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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오래뜰

임영매, 정광모, 이수경, 김덕아, 김수우 지음 | 전망


버지니아 울프의 오래뜰

임영매, 정광모, 이수경, 김덕아, 김수우 지음

전망 / 2022년 12월 / 176쪽 / 13,000원





임영매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한 개인이 최소한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1914년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한창일 무렵 한 여성이 식칼을 숨겨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가 바로크 시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로커비 비너스>의 등을 무자비하게 난도질해 버렸다. 메리 리처드슨이라는 이 여성은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는 영국의 서프러제트 운동 지지자였는데, 이 운동의 지도자인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체포되었고, 그에 대한 항의로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이다.

그녀는 결국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여성 참정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일조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한 인터뷰에서 리처드슨은 “남성 방문객들이 하루 종일 그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이 싫어서 사진을 찢어 버렸다.”고 말했다. 여성의 권리에는 뒷전이면서 신화 속 여성 누드화에 찬사를 보내는 남성 중심의 사회적 인식에 대한 항의였던 것이다.

영국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나 주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나 가능했으며, 미국의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법률로서 보장되게 되었다.

서양에서 여성들의 권리가 보장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불과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동서양 할 것 없이 인간의 역사에서 여성들은 참정권뿐만 아니라 재산을 소유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도 제한이나 차별을 받았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여성들은 오랫동안 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되었다. 여성의 고등교육의 기회와 재산권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획득하게 된다.

1971년 초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은 <아트뉴스>지에 ‘왜 이제껏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인류 역사에서 위대한 남성상은 많아도 위대한 여성상은 별로 없는 것이 비단 미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며, 이런 수적인 열세의 진정한 이유는 여성의 교육, 사회 제도, 관습에서 기인한 것임을 지적한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노클린은 여성에 대한 누드모델의 금기였으며, 미술의 인체 묘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까지 여성은 모델의 자격으로서나 화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페미니스트 미술의 일종의 선언문이라 할 수 있는 이 기사는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없었던 이유로 여성 미술가에게 남성과 동등한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구적 페미니스트이자, 모더니스트로서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도 문학사에서 여성의 이름이 드문 이유로 여성의 열등함이 원인이 아니라면, 사회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나는 영국에서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여자다.”(버지니아 울프, 『울프 일기』, 솔출판사, 146쪽.)라고 표현할 만큼 울프는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성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은 특권을 누린 환경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문예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들인 학자, 문인, 예술가, 비평가들과 함께 ‘블롬즈버리 그룹’을 결성해 문화와 사회에 대한 지적 교류를 통해 성장했다.

울프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이해했던 남편 레너드는 결혼 후 호가스 출판사를 설립하여 그녀의 작품을 출판할 정도로 당시 여성으로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교육받은 남성의 딸’이라는 특권적 상황에서도 울프 역시 당시 여성에게 강요되는 규범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에서 배제되었다.

울프의 이러한 심정은 1928년 일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 생신, 살아 계셨으면 96세가 되었을 것이다. (…) 고맙게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랬더라면 그의 인생이 내 인생을 완전히 끝장내 버렸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고, 책도 없었을 터,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다.”(같은 책, 234쪽.)

울프는 교육받은 남성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적 산물인 아버지로 인해 글을 쓰는 데 제한을 받았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당시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남성에게 종속되고 억압되어 있다는 인식은 울프에게서 글쓰기의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울프는 1928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의 강연문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방』을 발표한다. 가부장제 하의 여성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필요조건으로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10쪽)고 주장한다.

중산층에 속했지만 울프가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준 건 숙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연간 오백 파운드의 수입은 그녀에게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바탕이 되었다.

자신의 사례를 견본으로 울프는 여성 작가에게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으로 연간 오백 파운드의 돈과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여성에게 오백 파운드의 돈은 물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여성들은 대부분 공동 거실에서 수시로 방해받으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울프는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주로 소설을 쓴 이유가 그들이 주로 거실에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보다 소설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울프는 당시 여성들이 마주한 물질적 한계를 ‘자기만의 방’에서 주디스 셰익스피어라는 허구의 인물을 가정해 여성이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와 공평한 사회의 시선을 누릴 수 없는 입장을 묘사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누이인 주디스는 셰익스피어처럼 문학적 재능을 가졌지만 셰익스피어와는 달리 어떠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천재란 고생하고 교육도 못 받고 노예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태어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영국에서는 그러한 천재가 색슨족이나 브리튼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오늘날 노동자 계층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들 사이에서 그런 천재가 태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 여성들의 임무는 육아원을 거의 벗어나기도 전에 시작되었고, 그것도 부모들에 의해 강요되고 온갖 법률과 관습에 의해 고수되도록 되어 있었으니까요.(같은 책, 69-70쪽.)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재산과 자유 시간이 보장된 계층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다. 울프는 여성이 셰익스피어처럼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창작에만 몰두하기 위해서는 연 오백 파운드의 수입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방이라는 ‘자유’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자기만의 방』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정신적 활동을 위한 물질적 토대의 중요성이며, 자기만의 방은 자유의 공간이다.”(버지니아울프학회 편, 『버지니아 울프』, 도서출판 동인, 406쪽.)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은 자유롭게 사색하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자기만의 방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크다. 자기만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의 확보는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가부장제하의 여성으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다. 결국 자기만의 방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오롯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픈 작은 외침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신의 방을 가지라고 부탁할 때 나는 여러분이 이 실재의 현존 안에서, 활기를 북돋아 주는 삶으로 보이는 그런 삶을, (…) 살아가기를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자기만의 방』, 152쪽.)


울프에게 자기만의 방은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같은 책, 153쪽.)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실재의 현존 안에서, 활기를 북돋아 주는 삶으로 보이는 그런 삶, 즉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만의 방은 단지 여성과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조건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구분을 넘어 한 개인으로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은유로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이 겪는 성차별을 쟁점화한 『자기만의 방』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한 항의이다. 울프는 한 개인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자기만의 방과 돈’을 제시했다. 당시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 참정권 확보를 위한 투쟁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울프는 개인적인 삶을 통해 여성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지성인이었다.

20세기 초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어느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던 울프, 그녀의 글은 여성과 남성을 넘어 한 개인으로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삶의 질문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을 넘어 인간주의에 대한 문제이다.



정광모



『밤과 낮』 그리고 로맨스


1919년에 나온 『밤과 낮』은 버지니아 울프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다. 『밤과 낮』은 젊은 남녀의 사랑과 탐색, 결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영미 문학뿐 아니라 세계 문학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전통적 주제다. 『댈러웨이 부인』이나 『등대로』 같은 의식의 흐름을 다룬 실험적인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당대의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는 『밤과 낮』이 보여 주는 1차 세계대전을 잊은 듯한 즐거운 태도와 길고 지루하며 전통적 문체로의 회귀를 지적하며, 이 작품은 ‘영혼의 거짓말’이며 ‘지적 속물주의’로 가득 차 있다고 비난한다. 필리스 로즈는 울프가 작품에서 스스로 영국 소설의 고전적 전통에 입각한 소설가임을 증명하고자 했다고 지적한다.(한국버지니아울프학회 편, 『버지니아 울프』, 도서출판 동인, 52쪽.)

그런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밤과 낮』은 고전적인 연애 소설이 보여 주는 남녀의 사랑과 결혼과는 거리가 멀다. 작품은 1910년대까지의 연애의 공식과 남녀의 역할을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전복하고 있다.

작품의 첫 문장은 “시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그녀와 같은 신분의 여느 젊은 숙녀들과 마찬가지로 캐서린 힐버리는 차를 따르고 있었다.”로 시작한다. 캐서린의 일은 식사 지휘, 하인 관리, 청구서 지불, 꽃병에 신선한 꽃들을 채우기와 같은 집안 업무로 차 있다.

더욱이 위대한 시인인 외할아버지 앨러다이스의 방과 유품을 방문객들에게 안내하고 캐서린의 엄마가 집필하는 앨러다이스 전기 업무 보조와 같은 일도 처리한다. 캐서린 힐버리는 상류 가정의 숙녀로 ‘가정’의 일에 매여 있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훌륭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묶여 있다.

캐서린을 억압하는 것은 자신에게 할당된 가사뿐 아니라 앨러다이스라는 시인이 포함된 영국의 전통, 영국의 과거이기도 하다. 캐서린의 부모들은 영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사람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캐서린에게 얘기했다. 캐서린에게 그녀의 할아버지도 포함된 이 위대한 사람들은 일종의 경계표이고 삶의 기준이다.

하지만 그녀가 사는 공간이 앨러다이스의 유품과 그것을 보러 오는 방문객들로 에워싸이며, 캐서린이 앨러다이스의 전기를 쓰는 일을 도우면서 하루를 보낸다는 사실에서 위대한 고인의 과거는 늘 캐서린의 현재에 참견한다.(버지니아 울프, 『밤과 낮』, 솔출판사, 676쪽.)

캐서린에게 위대한 영국인과 영국의 전통은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다. 그리고 캐서린이 존경해야 마땅한 그 위대한 영국인의 대부분은 여성에게 가사와 육아를 떠넘기고 무의식에서든 의식적으로든 여성의 자아 발전을 막는 남성이다.

캐서린은 정부 공무원이자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월리엄과 약혼을 하면서 전통적인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월리엄은 캐서린보다 열 살 많은 서른일곱 살이다. 윌리엄은 전통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며 체면을 중시하고, 여성은 단지 결혼에 의해서만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월리엄이 지닌 결혼과 여성에 대한 인습적인 생각은 캐서린과의 관계에 부조화를 가져온다. 현실적인 사랑의 존재를 믿지 않는 캐서린은 가문의 전통과 체면과 도덕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즉 편리한 독립의 수단으로 월리엄과의 결혼을 결정한다.

캐서린은 윌리엄의 청혼을 차분하고 기쁨이나 활기가 없는 목소리로 수락하는데 캐서린은 결혼 생활에서 월리엄이 원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 주어야 함을 잘 깨닫고 있다. 즉 남성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하며 남성을 만족시켜 줄 외모를 중시하는 것이다. 결혼을 둘러싼 전통은 남편의 성공을 위해 여성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한다. 빅토리아 시대 전통 사회는 남성을 위한 유용성의 가치로 여성을 판단하므로, 월리엄은 캐서린을 배려하거나, 하나의 분명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같은 책, 60-61쪽 참조.)

캐서린은 상류 가정 ‘집안의 천사’에 묶인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억압하는 집안의 전통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캐서린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그런 자유를 가진 여성은 메리 대치트이다.

1918년은 영국에서 30세 이상의 여성이 처음으로 참정권을 갖게 된 해이고 『밤과 낮』은 아직 여성 참정권이 쟁취되지 못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리 대치트는 참정권협회 사무실에서 여성 참정권과 여권 신장을 위해 일하는 여성이다. 메리 대치트는 시골 교회 목사의 딸로서 대학 교육도 받았고 독립해서 혼자 생활비를 번다. 캐서린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 메리를 부러워한다.(같은 책, 679쪽.)

상류 가정의 캐서린이 메리처럼 가족의 마음을 거슬러 마음대로 행동하기는 어렵다. 캐서린이 일 많은 현재의 집을 떠나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캐서린이 수동적이지만 월리엄과 약혼하는 것은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다. 캐서린은 “이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만족시켰던 것처럼 자신도 월리엄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는 다이아몬드를 더 좋아하면서도 에메랄드를 좋아하는 척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캐서린은 전통과 가족의 무의식적 압박에 눌려 스스로 개성과 자아를 포기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소설 후반에 가서 캐서린이 월리엄에게 “당신과 약혼한 게 잘못이에요. 난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어요. 난 당신을 결코 사랑한 적이 없어요.”라고 외치는 건 캐서린의 진심이자 캐서린이 전통과 상류 가족에게 맞서는 힘든 결정이었다.

캐서린은 그런 결정을 하면서 “자신이 맞서고 있는 어둠의 덩어리를 통과하기 위해 그 빛이 그녀를 안내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녀는 자신의 빛을 따라가려고 노력한” 것이다.

캐서린을 사랑하는 또 다른 청년인 29세의 랠프 데넘은 중류층 가문의 변호사이다. 랠프 데넘은 변변찮은 집안에 소유한 재산도 별로 없으며 대가족의 장남으로 가족 부양의 짐을 지고 있다. 랠프는 캐서린의 아버지인 힐버리 씨와 친분이 있어 저택의 티타임 사교 모임에 참석해서 캐서린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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