자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자신을 안아주며 위로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 채찍질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현재의 삶에는 여유와 안전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점검하고 재발견해나갔습니다. ‘아이들은 이래야만 해’라는 당위적인 생각이 스칠 때마다 그녀는 그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려 애쓰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추고 스스로 묻기로 했습니다. ‘이 생각이,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불안은 여전히 불쑥 그녀를 찾아오지만 더 이상 그녀를 파괴적인 분노로 끌고 가지 못합니다. 불안이 앞장서려 할 때마다 그녀는 잠시 멈춰서 자신에게 질문하는 연습을 합니다. 마지막 상담 날, 카안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발 딛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과거의 유령 속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요.” 과거를 놓아주고 현재를 선택하려는 그 단단한 의지 하나, 기준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삶은 이미 변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위축되었어요


기안 씨는 결혼 후 일을 그만두고 7년째 다시 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7년째 같은 생각을 반복하며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돈이 안 될 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돈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일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생각으로 망설이며 무기력감과 위축감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호소였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가르치는 일을 해서 언제 좋은 아파트로 이사 가냐고 했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몇 주를 망설이다 일단 가르치는 일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자격증 공부부터 하기로 다짐하면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주 기안 씨는 다시 시무룩해져서 왔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못 해내면 어떻게 하죠? 두려워서 못하겠어요.”

저는 기안 씨가 ‘망상소설’을 쓰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하고 싶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못 해낼까 봐’라는 소설을 쓰며 포기하시는군요.” 그러자 기안 씨는 말했습니다. “맞아요. 몇 주 동안 상담하면서 이것저것 걸려 했던 것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못 해낼까 봐’가 문제였어요.” 기안 씨 말을 종이 위에 써서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기안 씨는 할 수 있다는 생각 다음에 이내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엇부터 하면 되나 하고 접근하는데, 기안 씨는 할 수 있다에서 이내 못하면 어쩌지라는 망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감정이 어땠나요?” 기안 씨는 말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는 자신감이 있었고,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위축되었어요. 이 감정이 싫어요. 이 감정을 느끼기 싫어서 다른 이유들을 찾으며 사회에 못 나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종이 위에 ‘할 수 있다 → 이내 못하면 어쩌지 → 위축 → 멈춤’이라고 써서 보여주었습니다. 기안 씨는 뭔가 와닿은 듯 깊은 숨을 내쉬며 대답했습니다. “지난 7년을 ‘할 수 있다와 이내 못하면 어쩌지’로 지낸 것 같습니다. 나는 못하면 어쩌지에 걸려 온갖 핑계를 대며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있던 거였습니다.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선생님 말씀대로 자동으로 일어나는 생각이네요.” 다시 기안 씨에게 물었습니다. “기안 씨,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봅시다. 무엇을 못할까 봐 걱정인 것인가요? 아니면 막연하게 못하면 어쩌지인가요?” 기안 씨는 대답했습니다. “막연하게 자동적으로 ‘못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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