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니
고태희 지음 | 현대지성
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니
고태희 지음
현대지성 / 2022년 11월 / 288쪽 / 15,500원
우울증이라는 불청객
나는 살아남았다고 한다나는 그날 죽으려 했다. 정확히 말하면 죽으려 했다고 한다. 이 문장이 더 정확한 이유는 그날 하루의 기억이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기차가 점점 다가오다 기적을 울리듯 아득하게 눈을 뜬 내게 친구는 좀 어떠냐고 말을 걸었다. 그 몇 마디가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내리쳤다. 질문에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생각을 하려니 두개골 한가운데로 찌릿하며 전류가 흘렀다.
“여기 어디야?”
“집이지. 부모님도 오셨어.”
“왜 오셨어?”
내가 부르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이 집에 왔다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부모가 딸 집에 오는 것이 뭐가 문제냐 싶겠지만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그것이 어떤 징조일 만큼, 살가운 관계가 아니다. 엄마뿐 아니라 감정표현이 서툰 아빠까지 와서 지금 거실에 앉아 있다니 당황스러웠다. 때마침 두통이 토사처럼 밀려들어 머릿속은 점점 혼란해졌다. 납덩이 같은 팔을 겨우 들어 이마를 짚은 순간 엄청난 이물감을 느꼈다. 거칠고 메말랐지만 상당한 두께감이 느껴졌다. 완고한 탄력도 함께 전해졌다. 붕대였다. 손으로 따라가 보니 오른쪽 눈을 가린 채 머리 전체에 둘러 있었다.
“이게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말 좀 해봐.”
“어제 너 죽으려고 했어. 미친 거지…. 거기서 뛰어내리다니.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생각은 나냐?”
내가 죽으려 했다는 말은 동네 아줌마들의 시답잖은 수다의 일부분처럼 의미 없이 들렸다. 오히려 그 말보다 ‘어제’라는 단어가 귀에 걸렸다.
나는 분명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보도 중이었고 난 무심히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만난 그녀는 자살은커녕 도리어 많은 사람의 걱정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며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얼굴 어디에서도 검은 죽음의 일면 따위는 찾을 수 없었는데…. 톱스타는 아니었기에 뉴스의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감정의 중심을 놓친 나는 예비약을 넣어두는 서랍으로 갔다. 서랍을 열면 제일 먼저 눈이 가는 정중앙에 하얀 약통을 놓아두었다. 안에는 아기 병아리 같은 노란색의 작은 알약이 들어 있다. 나는 작은 알약 한 알을 손에 털어 물과 함께 삼켰다. 그리고 말 잘 듣는 초등학생처럼 소파에 앉아 무릎에 손을 얹었다. 심장은 바들바들 떨며 뛰기를 멈추지 않았다. 생전에 환히 웃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 웃음에 맞추어 내 위장이 꿈틀거렸다. 한 알로 진정시키기엔 무리였다. 난 다시 서랍으로 가기 위해 일어났다.
여기까지다. 내 기억은 여기에서 멈추어 그 끝을 나풀거리고 있었다. 옆에 놓인 휴대전화의 날짜를 보고 나서야 잃어버린 하루를 실감했다. 혹시 몰라 인터넷에 접속해 포털 사이트의 뉴스 게시 날짜까지 확인했다. 하루라는 시간이 온데간데없어졌다. 친구는 아직도 가라앉지 못한 흥분을 뿜어내며 내가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를 몇 번에 걸쳐서 반복했다. 그러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죽음의 문턱은 아무 두려움을 주지 못했다. 뉴스를 통해 듣는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왔다.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로 나갔다. 창을 통해 들어온 오후 햇살이 검은 마룻바닥을 넓게 핥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그 혓바닥 위에 고양이들이 있어야 했지만, 부모님의 예고 없는 출현으로 모두 꽁꽁 숨어버렸다. 부모님과 눈이 마주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그냥 눈을 감았다. 나도 고양이들과 함께 소파 밑으로, 냉장고 위로 숨고 싶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험한 꼴을 한 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쿠션만 정리하고 있었다.
“뇌에는 이상이 없을 거라고 하더라. 흉터는 좀 남을 거고.”
아빠가 납덩이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로 몇 마디 했다. 나는 작게 “응.”이라고만 대답했다. 엄마의 입가에는 묻고 싶은 말들이 터져 나올 듯 매달려 있었지만, 아빠의 충고가 있었는지 엄청난 의지로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나는 중얼거렸다.
“나도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사실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이 마른 것을 보니 꿈은 아닌 듯했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다 휘청거리는 날 용케 잡아챈 엄마는 나를 다시 방으로 밀어 넣으며 배는 고프지 않은지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지 물었다.
“그냥 누워 있고 싶어. 머리가 너무 아파.”
엄마는 많은 말이 생략된 한숨과 함께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고 나갔다. 닫힌 문 사이로 친구와 부모님의 대화가 뭉개져 들려왔다.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청각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길 빌면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없어져 버린 하루가, 사라진 내 기억이 충격으로 나를 각성시켰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정말 살아 있는 것인지도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1층으로 내려가서 거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너무 불손한 행위인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붕대를 눌러 통증을 느껴보는 것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했다. 나는 살아 있었다. 다행이었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임세원에 따르면 자살은 세 단계를 거쳐 일어난다고 한다. 자살을 생각하고, 자살을 계획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단계의 시간이 가장 길고 또 이를 겪는 사람의 수도 많다.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인구의 20퍼센트 정도라고 하니, 내 주변 다섯 명 중 한 명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자살을 계획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사람의 수는 훨씬 적다. 이때 다음 단계로의 진행할 가능성을 키우는 트리거는 우울증과 음주다.
나는 자살 계획이 없었다. 끝도 없이 가라앉는 기분에 내가 죽어야만 이 지루한 싸움이 끝나나 보다 하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자살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술은 계획 단계를 건너뛰고 실행으로 즉시 옮기게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과음을 하지 않는다. 술에 취하면 내가 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번에는 필로티 1층 발코니였지만, 다음은 어디에서 뛰어내릴지 나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 와중에 과음하는 버릇을 버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병원 문을 두드리다
내과에서 우울증이냐고 물었다초여름의 햇살에 외투를 벗을 때 즈음 난 큰 프로젝트 입찰을 앞두고 있었다. 긴장해서인지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소화가 잘 안 돼 소화제를 과다복용했다. 그러나 소화제는 위 속으로 들어가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자리에 똬리를 틀었다. 손도 따보았지만 위장은 화타를 만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쥐어뜯기는 듯한 통증에 잠에서 깼다. 이런 통증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배를 쥐고 구르다가 튕겨지듯 화장실로 갔다. 먹은 것도 없는데 안에서는 밖으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정말이지 위장을 뒤집어 쏟아내는 것만 같았다. 새벽까지 변기를 부여잡고 헛구역질을 하다 결국 회사에 월차를 냈다. 그러고는 잠시 가라앉은 틈을 타 동네 내과에 갔다.
“며칠째 소화가 안 돼요. 어젯밤, 그러니까 오늘 새벽에는 빈속인데도 위경련이 나서 위액을 다 토했고요. 죽겠어요.”
의사선생님은 마침 빈속이니 내시경을 하자고 했다. 나도 청진기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는 편이 정확한 진단을 위해 좋겠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누워 수면 마취제를 맞았다. 30분 정도 후에 눈을 떴고 여전히 몽롱했지만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조금 더 누워 있으라는 간호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의사선생님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위에는 아무 이상 없어요. 흔한 염증도 안 보입니다.”
내 위벽은 사랑스러운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말끔한 위장이 어제는 왜 그런 난동을 부린 것일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일 의사선생님이 스트레스성이라고 한다면 크게 항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진단은 매우 의외였다.
“환자분, 혹시 우울증 진단받은 적 있으신가요?”
나더러 혹시 미국인이냐고 하는 것만큼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울증. 이것이 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그런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의사선생님은 지금 표정이나 말투 등을 봤을 때 우울증이 염려된다고 했다. 차라리 스트레스성이라고 하지. 나는 애써 웃으며 그럴 리 없다고 했다. 그리고 곧 중요한 발표가 있으니 위경련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약 처방을 부탁했다.
그렇게 며칠을 버티다 보니 발표 당일이 되었다. 발표는 오후였다. 그러나 위장이 또 말썽이었다. 처방받은 약은 듣질 않았고 회사 화장실에서 공허한 헛구역질만 하고 있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길 건너 내과에 갔다. 또다시 증상을 설명하고 오후에 발표가 있으니 이 지랄병 좀 어떻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그러자 의사선생님이 이야기했다.
“일단 진정제를 놔드릴게요. 그런데 환자분 혹시 우울증 진단받은 적 없으세요?”
요새는 의사선생님들이 스트레스 대신에 우울증으로 뭉뚱그리나 싶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이어지는 말은 내가 이미 들은 바가 있는 말이었다.
“지금 환자분 표정도 그렇고 우울증일 가능성이 커요. 부담 갖지 말고 정신과를 한번 가보세요.”
링거 속 이름 모를 액체의 떨어지는 방울을 세면서 생각했다. 우울증이라니, 무슨 관상 보는 것도 아니고 이 병이 얼굴 한 번 보면 척하고 나오는 병이었던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신과는 더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프로젝트 입찰 발표는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심사위원이 괜찮으니 앉아서 하라고 배려했던 것은 기억난다. 중요한 부분을 빼먹어 다시 앞으로 가서 설명하기도 하고 심사위원의 질문에 패닉이 와서 제대로 답을 못 한 것도 같다. 그렇게 발표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발표 결과보다 우울증 세 글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말 아침, 평소와 달리 일찍 눈을 뜨고 설명하기 힘든 기분에 휩싸였다. 내 주변의 공기만 밀도가 높아진 것 같았다. 여전히 뇌는 잠들어 있는 듯 멍했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순간 진짜 우울증일까 싶어 무서웠다. 신문에서나 보던 단어가 내 머릿속을 후비고 다니고 있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정신과를 가기에는 이 무서운 병을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 같아 싫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차선책으로 심리상담소를 검색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한 곳이 있었고 전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인사말이 들렸다.
“네, 심리상담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거짓말 같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음이 터진 것이다. 입을 막은 손을 뚫고 나오는 오열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말씀하세요.”
이 말은 푹신한 쿠션처럼 나를 기대게 했다. 얼굴을 파묻고 더 힘껏 울음을 쏟아냈다. 이것이 다 내 속에 있었나 싶을 만큼 울고 나니 그제야 민망해졌다. 얼굴도 모르는, 그것도 남성을 수화기 너머에 두고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뜨리다니 황망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숨을 조금 나누어 쉰 후 겨우 입을 열었다.
“제가 우울증이라는데 검사를 하고 싶어요. 가능한가요?”
그는 스케줄을 확인하더니 고맙게도 당일 예약을 잡아주었다. 하긴 전화하자마자 다짜고짜 운 사람은 흔하지 않으리라. 찬물로 세수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차 키를 손에 쥐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후회가 밀려왔다. 운전석에 앉아 시트의 높이와 각도만 수차례 조정했다.
상담소에 도착한 후에도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확인하지 않으면 계속 망상의 잡귀가 나를 괴롭힐 것 같아 손잡이를 꽉 쥐고 문을 밀었다. 따뜻한 분위기에 친절한 얼굴이 보였다. 좀 전에 통화한 남자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긴장을 풀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이었지만 소파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내 손톱은 남아나지 않았다.
“자, 이쪽으로 오세요.”
드디어 차례가 되어 원장실로 들어갔다. 책상 앞의 그녀는 밝은 미소로 맞이했지만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심장이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랫입술을 이 자국이 날 만큼 세게 깨물고 있었다. 검사를 하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난 우울증이었다.
우울의 수원을 찾아서
나보다 앞장서 걸어가는 사람아마도 여섯 살 때였지 싶다. 아빠의 근무지를 쫓아 내려간 곳은 창원이라는 낯선 도시였다. 지금이야 널찍한 대로가 도시 중앙을 관통하면서 어엿한 행정수도로서 세련된 면모를 갖추었지만, 그 시절 창원은 어린 나의 기억에도 투박하고 억센 도시였다. 우리가 살 곳은 황량한 잔디밭 위에 툭툭 지어진 무심한 벽돌색 아파트였다. 래미안, 자이 등 요즘 아파트처럼 세련된 이름이 아니었고 회사명이 들어간, 소속감을 매우 고양하는 이름이었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노란색으로 떠오른다. 내 첫 자전거에 관한 것이다.
여섯 살 생일 선물로 부모님은 자전거를 사주었다. 인어공주가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노란색 자전거였다. 거추장스러운 보조 바퀴도 달려 있었다. 노란 자전거에 투박한 검은 보조 바퀴라니, 이 경악할 미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초보이니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잠깐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본 적도 없는데 이미 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조금만 있어 보라지. 내 너를 산뜻하게 위로 밀어 올리고는 당당하게 페달을 밟을 테니.’
5층짜리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여섯 살 꼬마가 무거운 자전거를 들고 5층까지 가기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사원 아파트 아닌가. 안동 김씨 집성촌처럼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다. 누군가 도둑질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원성을 사는 곳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어느 날, 자전거가 없어졌다. 난 분명히 1층 입구에 여느 때처럼 자전거를 고이 세워 놓았고 자물쇠도 채운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공주님이 잘 잠든 것을 확인하고 올라왔는데 밤새 누군가 우리 공주님을 업어 가버린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나쁜 놈이 내 공주님을 납치했을까? 억울하고 화가 나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그러나 눈물만으로 자전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윽고 아파트를 1동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각 동의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는 것은 여섯 살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헉헉대면서도 아파트를 다 훑을 기세였다. 이래도 못 찾으면 어쩌지, 자전거를 집 안에 넣어두었으면? 누가 벌써 어디 팔았으면? 어린아이가 상상할 가능성은 여기까지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웠다.
그렇게 반나절 즈음 지났을까 어느 한 동 입구에서 내 공주님을 발견했다. 처음엔 내 자전거 같지 않았다. 보조 바퀴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대체 어느 놈이 우리 공주님을 이리 험하게 다루었단 말인가. 반갑기보다는 안타까웠다. 당장 뛰어가서 살펴보고 싶었지만, 공주님의 다른 얼굴 때문에 아직 내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대로 눈물을 흩날리며 엄마에게 뛰어갔다. 엄마는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고 그곳으로 함께 가주었다. 다행히 우리 공주님은 약간은 지쳐 보였지만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