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에 아버지가 있다
우동준 지음 | 호밀밭
내 얼굴에 아버지가 있다
우동준 지음
호밀밭 / 2021년 8월 / 192쪽 / 12,800원
아버지란 낯선 세계
아버지가 궁금해졌어‘내 얼굴에서’ 잊고 있던 아버지를 발견한 순간 지금은 무얼 하는지, 노쇠한 그의 모습은 어떨지, 어릴 적 올려다본 모습과는 얼마나 다른 얼굴일지 궁금해졌다. 아버지를 향한 어떤 따뜻하거나 애정 가득한 마음이 생긴 건 아니다. 그저 20년이란 아득하고도 구체적인 시간이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아픔을 희미하게 만든 탓이다.
나는 아버지를 잊고 지냈지만, 아버지를 기억하는 분들은 덩치가 커진 나를 보며 어찌 그리 아버지와 똑같이 생겼느냐며 놀라워했다. 아버지의 서른을 지켜본 어머니는 웃는 소리와 곯아떨어졌을 때의 모습이 영락없이 젊을 때의 네 아빠 모습이라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이따금 그리운 얼굴을 짓기도 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행동마저 닮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누군가의 그림자인 것 같았고, 진짜 내 모습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버지와의 유쾌하지 않은 연결은 내 평생의 삶을 따라다녔다. 아직 성인에 이르지 못한 ‘소년’ 시절의 나에겐 특히나 아버지가 필요했다. 아버지가 벌어다 주는 돈이 필요했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위로자로도 필요했다. 무섭기만 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자로도 필요했고, 코앞에 닥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해결사로도 필요했다. 그리고 사회의 모든 곳에서 미성년의 시기를 보내는 나를 보며 내 아버지의 존재를 물었다.
“니네 아부지 뭐하시노.” 영화 <친구>에 나오는 명대사다. 많은 이가 극적인 연출이라 생각하겠지만 부산 광안리 바다 앞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에겐 다분히 현실적인 문장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모두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학기 초부터 개별 면담을 통해 아버지 직업을 물었다.
면담이 끝나면 어떤 학생은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또 어떤 학생은 잔뜩 풀이 죽은 채로 나왔다. 쉽게 대할 수 있는 학생과 조심해야 할 학생을 나누는 기준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통해 ‘가능성’과 ‘가치’가 매겨지는 세계에서 아버지가 없던 나의 가능성은 그리 무한해 보이지 않았다.
‘가정 환경 조사’란 이름으로 배부된 종이는 내가 아닌 나의 보호자를 파악하기 위한 종이였다. ‘보호자’라는 법정 대리인이 있어야 비로소 나를 설명할 수 있었던 시간은 존재만으로 내가 설명되지 못했던, 불안한 미완의 시절이다.
어머니를 설명하던 단어는 한동안 ‘전업주부’였다. 여기저기 단기적 일자리를 옮겨 가며 홀로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 왔던 어머니였다. 분명 정당한 노동을 통해 정직한 돈을 벌었지만 직업란은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전업주부’였다.
직업이 있는데 왜 전업주부라고 써야만 할까 의문이었지만, 그보다 궁금한 건 아버지를 설명하던 공란이었다. 으레 그렇듯 매년 비어 있는 칸을 제출하던 나는 어느 날 순수한 호기심으로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아빠 직업은 뭐라고 해야 해?”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지 못해 한참을 고민했다. 더럽고, 서럽고, 치사한 세상 속에서 숱한 경험이 쌓인 그였지만, 학교 선생님이 의아해하지 않으면서도 어린 아들이 상처받지 않을 만한 적당한 단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어머니는 펜을 들고 빈칸을 직접 채워 주었다.
‘자영업.’ 자영업이란 단어에 나는 더 묻고 싶은 게 많아졌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미루어 짐작한 답변은 명확하고도 슬펐다. 그리고 이 순간부턴 호기심은 어느 정도 묻어 두어야 한다는 걸, 모호함이 서로가 상처받지 않을 최고의 대답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다음 날, 나는 당당히 종이를 제출했지만, 선생은 참 지독히도 물었다. “니네 아버지 그래서 뭐 하시노? 동네 구멍가게를 한다는 말이가, 아니면 사업을 하신다는 말이가.”
우리 반 친구들은 제 아버지의 직업도 알지 못하는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은 적의에 찬 눈빛과 침묵이었다. 지독히 캐묻는 선생 앞에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고, 선생은 이글거리는 아이의 눈빛을 보고서야 무언가를 짐작했는지 날 선 질문을 그쳤다.
다른 친구가 제출한 종이를 읽은 선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가 제출한 종이를 보고도 질문은 없었다. 그랬다. 가정 환경 조사를 하며 질문을 받는다는 건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어딘가 남들과 같지 않다는 공공연한 인증이었다.
가정 환경 조사는 내가 머물러야 하고 머물 수밖에 없는 환경을 학습시켜 주었다. 그러니까 이전까지 다를 바 없던 나와 짝꿍이 서로의 부모를 알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니네 아버지 뭐하시노.’ 이 작은 질문이 누군가에겐 자신감을, 누군가에겐 위축과 부끄러움을 남겼다. 다음 학년의 가정 환경 조사에서는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고, 그래서 대체 ‘자영업’이 무슨 의미냐고 어머니에게 묻지 않았다. 선생의 질문에 내가 느껴야 했던 오랜 고민과 길고 긴 난처함,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야 했던 슬픔을 어머니에게 다시 던지고 싶지 않았다.
‘너희 아버지는 무슨 일 하셔?’ ‘아버지랑은 옛날에 헤어져서 잘 몰라.’
아버지의 직업으로 서로를 판단하던 습관은 여전히 남았다. 90으로 시작하는 주민 등록증이 나오고 나만의 번호로 맥주도 사고 소주도 사고 담배도 살 수 있는 성인이 되었지만, 내 아버지가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은 여전히 서로를 판단하는 좋은 잣대였다.
모른다는 답은 귀찮은 질문을 막을 수 있는 최고의 답변이기에 서툰 거짓말 실력만 잔뜩 늘었다. 서툰 거짓말은 그렇게 계속 덧칠해지고 다듬어져서 헤어짐은 옛날의 시간이, 당신을 모른다던 거짓말은 점점 세련된 진실이 되었다. ‘니네 아버지 뭐하시노.’ ‘글쎄요 선생님. 이젠 정말 모르겠는걸요?’
이젠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를 향한 의문을 잃었다.
모든 질문엔 때가 있다. 특정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 여부와 상관없이 질문은 그 자체의 의미가 상실되고 만다. 여린 성장의 시기엔 아버지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크게 다툰 친구와 화해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고 싶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묻고 싶었다. 아버지의 지난 시도를 청해 들어 나의 길을 다잡고 싶었고, 아들과 아버지로 마주 앉아 앞선 삶의 언어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순간에 꺼내지지 않은 질문은 조금씩 말라 갔고 우리는 이후로도 여전히, 아직까지 마주 앉지 못했다.
‘혹시 내 아버지에 대한 의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었을까.’ 매일 밤 자신에게 물어보지만, 여전히 답은 모호하다. 하지만 고민이 깊어질수록 꼭 꺼내야 할 질문이,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꼭 물어야 할 질문이 점차 또렷해져 갔다. 평생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아 온 내가 되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여러분, 그 질문 말고요.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 말고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하지 않겠어요? 왜 아무도 아버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삶을 꿈꾸었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를 묻지 않나요?’
똑똑, 문을 두드리다
우린 이렇게 아버지가 된다“다 같이 모여 사는 가족이요. 다른 것 없이 평범하지만 모여서 행복한. 주말 연속극에 나오는 그런 가족이요.”
평범함은 어렵다. 얼핏 최솟값인 것처럼 인식되는 ‘평범’이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주위의 좋은 것과 안정된 것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타인과 나의 삶을 비교하는 기준 혹은 나의 하루를 평가하게 하는 지표이기도 하기에 평범함을 쫓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멋진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는 점박이에게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리움이 있었다. 점박이의 아버지는 대양을 누비는 거대한 상선 속 선원. 배는 머무는 존재가 아니기에, 육지에 머무는 시간은 늘 짧기만 했다. 점박이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대륙을 건너온 물건을 내리고 물을 채워 다시 떠나기 전까지의 짧은 정박 기간뿐. 점박이의 아버지도 머무는 존재가 아니었다. 배와 함께 떠나는 아버지의 삶,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은 점박이로 하여금 새로운 가족에 대한 강한 연결로 이어지게 했다. ‘같이 살고, 같이 있어야겠다.’, 점박이가 간직한 오랜 꿈이다.
아버지의 역할은 돈 벌고, 가정을 책임지고 내 아이와 아내를 위해 어떻게든 열심히 일하는 것도 맞죠. 그것도 맞는데 저는 순간순간에 지켜 주는 그런 아버지가 되어 주고 싶어요. 내 아들에게요.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켜 주면서요.
5개월 된 귀여운 아들의 사진을 보여 주는 점박이는 매 순간 아이와 연결되는 아버지를 꿈꿨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삶의 의미,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이 주는 충만함을 이미 알았던 점박이지만 그는 멀리서 보는 내가 숨이 가쁠 정도로 무척 바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잠을 줄였고, 매 순간 모든 곳에 그가 있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느낌은 아니었다. 내게 느껴지는 그의 동기는 내가 사는 세상보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 업무에 집중하지만, 그만큼 아이가 통과하는 시간과 함께할 수 없는 아이러니. 그는 이제 아빠의 다음 역할이 ‘앞서 포기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내가 해 왔던 것들을 조금씩 줄이고, 조금씩 포기하고,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 역시 조금씩 늘어나겠죠. 어떻게 보면 아빠의 역할은 ‘포기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남편의 역할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결혼하면서도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많이 생겼으니까요. 그렇게 포기하면서 가족도 가정도 지켜야 하는 거겠죠.그는 지키기 위해 포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제나 마찬가지다. 새로운 걸 쥐기 위해 필요한 건 내려놓음이다. 손에 쥐고 있는 걸 먼저 내려놓아야 다른 무언가를 쥘 수 있다. 나를 위한 것들을 포기할 때 가족을 위한 안정을 쥘 수 있다는 말. 그가 말하는 포기는 내가 지금까지 들어 온 단어와 힘이 달랐다.
당신의 삶에 당신이 아닌 내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 전해질 때 더할 나위 없는 감동과 사랑이 시작될 것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점박이는 이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가 포기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많이 강요했던 거 같아요.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희생하라고요.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기억나요. ‘아들아, 그럼 내 행복은?’ 찡하더라고요. 평생을 그렇게 가족을 위해서 사셨을 건데. 고생하며 외롭게 살았을 건데. 누구 하나 인정 안 해 줬을 거고, 커서야 아는 거죠. 나도 이제 아버지가 돼 보니까 그래요.모두가 서로를 위해 행동하지만 외로운 세상이다. 흔들리는 배를 밟으며 바다를 헤매던 아버지도 외로웠을 것이다. 나의 포기에서 ‘아버지의 포기’로의 자연스러운 전환을 보며 어린 날의 상처를 상실로 끝내지 않고, 어떻게든 사랑으로 이어 가는 점박이가 신기했다.
점박이는 나와 많은 면에서 달랐다. 지향도 영역도 달랐지만, 점박이는 분명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으려 애쓰는 사람이었다. 매번 자기의 의견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먼저 꺼내 듣던 사람이었다. 오늘만큼은 오롯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아들과 함께하고 싶은 게 있나요? 내가 어릴 때 아빠랑 하고 싶던 것들요. 시간이 허락하고 가능하다면 야외 활동을 하고 싶어요. 애들이랑 축구하고 캐치볼하고 저는 다른 친구들 보며 그런 게 부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소주 먹고 싶어요, 아이하고. 아이고- 얘 언제 키워서 같이 소주 한 잔 먹을까 싶네요.그동안 기꺼이 버거움을 택했던 그였기에, 사랑하는 이가 바라는 내일을 위해 오늘의 나를 내려놓을 줄 아는 그였기에 누구보다도 큰 기쁨을 보상으로 얻길 기도한다. 그가 마지막에 말한 바람만큼은 꼭 포기하지 않길 바랐다.
아버지의 역할은 단 하나, 꾸준히 살아가는 것
“이 험난한 시대에 아버지의 역할은 하나입니다. ‘살아가는 것’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웬만해선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다. 특별한 알레르기도 없어 땅콩이든 게든 거침없이 먹어 대지만 딱 하나, 아이스크림 ‘바밤바’만은 아직도 먹질 못한다. 어릴 적 바밤바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먹다 목에 걸려 아침에 먹은 걸 한참 게워 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바밤바만 보면 괜히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린다. 개에 물려 본 사람은 작은 강아지만 봐도 식은땀이 나지 않나, 무엇이든 얽힌 기억이 좋지 않다면 짧은 마주침도 불편해지는 법이다.
고등학교 때 일이다. 허리 굽혀 인사하지 않았다며 유난히 날 괴롭히던 이가 있었다. 그가 어찌나 내게 ‘선배’를 강요하던지 이후 짧은 대학 생활에서도 끝까지 입에 붙지 않던 단어가 선배다. 급히 먹다 게워 내 아직까지 꺼리는 아이스크림처럼 아직 소화하지 못한 단어가, 메스꺼움이 소환되고 지난 괴롭힘이 떠오르는 단어가 선배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선배는 나의 고민을 앞서 하고, 오늘의 같은 어려움을 마주하는 사람이었지만, 짧은 삶에서 마주쳤던 선배들은 모두 대접과 인정, 굴복을 바랐다. 그들에게 선배와 후배는 완벽한 위계였다. 그렇게 선배란 존재를 믿지 않고 지내다 흰머리에 주름이 깊은 아버지 ‘형’을 만났다.
‘형’은 다양한 사회 현장의 모습을 담는 사진사였다. 노란 리본이 가득한 세월호 팽목항에서도, 할머니들의 눈물이 가득한 송전탑 밀양에서도, 경남이 아닌 다른 지역의 거리 현장에서도 그의 렌즈는 세상 곳곳의 주름을 담아냈다. 생계와 가족을 위한 본업은 꾸준히 이어 가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역할, 사회 속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는 매일 카메라를 메었다.
우리들의 삶은 개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요. 내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 그리고 내 아들의 세대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코 분리될 수가 없지요. 자식 세대였던 우리가 부모 세대가 되었고, 자식 세대인 이들이 곧 또 다른 누군가의 부모 세대가 될 테니까요. 이 연결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존엄에 대한 문제, 결국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냐의 문제까지 이어질 테니까요.‘형’은 유기적인 삶을 강조했다. 그는 순환의 개념으로 아들을 대했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순종적인 아들. 위계로 형성된 관계가 아닌 언제든 아들이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아버지도 줄곧 누군가의 아들이었듯 역할과 삶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후배가 선배가 되고, 다시 선배가 누군가의 후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바랐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 생물학적 영향력을 넘어 아들과 같은 사회를 공유하는 아버지, 나의 길을 앞서 걸어가며 삶의 방향을 공유해 줄 수 있는 아버지. 아들과 같은 꿈을 꾸는 선배 같은 아버지다. 가장 고민 많은 단어이면서 가지고 싶은 단어였던 ‘아버지’와 ‘선배’의 결합이 ‘형’에게 있었다.
저는 자식 세대에게 특별하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잘 꾸려 가리라 믿으니까요. 저는 언제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그것을 즐겨라.’라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장 무섭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