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탐식 프로젝트
최원준 지음 | 산지니
부산 탐식 프로젝트
최원준 지음
산지니 / 2022년 11월 / 304쪽 / 22,000원
1부 섬을 품고 흐르는 낙동강의 맛
임금님께 진상한 귀한 몸, 낙동강 봄 별미_하단포 웅어웅어. 바다에서 올라와 갈대밭에서 산란을 하고, 갈대밭에서 많이 잡힌다고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라고 부르는 물고기. 꼬리 끝이 칼처럼 생겼다고 도어(?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서남해안 강을 중심으로 봄철에 많이 잡히는 회유성 어종으로, 몸빛은 은백색으로 빛이 난다. 지역에 따라 ‘우여’, ‘웅에’, ‘우어’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살이 부드럽고 뼈가 물러 뼈째 먹는 생선으로, 주로 회로 먹는다. 그 맛이 달고 고소하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먹었던 어류이다. 조선 시대에는 웅어를 잡아 임금께 진상하던 위어소(葦魚所)를 둘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라, ‘가을의 진미’ 전어와 더불어 ‘봄의 진미’로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4~5월이 제철이다.
매년 초봄이면 서해 중부에서부터 웅어가 강 하류로 거슬러 올라와 갈대밭에 산란을 하는데, 2월 말 김포를 시작으로 3월 중순에는 금강, 3월 말에는 영산강, 낙동강은 4월 초에 비로소 웅어가 잡히기 시작한다. 원래 웅어는 보리누름 철인 4월 중순부터 한 달 동안 그 맛이 절정이라 낙동강의 웅어가 전국에서도 제일 맛이 좋다.
때문에 낙동강 웅어의 전진 기지인 ‘하단포’에서 잡히는 웅어가, 전국에서 제일 맛있기로 손꼽히고 있다 한다. ‘하단 어촌계’에서는 주로 4월에서 6월 초까지 조업을 하는데, 한 어선당 하루 약 50~100kg 정도를 어획한다고.
하단포 웅어는 낙동강 하구언을 중심으로 다대포 앞바다에서 주로 잡히는데, 웅어를 전문적으로 조업하는 어민들만 25명 정도이다. 이들이 순번을 정해 하루에 한 번씩 하구언 동서쪽 구역에서 웅어를 어획하고 있다.
웅어는 ‘걸그물’이라는 자망(刺網)으로 어획하는데, 물고기가 지나다니는 바다 속 조류를 따라 그물을 띠처럼 길게 펼치고는, 웅어가 그물코에 박히거나 걸리도록 장치하여 어획하는 방법이다.
70m 그물을 4~5폭으로 이은 350m의 그물을 하루 두 군데 치는데, 총 700m에 걸쳐 그물을 치고 조업을 한다. 하단 어촌계 어민들은 “가을 전어와 봄철 웅어로 거의 일 년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전한다.
하단 어촌계를 찾았다. 어민들의 얼굴이 밝지 못하다. “괴정천 하천 정비 공사 때문에 뻘이 내려와 올해는 웅어가 전멸입니더. 27~29일 ‘웅어 축제’를 하기로 했는데 이것도 취소됐심니더.” 이춘식 어촌계장의 말이다. “아이고 말도 마이소. 작년만 해도 하루 100kg 잡았는데, 어제는 제가 2kg 잡았심더.” 베테랑 어부 신경남 씨가 말을 받았다.
웅어는 이들에게 소득원이기 이전에, 두고두고 먹었던 식량이자 추억의 식재료였다. “한 철 잡아 일 년 내내 냉장고에 얼려 두고 꺼내 먹는데 일 년 후에 꺼내 먹어도 그 맛 그대로입니다. 아주 별미지요.” “웅어 20여 마리 구우면 참기름 병으로 1병 정도 웅어 기름이 나옵미더. 이 웅어 기름으로 잔치 때 식용유 대신 부침 기름으로 사용했다 아입미꺼. 음식 해 놓으면 음식이 너무 고소하고 맛있었지예.”
“그뿐인가? 배에서 바로 잡아 대가리, 내장 떼고 통째로 고추장이나 된장에 푹 찍어 씹어 먹으면 얼매나 맛있다고.” “그것도 하얗게 핀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제대로 아이가. 식은 밥 한술에 찌개 해서 먹어도 쥑이지~”
“우리 하단 웅어를 중국에도 수출합니더. 중국에는 웅어가 멸종 위기종이라 아주 귀한 생선이라네요. 고급 식당에서 주로 찌거나 튀겨서 ‘탕수 생선’으로 먹는데, 한 마리에 10만 원 정도 하는 귀한 생선입니더.” 웅어를 중국에 수출하는 하용수산 이상찬 대표의 말이다.
하단포 부근에는 웅어 생산지답게 웅어 관련 음식점이 열대여섯 집 영업을 하고 있다. 그중에도 웅어 요리로는 대표 격인 식당에 웅어 음식을 몇 가지 부탁했다.
“예전에는 하단포, 아니 우리 부산 웅어를 잡는 족족 창녕 남지나 삼랑진으로 다 올려 보냈어요. 그쪽 사람들 봄에 ‘도다리 먹을래? 웅어 먹을래?’ 하면 ‘웅어 먹을란다.’ 할 정도로 웅어를 좋아해요. 부산 생선을 부산에서 알아주지 않는 게 못내 서운하데요. 그래서 저라도 부산 사람들에게 ‘웅어 맛 좀 알리자.’ 해서 하단포에서 처음으로 웅어 음식을 시작했지요.” ‘외딴집’ 이건우 대표의 말이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하단포 웅어라면 자신이 뺏어서라도 가져와 음식을 준비할 정도로 웅어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모든 게 생산지에서 먹어야 제맛이잖아요. 특히 웅어는 성질이 급해 그물에 걸리면 바로 죽기 때문에 선도가 좋을 때 먹어야 제맛이 납니다.”
식탁에 ‘웅어회’, ‘웅어회무침’, ‘웅어구이’, ‘웅어 젓갈’ 등이 한상 푸짐하다. 회 한 점 먹어 본다. 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돈다. 병어회 맛과 비슷하고 전어회 맛과도 흡사하다. 씻은 김치에 싸서 먹는다. 웅어 젓갈로 담은 김치라 그 맛이 깊어, 짭조름하면서도 기분 좋은 군내에 군침이 돌고 돈다.
웅어 젓갈에 살짝 찍어 회 맛을 본다. 칼칼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오래도록 입에 남는다. 웅어 젓갈은 웅어 대가리와 내장 등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는데, 이곳은 대가리로만 숙성시켜, 뒷맛이 깔끔하고 잡내가 없이 개운하다.
상추와 민들레, 방아 등속과도 싸 먹으니 바야흐로 무르익은 봄이 입에서 알콩달콩하다. 회무침도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넣는다. 웅어와 오이, 홍당무, 배, 새싹, 땡초, 깻잎, 마늘 등을 넣어 신선하고 상큼함이 입맛 되돌리는 데 그저 그만이다.
횟밥도 한술 뜬다. 웅어가 씹힐 때는 고소하다가 채소가 씹힐 때는 아삭아삭하여, 입속에서 각각의 재료들이 어우러져 춤을 춘다. 구이도 한 점 집어 본다. 모양이 갈치와도 비슷해서인지 장만해서 구워 놓으니 그 맛 또한 비슷하다. 구수하지만 기름지지 않은 맛이다. 바싹 구운 조기 맛도 난다.
이 ‘웅어’로 출출할 때 국수 삶아 회 국수로 먹어도 좋고, 고추장 풀고 채소 넣어 끓인 매운탕에 소주 한 잔 곁들여도 좋으며, 웅어 살을 걸러 만든 추어탕의 짙고 구수함을 즐기는 것도 참 좋단다. 보글보글 짭짤하니 조린 웅어 조림은 밥도둑이고, 웅어 살로 완자를 만들어 탕수 소스에 찍어 먹는 웅어 탕수육도 최근 개발한 이색 음식으로 인기란다.
이처럼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광범위하게 쓰이던 ‘하단포 감초 생선, 웅어.’ 웅어는 낙동강 하구 사람들에게는 보리누름 철 배고팠던 시절을 고소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해 준 고마운 생선이었다. 그만큼 우리 부산이 지켜야 하고, 우리 시민들이 먹어야 할 식재료이자, 그 맛을 오래도록 보존하고 기록해야 할 향토 음식이기도 하다.
2부 바다를 품은 땅, 기장의 맛
기장의 이파리쌈과 곰삭은 젓갈의 만남_산호자 멸치젓갈 쌈밥“어머니, 예전에 장안사 근처 골짜기서 나무 이파리 따서 쌈 싸 먹은 적 있잖아요?” “그래, 산호자 나무.” “그 나무 요새도 있을까요?” “모르지. 요즘은 그쪽으로 잘 가질 않아서…. 잘은 몰라도 예전에 있던 나무들이 지금이라고 어디 가겠니?”
“요즘 기장시장에 아낙들이 조금씩 가지고 나와 파는 것을 보면, 요즘도 그 나무가 있는 게지.” 아버님 말씀이시다. “왜? ‘탐식 프로젝트’에 쓰려고?” “예~” “그럼 소풍 삼아 한번 가보자꾸나. 오랜만에 메기매운탕에 산호자 쌈도 싸 먹어 보고.”
한때 장안사 부근 단골 식당엘 가면 매번 찾던 음식이 있었다. ‘산호자 묵(묵은)나물’이다. 산호자 나무 어린잎을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밥과 멸치젓갈에 쌈을 싸 먹는 것이다. 멸치젓국의 웅숭깊은 맛에 산호자 잎의 쫀득쫀득한 식감이 어우러져, 입안이 개운하고 오래도록 즐겁게 여운이 남는 ‘봄나물 쌈’이었다.
이 ‘산호자 멸치젓갈 쌈’은 봄이 익으면 익을수록, 마음속 ‘봄의 음식’으로 새삼 그리워지는 음식이었다. 봄을 맞으면 봄을 맞았다고 기분 좋게 쌈밥을 싸 먹고, 여름철 입맛이 없으면 입맛이 없다고 찬밥을 물에 말아 젓갈에 무친 산호자 나물을 얹어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장안사 근처 식당들이 산호자 잎을 상에 내놓지 않는 것이다. 물어보니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아 손님상에 내놓지 않은 지 꽤 됐단다. 봄이면 마대 자루 하나씩 채취하여 묵나물을 만들어 일 년 내내 제공하던 식당들인데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이 ‘산호자’ 나무는 나무껍질이 하얗고 매끈매끈하여 ‘사람 살결처럼 생겼다’고 원래 이름이 ‘사람주나무’다. 나무껍질이 희다고 ‘여자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감나무 잎처럼 생긴 이파리도 사람 피부처럼 보드랍다. 잎을 따 보면 하얀 즙이 나온다. 낙엽소교목으로 ‘신방나무’, ‘쇠동백나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해안 산골짜기나 산 중턱에 자생하는데, 경상남도 양산과 부산 동부 기장의 야산에도 많이 서식한다. 6~7월에 꽃이 피는데, 꽃이 피기 전 나무에서 어린잎을 따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쌈을 싸 먹거나, 햇볕에 말린 다음 나물로 무쳐 먹고, 두고두고 묵나물로 먹기도 한다.
5월 중순부터 채취가 가능한데, 하순경의 잎이 쌈거리로 먹기에 적당하다. 이를 멸치젓국에 곁들여 쌈을 싸 먹으면, 봄이 입에서 기껍게 노니는 것이다.
신록이 한창 푸르른 기장의 봄 산행 중 산골짜기를 중심으로 몇몇 사람들이 나뭇잎을 따고 있다면, 거의 산호자 잎을 채취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산호자 잎으로 즉석에서 젓국이나 쌈장으로 밥을 싸 먹으면, 아주 만족스러운 ‘도시락 쌈밥’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산호자 잎은 멸치젓갈과 함께해야 더욱 근사하고 흔쾌한 맛을 낸다. 멸치젓갈이 쫀득쫀득한 산호자 잎의 식감과 어울려 그 맛을 더욱 살려 주기에 그렇다. 데쳐 놓으면 잡내가 없고 봄나물 특유의 향이 적어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도 좋아하는 나물 식재료이다.
두릅이나 엄나무 등 다른 봄나물들은 겨울을 굶주린 동물들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약간의 독성과 강한 향을 발산한다. 이를 사람이 먹으면 나른한 몸을 긴장시켜 춘곤증을 이겨 내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산호자 잎은 그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 벌레마저도 주식으로 삼아 잘 먹는다. 때문에 봄 산호자 어린 이파리마다 애벌레들이 꼬물꼬물 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나무의 성정이 유순하고 담박한 것이다.
이 산호자 잎에 잘 익은 멸치젓갈의 풍성함까지 더하면, 나른한 봄날의 조촐한 밥상이 풍성하게 보이는 것이다. 특히 ‘산호자 쌈’의 젓갈은 꼭 기장 대변의 멸치젓갈을 써야 그 풍미가 제대로 완성이 된다. 지역의 음식은 지역의 식재료와 궁합이 맞기에 그렇다.
부모님과 한나절 산을 뒤져 따 온 산호자 잎으로 ‘산호자 멸치젓갈 쌈밥’을 해 먹는다. 흰 쌀밥을 고슬고슬하게 짓고, 산호자 잎을 끓는 물에 삶는다. 곧이어 진한 풀 냄새가 폴폴폴 난다. 초록색 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할 때까지 2~3분 정도 삶으면 된다.
대변 멸치젓갈로 젓국장을 만든다. 콤콤하고 구수한 젓국 냄새가 사람 입맛을 제대로 자극한다. 멸치젓국에 고춧가루와 간 마늘, 땡초 두세 개 송송 썰어 넣고 뒤섞어 준다. 그 위에 통깨를 솔솔 뿌려 주면 젓국장 완성이다.
산호자 잎을 넓게 펴고 고슬고슬하게 지은 흰 쌀밥을 얹는다. 그 위에 멸치젓국장을 넉넉하게 올린 뒤 쌈을 싸서 입에 넣는다. 한 입 씹자 젓국장의 구수한 풍미가 터져 오른다. 그리고 산호자의 쫀득쫀득한 식감이 밥알과 젓국장과 어우러지며 씹을 때마다 절정의 미감을 제공하는 것이다.
산호자는 자기만의 독특한 향이 없기에 어느 양념과도 잘 어울린다. 때문에 어느 조미 양념에 무치고 어느 젓갈에 얹어 먹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다양한 음식으로 변신 가능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멸치젓갈 하나 얹어 먹으면 더 이상의 궁극의 쌈은 필요치 않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 하나, 부산 지역에서 멸치젓갈은 음식 맛을 더해 주는 보완재가 아니라, 어엿한 음식의 한 종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만큼 부산 대표 식재료로서 멸치의 가치와 위상은 남다르다.
제철의 싱싱한 멸치와 좋은 소금, 담그는 사람의 짭조름한 손맛이 들어간 기장 대변 멸치젓갈. 음식의 간을 맞추기도 하고 밑반찬으로 직접 상에 오르기도 하는 대변 멸치젓갈은 부산의 간판 음식이다. 깊고 풍성한 ‘곰삭음’의 진미는 밥상 위에서 강렬한 식욕을 동반하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사람이나 음식이나 오래될수록 깊은 맛이 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담뿍 내어놓을 때 사랑을 받는다. 자신의 몸을 펄펄 끓여 내 속 깊게 발효시키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이롭게 하는 음식이기에 우리는 젓갈을 기꺼이 곁에 두는 것이다.
기장은 경남 양산에서 부산으로 편입된 지역이다. 때문에 원 부산의 식생이나 문화와는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식문화에 있어서도 특색 있고 보존 가치가 높은 식재료와 기록해 놓아야 할 음식 및 조리법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감나무 잎을 닮은 산호자 나뭇잎이다. 대변 멸치젓갈도 마찬가지다. 늘 눈여겨보고 먹어야 할 부산의 귀중한 식재료들이다.
3부 역사를 품은 곳, 원도심의 맛
부산을 닮아 따뜻한 음식_부산 어묵어묵. 다양한 요리로도 변주되고, 남녀노소 건강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웰빙 식재료이며, 그 나라의 정체성을 대표하기도 하는 소울푸드. 이 어묵의 발상지는 동아시아로, 고래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서 다양한 레시피로 존재해 왔다.
그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진나라 때이다. 당시 권력자였던 진시황(기원전 247~210년 재위)은 평소 생선 요리를 즐겨 먹었는데, 요리에서 생선 가시가 나오면 요리사를 바로 처형시켰다. 이에 한 요리사가 가시를 제거한 생선살로 시황에게 ‘생선 완자 요리’를 만들어 바치자 매우 흡족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도 고훈 시대(3~7세기)부터 두부와 생선살 등을 꼬챙이에 붙여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있고, 우리나라도 조선 숙종(1674~1720년 재위) 때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산림경제』 등에 ‘생선숙편’과 ‘생선완자탕’의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생선살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음식을 해 먹은 것이다.
‘부산 어묵’은 문헌상으로 부산 부평시장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일본의 ‘가마보코(蒲?, かまぼこ)’라는 음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선살을 으깨고 반죽해서 튀기거나 찌거나 구운 생선묵 형태의 음식을 말한다.
1915년 부산부청 발간 ‘부평시장월보’에 따르면, 주요 거래 점포 중에 ‘가마보코’ 전문 점포 3곳을 최초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의 시장’에서는 “부평시장은 쌀, 가마보코, 채소, 청과물 등이 주종”이라고도 소개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부평시장서 시작된 어묵(가마보코)은 부평동 부근에 들어선 대좌부(貸座敷)란 요정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고급 식재료였다. 이 가마보코는 해방 전후로 해서 ‘음식 문화의 대중화’ 과정을 거친다. 일본인들이 남겨 두고 간 어묵 설비와 기술로 우리 실정에 맞게 어묵을 생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45년 한국인으로는 부산 최초로 부평동 시장에서 어묵을 생산했던 동광식품(창업자 이상조)이 그 시작이었다. 김동리의 소설 『해방』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앞으로 조선이 독립이 되면 일본말뿐 아니라 옷이던 음식이던 일본 것은 모조리 못 쓰게 된다는 소문이었다. (중략) “아니, 정말이여. 신문에까지 났다는듸. 저 가마보꼬는 참 일본 음식이 아니겠지? 조선 사람들도 잘만 먹으닝께.” 하면 “그렇지 않을 것이여! 아니, 우리는 가마보꼬가 없으면 밥을 먹는같잖은듸.” (중략) “그것도 본데는 다 일본 음식이지.” “아니, 그럴 리가 있을라고? 우리 조선 사람들도 만 가지 요리에 다 쓰고 있는듸. 잔치에 안 쓰나 제사에 안 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