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 사람과나무사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하시모토 고지 지음
사람과나무사이 / 2022년 10월 / 256쪽 / 16,000원
카오스를 즐기는 물리학자의 인생
에스컬레이터 ‘병목 구간’ 해결에 필요한 학문은?여러분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디딤판 오른쪽에 서는가, 왼쪽에 서는가? 또 디딤판에 서 있는 편인가, 걸어 올라가는 편인가? 애초에 에스컬레이터 디딤판 한쪽에만 서고 다른 한쪽은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을 위해 비워 둔다는 암묵적 규칙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리가 있다.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행위가 위험하기도 하고, 지하철역처럼 붐비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에스컬레이터에 타려고 몰려드는데 죄다 한쪽에만 서느라 에스컬레이터 진입로가 북새통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예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못하도록 규칙을 바꾸면 어떨까? 이 문제는 이미 사회에 정착된 습관을 바꾸는 일이라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렇다면 획기적인 ‘디자인’ 변경으로 해결책을 끌어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과학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결책은 에스컬레이터를 제작할 때부터 한 줄로 서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디딤판이 두 줄로 설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한쪽’에 선다는 개념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한 줄로 설 수밖에 없다면 어느 쪽에 설지 망설일 필요가 없다.
또 조금 더 자극적인 해결책은 에스컬레이터 계단의 높이를 두 배로 늘리는 방법이다. 한 계단의 높이를 늘리면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뛰어오르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도시 교통 분야에는 문외한이면서도 이런 기술 디자인적 해법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게 즐겁다. 한 계단 높이를 두 배로 늘리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면 어쨌든 한번 타 보고는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홍콩에 출장을 간 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에 사람들이 양쪽으로 서 있는 것 아닌가. 바쁜 사람들도 많을 텐데 왜 홍콩에서는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양쪽으로 설까? 궁금증을 안고 에스컬레이터에 타 보았다. 이유는 단번에 확인되었다.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우리의 에스컬레이터와 비교해 체감상 두 배 정도 빨랐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속도가 워낙 빨라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섣불리 걸어 다닐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을 양쪽에 세우기 위해 어떤 디자인의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지, 어떻게 개량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높인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다. 짜릿한 희열을 느낀 나는 홍콩에서 굳이 탈 필요도 없는 에스컬레이터를 몇 번이나 탔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졌다. 나의 사고방식과 관점이 너무 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전문성은 사고방식을 고정화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참고로 흔히 있는 이과계 유머 중에 폭죽을 쏘아 올렸을 때 반응을 보면 전공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폭죽이 터져 아름답고 큼지막한 불꽃이 밤하늘 위로 솟아오를 때 일반인이라면 감탄사를 쏟아 낸다. 하지만 이과 전공자들은 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번 불꽃은 마그네슘이 많군.” 이렇게 말하면 화학과. 그리고 “소리가 도달하는 속도로 보아 발화점은 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군.” 이렇게 말하면 물리학과. 또 “지표면에서 올려다본 각도가 30도인 걸 보니 삼각 함수를 사용하기 적당하겠어.” 이렇게 말하면 수학과라는 식이다. 사실 이 이야기는 유머도 우스갯소리도 아닌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어쨌든 전공에 푹 빠져 있으면 아름다운 불꽃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다.
입시를 위한 수학 문제와 달리 세상의 ‘문제’에는 알고 보면 수많은 풀이가 존재한다. 사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법, 물리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법, 감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해법 등 각양각색이다. 문제를 풀기 위한 전제의 범위와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진짜 답’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여러 종류의 해법을 조합한 답이 아닐까. 불꽃이 아름다운 건 다양한 해법을 통합했기 때문이다. 홍콩의 고속 에스컬레이터는 사회와 물리가 조합된 해법이었다.
문제와 동시에 답이 존재한다고 수학자는 말한다.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워도 반대로 해법이 먼저 존재하는, 풀 수 있는 문제를 찾는다는 발상은 가능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무한한 종류의 문제가 있고 해법은 나밖에 모를 테니 말이다. 우연히 내가 풀 수 있고 그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다면 운이 좋다. 오늘도 에스컬레이터에 한 줄 서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당신 인생은 카오스 같네요.”라는 말을 듣고 기뻐 춤추는 까닭“네가 하는 말은 완전 카오스야.”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울컥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카오스’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잠시 ‘카오스’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 인생은 카오스 같네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어깨춤을 출 테니 말이다. 물론 나는 혼란을 즐기지 않는다. ‘카오스’라는 개념에 대한 인상이 일반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내 전문 분야인 물리학이란 과거의 상태를 알고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어떤 식으로 변할지, 그 변화를 예측하는 게 물리학의 임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미래 일을 훤히 내다보는 척척박사처럼 들리는데, 물론 미래 예측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다. 물리학에서 다루는 대상은 카오스적인 대상과 카오스적이지 않은 대상으로 나눌 수 있다. 카오스적인 대상은 두 가지 성질을 겸하고 있다. 첫째, 초기 조건의 민감성, 둘째, 에르고드성(ergodicity)이다. 말로 하니 어려운데 알고 보면 간단한 이야기다. 인생에 비유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다.
카오스의 첫 번째 성질인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란 최초의 상태를 아주 약간만 바꾸어도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가설이다. 산꼭대기에 공을 살포시 내려놓았다고 상상해 보자. 공을 살짝 동쪽으로 밀지 서쪽으로 밀지에 따라 굴러가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돌이켜보면 산꼭대기의 공과 같은 순간이 몇 차례나 있었다.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이처럼 만약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할 때가 있다.
아주 약간만 다른 판단을 해도 인생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물론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때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될 뿐, 그 당시에는 알 길이 없다. 즉 이 순간도 카오스의 순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카오스 이론을 알고 나면 카오스가 아닌 인생은 시시하다. 카오스의 초기 조건 민감성이 있기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카오스의 두 번째 성질인 에르고드성은 ‘온갖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위상 공간 중의 한 점이 에너지가 같은 면 위를 구석구석 운동하는 성질을 설명하는 용어인데, 시간이 가면 어떠한 가능성이라도 시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참고로 유명한 카오스 시스템의 예로 이중 진자 실험이 있다. 일반적인 진자는 정해진 구간을 왕복 운동할 뿐이라 카오스가 아니다. 영구히 같은 구간을 오가는 따분한 운동이다.
그러나 진자 아래에 진자 하나를 추가하기만 해도 카오스 운동으로 변한다. 위의 진자 주위를 아래 진자가 빙글빙글 돌기도 하는 등 관찰자가 질리지 않도록 다양한 운동을 보여 준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이중 진자 형태를 살펴보면, 다양한 형태를 그리며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현상이 에르고드성이다. 인간의 인생은 유한하다.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말도 지겹도록 듣고 있다. 만약 인생이 카오스적이라면 시간만 허락된다면 자신의 온갖 가능성을 시험해 보며 살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흥미롭게도 같은 물리 시스템에서도 카오스를 발생시키려면 에너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져야 한다. 인생을 카오스적으로 만들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한 셈이다. 만약 인생이 카오스라면 모험은 아주 약간의 ‘외도’로 충분하다. 아주 작은 한 걸음이 아주 먼 훗날에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물리학자인 내가 이렇게 수필을 쓰는 것도 카오스의 초기 민감성을 약간 바꾸는 ‘카오스’ 실험이라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어차피 내 인생이니 흥미롭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카오스적인 인생을 위하여, 건배!
물리학자는 어떻게 사고하는가?다음은 물리학회 가는 길에 지인과 내가 주고받은 문자 대화다. “회의장행 버스, 몇 명 타지도 않았는데 숨 막혀 죽겠군.” 얼마간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대답했다. “유효 숫자 1자리 60명.” 다시 침묵이 이어지고 지인이 말했다. “내일은 버스 타러 오늘보다 25분 일찍 오자.” 그런데 이는 물리학자들의 전형적인 일상 대화다. 일본 물리학회 회의장으로 가는 버스가 늘 콩나물시루처럼 붐비는 것이 전형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대화 뒤에 도사린 ‘물리학적 사고법’이 전형적이라는 말이다. 일본에 있는 1만 명 이상의 물리학자는 많든 적든 물리학적 사고법이 습관화되어 있다. 이 사고법은 물리학 연구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다시 말해 과학 발전의 배경에는 과학자 특유의 사고법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업계 사람들은 다 알아도 일반인은 모르는 업계 비밀이나 원천 기술 비슷한 개념이다. 대학 물리학 강의에서도 사고법은 따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물리 각론을 수업할 뿐이다. 나도 물리학적 사고법을 교수님에게 배운 기억이 없다. 대학원에 들어가 혼자 연구 논문을 쓰게 되면서 비로소 비법을 직접 다루기 시작했다. 우선 선배나 교수님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며 나만의 방법을 개발했는데, 여기서 물리학적 사고법의 비결을 아낌없이 공개하겠다.
물리학적 사고는 크게 4단계로 이루어진다. 문제 추출, 정의 명확화, 논리 연역, 예언. 이 4단계를 거치며 사고함으로써 물리학 연구를 차근차근 진행한다. 앞에서 소개한 만원 버스 안에서의 대화는 이 물리학적 사고법에 입각한 문제 해결이었는데, 이 사고법은 물리학 연구뿐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비결 1 - 문제 추출: 문제는 일반적으로 다중적이고 다양하기에 적절한 문제를 추출해야 한다.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정리하는 방법과 자신의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나타내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오간 지인과의 대화를 살펴보자. ‘죽겠군’이라는 부분은 의학부에 맡기고, ‘숨이 막힌다’는 표현은 문학부에 맡긴다. 자연 과학부용으로 추출된 문제는 ‘버스 한 대에 사람을 태울 때 몇 명까지 탈 수 있을까? 유효 숫자 한 자리로 답하시오.’가 된다.
비결 2 - 정의 명확화: 문제에 존재하는 애매한 표현이 과학에 방해가 되므로 적절한 정의가 필요하다.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정의가 필요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로 해결하기 쉽게 정의해야 한다. 가령 버스에서 오간 지인과의 대화를 적용해 보자. ‘버스’는 ‘3 x 10 x 2미터인 직육면체’라고 정의한다. ‘사람’은 ‘질량 70킬로그램인 물로 이루어진 구’라고 정의한다. 그러면 지인의 발언을 자연 과학부 언어로 번역하면 ‘3 x 10 x 2미터의 직육면체에 질량 70킬로그램인 물로 이루어진 구를 채우면 구는 몇 개 들어갈까? 유효 숫자를 한 자리로 답하시오.’가 된다.
비결 3 - 논리 연역: 문제가 정의되면 문제 풀이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풀이에도 비법이 있다. 오로지 그 문제 풀이에 집념을 불태워야 한다. 자신의 전문성이 크게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해 지인이 문제를 낸 지 30초 만에 유효 숫자 한 자리로 60개의 구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결과를 얻어 냈다. 여기서 계산 방법을 구구절절 늘어놓아 여러분을 따분하게 만들지는 않으련다.
비결 4 - 예언: 물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에 입각한 예언과 실증이다. 자신의 계산과 이론에 따라 실제 실험과 관측으로 실증해 이론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이 바람직하다. 마지막 지인의 발언 “내일은 버스 타러 25분 일찍 오자.”는 물론 예언이다. 지인은 머릿속으로 내 계산 결과인 ‘60명’이라는 숫자와 학회 회의장에 모이는 물리학회 회원 수 그리고 버스가 몇 분 간격으로 출발하는지 등의 숫자를 조합했을 터이다. 지인의 마지막 발언 후 나는 히죽 웃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32분’이라는 답이 나왔고, 그 답이 지인이 말한 답과 얼추 일치했기 때문이다. 물리학적 사고법은 우아함을 경쟁하는 종목이다. 서로 다른 두뇌로 문제를 풀어 찾아낸 답이 일치한 순간, 그 문제와 답에 찬사가 쏟아진다.
다음 날 아침, 나는 32분 전에 버스 정류장으로 나섰다. 지인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또 싱긋 웃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 정류장에는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25분 전에 온 지인과 함께 만원 버스에 올라탔다. “어제 근삿값 추정, 어딘가 오류가 있었나?” “그러게, 유효 숫자가 문제였나?” “아니면, 구를 근사로 잡은 게 문제였나?” 이렇게 물리학적 사고법은 단련된다.
나를 물리학자로 만들어 준 것들
나를 물리학자로 키워 준 ‘블록 놀이’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가장 키가 작았던 나는 체육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뛰어놀지 않고 주로 집에서 노는 아이였다. 그래서 ‘레고’ 같은 블록 장난감이 친구였다. 사실은 지금도 매주 초등학생 딸을 살살 달래 아빠가 같이 놀아 준다는 명목으로 레고를 가지고 논다. 블록 놀이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했으니 벌써 30년이 넘은 취미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처럼 어린 시절 붙인 취미가 무섭다. 블록 놀이는 무언가를 남기지 않아서 진정한 의미의 ‘놀이’다.
알다시피 ‘레고’는 작은 블록을 조합해 다양한 사물과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장난감이다. 참고로 레고는 내 용돈을 모아 살 수 있는 저렴한 장난감이 아니었고, 엄한 아버지가 무서워 차마 레고를 사 달라고 조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다이야 블록(DiaBlock)’을 가지고 오셨다. 회사 동료분이 자신의 자녀들은 다 커서 가지고 놀 사람이 없다며 주셨던 모양이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혼자 블록을 가지고 놀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블록 놀이가 나를 물리학자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블록은 매우 단순하며 종류가 적은 구성 요소를 대량으로 활용해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만들어 내는 놀이인데, 인류가 발견한 17종류의 소립자로 이 우주에서 보이는 부분은 얼추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블록 놀이와 판박이처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소립자는 블록이고 소립자 물리학은 결국 블록 놀이인 셈이다. 한편 블록은 구성 요소의 조합으로 다양한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어디서 본 적 있는 모양을 모방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트릭을 설치할 수 있다. 17종류의 소립자가 인류의 이 모든 현상을 만들어 내듯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전함과 자동차 모양을 블록으로 만들어 아버지에게 자랑삼아 선보이곤 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전함이든 자동차든 디테일을 살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블록의 최소 크기는 이미 정해져 있어 완성작의 크기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차츰 작아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애초에 블록 수는 정해져 있어 거대한 작품은 만들 수 없고 디테일보다는 특징을 잡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정된 부품으로 어떻게 자동차처럼 보이는 작품을 완성할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매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