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의 꿈이 가장 뜨겁다
구본석 지음 | 문예춘추사
맨손의 꿈이 가장 뜨겁다
구본석 지음
문예춘추사 / 2021년 12월 / 276쪽 / 15,000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꿈’
마침내 ‘인권 변호사’가 되기까지
인권 변호사: 내 꿈은 인권 변호사였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다. 사실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는 말은 반쯤은 허풍이다. 변호사 윤리 장전 전문에 따르면, 모든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 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 대형 로펌에서 기업 법무를 전문으로 한다고 해서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주변에 아는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중엔 나보다도 인권 의식이 투철하신 분들이 훨씬 더 많다.
공익 인권 변호사 일을 한다고 명함을 내미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다. 반대로 공익 인권 변호사라고 해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당장 나만 해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수익 모델을 구상하고, 네임 밸류를 높이기 위해 유튜브(Lawmantist 구본석 채널)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택한 공익 인권 변호사로서의 지향점은 수지가 맞지 않더라도, 시간이 나지 않더라도, 시민 사회의 공익 또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과 관련된 사건을 맡으려고 노력하는 삶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아실현을 해 보겠다는 것이지, 거창한 사회 정의까지는 잘 모른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때 가장 행복한 것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 길에 발을 들이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권의 ‘인’자도 몰랐던 중학교 시절, 인권 변호사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여서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근 20년을 돌고 돌아 드디어 그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만약 그 여정이 이렇게나 길고 힘든 것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진즉에 다른 길로 돌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련했던 건지, 알고도 모르는 척했던 건지, 정말 애도 많이 먹었고, 고생이 쌓일수록 그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마지막 변호사 합격자 발표 날, 명단에 ‘구본석’ 이름 세 글자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20년을 참아 온 눈물을 마음껏 쏟아 낼 수 있었다.
나는 꿈을 꾼다, 고로 존재한다
꿈이란 무엇인가: 어렸을 때는 누구나 꿈 하나 정도는 가지고 시작한다. 경찰관, 소방관, 과학자, 발명가, 의사, 판검사, 변호사, 선생님, 가수, 영화배우, 아나운서, 연예인 등. 중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장래 희망 하나 정도는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대학을 가고 어른이 되면 현실에 치여 어릴 적 꿈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많다. 적어도 내 경험상, 만나 왔던 어른 중에 자신의 꿈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꿈을 이루지 못해도 꿈을 좇아가는 사람 자체도 많지 않을뿐더러, 꿈 자체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리트에서 실패하고 재수하거나, 서른 넘어가서 아무 재산 없이 빚만 지고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나보고 모두들 멋있다고 했다. 아직도 꿈을 좇아가는 삶이 부럽다고 했다.
그런데 꿈이란 무엇일까? ‘꿈’이란 단순히 어떤 직업을 갖게 되는 것 혹은 무언가를 얻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나 역시 꿈은 어디에 도달하면 이루고 마는 ‘점(point)’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름의 인생 역경을 거쳐 온 지금 내게 꿈은 단순한 ‘점’ 그 이상의 것이다.
즉 꿈은 ‘선(line)’이다. 나는 서울대 입학이라는 꿈을 꾸었고, 그 점에 도달하자 새로운 점을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그 점에 도달하면 또 새로운 점을 찾을 것이고, 그 점들이 모이면 일정한 방향을 갖는 선이 될 것이다. 결국 꿈은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점들의 집합인 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점들은 잘 찍는데 그 점들이 왔다 갔다 한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그 사람은 꿈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기실 그것은 헛된 꿈이라고 말하고 싶다. 꿈이 선이라면 일정한 ‘방향’이 필요하다. 그래야 길을 잃어도 그 방향을 좇아 살아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꿈이란 단순한 선이 아닌, 방향성을 갖는 벡터(크기와 방향을 가진 물리량)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준비된 자에게만 꿈은 현실이 된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체력부터 길러라
도전의 시작: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하는 말, 결전의 날 바로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 그것은 바로, ‘체력을 길러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매우 식상하게 여긴다. 진짜 귓등에 피가 날 정도로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체력의 ‘ㅊ’자만 꺼내도 귀를 막고 손사래 칠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내가 다른 사람보다 가장 자신 있는 영역이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반드시 그 자리까지 갈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은 이유는 바로 ‘체력’이다. 10대, 20대는 그러려니 했는데, 30대가 되니까 진짜 하루하루 피부로 와닿고, 주변 4~50대를 보면 하루하루 그냥 버텨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애초에 체력이 약하거나 고갈된 상태에서는 도전 의식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다. 꿈을 꾸지도 않을뿐더러, 꿈을 꾸더라도 그냥 막연한 구름 속의 무언가 정도로만 느낄 뿐 ‘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전의 대전제는 가히 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의지력: 이제는 너무 잘 알려진 래디쉬(radish, 서양 무)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피실험자들에게 무작위로 자신 앞에 주어진 음식만을 먹고 수학 문제를 풀게 하는 실험인데, 실험 몇 시간 전부터 굶은 상태에서 참여해야만 한다. 이때 실험자 한 그룹에게는 무(radish)를 먹게 했고, 나머지 그룹에게는 갓 구운 맛있는 초콜릿 쿠키를 먹게 했다. 무를 먹은 사람들은 노릇노릇한 쿠키 향을 맡을 수밖에 없었고, 옆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을 지켜보면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음식을 다 먹고 난 후 수학 문제를 풀게 했는데, 피실험자들에게는 쉬운 문제라고 알려 주었지만 사실은 답이 없는 문제였다. 초콜릿 쿠키를 마음껏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평균 20분 동안 안 풀리는 문제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지만, 무를 먹었던 사람들은 겨우 8분가량 버티고 문제 풀이를 포기해야만 했다.
이 실험은 ‘의지력은 소모성 자원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으로 알려져 있다. 즉, 두 그룹은 같은 정도의 의지력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그중 생무를 먹은 그룹은 진짜 먹고 싶은 초콜릿을 먹지 못하고 참느라 자신들의 의지력(혹은 자제력)을 이미 사용해 버린 것이다. 의지력이 이미 소모된 상태에서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려니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반대로 초콜릿 쿠키를 먹은 그룹은 의지력을 소모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에 접근했고, 자신이 가진 의지력을 쏟아 내느라 무를 먹은 그룹에 비해 더 많은 시간 동안 문제 풀이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의지력이라는 것 역시 훈련을 통해 그 절대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실험을 통해 드러났는데, 틈날 때마다 자세를 바르게 유지하도록 지시받은 그룹이 매 순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그룹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의지력 향상을 보인 경우도 있었고, 체력 단련이나 공부, 금전 관리 등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훈련받은 그룹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더 좋은 의지력을 가지고 성과의 개선을 보인 일도 있었다. 즉,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은 공부도 더 진득하게 할 수 있고, 금전 관리도 참을성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건전하게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두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체력 관리는 가장 확실한 의지력 강화 훈련이다. 체력 관리라는 것은 크게 ① 규칙적인 습관, ② 운동, ③ 좋은 영양 상태로 요약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① 규칙적인 습관은 의지력을 소모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② 운동은 절대적인 의지력 용량을 키워 주는 가장 직접적인 훈련이며, ③ 좋은 영양 상태는 의지력 소모율을 저하시켜 주는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분별, 그것이 곧 앎이다
메타 인지와 학습의 상관관계: 인지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스무 살을 넘으면 절대 변하지 않는 두 가지 상숫값(constant)이 있는데, 하나는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IQ(지능 지수)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격은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이 되고 겁이 많은 사람이 겁이 없어지는 등의 ‘성향’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굳이 근사하여 말한다면 MBTI 지표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사실은 IQ 값이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리는 앞으로 수많은 테스트들을 거쳐야 하고 심지어 직업을 가지고 나서도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한데, IQ 값이 고정되어 버리면 IQ가 낮은 사람들은 자신이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메타 인지와 관련하여
에서 방영한 ‘전교 1등은 알고 있는 공부에 대한 공부-1편’ 다큐멘터리를 보면 《메타 인지와 학습》이라는 전문 학술지에서 25년간 연구한 결과 메타 인지가 IQ 값보다 성적을 훨씬 더 잘 예측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IQ는 성적을 25% 정도만 설명해 주지만, 메타 인지는 성적의 40% 정도를 설명해 준다고 한다. 그리고 더욱 희망적인 사실은 IQ는 오랜 훈련을 통해서도 나아지기 어렵지만, 메타 인지는 성공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재학습 vs 셀프 테스트: 팀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다. 학생들은 서로 관련성이 없는 단어 50개씩 2세트가 5초씩 쌍으로 제시(예. 사자-도라지, 냉이-상추)되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각 세트마다 서로 다른 학습 방법으로 암기하도록 지시받았다. 한 가지 방법의 학습 세트가 끝날 때마다 시험을 쳐서 그 두 가지 학습 방법의 효과를 서로 비교해 보는 실험이었다.
한 번은 방금 공부한 것을 그대로 다시 한번 읽어 보게 하는 ‘재학습’이었고, 다른 한 번은 한 번 공부한 내용을 퀴즈처럼 스스로 시험 볼 수 있도록 하는 ‘셀프 테스트’였다. 놀랍게도 재학습은 43점, 셀프 테스트는 53점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 단순히 같은 것을 반복 학습하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셀프 테스트를 거쳐 가며 확인 학습을 하는 것이 무려 10점의 점수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도 있듯이(예전에는 종이 대신 ‘죽간(竹簡)’이라는 대나무 조각에 글씨를 새기고 가죽끈으로 죽간을 두루마리처럼 묶은 것이 책이었음. 위편삼절이라는 말은 그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책을 무한히 반복해서 읽었다는 말), 지금까지는 무작정 반복 학습하는 것이 학습의 절대 진리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반복 학습이 학습의 제1원리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단순 반복 학습만을 해서는 효율적인 공부를 할 수 없다. 끊임없는 셀프 테스트를 통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계속 확인해 나가면서, ‘아는 것은 확실히 알고’, ‘모르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인정하면서 알아 나가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다.
삶의 기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신뢰의 가치: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는 라틴어 법언으로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는 로마법의 ‘신의 성실의 원칙(bona fide: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 전 세계 각국의 민법과 국제법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약속이 당사자 사이에서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도 약속을 지키려고도, 약속을 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약속을 쉽게 깨는 사람은 신뢰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아무도 그 사람 말을 믿어 주지 않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 사회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친구로부터 돈을 빌리고 한 달 뒤에 갚기로 약속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약속을 지킬 기미도 안 보이고 그런 약속을 한 사실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손절 대상 1순위다.
마찬가지로 돈을 대출받아도 굳이 안 갚아도 되는 사회에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돈을 내어 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이 돌지 않아 경제가 마비될 것이다.
한번 잃으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뢰(믿음)이다. 신뢰를 한 번이라도 잃으면, 백만 시간을 투자하고 억만금을 주어도 그것을 절대로 만회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뢰는 곧 가치다. 사람들은 신뢰가 높은 사람에게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을 사람에게는 웃돈을 얹어 주고서라도 일을 맡긴다.
애플폰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고가임에도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 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애플폰은 보안이 뚫리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기반하는 것이 제일 크다.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시켜도 흥행을 보증하는 유재석의 몸값은 200억 원을 호가한다. 이러한 것들을 두고 ‘신뢰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애플이나 유재석 정도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이 내뱉는 모든 말에 책임져야 한다. 약속을 했다면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지키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지금 당장은 그 약속 지킴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그 믿음이 차곡차곡 쌓여 가면 언젠가는 모두가 기댈 수 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믿음부터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는 원래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무언가를 할 때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세부 사항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던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문제점이나 불가사의한 요소가 세부 사항 속에 숨어 있다는, 즉 어떤 것이 대충 보면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해내려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위키백과 참조).
쉬운 말로 풀어 보자면, 악마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어떤 문제를 쉬워 보이도록 현혹시키고 그에 걸려든 우리는 99%까지는 부드럽게 도달하다가 나머지 1%에서 막히고 마는데, 그 1%는 도저히 찾을 수 없도록 악마가 꽁꽁 숨겨 놓았다는 뜻이다. 요컨대, 어떤 일이 도저히 잘 풀리지 않는 난관에 봉착해 있다면 그 답보 상태의 원인이 사실은 매우 사소한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데, 어떤 일이 되느냐 마느냐의 싸움은 0에서 99까지를 채우는 것이 아닌 나머지 1%를 채우느냐 마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꿈을 이루는 자와 꿈을 이루지 못하는 자는 대단히 큰 차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이 한 장 차이, 1점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들은 자신의 모든 기력을 그 나머지 1%에 쏟아붓는다.
최상위권의 프로 정도 되면 이미 모르는 것들은 없다. 알아야 할 것도 다 알고, 해야 할 것도 다 할 수 있다. 결국 극도로 긴장되는 실전에서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뽐낼 수 있냐 마냐의 문제만이 남아 있다. 긴장하지 않고 최고의 컨디션에서 자신의 잠재력까지 끌어내는 사람은 챔피언이 될 것이고, 긴장하다가 페이스에 말려 조금의 실수라도 할라치면 패배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