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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거리, 공연은 지금, 나는 마술사입니다

김광중 지음 | 나비의활주로


무대는 거리, 공연은 지금, 나는 마술사입니다

김광중 지음

나비의활주로 / 2023년 2월 / 256쪽 / 15,000원





나는 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버스커



나, 자유롭게 버스킹하는 영혼


달리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누군가 나를 찾았던 것도 아니었지만 군대를 마친 후 무작정 가방을 메고 호주로 떠났다. “왜 호주였어요?”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특별히 할 말은 없다. 알고 지내던 형님의 권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 이유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굳이 왜 호주에는 갔느냐?’ 하고 또 묻는다면 원인과 결과가 꼭 순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 것처럼, “그냥 가고 싶었어요.”라는 게 정답이라면 아마도 정답이지 싶다.

버스 요금부터 달랐던 호주에서의 공연은 예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서 공연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그렇게나 엄청난지는 미처 몰랐다. 이러한 사실이 한동안 나를 어렵게 만들기는 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아서 그걸 배우고 익히는 것에 급급하던 그런 정신없고 분주하지만 실속은 그리 없는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던 장소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한 분이 피아노를 치고 계셨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고 가는지를 살펴야 하고, 공연하는 데 문제가 되는 것들은 없는지도 점검하는 잡다한 일들이 그즈음에서야 내 머릿속에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거리의 공연이 조금씩 익숙해 가던 무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공연을 그저 하는 것에 급급했었는데, 그렇게 신경이 바싹 곤두서 있던 나도 어느새 그 할아버지의 연주 솜씨에 빠져들어 그만 넋을 놓고 구경하게 됐다.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옛날에 큰 산에 살았다는 산신령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느릿느릿 건반을 쓰다듬다가도 보는 사람들이 빨려 들어갈 정도로 피아노를 거칠게 다루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분에게 뭘 배우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맨손으로 날아와 시작한 호주 생활이었으니 내 형편이 넉넉할 리가 없는 게 당연했겠지만, 그 좋은 공연을 봤으니 동전 몇 개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였는지 할아버지의 피아노 앞이나 공연장 어디에도 티 박스가 없었다. 손에 동전 몇 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모습이 흥미로우셨는지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짧은 영어였지만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인지 우리는 금세 오래 보아 온 사이처럼 친근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왜 티 박스가 없어요?”라고 묻자, 그분은 이렇게 답하셨다. “내가 피아노를 치는 걸 워낙 좋아해서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들려주는 것뿐이야.” 왜 그렇게 자꾸 질문을 했었나 싶지만 “그래도 관객들에게 돈을 받는 게 낫지 않아요?”라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매만지듯 건반을 두드리던 그 모습으로 “이게 내 삶이지(This Is My Life).”라며 씩 웃어넘기셨다.

몇 해 전 전국의 거리 공연자들과 공연 관계자들이 모여서 시민들이 거리 공연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했었다. 성인이 된 사람들끼리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채 만나 이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해 어떤 결과를 낳아야 한다면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은 게 정상이기는 하겠지만, 가끔 앞뒤가 막막한 마음으로 그런 지루한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아마도 그날의 대화가 그런 것이었는가 보다. 연미복을 입고 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 그건 예술이고 허름한 복장으로 조악하게 생긴 처음 보는 물건으로 음악을 하거나 아무 데나 서서 마술을 하는 건 ‘거리에서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면 답답하다 못해 막막한 심정이기도 하다.

문득 호주에서 만났던 그 피아니스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버스킹이 ‘돈을 벌기 위해서 거리에 나와 공연하는 것’이라는 그 안일한 발상에 대꾸조차 하기 싫었던 그날의 내 생각을 조금쯤은 자책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같다고 해서 그것의 원인이나 당초의 목적이 같은 것이 아닌 법이니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 마술과 퍼포먼스를 하는 버스킹을 처음 시도했던 사람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닌 건 아니니까.

그분께 이런 질문을 던질까 했었다. 발레리나가 <백조의 호수>의 그 유명한 32바퀴 턴을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거리 공연에서 한다고 해서 그걸 타락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공연을 보고 감동받은 관객이 지폐 몇 장을 꺼내서 발레리나에게 주었다고 해서 발레를 팔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버스킹 마술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라는 자격으로 버스커는 돈을 벌기 위해 길로 나선 사람들이라는 그 놀랍고 안일하며 무지하기까지 한 발상에 진심으로 정중하게 반박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고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면박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적합한 기회를 찾았고 ‘책을 써 보고 싶다’는 오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던 이 기회를 빌어 그분에게 버스킹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그분이 버스커들을 매도하기 위해서 그런 발언을 했다고 믿지는 않았고, 내 반박이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관객들에게 기쁨을 주길 원하는 공연가이고 관객들의 기쁨이 곧 내 기쁨이기 때문에 내 공연이 그저 하고 싶은 레퍼토리로만 가득해서 ‘내가 만족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꾸려 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하다.

버스커들이 거리에서 공연하는 이유가 관객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기 때문인 것처럼, 버스커들 스스로도 그것을 통해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어느 누구라도 자기 의견이 반박당했을 때 기분이 좋지는 않을 테니까, 누군가를 기쁘지 않게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를 삶과 생활에 실현했었다고 한다. 그만큼 숭고한 목적은 아닐지 몰라도 버스커들은 돈을 벌어 생계를 꾸리기 위한 수단으로 거리에 나서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로지 공연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거리에 나선 사람들이라는 것부터 아셨으면 좋겠다.

많은 버스커들의 행색이 무대에서 잘 차려입고 공연하며 점잖은 환호를 받는 그런 아티스트들의 모습과 조금 달리 허름하게 보일 수 있는 건, 옷 차려입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알려 드리고 싶었다.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다른 무대 혹은 인터넷 어디서라도 볼 수 있을 뻔한 공연을 하면 단박에 어렵게 모인 사람들은 각자 제 갈 길을 가 버리는 무대, 그래서 모든 공연이 ‘오늘 지면 탈락이다’라는 심정으로 임해야 하는 무대. 그게 거리의 공연이고 그렇게 곁에서 누가 챙겨 주거나 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야만 하는 날것의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들이 바로 버스커이지 않은가.

여담이기는 하지만 버스커들이 티 박스를 앞에 놓고 공연하는 게 혹은 공연이 끝나고 모자를 관객들에게 돌리는 게 생계의 수단이나 심지어는 구걸의 한 종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아티스트나 공연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삶을 꾸려 가지는 않으셨으면 하는 진지하고 무거운 조언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혹시 그분이 기회가 되신다면 호주 거리에서 진지하고 때로는 흥겹게 건반을 두드리던 그 할아버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감동받는 인연이 생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버스킹의 근본은 돈이 아니라 자유로움이다. 누구에게도 속박받지 않고 지시받지 않는,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책임하에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고 감동을 주려는 자유로운 이들이 바로 버스커들이다. 손뼉 치던 관객들 중 단 한 명의 사람도 티 박스나 모자에 동전 하나를 넣지 않아도 ‘에이~ 오늘 공쳤네.’라고는 여기지 않고 부디 즐거우셨기를 하고 바라는 이들이 바로 ‘버스커들’이라는 사실을 맑은 눈으로 목격하게 되시는 날이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그럼 왜 돈도 안 되는 걸 길바닥에서 합니까?”라고 누군가 또 묻고 싶으시다면 또 진심을 담아, 정중하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게 내 삶이지요. 난 젊으니까.”



마술사, 그 평범하면서도 신비한 존재



개방적이거나 폐쇄적이거나? 마술사는 이래저래 신비한 사람


사람들하고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이런저런 공간,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만났다. 어떤 사람하고 꽤 오랫동안 여러 차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그 사람이 하루는 이런 얘기를 내게 했다. “되게 협조적인데 묘하게 보여 주지 않는 게 있네요.”라고. 아무래도 무대 뒤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것과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는 시간이 완벽하게 다른 시간이고 그걸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보니 그렇게 보였던가 보다. 백스테이지까지 관객들에게는 보여 줄 수는 없으니.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또 하게 됐다. 〈길〉이라는 옛날 영화가 있다.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하는 차력사에 대한 영화인데 앤서니 퀸(Anthony Quinn)이라는 대배우가 주인공이었다. 차력 공연도 하고 마술도 하는 떠돌이 생계형 아티스트였다. ‘젤소미나’라는 키 작은 여성을 조수처럼 데리고 다녔는데, 앤서니 퀸이라는 배우가 워낙에 선이 굵은 상남자 같은 이미지여서 두 주인공의 대비가 무척 강렬했던 기억이 있다.

‘보여 주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라고 얘기하던 그분이 하는 말이 앤소니 퀸처럼 웃고 있는데 슬퍼 보이는 이중적인 느낌을 준다고 했다. ‘페이소스’라고 하는 그런 감정이겠지 싶다. 사람 사는 게 그렇지 않을까. 굉장히 밝은 성격이고, 사람들하고 활달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만, 항상 그렇게 유쾌하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행복하고 싶다’라는 게 삶의 상당 부분이 그렇지 않으니까 생기는 바람일 테니까.

‘행복하다’는 감정은 무언가를 순수하게 대할 때 느껴진다. 이를테면 마술을 하면서 행복한 건 내 공연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 덕분이고, 이 공연들로 인해서 좋은 사람들, 반가운 인연들을 만나서 그 관계를 계속 이어 가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 때문일 거다.

그런데, ‘순수하다’는 게 그냥 아무것도 접하지 않아서 순진하고 깨끗한 걸까? 아니면 많이 채이고 긁히며 수많은 상처를 입어서 그걸 열심히 치료하고 닦아서 깨끗한 걸까? 나는 ‘후자’ 같다고 여긴다. 마술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내가 생각해도 공연이 참 재미있는데 팔짱을 끼고 ‘어디 한번 웃겨 봐.’라고 싸늘하게 웃는 사람들이 꼭 한 명씩은 있다. 솔직히 딱밤 한 대 날리고 싶다. 그렇게 싸늘한 표정인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면서 표정이 조금씩 풀리고, 나중에는 손뼉을 치면서 웃고 좋아하는 걸 보면 그것처럼 기쁘고 행복한 것도 없지 싶다. 생각해 보면 ‘행복감’을 느끼는 건 짧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서 보내는 시간, 과정, 긴장감이 좋다. 그래서 내가 주로 행복한가 보다.

만약에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고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을 즐겨 보는 연습을 해 보면 어떨까? 1분(One Minute)이라는 시간은 어떤 경우에는 아주 짧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세상 지겨운 시간인 것처럼, 우리가 ‘행복해’라는 느낌을 갖는 그 순간에 이르는 과정을 즐겨 보면 좀 더 행복해질 거다. 엘리베이터에서 화살표 움직이는 걸 지켜보고 있는 1분은 굉장히 길지만, 라면에 물 올려놓고 끓는 것을 기다리는 1분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러니까 행복감을 느끼기 위한 시간도 즐겨 보는 연습을 해 보는 거다. 오케이?



그럼에도, 그러하기 때문에



마술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으나 방송 출연을 몇 번 했었고, 다큐도 몇 번 찍었다. 유튜브에 거리 공연가 김광중이라고 쳐 보면 나온다.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까지 부탁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쑥스럽다. <한국직업방송>이라는 방송국에서 시리즈로 만든 다큐인데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방송에 나왔다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지만 ‘버스커 마술사라는 내 일이 분명한 직업으로 인정받게 됐구나.’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보람인 셈이다.

이것 말고도 유튜브의 수많은 동영상 중에는 예전에 찍었던 <거리의 달>이라는 짧은 유튜브, ‘거리 마술사 김광중’ 다큐멘터리가 한 편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_v0YMDS7axc) 영상을 만든다는 두 친구가 만든 것인데, 호주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길거리 공연, 즉 ‘버스킹’을 하던 내가 많이 신기해 보였는지 찍어 보고 싶다고 해서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촬영에 응했었다.

당시 재미있게 찍었는데 막상 편집이 끝난 다큐를 보니 괜히 내 모습이 짠해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책을 쓰려고 오랜만에 이런저런 것들을 찾다가 그 다큐를 다시 보게 됐다. 오랜만이라 ‘내가 저 때는 저랬구나’ 싶었다. 그 다큐를 보면서 다시 하게 된 생각인데, 거리에서의 버스킹이든 다큐이든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그 사람만의 이야기’로구나 싶었다.

TV 쇼나 이미 만들어진 정식 무대에서 마술 공연을 하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주목한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하는 버스킹은 마술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쉽게 쳐다보는 일은 별로 없어서 내가 “두 유 라이크 매직?”이라고 외친다거나 혹은 앰프를 켜서 잡음을 일부러 좀 내는 식으로 사람들의 첫 관심을 하나하나 끌어모아야 하기 때문에 공연 중에 말도 많이 하는 편이다. 심지어는 마카레나 같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춤을 추기도 하는데, 다큐에서도 나왔지만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공연을 보여 주기 위해서 따로 학원에 가서 춤을 배우기도 한다. “재미있잖아요.”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이유가 그뿐만은 아니다.

공연에서 말을 하고 심지어 춤을 추기도 하는 이유는 마술이든 댄스 공연이든 모두 ‘관객들과 공연자가 함께 만드는 이야기’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하는 공연은 그날그날이 모두 다르고 심지어는 시간 시간마다 다 분위기가 다르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손뼉을 치면서 재미있게 공연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노숙자 한 명 때문에 분위기가 갑분싸가 되기도 하고, 이제는 그런 일을 거의 겪지는 않지만 그 장소의 관계자가 나타나서 잡상인 취급을 하면서 나가라고 하는 경우에는 기껏 살려 놓은 공연 분위기가 한순간에 망쳐지기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부러 무표정하거나 엄숙하게 공연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관객들이 내 공연에 깊게 빠져들어 그들로 하여금 호응과 관심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 코미디도 하고, 말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무엇보다 경험적으로 그래야 관객들이 더 재미있어한다. 보는 사람이 흥이 나고 재미있어야 나도 덩달아 힘이 나고 몸에서 에너지가 쏟아질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아무 호응 없는 공연을 혼자서 덩그러니 해내야 하는 날에는 체력도 빨리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버스커들에게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이야말로 흥이 나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원동력이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내 공연이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일 크다. 그냥 신기하고 재미있는 마술을 여러 개 전시하듯 보여 주는 단순한 마술이 아니라 보고 나면 오래도록 머릿속에 기억되고, 가슴속에 남아 있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공연을 하고 싶었다.

이를테면 어렸을 적에 봤던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그가 그린 그림 속에 있는 한 여성이 현실로 등장하는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화가가 그린 그림 속 여인이 그림 뒤로 들어갔다 나오면 나이 든 부인의 모습으로 화가의 옆에 나타나기도 했다가, 반대로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어서 다시 화가에게로 다가오는 그런 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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