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무레 요코 지음 | 리스컴
오늘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무레 요코 지음
리스컴 / 2023년 3월 / 224쪽 / 16,800원
아름다운 사진을 보며 위안을 얻다코로나 전에는 거의 매일 서점에 들러서 책을 사 오곤 했다. 때로는 책이 너무 무거워 구입을 망설일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온라인 구매로 집에서 택배를 받을 수 있어서 책의 무게 때문에 못 사는 문제는 없어졌다. 다만 한 번에 구매해도 되는 책값의 한도를 내 나름대로 정해 두었기 때문에 한도 초과로 사지 못할 때도 있다. 이런 식으로 사지 못한 책들이 쌓여 가다 보면 결국 1년에 한 번씩 폭발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오늘은 꼭 사겠다고 큰맘 먹고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검색한 뒤 장바구니에 넣기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면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든다. 가격이 비싼 책은 보통 인쇄 부수가 적기 때문에 발행일이 좀 지나면 품절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책들은 나중에 사고 싶어도 못 살 때가 많다. 중고 서점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정가보다 비싼 경우도 있어서 구입해야 하는 적당한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대형 사진집은 가격이 비싼 편이고 너무 커서 자리도 많이 차지한다. 그래서 사서 여러 번 실컷 본 다음 좋아할 만한 친구에게 준다. 지금 집에는 누군가에게 주기엔 아까운 것들만 남았는데 그리 많지는 않다. 코로나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요즘에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뒤 사진이나 그림이 많은 책을 보는 게 마음이 편해서 사진집을 펼쳐 보는 횟수가 아주 많아졌다.
그중 한 권이 우시오다 도쿠코의 사진집 『냉장고』다. 이 사진작가를 알게 된 건 그녀가 남편 시마오 신조와 함께 쓴 『중국생활기행』을 보고 난 뒤부터였다. 당시 나는 홍콩이나 마카오, 중국 등에 관심이 많아서 그 나라 사진을 보거나 에세이를 흥미롭게 반복해서 읽곤 했다. 시마오 작가의 흑백 사진과 에세이가 담긴 『생활』도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를 정도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훗날 시마오 마호라는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감회가 새롭다. 당연히 그녀의 만화 『고리코』도 구매했다.
간행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책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반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책도 잘 찾아낸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냉장고』라는 책의 존재는 한참 뒤에 알았다.
내가 왜 이 책에 관심이 있는가 하면, 어릴 때 나는 남의 집 냉장고에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식탐이 유난히 많았다든가 그런 건 아니다. 냉장고 안의 음식을 몰래 꺼내 먹으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단지 저 부엌의, 저 문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게 너무나 궁금해서 문을 열고 안에 들어 있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항상 냉장고 문을 열고 확인했다. 아무리 내게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집에 놀러 온 딸의 친구가 인사하자마자 느닷없이 부엌으로 가더니 허락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면 친구 부모는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그게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대여섯 살 아이였던 나는 남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고 만져서 상처를 입힌 것도 아닌, 그냥 냉장고 문을 열고 구경한 뒤에 닫기만 한 거라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
친구들 집에 갈 때마다 그랬으니 나의 이런 행동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러나 나는 나쁜 짓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울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그만해야겠네.’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부모님은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는 나를 보며 화를 냈다. 그날 이후 친구 집 냉장고는 더 이상 열어 보지 않았고 아무 일 없이 이 문제는 마무리되었다.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친구는 네가 그런 아이였냐며 어이없어하며 웃었다.“다들 그런 행동 하지 않아?”
“네가 특이한 거지. 보통은 안 그래.”
친구는 이렇게 대답하며 또 웃었다.
오랜만에 『냉장고』 책의 띠지를 보니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란 타인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 문장을 보니 이해가 됐다. 그러나 금지된 것일수록 흥미가 당기는 건 나 또한 저자와 마찬가지라 동질감을 느끼며 사진집을 구입했던 것이다. 당시 일반 단행본 가격의 네 배나 되는 화보집을 구입하는 데는 상당히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게다가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었기 때문에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집 속 집들은 한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도쿄나 근교에 위치했다. 이 책을 보면 집집마다 식재료를 어떻게 수납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사진을 바라보며 나는 남의 집 냉장고를 왜 그리 열어 보고 싶어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어린아이였으니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보다는 단순히 문을 여닫는 행위 자체가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어린아이의 힘으로 열 수 있는 문이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냉장고 정도일 텐데, 우리 집 냉장고를 여닫는 건 이미 재미없어져서 어느 집에 가든 항상 있기 마련인, 어린아이도 쉽게 열 수 있는 냉장고 문을 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만약 그 안에 목표로 하는 뭔가가 있었던 거라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텐데 냉장고를 열었다가 혼난 기억은 있지만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듣고 웃었던 친구가 이렇게 말한 건 기억이 난다. “우리 집 냉장고는 마음껏 열어 봐도 돼.”
같은 저자의 작품인 비블리오테카 시리즈 『책이 있는 풍경』도 큰맘 먹고 구입한 책 중 한 권이다. 이 사진집에는 생명이 다한 책, 쌓여 있는 책, 구겨진 책 등 다양한 모습의 책이 담겨 있다. 서양 책도 있고 일본 책도 있고 크기가 아주 작은 책도 등장한다. 책 주인의 삶과 함께한 책들의 사진이다. 서점에 단정하게 진열된 깨끗한 책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읽혀서 더러워지고 찢어지고 해어질 때까지 사용된 책, 아무렇게나 방치된 책들도 있다. 그야말로 책들의 일생을 기록한 화보집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중에는 사전도 있는데 저자는 이런 표현을 쓴다. ‘어릴 때부터 사전 찾는 습관을 들이면 공부에 도움이 되는데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한 사전은 마치 브로콜리 송이와도 같다.’
무슨 뜻인가 하면, 사전에서 단어를 찾으면 반드시 그 페이지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포스트잇 붙인 페이지가 두툼해져서 옆에서 보면 마치 활짝 핀 브로콜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진집 속 사전을 바라보았다. 사전의 겉면은 찢어져 테이프로 덕지덕지 도배되어 있고 책의 옆면은 어린아이의 삐뚤빼뚤한 글씨로 ‘국어사전’이라 쓰여 있다. 누군가가 이렇게 낡을 때까지 사용해 준다면 사전으로 태어나서 행복할 것 같다.
그 밖에 이런 사진도 있다. 거의 정리 정돈이 되어 있지 않은 엄청난 양의 책 속에 파묻혀 있는 중고 서점 주인의 모습이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본다면 이게 뭔가 싶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 눈에는 이해할 수 있는 풍경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마치 마법사의 주문이라도 적혀 있는 듯한 좀 먹은 자국이 가득한 페이지를 비롯해 도저히 글자를 읽을 수 없을 만큼 더럽혀진 책도 있다. 마카오의 한 흰개미 구제업체 매장에 놓인, 흰개미의 피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 주려고 놓아두었다는 벌레 먹은 책 뭉치 사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책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마치 커다란 용암 같다.
책은 놓인 장소에 따라 그곳 특유의 냄새가 있고 같은 책이라도 누가 갖고 있느냐에 따라 냄새가 달라진다. 각각의 사진들에서 곰팡이나 먼지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다. 방 한쪽 평상에 옛날 안마기와 함께 쌓여 있던 장서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런 느낌은 전자책으로는 절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큰맘 먹고 구입한 또 한 권의 책은 시인 다카하시 무쓰오의 사진집 『아름다운 곳들』이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를 통해 사전 예약을 했는데 당초 예정보다 몇 번이나 연기되더니 얼마 뒤 발행일이 미정이니 주문을 취소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혹시 무슨 사정이 생겨서 발매 자체가 안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다른 사이트에서는 접수를 받고 있다는 걸 알고 그곳에서 다시 예약을 했다. 다소 기다리긴 했지만 무사히 책을 구입할 수 있어서 안심했다.
꽤 오래전 일인데 두툼한 외국 사진집에서 다카하시 무쓰오의 서재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튼튼한 목조로 된 실내에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면 한가득 책이 빽빽이 채워져 있었고 가구나 장식품들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내가 꿈꾸던 딱 그런 방이었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책에도 실내 사진이 많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예전에 본 서재 사진 속 집과 이번 사진집에 나온 자택이 같은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저자가 어떤 주택에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 사와타리 하지메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택배 박스를 열어 보니 단아하고 아름다운 상자 안에 책이 들어 있었다. 광고지 한 장이 띠지에 끼워져 있었고, 가로 7cm, 세로 10cm 정도의 컬러 사진 9점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빤히 바라보았다.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단아한 방의 정경, 튤립·모란·백합이 피어 있는 정원, 작은 탁자 위에 놓인 꽃병과 꽃, 창문에 걸려 있는 얇은 천. 그리고 수제 과일 케이크와 뱅쇼도 너무 맛있어 보였다.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넘쳐났다.
이 집의 마당과 실내를 직접 꾸민 건축가의 글에 따르면, 지은 지 약 100년이 조금 안 된 이 집은 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집을 살펴본 결과 대규모 복구공사가 필요한 상태였다고 한다. 복구할 때는 가능한 한 옛 재료들을 사용했다고 한다. 취향에 맞는 집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시간과 사람의 손길을 거쳐 이렇게 아름다운 집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직 이 집은 미완성이라고.
이 집에는 편리하고 수명이 긴 LED 조명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옛날 전구와 촛불, 꽃과 초록빛이 가득한 마당에는 양철 물뿌리개가 있을 뿐이다. 과도한 조명도 없다.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꿈만 같은 집. ‘울타리에 개 배설물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저자의 손글씨 표지판이 이 집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집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운다거나 외출을 자제한다거나 코로나 생활 지원금을 얼마간 받을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 분명 지금이 힘든 상황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여유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 이런 메마른 현실을 잊게 해 주는 아름다운 사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바라보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싶다.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다어느 여대 교수가 웹에 연재하는 칼럼을 읽다가 놀란 적이 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 중에 신서판(일본에서 흔한 도서 판형의 하나로, 일반 단행본 사이즈인 신국판보다는 작고 문고판보다는 약간 크다)을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서점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직접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여러 책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관심 있는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고, 굳이 종이책을 사지 않고 전자책으로 읽을 수도 있으니 그런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 여대는 상위권에 속한 대학이라 입학생들의 성적도 꽤 좋았을 것이다. 최소한 문고판이나 신서판, 단행본처럼 책의 크기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그 교수는 이런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서판을 직접 보여 주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이런 크기의 책이 진열되어 있을 거라고 가르쳐 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신서판은 가능하면 도서관에서 대출하지 말고 직접 구입해서 읽으라며,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은 뒤 목록을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는데 15년 동안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참 성실하다고 생각하며 칼럼을 읽었다.
옛날에는 책이라고 하면 종이로 된 것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솔직히 손에 책이 없어도 컴퓨터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종이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안의 글자를 읽는 것 말고 다른 의미도 있다. 전자책으로는 종이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책의 장정, 종이의 촉감, 냄새와 같은 오감의 소중함이 전달되지 않는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경험한 중년 세대는 손에 만져지는 종이책의 감각을 아직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 화면으로만 글자를 읽은 사람이라면 과연 어떨까. 내가 아직도 종이책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신서판이라는 책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히라노 에리코가 지은 『58세, 산속 집에서 고양이와 산다』라는 책을 손에 들었다. 문득 ‘히라노 작가의 나이가 벌써 58세나 되었구나.’ 싶었지만 내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가끔 내 나이를 잊곤 한다.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는 게 나이 든 고양이에게는 좋지 않다고 해서 지금 당장 이사할 생각이 없지만, 언젠가 고양이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때 이사를 계획하고 있어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작가는 원래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젊을 때 다녔던 산을 자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자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아예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사를 결정하고 부모님 집의 짐을 정리하다가, 때로는 산속 자신의 집에 있다가도 추억에 잠겨 눈물을 흘리곤 했다는 구절도 있었다. 부모님 집 근처에 본인 소유의 집도 있다는데 왜 산속에서 살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책에 자세히 적혀 있어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나면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해 왔다. 3분의 2 정도 명의를 소유한 친정집을 수리해서 살면 되겠다 싶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동생이 심하게 화를 내며 반발했다. 결국 지인에게 소개받은 부동산업자의 중개로 내가 지불한 금액의 7분의 1 정도만 받고 집을 처분하게 되었고, 이로써 내 명의의 재산은 없어졌다. 재산에 대한 집착은 없기 때문에 없으면 없는 대로 상관없었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의 얘기로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세를 주려는 집주인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 이사할 계획이 있다면 월세보다는 아예 집을 사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내가 집주인이라도 그럴 것 같았다. 아직 건강하기는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더구나 자식도 없는 독거노인이 자기가 세를 준 집에서 혹시라도 고독사라도 한다면 그보다 난처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집을 사게 된다면 목돈이 필요하고 재산세도 내야 한다. 이런저런 점을 생각하면 월셋집에 사는 게 가장 편할 것 같은데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사하게 될 때 정하면 된다.
출퇴근할 필요가 없으니 지금보다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살아도 상관없지만, 도쿄 외에 다른 곳에서 살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쭉 도쿄에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도쿄 말고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곳은 자연환경은 매우 좋겠지만 과연 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내용도 그 부분이었다.
친구 한 명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산속에 집을 갖고 있어서 몇 번 놀러 간 적이 있다. 여름에는 커다란 벌이 둥지를 틀고, 겨울이면 수도관이 터지거나 눈 때문에 차가 미끄러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집수리를 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는 그냥 마음 편히 놀러만 가고 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호텔이나 레지던스 같은 곳에 머무는 게 훨씬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