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유환기 지음 | 행성B
대기업 들어가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유환기 지음
행성B / 2022년 4월 / 167쪽 / 12,000원
1년 차 ? 엄마, 아빠! 나 합격했어!
시작은 좋았지
취업, 그 설렘에 관하여: 이따금 즐기는 카드나 화투 게임에는 ‘쪼는 맛’이란 게 있다. 이는 손에 쥔 패를 살살 올려 확인할 때의 쫄깃하면서도 선득한 마음인데, 게임이 아니더라도 그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 취업 준비도 그중 하나인데,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폐까지 조여 올 정도의 그 맛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면접 테이블의 중압감을 이겨 낸 후 받은 합격 메시지는 한껏 조였던 횡격막에 평화를 가져다줬다. 엄마! 아빠! 나 합격했어!
그런데 애지중지하던 새 신발 뒤축을 대충 구겨 신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붙여만 주면 충성하겠다는 다짐은 기대보다 적은 월급과 기대보다 긴 근무 시간에 대한 불만에 점점 희미해져 갔다. 설렘이 전부였던 초년생 시절은 가고 이제는 새로운 것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32년 근속하신 아버지에 대한 경외감, 나는 3년이라도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3일 전이나 후나 한숨 나오는 일상까지. 그놈의 쪼는 맛을 견뎌 내고 도착한 곳에서마저 신경 쓸 게 이리 많은지 몰랐다. 불행 중 다행인지 설렘이 사라진 곳에는 맷집이란 이름의 근성이 돋아나 있었다.
숫자랑 덜 친해요. 분석은 좀 지루하구요: 나는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런데 경제학도로 4년을 보내며 스스로 가장 많이 들던 생각은 내가 숫자랑 참 안 맞는다는 거였다. 중학교 땐 수학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방학이면 학원을 세 개씩 다녔고, 자의 반 타의 반 수학책만 들여다본 날도 있었다. 덕분에 제법 친해졌다. 아니, 친해진 줄 알았다. 그러나 억지로 끌고 온 수학과의 관계는 버거웠고 고등학교 2학년에 접어들며 결국 놓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돈을 불리는 법을 배우려 선택한 경제학과에서는 돈을 아끼는 법을 가르쳤다.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쓰는 게 경제학의 핵심이라나 뭐라나(아차 싶던 개론 수업 후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어야 했다). 각종 사회 현상을 숫자로 해석하는 경제학을 공부하려면 수학이 기본이었다.
미분 적분학, 경제 수학, 계량 경제학처럼 이름부터 대놓고 수학 기반인 수업들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전과하려면 성적이 좋아야 했으니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새로 입시를 하기엔 귀찮았기에 그냥 계속 다니게 됐다. 쉽지 않은 졸업 후에 드디어 회사에 들어갔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숫자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영업직으로 지원했다. 영업을 제외하면 다른 문과 직군은 채용 정원이 턱없이 적고 공고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업이야말로 기업의 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숫자와 함께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그것들을 분석하는 작업도 추가됐다. 업무는 경제학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업무할 때 느끼는 고충도 경제학을 공부할 때와 비슷했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국내외 숫자들을 풀어내 의미를 부여하기, 똑같이 한숨 쉬며 시작했다 한숨으로 마무리되는 일상들까지.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영업맨이다. 영업의 상징은 외근이다. 팀장님은 매일 나가서 일하라신다.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답을 찾으라신다. 문제는 챙겨야 하는 내근 업무 양도 만만치 않단 점이다. 발로 뛰는 건 분명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무실에서 준비해야 한다. 현장 점검을 위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자료를 만들고 유관 부서와 협의까지 해야 하니 여러모로 정신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나가라며 호통 일갈(一喝)하시는 팀장님이다.
쉽지 않은 회사 생활도 시작되었지
너 정말 지방 근무해도 괜찮겠어?: 대부분의 기업 공채에서 필수로 물어오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지방 근무가 가능한가?’ 서류에 이어 면접에서도 묻곤 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늘 고민되는 질문. 특히 영업이나 직군 통합으로 뽑는 상황에선 등장 빈도가 특히 높은 편이다. 신입들은 입사하자마자 통과 의례를 거친다. 배치 면담이라는 이름의 지역 근무자 선출 면담이다.
면담방에는 비장함마저 감돈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지방행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역 근무를 해야 하지만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방으로 보내신다면 그만두겠어요!’ 정도의 굳은 심지를 보이면 덜 보내긴 한다만, 그것도 공공연한 모두의 전술이 돼 버릴 시엔 곤란해진다. 가장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인 건 대학은 서울에서 나왔지만 지방에 연고가 있는 친구들이다. 홈타운으로 가지 않아야 하는 명분이 없어 꼼짝없이 팔려 갈(?) 수밖에 없다. 바로 나처럼.
지방 연고자인 나의 배치 면담은 정말 짧았다. “어, 너 대구 살았었네. 거기서 엄마 밥 먹으면서 출퇴근하면 좋겠다. 그치?” “그렇긴 한데 대학은 서울에서 나와서요. 되도록 서울에서 근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그냥 웃었다. ‘응. 너 지방 근무 확정.’ 이렇게 말하는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더니 딱 한 마디를 했다. “근데 너 입사 지원서에 지방 근무 가능 여부에 체크했더만?” 지방 연고가 있다는 사실에도 꿋꿋이 서울 근무를 하고 싶다고 어필했지만 이 말을 듣자 그저 말문이 턱 막힐 뿐이었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동기들이 왜 그렇게 빨리 끝났냐며 화장실 다녀온 줄 알았다고 했다. 그들을 뒤로하고 동대구행 기차표를 보기 위해 어플을 켰다.
그렇게 대구에서의 지방 근무의 막이 올랐다. 처음엔 지방 근무를 하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고향집은 명절에나 잠시 내려오는 곳이었는데, 여기서 앞으로 몇 년을 지내야 한다니. 며칠 후면 다시 올라가야 할 것 같아 쉽사리 짐을 풀질 못했었다. 그래서 한 달간은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세탁된 속옷을 받아 들고 캐리어에 도로 넣는 아들의 기행을 어머니는 별말 없이 바라보셨다.
그래도 결혼 전에 부모님과 살 마지막 기회라는 인사팀의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본가에 살게 되면서 엄마 아빠와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주말마다 시간을 보내며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역시나 어릴 때처럼 종종 혼나기도 했지만 심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셈이니 월세며 생활비가 안 들어 여윳돈으로 한 달에 한 번은 클래식 공연을 다녀올 수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삶의 질이 올라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2년 차 ? 1년만 더 다니면 나아질 거라면서요!
둥글게 둥글게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두루뭉술함의 미학: 연초면 담당 상무님과 간담회를 가지곤 한다. 이때마다 상무님은 구성원들의 새해 목표를 물으시는데,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하는 팀장님의 목소리엔 올해에도 은근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결전의 날에는 어김없이 다음과 같은 목표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금년엔 지역 전체 영업왕이 되겠습니다!” “작년에 큰 상을 받았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올해엔 더 높은 실적을 내고자 합니다.”
다들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 시행할 건지 구체적인 지표까지 앞세우며 본인들의 목표를 이야기했고, 이 목표 배틀에 상무님의 입가엔 만족감이 번진다.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는. 나는 말했다. “어…… 작년엔 전반적으로 제 성장이 더뎠던 것 같아요. 준비 운동도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해 나가려고요. 거래처 실적도 나아질 수 있으면 그것도 또 좋겠죠.”
상무님 표정이 알쏭달쏭하다 못해 아리송하다. 부자연스럽게 움찔대는 입 주위 근육을 보니 뭔가를 말씀하시려다 참으시는 듯하다. “응, 좋은데…… 너무 두루뭉술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짜 보면 좋겠어.” 내가 생각해도 모호한 목표 설정이다(그 와중에 ‘좋은데’라고 덧대 주신 상무님은 역시 임원이시다!). 하지만 업무적으로 특별히 더 해 보고 싶은 부분은 딱히 없기도 했고, 그렇다고 해서 회사 사람들 앞에서 개인 목표는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빨리 순서를 넘겨 버리고 싶었다.
전기장판 위에서 귤이나 까먹으면서 시간 때우기엔 나름 괜찮은 주제. ‘두루뭉술 vs 구체적’ 그냥 읽으면 아니 된다. 구.체.적. 딱딱 끊어 줘야 한다. 어떻게 이런 뾰족뾰족한 자음들만 모아서 만들었는지 참 삭막한 단어다. 반면에 두루뭉술은 이름부터 귀엽지 않나. 글자를 구성하는 철자들도 몽글몽글한 게 마치 복슬복슬한 강아지 엉덩이를 쓰다듬는 느낌이다.
아무튼 한 살씩 더 먹어 감에 따라 점점 구체적인 계획과 목적의식을 가져야 했다. 이어서 늘어나는 정신없고 지치는 나날들. 사회인이 된 지금은 구체적인 뭔가를 해내지 않으면 열정 없고 능력도 없다는 평을 듣게 된다. 다음 달 예상 매출과 활동 계획을 정리하다 말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이리 구체적인 것들만 쫓게 되는 건지.
조직에서 인정받으려면 일하는 티를 팍팍 내는 게 중요하고, 그러려면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선언하고 생활하는 편이 좋단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내면의 안정감과 현재의 나른한 행복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니 덜 구체적으로 살아가련다. 모호해도 좋소, 두루뭉술하면 그걸로 또 좋을 테니.
그렇게 선배가 된다: 작년 10월쯤 옆 팀에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당시 막 1년을 넘겼지만 여전히 막내의 잡무에 허덕이던 내게 옆 팀에 후배가 들어왔다는 사실은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직무였지만 딱히 대화를 나눌 일도 없었을뿐더러 옆 팀 막내까지 챙겨 줄 여유도 없었다. 그렇지만 가끔 쭈뼛대며 질문해 오던 그 친구에게서 힘든 막내 생활을 보낸 예전 내 모습이 보여서였던지 바쁜 와중에도 밝은 목소리로 맞아 주려 했다(그쪽에선 어떻게 느꼈을진 모르겠지만).
올해 들어 조직 변동이 있었고 내가 속한 팀은 옆 팀과 합쳐졌다. 옆 팀 막내는 자연스레 내 후배가 됐다. 그렇게 얼떨결에 선배가 됐다. 대학 수석에 조기 졸업까지 했다는 후배는 똑 부러졌고 막내라는 위치가 무색할 정도로 맡은 일을 척척 잘해 냈다. 몇몇 업무는 다시 가르쳐야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잘 따라와 주어 기특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런데 어제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후배에게도 후배가 생겼다. 내가 막내의 자리를 내어 준 것처럼 이번엔 그의 차례다.
내일 출근하면 군기가 바짝 든 신입 사원은 벌떡벌떡 일어나며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할 거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후배는 묵묵히 할 일을 시작하지 싶다. 신입 사원의 질문을 받아 주고 업무를 가르쳐 주며 이따금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을 후배가 상상된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떤 원칙으로 다가가야 할지. 그런 스스로가 보일 때 그도 생각하겠지, 이렇게 선배가 되어 간다고.
마음이 뒤숭숭한 날
풍문으로 들었소: 11월 말에서 12월 초는 인사이동 철이다. 업무를 하다가도 이따금 사내 포털 메인화면과 게시판을 눌러 본다.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이동’ 비슷한 말만 들려와도 양쪽 귀는 쫑긋 서고, 누가 어디로 이동한다느니, 어느 팀엔 어떤 팀장님이 온다느니 하는 카더라 통신이 하루에도 몇 번은 돌고 또 돈다. 평소에 아무리 과묵하고 우직한 성격일지라도 이 시기엔 귀가 조금씩 얇아질 거다.
인사철 일희일비하는 마음엔 직급이 따로 없다. 유치원생 딸을 둔 과장님도, 아들을 군대 보낸 부장님도 하나같이 궁금해하고 움찔하게 만드는 네 글자, 인사이동.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바람에 날리다 옆에 슬쩍 와 앉은 소문은 어지간하면 다 맞더라. 팀에 발령받은 지 1년 반째인 나는 그대로 한 해 더 남아 있을 듯하다. 올해 말엔 지방 근무를 탈출하고 싶었건만, 맞선배는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난 내년이면 4년 찬데 왜 또 지방 발령 날 것 같냐?” 바람처럼 떠돌던 소문이 폭풍이 되어 돌아올지, 아니면 조용히 사라질지는 시간이 흘러 봐야 알게 될 문제일 거다. 아무튼 인사이동의 계절에 풍문(風聞)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를 찾아온다.
생채기가 겁나기 시작했다: 노트를 넘기다 손가락을 베었다. 11개월은 족히 쓴 업무 수첩이라 모서리가 꽤 무뎌졌을 만도 한데 아직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나 보다. 집이었다면 따갑다며 괜한 비명이라도 질렀겠지만, 회사인 관계로 조용히 꾹 눌러 지혈을 했다. 서랍에서 소독약을 꺼냈고 새살을 솔솔 돋게 한다는 연고로 마무리했다. 손톱만 한 조그만 상처가 찬 기운에 더 아려 왔다.
요즘 크고 작게 다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그리고 한 번 난 상처는 잘 아물지 않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회사 서랍엔 서너 종류의 상비약을 놓아두게 됐다. 신입 사원 시절, 아니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동갑내기 친구들과의 신년회에서 우리는 이제 절대 아프면 안 되는 나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허허 웃으며 소맥을 들이켰고, 숙취 때문에 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은 걸 조금씩 체감하던 중이었지만, 친구 놈들의 말이 뇌리에 남은 영향 때문이리라 싶었는데, 계절이 변하는 환절기에 당도해서야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마시는 술의 절대량은 전년 대비 축소되었는데도 신체 컨디션이 그만큼 하락해 겨우 작년 수준에 수렴 중이다. 회사 실적에 이어 건강마저도 역신장만 막기에 급급한 상황이 꽤 우습고도 서글프다.
3년 차 ? 승부는 삼세판, 직장 생활은 3년
서울로 돌아왔다
지방 근무여 안녕!: 2년 6개월간의 지방 근무가 종료된 날, 후배들과의 저녁 회동을 끝으로 회사 일정을 마무리했다. 회사에 들어와 처음 맞은 후배였고, 남녀 후배 각 한 명씩 있었으니 나는 제법 행복한 선배였지 싶다. 마지막이란 건 아쉬움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가져온다. 지방 생활 중 저장된 거래처 연락처는 60개 남짓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아름다우니 이들의 이름과 연락처도 기억 일부로만 남기는 편이 좋을 거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격언이 있듯 부디 나를 잊고 잘들 사시오.
마지막 출근일 오후엔 책상 정리를 마무리했다. 한꺼번에 짐을 다 빼면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올 것만 같아 전날부터 조금씩 차에 옮겨다 실었는데, 책상이 텅 빌 때까지 딱히 별 느낌이 오지 않았다. 이 책상 위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거래처 사람들과의 전화 언쟁 중에 노트를 쾅 내려치기도 했고,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때문에 키보드 놓을 곳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마감 후 선배와 책상에 걸터앉아 마시던 달콤한 믹스 커피도 그리울 것 같다.
물티슈를 세 장이나 빼서 책상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다. 서랍과 의자까지 새것으로 만들어 놨다. 오늘까지 내 자리였던 곳이지만 내일이면 남의 자리가 될 거다. 정리하는 새 마음은 이미 거의 대전쯤 가 있었다. 오후 5시 30분. 공식적으로 나의 지방 근무가 끝났다. 자리 정리를 마치고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애증의 공간, 회의실에서 우린 참 많은 열을 올렸었지. 때로는 답이 없는 문제를 싸매고 고민했고, 일을 위한 일도 했으며, 사이사이 농담도 주고받으며 키득댔었다. DMZ마냥 다가가기 힘들었던 팀장님 자리도 이제는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다. 신입 사원일 적 자주 혼났던 자리에 서 보니 웃음도 나온다.
새내기는 벗어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