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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용기

송욱 지음 | 대서


나를 만나는 용기

송욱 지음

대서 / 2022년 2월 / 280쪽 / 15,000원





PART 1 관계가 남긴 상처



대학 시절 나를 바꾼 일들


대학 시절 나는 정의를 외치는 투사와 같은 삶을 살았다. 원래는 온실 같은 환경에서 주어진 일을 아무런 불만 없이 수용하는 삶을 살았는데 고3 때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목격하고 난 이후로 나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대학에 입학하여 ‘흥사단 아카데미’ 동아리에 가입했다. 흥사단은 1913년 5월 13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이다. 60년대부터 전개한 학생 아카데미 운동은 건전한 인재 양성과 사회 민주화를 위해 도산선생의 정신을 이어 오고 있었다.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은 다양했다.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자 매일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전체 모임을 통하여 대학생의 눈높이에서 시대의 실상과 좌표를 진단하고, 그것에 대한 역사적인 처방을 명쾌하게 제시하며, 학생 운동을 선도했다. 또한 신분을 감추고 공장에 몰래 들어가 노동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학생 시위대에 참여하여 최루탄 가스에 뿔뿔이 흩어지고, 경찰에 쫓겨서 도망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몰래 약속된 장소에 모여 서로가 무사함을 바라볼 때는 부둥켜안고 안도감에 울고 웃었다.

수련회에서는 ‘무실역행’, ‘충의용감’의 정신을 기르기 위해 남녀 구별 없이 야간 산행으로 담력을 키웠고, 선배들 눈에 거슬린 행동이 발견될 때면 단체 기합을 받았다. 전국 흥사단 대회에서는 각 지역의 대표들이 참석하여 ‘정의돈수’를 하였는데 ‘정의돈수’란 한마디로 ‘서로 사랑하기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참석자 중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새벽에 도착하여 한숨도 못 자고 다시 먼 길을 떠나는 선배들도 있었다. 그런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흥사단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연대감이 더 깊어만 갔다.

대학 2학년 때 학교 대표 회장을 선출했는데 열 남자 부럽지 않을 만큼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서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회장에 뽑혔다. 외부인에게는 학생 데모 서클로 알려졌던 흥사단 아카데미에서 투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4학년 여름 방학이 가까워 올 무렵,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프랑스 여류 지식인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시몬느 베이유의 『불꽃의 여자』라는 책을 접하고, 나도 공장에 들어가 노무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동고동락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당시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친구나 선배들은 이미 노동 운동의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나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중에 유리창에 붙어 있는 전단지가 눈에 띄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안내양 모집’이라는 광고 문구였다. 자세히 읽어 보니 아르바이트를 할 사람은 이 버스를 타고 종점에 있는 사무실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종점까지 가 보기로 했다. 종점에 내리자 허름한 사무실이 보였다.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모집 광고 보고 왔습니다. 지금 아르바이트생 모집 중인가요?” “네? 아 예예! 지금 모집 중입니다. 안내 양 해 보시게요?” 사무실에 있던 젊은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친절하게 대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모집 광고를 보고 실제로 아르바이트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그 남자 직원은 내게 견습생으로서 3일 동안은 안내양을 따라다니면서 익혀야 하고, 넷째 날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닷새째 되는 날부터는 혼자서 직접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수습 때는 수당이 전혀 없고, 다섯째 날부터 지급이 된다고 덧붙였다. 일할 의향이 있으면 출퇴근은 어려우니 전날 저녁 10시까지 사무실로 나오라고 했다. 나는 수당이 얼마인지는 묻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자 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라 노동 운동을 하는 동지들과 뜻을 함께하고 싶어서였다.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두려움이 앞섰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방학 동안을 이용해서 안내양 아르바이트를 해 볼 생각인데 같이 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처음에는 망설이더니 같이 일하기로 했다. 부모님께는 결혼한 큰언니 집에 방학 동안 지내다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짐 보따리를 챙겨서 사무실로 갔다. 직원은 낡아 보이는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고, 그곳에는 비번인 안내양 두세 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낯설어하는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밤 12시 이후가 되자 20~30명의 안내양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깊은 잠에 빠져든 새벽,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눈을 부빌 겨를도 없이 재빠르게 일어나 나를 담당하는 안내양을 따라나섰다. 사무실로 가서 10원짜리와 100원짜리 동전이 든 비닐봉투와 배차된 버스 번호를 확인하고 찾아가니 기사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내양은 오늘 처음 온 견습생이라면서 3일 동안 함께 일할 것이라고 나를 소개했고, 그날부터 견습 생활은 시작되었다. 정해진 노선을 첫차부터 막차까지 스물두 번을 오가야 하루 일정이 끝났다. 숙소로 돌아오면 하루 종일 뒤집어쓴 땀과 먼지로 옷깃이 새까맣게 된 안내양 복장을 세탁해서 다림질까지 하고 나면 새벽 1시가 넘었고, 그제야 잠자리에 들 수가 있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하루가 그렇게 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지나가는 대학생들이 그토록 범접하기 어려운 부러운 대상이고, 커 보이는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승차권을 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연락처를 주고 안내양들의 마음을 훔치는 남학생들이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똑같은 하늘 아래 이런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견습생 3일을 마친 후 4일째 비번이 되는 날, 친구는 더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내게 전화를 해 왔다. 나는 용기를 내어 친구보다 3일을 더 하고 그만두었다. 단 일주일간의 시간이었다. 그 일주일은 나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엄마가 해 준 따뜻한 밥을 먹으면서 투정 부리기 일쑤였고,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공부한다는 이유로 귀찮은 일은 거부했던 나,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쓰고 호사스런 생활을 해 오던 나의 철부지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 일 이후, 새벽 1시 이전에는 도저히 잠자리에 누울 수가 없었다. 잠이 부족해서 안내양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나이 어린 동생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새벽 4시가 되면 사이렌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와 며칠을 잠에서 깨기도 했다. 대학 4학년 여름 방학 때의 시내버스 안내양 아르바이트 경험은 나를 급격하게 철들게 했고, 흥사단 활동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여는 출발점이 되었다.

관계가 남긴 상처


저녁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남편 손을 잡고 저녁 산책에 나섰다. 분주한 삶의 속도에서 벗어나 둘만의 시간과 공간이 된다. 요즘 바쁘게 일에 쫓기며 살았던 것이 나를 지치게 만든 것 같다. 물론 그 일은 내가 원해서 만든 일이고,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일의 무게에 눌려 더 이상 일을 감당해 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산책은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눈은 시원해지면서 새로운 공간이 생겨난다.

저녁노을 곱게 드리운 서쪽 하늘에 기러기 무리가 대오를 지어 날아간다. 억새풀은 하얀 머리칼을 날리며 몸을 흔든다. 묵직한 카메라와 삼각대를 멘 사람도 여럿이다. 텐트를 치고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족, 등을 기댄 연인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내는 사람들, 다양한 풍경이 정겨워 보인다.

… (중략) …



슬픔이나 고난은 불현듯 우리 삶을 엄습한다. 삶의 고난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 마음의 저장고에 웃고 기뻐할 양식을 비축해 두는 일이다. 기쁨은 인생을 살아가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는 마치 서로에게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애틋한 마음을 나누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자 미음과 원망이 홍수처럼 불어났다.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몇 배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겉으로 보기엔 치유된 것 같으나 상처의 기억은 밤마다 악몽으로 드러나곤 했다.

관계로부터 얻은 상처는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치유될 수 있는 것일까?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 남겨진 불온한 기억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올라와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생활은 안정을 되찾았고, 일상의 삶은 아무런 일 없었던 것처럼 물 흐르듯 흘러가는데 가끔씩 어떤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마음은 일그러지기 일쑤다.

가끔 TV를 통해 <동물의 왕국>을 시청한다. 먹잇감을 찾아 서성이던 맹수가 다른 동물이 사냥해서 잡은 먹이를 발견하고 같은 무리끼리 힘을 합세해서 그 먹이를 빼앗고 쫓아내는 장면을 목격한다. 한 조각이라도 더 먹겠다고 먹이를 뜯다가 나중에는 자기편끼리도 치고받고 싸우는 광경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늘 있는 일이다.

인간 세상도 동물의 세계와 닮아 있다. 그 세상에서의 승리는 결코 축복일 수가 없다. 이긴다 해도 상처뿐인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기에 현실을 그냥 바라보며 받아들일 뿐이다. 그리고 내 몫의 책임은 내가 질 것이고, 짊어질 필요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죄책감도, 미움도, 아픔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겪은 그 상처들로 인해 나는 더욱 눈부신 존재가 될 것이다.

흔들리는 나무처럼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나무를 흔드는 건 바람이지만 나를 흔드는 건 사람에 대한 원망과 미움의 감정이었다. 성경은 행악자에 대해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장 21절)고 말씀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여”, “그리함으로 네가 숲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로마서 12장 20절; 잠언 25장 21절)고 교훈한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지혜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용서는 ‘남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과 같다.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은 피폐해지고 삶은 황폐해진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행위는 결국 자신에게 선을 베풀고 축복하는 일이다. 고통의 문제에 직면하여 삶을 돌아보며, 방향을 수정했다. 그리고 더 단단해졌다.

그동안 내 안에 잠재된 감정의 잔해들을 한강 물에 실어 보내고 마음을 비운다. 그 비운 공간에 내면이 단단해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준 나의 아픔을 담는다. 그리고 그동안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사람들의 아픈 마음도 감싸 안는다. 한강의 저녁 산책은 가파른 삶의 숨결을 가라앉히고,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 성숙한 삶으로 이끈다.



PART 2 중년, 끝나지 않은 향연



중년, 끝나지 않은 향연


가을 오후는 완숙한 햇살과 함께 소리 없이 익어 간다. 능금빛 석양을 바라보며 꽃피고 땀 흘려 가꾼 것들의 결실을 생각해 본다. 이룬 것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인생의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사색의 계절이다.

… (중략) …



심리학자 융은 자연의 시간 개념으로 우리의 인생을 나누고 인생의 오전에는 봄과 여름이, 인생의 오후에는 가을과 겨울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발달 과정으로 본다면 청년기까지가 인생의 오전이요, 중년기와 노년기가 곧 오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봄에는 봄에 적용되는 법칙이 있다. 융은 인간의 정신 구조에 있어서 인생의 오전에는 성공과 성취가 우선되어야 하지만, 오후에는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말이 인생의 오후에는 성공이나 성취가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는 동안 주관적인 성공이나 성취는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람은 성취가 없으면 늘 인생의 한 모퉁이에 회한이 남기 마련이다. 인생의 오후를 살아가면서 ‘내가 누구이며, 중년으로서 세상에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살고, 또 가족과 이웃들에게 어떻게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은 중년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실존적인 질문들이다.

우리는 살면서 중년의 때에는 인생의 많은 것을 가져 본다. 일, 사랑, 성공, 실패 등 모두를 경험한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겪고 나서 이것이 과연 인생일까라는 깊은 회의감에 빠진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면서 한 해의 농사를 평가해 보듯이 중년은 자신이 걸어온 삶의 자취를 되돌아보고 인생 전체를 평가해 보아야 할 중요한 시기다. 어릴 적 품었던 꿈의 씨앗이 청년기에 잘 자라서 중년기인 가을에 어떤 결실을 맺었는지 그리고 다시 올 겨울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중년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백년을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는 아직 현역으로서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인생 100세를 24시간에 비유하여 인생 시계를 분으로 계산하면 24시간은 1,440분이다. 이것을 100으로 나누면 1년은 15분, 10년은 2시간 30분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하루 시간으로 자신의 나이를 추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십 세는 오전 다섯 시, 삼십 세는 오전 일곱 시 삼십 분이다. 일흔의 나이는 오후 다섯 시다. 오후 다섯 시에 하루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후 다섯 시에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저녁 시간을 잘 보내고 행복하게 잠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살아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은 각기 다르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인생의 오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차게 계획하고, 저녁 시간에는 무엇을 할지 아주 근사한 그림을 그려 보자.

중년이 되어야 풍기는 아우라가 있다. 중년만이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멋진 내면의 향기가 있다. 화려한 옷을 입고 고혹적인 자태로 눈길을 끄는 단풍잎처럼, 중년의 당신이 얼마나 반짝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것은 중년에 머물러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만 보이는 가치이다.

누군가에게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중년의 가을이다. 이 멋진 계절에 진한 향기와 고운 빛깔을 드러내며, 볼 때마다 미소 짓는 노오란 국화꽃처럼 자기만의 꽃을 피워 내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분주하게 뛰기만 하다가 느려진 걸음으로 걷는 오후 시간을 그냥 무료하게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PART 3 다시 찾은 휘파람 소리



낯선 죽음의 문턱에서


베란다 창문 아래 키가 큰 하얀 목련이 꽃봉오리를 틔우더니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목련은 우아한 생김새가 연꽃과 비슷하여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오늘은 얼마나 더 피어났을까 궁금해서 한걸음에 달려가 목련과 눈 맞춤을 한다. 나무들은 겨우내 비바람과 추위와 맞서 싸우고 봄기운이 돌면 안으로 다스리던 생명력을 활짝 펼쳐 보인다. 꽃 한 송이를 가지 끝에 올려놓고서 인고의 시간을 잊어버린다.

겉으로 보기에 나무와 꽃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덤덤히 있는 것 같으나 잠시도 생명을 움트는 과정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계절을 맞이하면 앙상한 가지에 움이 트고, 잎과 가지가 펼쳐지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다. 꽃이 지면 자신의 몸을 돌보며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결국 나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노력을 멈추면 나무든 사람이든 질병과 죽음이 다가온다. 죽음은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언젠가는 직면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소중한 사람에게 찾아왔을 때는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할 수만 있다면 멀리 쫓아내고픈 반갑지 않은 무서운 손님이다. 그 손님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가족에게 찾아온다면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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