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인생문장
성기철 지음 | 미래북
거인들의 인생문장
성기철 지음
미래북 / 2022년 11월 / 280쪽 / 16,000원
자기 인생에 주인공이 되려면
긍정 마인드로 희망을 노래하라 :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나의 사랑과 희망으로 그대에게 명령한다.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버리지 마라.
그대의 최고의 희망을 신성한 것으로 간직하라.
-프리드리히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소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수많은 명문장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영웅’이 가리키는 의미와 멋진 명령형 문체 때문이다. 영웅의 뜻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무한 성장을 꿈꾸는 청춘의 긍정적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은 주인공 짜라투스트라가 산 위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에게 해 준 말이다. 소설에서 청년은 나무의 외로운 삶에 빗대어 자신이 키 큰 나무처럼 높이 오르려고 하면 할수록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톨이가 된다고 한탄한다. 그러자 짜라투스트라는 원래 쾌락주의자들은 고귀한 사람들을 원한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긴다며 절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고귀한 사람은 만인에게 귀찮은 존재임을 잊지 마라. 선량한 자들조차도 고귀한 자를 장애물로 생각한다. 그를 선량한 자라고 부르지만 그렇게 부르면서 그를 몰아내려고 한다.”《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대표작이다. 니체 철학의 핵심인 ‘신의 죽음, 영원 회귀, 위버멘쉬(초인, 超人)’의 개념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니체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 철인 짜라투스트라의 설교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기술했다. 루터파 목사의 아들인 니체는 40세 전후에 쓴 이 작품에서 신의 죽음, 신의 부재를 주장해 19세기 후반 유럽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를 ‘망치 든 철학자’라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니체는 한때 스승으로 삼았던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 사상에 빠진 것과 달리 삶의 긍정적 요소에 주목했다.
작품 전편이 아름다운 시적 산문으로 꽉 차 있다. 다양한 등장인물과 풍부한 비유,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 애잔한 사랑의 노래 등은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딱딱할 수밖에 없는 철학서임에도 현대인의 애독서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니체가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 묘사하는 초인은 자기 자신과 세상을 긍정하는 건강하고 창조적인 인간이다. 본인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짜라투스트라는 희망과 긍정 메시지 전도사라 하겠다.
짜라투스트라의 설교 여행은 40세에 시작된다. 30세에 입산해 10년간의 깨우침 끝에 세상 사람들을 만나러 나간다. 마치 예수와 석가모니의 행적을 연상케 한다. 그는 희망 전도사답게 출발부터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나는 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리라. 나의 길을 걸어가리라. 나는 망설이는 자들과 나태한 자들을 뛰어넘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행로가 그들의 몰락이 되게 하리라.”첫 설교는 인간이 초인으로 성장하는 세 단계를 주제로 삼았다. 니체 철학의 핵심이다. 낙타와 사자, 어린아이의 비유가 그것이다. 1단계인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걸어가며 ‘반드시 해야 한다’로 상징되는 용(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는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반항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2단계인 사자다. 사자는 우여곡절 끝에 용을 물리치지만 용이 사라진 세상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게 된다. 삶의 의미도 찾지 못한다. 용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3단계 어린아이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짜라투스트라는 말한다.
어린아이 같은 삶이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용의 무시무시한 힘이 존재하지 않기에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가리킨다. 이처럼 삶의 가치를 자기 주도적으로 창조하고 이를 긍정하는 사람을 니체는 초인이라고 정의했다.
“어린아이는 천진무구 그 자체이며 망각이다.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며 쾌락이다.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시원(始原)의 운동이고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라는 쾌락을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그는 설교 때마다 긍정과 희망을 노래한다.
“삶에 대한 그대들의 사랑이 그대들의 최고의 희망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라. 그리고 그대들의 최고의 희망이 삶에 대한 최고의 사상에 이르도록 하라.” 짜라투스트라는 긍정의 삶을 추구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대 자신이 부딪칠 최악의 적은 항상 그대 자신일 것이다. 그대 자신은 동굴과 숲속에 매복하여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도 이르지 못하고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일곱 악마 곁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니체는 자기 관찰과 자기 발견의 어려움을 다른 저서에서도 자주 거론한다.
- “인간은 보통 자신에 대해 성(城)의 외벽 이상은 감지할 능력이 없다. 진짜 요새엔 접근하기도 어렵고 그것이 보이지도 않는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를 인식하는 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중략)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 번도 탐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도덕의 계보학≫)이런 문장들은 자기 발견, 자기실현의 중요성을 격하게 설파했던 헤르만 헤세와 미셸 드 몽테뉴를 떠올리게 한다. 니체는 이 지점에서 용기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짜라투스트라의 말이다.
“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그대들은 용감한가. (중략) 용감한 자란 두려움을 알되 두려움을 지배하며 심연을 들여다보되 긍지를 가지고 들여다보는 자이다. 심연을 들여다보되 독수리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자, 독수리의 발톱으로 심연을 움켜잡는 그러한 자가 참으로 용기 있는 자이다.”니체는 긍정적인 사람은 웃고 노래하고 춤춘다고 말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설교했다.
“자기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는 걸음걸이에 나타난다. 나의 걸음걸이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자기의 목표에 접근하고 있는 자는 춤을 추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을 극복한 초인의 행복한 모습이라 여겨진다.
니체가 살았던 시대는 기독 문화 과잉과 진화론의 등장, 노동의 기계화와 비인간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와 천민자본주의 발흥으로 혼돈의 도가니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가 천재 철학자로서 인간 개개인이 행복하려면 주체적인 삶을 반드시 도모해야 하고, 그래야 사회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지금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범람하는 요즘,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쫓아가느라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특히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30대와 사회 중추 세력으로 발돋움하는 40대의 어깨는 더없이 무겁다. 생존을 위한 경쟁 체제는 더욱 심화되고 최첨단 생산 수단이 끊임없이 등장함에 따라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긍정과 희망의 끈을 잡고 살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꿈을 향해, 목표를 달성하고자 꾸준히 나아간다면 초월적 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바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기에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이라면 몰라도 중장년이 되어서까지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조금 늦었더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평균 기대 수명이 길어져 앞으로는 70세, 80세가 되어도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긴 일생 동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고역이다. 지금 하는 일이 전혀 내키지 않는데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면 인생 재설계를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주변 환경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나답게 사는 길을 찾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필수다. 나의 존재, 나의 가치를 정확히 찾아서 그것을 충실히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 영혼이 자유로워진다.
“이제 나는 명령한다. 짜라투스트라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발견하라고.” 니체 자신이 쓴 묘비명이다. 결국 철인도 영웅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면
부부, 서로 사랑하되 속박하지 말라 : 칼릴 지브란 《예언자》서로 사랑하되 속박이 되도록 하지는 마십시오.
사랑이 두 분 영혼의 해변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칼릴 지브란 《예언자》칼릴 지브란(1883~1931)은 ‘중동의 성자(聖者)’라 불린다. 성자란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깊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는 거룩한 신자나 순교자, 불교에서는 모든 번뇌를 끊고 바른 이치를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지브란이 바로 이런 사람이다. 레바논 출신 시인이자 화가인 지브란은 위대한 철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그의 사상이 심오하고 인생을 달관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적이며 신비적인 삶의 이미지도 한몫했을 것이다. 특히 산문시집 《예언자》는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행복의 바이블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첫머리에 소개한 문장은 《예언자》 중 ‘결혼에 대하여’란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하더라도 두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비로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처럼 멋지게 묘사했다. 이 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찬란하게 빛나는 예술이다.
“두 분이 함께하시되 그 안에 공간이 있게 하십시오. 두 분 사이에서 하늘의 바람이 춤추게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 잔에서만 마시지 마십시오. 서로에게 자기 빵을 나누어 주되 한쪽 조각만을 먹지는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되 각각 혼자이게 하십시오.” “함께 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지는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고, 참나무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지브란은 1883년 레바논 북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와 인접한 곳이어서 주민들은 주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살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과 더불어 영적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며 삼나무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서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과 침묵을 감상하며 자랐다. 아버지가 생활력이 강하지 못해 집이 가난했지만, 어머니는 기독교 마론파 신부의 딸로, 프랑스어에 유창하고 미술과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그의 나이 12세 되던 해 아버지를 제외한 일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 보스턴에 정착했다. 그의 어린 시절 지적 예술적 성장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지브란은 초기 작품 《부러진 날개》에서 어머니를 이렇게 묘사했다.
“인간의 입술 위에 떠오르는 가장 아름다운 말은 ‘어머니’라는 말이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부름은 ‘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리이다. 그것은 희망과 사랑에 충만한 말이며,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감미롭고도 다정한 말이다.”보스턴에서 2년간 영어를 익힌 지브란은 고국의 수도 베이루트에 돌아가서 모국어인 아랍어로 문학을 공부했다. 5년 뒤 보스턴으로 돌아온 직후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형을 잃고 실의에 빠진다. 재기의 몸부림 끝에 지브란은 부유한 여자 교장 선생 헤스켈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건너가 문학과 그림을 공부했다. 이곳에서 저명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 친교를 맺기도 했다. 3년 뒤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지브란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이런 인생 행보의 영향인 듯 그는 아랍과 서구, 이슬람과 기독교라는 이중적 세계관을 갖고 살았다. 10년 연상의 후원자이자 연인인 헤스켈과 죽을 때까지 친교를 맺었으나 결혼하지 않은 걸 보면 ‘절제된 사랑’을 즐긴 것 같다.
영어로 쓰인 그의 대표작 《예언자》는 약 10년간의 작업 끝에 1923년 출판되었다. 헤스켈의 노력과 조언이 많이 담긴 것으로 짐작된다. 《예언자》는 알무스타파라는 현인이 12년간 머물던 오팔리즈를 떠나 고향 섬으로 돌아가면서 주민들에게 삶의 진리를 전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으며 출생에서 죽음까지 26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예언자》는 출판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으로 꼽힌다. 단테의 《신곡》이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버금가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문장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데다 내용이 시공을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정도로 진실 되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 인간 심성의 깊은 곳을 꾸준히 탐색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지브란은 생전에
“시인은 영혼의 치유자,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술을 가져다주는 예언자”라고 말했다. 《예언자》에서 결혼의 전제가 되는 사랑에 대해 지브란은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은 여러분에게 금관을 씌우기도 하지만 여러분을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합니다. 사랑은 여러분을 자라게도 하지만 여러분의 가지를 쳐 내기도 합니다. 사랑은 높이 올라가 햇살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여린 가지를 어루만지기도 하지만 밑으로 내려가 대지에 박힌 뿌리를 뒤흔들기도 합니다.”이처럼 지브란은 사랑과 결혼을 매우 현실적으로 진단한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을 가르치고 싶어 했다. 특히 결혼은 상상 속의 낭만이 아니라 삶의 현실임을 강조했다. ‘결혼에 대하여’란 시는 부부가 굳이 하나가 되고자 집착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 시대 젊은 부부들이 하나가 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부부가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임을 깨닫지 못한 데 따른 불화다. 미국의 저술가 존 그레이는 일찍이 부부학 지침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에서 이 부분을 명쾌하게 짚었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자신들이 서로 다른 행성 출신이고, 따라서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서로의 차이점들이 기억에서 모두 지워지면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서로의 생각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상호 존중하면 갈등 요인이 생기지 않는다. 약 30년간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아무리 사랑한들 한 공간에 살다 보면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때 그 차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상대방과 다를 뿐이지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실이 꼬일 리 없다. 남자는 고무줄 같고, 여자는 파도 같다는 그레이의 진단처럼 부부가 남녀 간의 보편적 성격 차이까지 인정하면 더없이 평화로울 것이다. 남자는 자기 동굴로 들어가고 싶어 하고, 여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진단도 마찬가지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은 ‘결혼 속의 사랑’ 지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결혼은 사랑의 종말이라고 한다. 사랑의 결실인 결혼이 사랑의 종말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갖는 부부는 의외로 많다. 왜 그럴까. 결혼은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법적 책임이 수반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 갑자기 부모 형제, 일가친척이 끼어든다. 법과 제도로 배타적 사랑을 보장받게 되지만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가볍지 않다. 두 사람의 권한과 의무가 균형 있게 작동되면 별문제 없겠지만 그것이 한쪽으로 기우는 순간 분란이 일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