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답지 않은 세계
홍정수 지음 | 부키
___답지 않은 세계
홍정수 지음
부키 / 2022년 10월 / 280쪽 / 15,000원
첫 번째 이야기 - 요즘 것들의 유별난 취향
할매니얼은 그냥 복고가 아니라‘구수한 흑임자 음료가 유행이고, 배우 윤여정에게 CF 러브콜이 쇄도하고, 펑퍼짐한 치마와 꽃무늬 카디건이 불티나게 팔린다.’ 유통가에서는 MZ세대가 유독 할머니 스타일을 좋아한다며 ‘할매니얼(할매+밀레니얼)’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냈다. 최신 기술에 환장하고 부모 세대를 손쉽게 무시하면서도 할머니 스타일엔 열광하는 MZ세대는 역시 알다가도 모를 존재인 걸까?
외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난 MZ: 우리 집의 가장은 아빠였고 육아를 전담한 건 엄마였다. 내가 할머니 손에 맡겨진 기간은 인생을 통틀어 몇 달 되지 않는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두 분 모두 서울에 사셨는데도, 할머니 집에서 잠을 자는 건 1년에 두 번 명절 때가 전부였다. 말씀이 별로 없으시지만 늘 나를 짠하게 여겨 주시는 친할머니, 아직도 에너지가 넘치셔서 ‘왈가닥’이라는 말밖엔 표현할 길이 없는 외할머니. 두 할머니는 고맙고 익숙한 분들이지만, 나와의 관계에선 어딘가 은근하게 어색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몇 년 전 친구 A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오래도록 슬퍼하던 모습이 내게는 조금 색달랐다. 나 역시 할머니들을 무척 사랑하지만, ‘언젠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나도 저만큼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을 정도로.
A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셨다. 그래서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꼬마 시절부터 A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아빠는 집에 거의 없는 사람, 엄마는 그보다는 좀 덜 없는 사람이었고, 늘 곁에서 자신을 귀여워해 준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한편 친구 B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구 반대편으로 유학을 떠나더니 그곳에 눌러앉아 직장을 잡았고, 한국에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나 들어올까 말까 하지만, 늘 친구들보다도 할머니를 먼저 찾는다. 말하는 것만 보면 부모님과는 비즈니스 파트너보다 더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은데, 할머니에게만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랑스러운 손녀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런 의미다. 깍듯하게 존대해야 하는 여느 집안 어르신과는 다르다. 반말로 농을 치고 떼쓰고 애교 부려도 되는, 가장 살가운 가족이자 ‘비빌 언덕’이다. 동시에 당신께서는 6ㆍ25 전후의 비참함을 견뎌 냈고, 가부장제에 짓눌리며 살아오셨으면서도, 철없는 손주들에게는 모든 것을 내주려 하는 ‘전통적이고 희생적인 어머니상’을 간직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일하는 엄마들이 심한 경우 “자식 농사 놓아 버린 여편네”라는 서러운 취급까지 받았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의 엄마들은 맞벌이를 꽤 많이들 했다. 피아노, 태권도, 보습 학원만으로는 탁아소 역할에 한계가 있어서였을까? 방과 후에 근처 할머니네로 하교해서 엄마가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그 시절 부모님들은 방학 때면 시골 할머니 집에 아예 한 달씩 애를 맡겨 놓기도 했다. 온종일 빈집에 어린애들을 저들끼리 덩그러니 둘 순 없으니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여름 방학을 보내고 개학 날 새까맣고 통통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친구들은 대부분 그런 경우였다. 그랬던 밀레니얼들이 어느덧 아이를 낳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고된 이중 노동의 시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과거에 내 곁엔 없었던 나이 든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낳은 아이를 키워 달라고 떠맡긴 채 일터로 향한다. 그렇게 자라난 다음 세대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각별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대가족 틈바구니에서 자란 중장년층에게도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자 기둥이신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그들만의 집단적 감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MZ세대의 감정과 같지는 않다. ‘맞벌이 부모님의 커다란 빈자리를 메워 준’ 존재로서의 할머니, 그리고 ‘대체 불가한 푸근함과 아늑함을 지닌’ 존재로서 할머니라는 맥락을 잃은 채 마케팅 용어로 쓰이는 ‘할매니얼’이라는 단어는, 그래서인지 어딘가 약간 공허한 분위기를 풍긴다.
맥락을 잃고 납작해진 ‘뉴트로’: 복고 유행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어도 어느 시대에나 대중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문화의 황금기’라 불렸던 1990년대가 복고의 타깃 시대로 떠오르면서 레트로 마케팅이 화려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변주가 너무 다양해지다 보니 이젠 레트로 앞에 ‘뉴’까지 붙어 ‘뉴트로’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다. 그런 뉴트로 트렌드를 MZ세대론과 엮으면서 만들어진 ‘할매니얼’이라는 단어가 재치를 잡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쓰임새를 보아하니 정작 중요한 맥락은 놓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장년층에게는 촌스럽고 그리운 것이 MZ세대에게는 신기하고 새로운 호기심의 영역이라서, 요즘 애들 사이에 할머니 스타일이 인기 폭발이라는 생각은 조금 납작하다. 혹시 아름다운 옛 추억 속에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유행하는 걸 그저 반가워하는 데에서만 그친 해석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조금이라도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라며 무시하는 MZ세대가 왜 유독 할머니라는 존재는 거부하지 않는지, 왜 할머니의 것을 아끼고 더 확장하려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것들이 트렌드를 이루는 이유는, 우리가 구수함과 다정함, 그리고 여유 있는 따뜻함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함, 안도감, 할머니가 우리에게 주었던 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것이 할매니얼 유행의 본질적인 이유다. 나는 할매니얼이라는 단어가 그저 마케팅이 좀 더 예리해지고, 네이밍이 좀 더 화려해지며 나타난 ‘한 철 유행어’로만 여겨지지 않길 바란다.
취향과 갬성 찾아 삼만리취향은 ‘개인주의자 선언’이다. 남들의 취향을 존중할 테니, 내 취향도 존중받고 싶다는 선언이다. 취미 생활로 음악 감상, 영화 감상, 독서 중 하나를 골라야 했던 옛 시절엔 답답해서 다들 어떻게 살았을까? “사실 난 이런 걸 좋아해요.”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면 “다 큰 어른이?” “그렇게 할 게 없냐?”처럼 핀잔 섞인 반응들이 돌아오던 그 시절 말이다. 다행히도, 무난하지 못한 것이 문제로 여겨졌던 시절을 지나 이제 우리는 ‘오직 나만의 취향’과 ‘요즘 핫하다는 갬성’을 찾아 매일 헤매고 있다.
‘개인의 취향’이라는 방패: 취향은 ‘고마운 방패’이기도 하다. “그냥 그게 내 취향 저격이라서.”라는 말은 때로 맥락에 따라 경고일 수도 있다. 내가 무엇을, 왜, 어떤 점에서 좋아하는지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라면 얼마든지 기꺼운 마음으로 답해 줄 수 있다. 다만 내 취향의 이유와 배경을 당신 멋대로 짐작하고 평가하고 해석하는 것은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어른들에게는 이런 태도가 싹수없고 무례해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여간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라며 혀를 끌끌 차게 만들지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개취(개인의 취향)’라는 방패가 없던 시절에 쏟아지던 질문들이야말로 정말 공격적인 창이었다. 막말을 막말인 줄도 모르고 무심코 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
고맙게도 이젠 시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수많은 편견으로 겹겹이 싸인 질문 세례에 더는 일일이 해명할 의무가 없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괜찮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이 “남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는데, 난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시대라 다행이다.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좋거)든요.” 90년대에 이미 크롭티를 입고 저녁 메인 뉴스에 등장해 X세대의 당당함을 보여 줬던 우리의 ‘조크든요’ 선배. 여유로운 미소가 강단 있어 보였지만, 아마 사방에서 이러쿵저러쿵 품평하던 탓에 마음고생을 조금 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그들이 한 땀씩 쌓아 올려 준 ‘뻔뻔함’ 덕분에, 우리는 이제 한결 더 튼튼하고 자유로운 취향의 시대를 열어 나가고 있다.
어렸을 땐 나도 엄마가 입으라는 대로 입고, 하라는 것만 해야 하는 줄 알고 살았는데, 조금씩 나이를 먹고 조금씩 정신을 차린 뒤에야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소심한 모험이 시작됐다. 기타를 배우겠다며 손톱을 바짝 깎고 동네 학원에서 초등학생들과 교습을 받았고, 신발 코에 번쩍이는 금속이 달린 스니커즈를 끌고 다녀서 “누구 조인트 까려고 그러니?” 같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시판 다이어리가 마음에 안 들었던 나머지, 다다닥대는 구식 잉크젯 프린터로 커버는 물론 속지까지 밤새 뽑고 접어서 만든 시답잖은 다이어리를 작품이랍시고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기도 했다.
엄마의 성에 영 차지 않는 남자친구를 만나다가 “내가 널 어째 쉽게 키웠다 했더니, 다 커서는 어쩜 이렇게 건건이 말을 안 듣니?” 하는 잔소리까지 들었던 것은 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좋아할 수 있는지, 좋아하고 싶은지를 알아보려고 한계 없이 시도하고 시험했던 그 시기야말로 도전의 출발점이었다. 개성과 취향을 형성해 가는 과정은 길고도 느리다. 남들이 주는 선택지를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접 고르고 추구하고 실행하는 것, 그렇게 선택한 것들을 내 안의 일부로 자리 잡도록 다져 가는 것, 한발 더 나아가 때론 남들의 부당한 시선을 이겨 내는 것, 남들의 끈덕진 평가를 받아치기 위해 연습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취향을 찾고 이뤄 가는 건 문자 그대로 주체성을 이룩하는 일련의 과정인 셈이다.
두 번째 이야기 - 모순덩어리가 살아가는 법
FIRE족과 YOLO족의 뿌리는 같다비교적 최근까지 MZ세대를 가장 욕먹게 했던 단어 중 하나는 ‘파이어(FIRE)족’이었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돈 벌어 40대에 은퇴하겠다는 이상한 야심에 차 있는 젊은이들 말이다. “젊은것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생각은 안 하고 주식으로 돈이나 굴리겠다는 거냐?”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은 투기나 조장하는 놈들이다.”처럼 한심함을 가득 담은 공격들이 날아든다. 그런데 바로 몇 년 전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그 시절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휩쓴 단어는 ‘욜로(YOLO)족’이었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니 내일 따윈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놀겠다는 그 자세 말이다. 한 세대가 바뀐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몇 년 지났을 뿐인데, 그야말로 극에서 극으로 라이프 스타일이 뒤집힌 것이다.
‘미래가 두렵다’라는 하나의 마음: 나는 욜로족도 파이어족도 아니다. 욜로로 살기엔 남은 생이 너무 길 것 같고, 파이어로 살기에는 자본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욜로 하고 싶은 욕망’과 ‘파이어 하고 싶은 욕망’이 상충한다. 요즘 들어선 마음속 욜로파들이 유난스럽게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 친구들이 애용하는 대표 카피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다. 내가 1년을 뼈 빠지게 일해야 버는 돈이 누군가에겐 ‘잃어도 그만’인 소액 투자 자금에 불과하단 걸 깨달을 때, 회사를 때려치우고 세계 여행을 떠난 지인이 대화방에 올린 사진들이 유난히 부러울 때, 자신을 위한 투자라며 수백만 원어치 피부과 시술권을 아무렇지 않게 끊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럴 때 “너는 나중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아끼고 또 아끼며 사니.”라는 속삭임을 들으면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러다가도 “딱!” 하고 죽비 소리가 들리는 순간이 있다. 회사 선배들이 온종일 일에 시달리며 늦게까지 야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파이어파들이 다시 들고일어나 “정신 똑바로 차려!”라고 경고하며 어깨를 내리친다. 현실을 직시하면 정신이 번쩍 들긴 한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스트레스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데, 월급 상승률은 전혀 극적이지 않은 현실 말이다. 그 틈을 노려 파이어파들은 “저렇게 고된 삶을 이어 가면서 정년 채우고 싶어?” “50살 넘어서까지 저렇게 일하고 월급에 연연하며 살고 싶어?” 같은 질문들을 숨 돌릴 틈도 없이 쏘아 댄다. 결국 나는 코너에 몰린 듯 “아니, 더 일찍 자유로워지고 싶어.”라고 답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 굴복하고 만다.
만약 욜로와 파이어가 반대되는 태도라면, 나처럼 팔랑대는 마음가짐은 ‘진보이면서 동시에 보수이고 싶다.’처럼 모순된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게는 2가지 욕망이 정말로 다 들어 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사실, 욜로의 뿌리와 파이어의 뿌리는 같기 때문이다. ‘미래가 두렵다’는 강렬한 불안감 말이다.
걱정과 불안을 대하는 두 가지 자세: 두 라이프 스타일을 가르는 것은 뿌리가 아니라 각자의 방법론과 환경이다. 욜로족은 ‘인생 2막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생각으로 미래를 잊고 현실의 1막이라도 즐겁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삶이란 즐거운 것!”을 외치는 천진난만한 자들이라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찾지 못한 사람들 말이다. 반대로 이런 인생 1막에서 공격적으로 벗어나 한시라도 빨리 2막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파이어족이다. 가늘고 긴 1막의 삶을 힘겹게 이어 가는 대신, 구체적이고 확실한 은퇴 목표를 세워서 불도저처럼 짧고 강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떼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자본을 어느 정도 확보한 ‘동수저’ 급이라면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젊은 놈들이 한심해 보이겠지만: 평생 성실하게 일했고 그만큼 보답받은 삶을 사신 분께서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투자(혹은 투기)로 생활비를 벌겠다는 이들이 탐탁지 않을 것이다. 땀 흘려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돈으로 배나 불리겠다는 젊은 놈들이 일견 한심한 족속으로 보일 테니까. 반대로 뼈 빠지게 살았지만 여전히 노후가 아슬아슬한 분들께서는 “고생해 봐야 보람 없을 인생, 재미라도 찾겠다.”는 이들을 보면 성이 나실 것이다. “열심히 해도 이렇게밖에 안 되는데, 너네는 빚쟁이로 살고 싶냐?”라는 한탄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그렇게 수많은 잔소리와 비난과 걱정을 견디면서까지 욜로족과 파이어족 사이 어딘가를 헤맨다면, 그 이유에도 좀 더 귀 기울여 볼 때가 된 게 아닐까. 그 누군가가 택한 길이 너무 이쪽 혹은 너무 저쪽으로 보인다고 해서 비난만 할 수는 없다. 결국 누가 더 나은 과정을 거쳐 더 좋은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어쩌면 그 미래의 시점에 다다르더라도 쉽사리 평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명품 플렉스와 짠테크의 공생1994년생 내 동생은 온갖 포인트에 집착하는, 말하자면 ‘실속파’다. 멤버십 포인트, 간편 결제 포인트, 적립 포인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각종 앱을 수십 개씩 깔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요, 지역 사랑 상품권처럼 결제 혜택이 있는 서비스들의 발행 일정도 줄줄이 꿰고 있다. 하도 포인트와 할인 혜택을 챙기다 보니 아버지가 “작은 것들에 너무 신경 쓰면 정작 큰 것은 놓친다.”며 잔소리하실 정도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도 동생이 알려 준 덕분에 10퍼센트 할인 혜택이 있는 서울 사랑 상품권이 나오면 수십만 원어치를 사서 생활비에 쏠쏠하게 활용하고 있다. 동생이 챙긴 혜택은 한 건당 따지면 티끌 수준이지만, 전부 합치면 못해도 100만 원은 넘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짠테크’의 정석이다. 내 동생뿐만 아니라 꽤 많은 2030들이 이런 혜택을 적어도 두어 개 이상씩은 챙겨 가며 살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런 사람들이 때로는 명품처럼 비싼 것을 사는 데는 생각보다 과감하다는 사실이다. 한쪽에선 ‘고생한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명품 가방에 수백만 원을 쏟으면서도, 다른 쪽에서는 각종 포인트와 쿠폰의 달인이 되어 가는 2030들. 아마 MZ세대의 경제생활에서 가장 모순으로 보이는 것 역시 ‘명품 플렉스’와 ‘짠테크’라는 수식어가 동시에 붙는다는 사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