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길을 묻거들랑
김명희 지음 | 이바구
누가 길을 묻거들랑
김명희 지음
이바구 / 2022년 9월 / 168쪽 / 14,000원
교차 지점새해 첫날이 큰손녀 백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돈 식구들은 오지 못하고, 우리끼리 아기 사진만 찍어 주었다.
엄마가 계시는 요양 병원에서 새해라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두 사진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시작하는 세대와 가는 세대 사진을 보니 착잡하다. 내 삶의 지점은 지금 어디쯤 있으며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끝점에서 안도하며 마무리를 잘 할 수 있을지 생각이 깊어진다.
꼬물꼬물KBS <인간극장> ‘해바라기 심는 사람’ 편을 보았다.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당암리에는 심정래 씨 모녀가 함께 일군 2만 평의 대정원이 있다. 그 넓은 정원에 해바라기가, 밝은 웃음을 띤 사람들처럼, 노랗게 피어 있다. 암 투병 중인 모녀가 환자로 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해바라기 정원을 꾸며 가고 있다고 한다.
“폐암으로 죽는 줄 알았는데 수술하고 이렇게 꼬물꼬물 살아났어요.” 어머니 조한의 씨가 웃으며 말한다. 삶에 대한 애착이든 강인함의 발산이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환하게 웃고 있는 해바라기를 닮았다.
‘꼬물꼬물’은 작고 느리지만,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나 여기 있어요.”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말이다. 살아 있음을 알리고 있다.
꼬물꼬물은 시작이다. 큰 것으로 가려는 꼬물거림. 그 작은 꼬물거림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
꼬물꼬물 꼬물꼬물 / 꼬물꼬물 올챙이가 /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아이들이 부르는 개구리 노래다. 봄날 연못 속을 들여다보면 올챙이가 꼬물꼬물하며 헤엄치고 있다. 이 꼬물거림을 시작으로 앞다리 뒷다리가 쑥 나오며 개구리가 된다.
씨를 뿌리면 꼬물꼬물 작은 새싹이 머리를 내밀며 세상에 인사한다. 꼬물거림은 시작의 작은 몸짓이다. 모든 것은 이 꼬물거림으로 시작한다. 작은 몸짓이라고 무시하면 큰일 난다.
코로나도 꼬물거리는 바이러스의 시작이었다. 그때, 잘 봤어야 했다. 그 작은 바이러스의 꼬물거림이 온 나라를 온 세계를 들썩거리게 했다. 무엇이든 시작의 꼬물거림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아주 작은 꼬물거림부터 정성을 다하면 보다 밝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첫 손주 동윤이의 태아 사진을 보던 날, 올챙이만 한 꼬물거림의 경건함이라니. 아이를 둘이나 낳았건만, 요 작은 꼬물거림의 생명체에 대한 기쁨은 대단했다. 드디어 그 녀석이 태어나던 날, 그 작은 손을 꼬물거리고 입을 꼬물거리며 울어대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다.
꼬물꼬물하던 몸짓이 제법 역동적이었다. 꼬물꼬물 입짓만 하던 입으로 큰 소리로 울기도 하고 껄껄껄 웃기도 한다. 꼬물거리던 작은 손가락으로 뭐든 움켜잡고 섬세한 손가락질을 한다.
이제 꼬물거리던 작은 손으로 세상을 향해 악수를 청하고 꼬물거리던 작은 발은 대지를 힘차게 디디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꼬물꼬물 애벌레 나는 아주 작지만 / 세상 그 누구보다 커다란 꿈 있죠. / 지금 내 모습은 작고 초라해 / 힘들고 어려운 시간 있겠지만 / 커다란 나무 위 저 푸른 하늘로 / 훨훨 날아가는 꿈을 꾸어 봐요. / 꼬물꼬물 애벌레 나는 아주 작지만 / 세상 그 누구보다 커다란 꿈 있죠.
‘꼬마 애벌레의 노래’라는 동요의 가사이다. 지렁이의 꼬물거림은 흙에 공기구멍을 내 주어 그 흙에 기대고 있는 생명체한테 도움을 준다. 징그럽게 꼬물거리는 애벌레는 나비가 되고 매미가 된다. 아이들의 꼬물꼬물 생각이 커다란 나무가 되면 이 나라를 우뚝 받쳐 줄 기둥이 된다.
꼬물꼬물 살아 있다는 조한의 씨처럼 나이가 들고 몸이 늙어도 꼬물꼬물 생각을 움직이면 넓은 정원에 해바라기를 가득 심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처럼 내 인생도 남의 인생도 해바라기처럼 밝아지리라.
나를 찾아서경기도 여주에 있는 소망교도소의 글쓰기 인성 교육 강의는 글쓰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고 진정한 나를 찾기’ 수업으로 진행을 한다. 처음엔 교도소, 죄수, 이런 단어들에 자유스럽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내 마음이 굳어지니 어려울 수밖에. 하지만 여러 번 다녀 보니, 마음이 풀리고 강의도 재미있어졌다. 온 팔에 문신으로 휘감겨 있어도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돌아보기, 나에 대해 안부 인사해 보기, 나를 사랑하기 등을 이야기 나누고 나서 ‘나’를 글로 써 보라고 하였다. 글로 쓰지 못하면 그림이라도 그려 보라고 했다.
한 재소자가 동그랗게 그린 풍선에 검은 칠을 해 놓았다. 눈, 코, 입은 없이 한가운데를 그려 놓고는,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반짝거림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다.
“?는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라는 생각이고, 얼굴을 검게 칠한 것은 지금 자신의 처지이고, 반짝거림을 나타낸 건 노력하면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을 한다.
이곳에 많은 재소자가 교화가 잘 돼서 모두 깨끗하고 반짝거리는 마음과 얼굴로 살아가길 바라본다.
교도소 안에 들어갈 때는 핸드폰을 비롯한 모든 물건을 두고 오로지 강의 자료만 들고 들어갈 수 있다. 강의할 때면 나도 잠시 갇히는 기분이 든다. 입구에서 강의실까지 들어가려면 서너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모든 문마다 열쇠로 열고, 다시 잠근다.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교도소 더 깊은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네 일상에서도 ‘열고, 닫음’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잘 잠그고 열기, 지갑 잘 잠그고 열기, 생각, 감정, 인간관계, 모두 잘 열고 잘 잠가야 하는 일이다.
벚꽃들이 연분홍으로 연녹색 나무들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봄날, 그들을 만나러 여주로 향했다. 이젠 더는 낯설지 않은 그들과 편안히 만난다. ‘용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일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 모든 책임도 나에게 있다. 나부터 용서해야 화가 쌓이지 않고 분노를 다른 이에게 표출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는 글과 누군가를 용서하는 글을 써 보라고 하였다.
대부분 부모님이나 아내, 자식들에게 또, 자신이 가해한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며 울먹였다. 그런데 한 젊은 청년이, “저는 용서를 빌 일이 없어요. 세상이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고 말을 한다. 얼굴을 보니, 노여움이 가득하다. 상담을 해 보면 정말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살아서 ‘그래, 너는 이 정도의 범죄만 저지른 것도 장하다.’ 하고 말해 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결코 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랑받지 못하고, 귀함 받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하고 외면당하며 설움을 받은 이들은 노여움이 층층이 쌓이게 마련이다. 그 분노가 범죄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것이다. 우리도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함께 사는 이들에게 바쁜 것을 핑계 삼아 /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못하고 / 듣는 일에 소홀하여 건성으로 지나친 / 당신을 용서합니다. / 나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이해인, 「용서의 계절」 중에서
이해인 수녀의 시를 함께 읽으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용서를 빌고 서로를 용서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도소 건물 앞 들판에 갈대꽃이 하얗게 피어 빛나던 가을날의 수업은 유난히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그동안 다른 건 다 사랑하면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미안하다.”라며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 보게 했다. “지난 일을 돌아보라면 내가 한 행위만 돌아보았지. 정작 나는 보지 못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렇듯, 조금씩 조금씩 자신에 대해 마음을 열고 돌아보는 모습을 보면서 교도소가 텅 비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소망교도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교도소이다. 많은 봉사자가 와서 일대일 교화 상담도 하고, 음악회, 영화 치유, 글쓰기, 미술 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도소 출소자의 재범률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강의는 늘 ‘새로운 나 찾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글쓰기를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자존감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들은 그 공간에 있는 시간만큼 사회와 점점 멀어진다. “이곳에서 나갔을 때 뭘 할 수 있을까.”라며 불안해한다. 이 불안감을 없애 주기 위해 ‘기준이 아닌 기점’을 정하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뭔가 시작할 수 있을 때, 그때가 기점이 되는 것이라고. 남들과 비교되는 기준은 정하지 말라고.
본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다. 자신을 자꾸 들여다보면서, 지금의 나를 보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글 쓰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자신을 꺼내 놓고 제3자의 눈으로 잘 바라보며 생각하고 깨달아서 나중에 사회에 나갔을 때, 지금 있는 이 시간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지 않도록 하라는 얘기를 해 주었다. 나의 과거나 미래의 모습, 버리고 싶은 나, 갖고 싶은 나 등, 자신에 대해 써 보라고 했더니 “나는 27살. 앞으로 남은 내 나이는 71살. 나의 미래가 나의 형이다. 앞으로는 형답게 살련다.”라면서 환히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나이 들어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처럼 멋지지 못한 후회와 괜찮은 아버지이고자 다짐하는 정환웅 시인의 자화상을 함께 읽고 아버지에 대해 써 보도록 했다.
딸아이한테 많이 못 안아 줘서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미안한 게 너무 많아 울먹이는 아버지도 있고, 아버지가 그리워서 아버지께 죄송해서 눈물 흘리는 아들도 있다. 서로가 그런 아버지, 아들이 되어 먹먹한 가슴을 나누었다.
이제, 그만 미안하고 좋은 아버지, 좋은 아들이고자 웃으며 약속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푸른색이 구속이 아닌 희망이기를 바라본다.
누가 길을 묻거들랑노란색, 초록색, 빨강, 보라, 파랑, 색색의 길들이 마치 색실을 꼬아 놓은 듯 이리저리 꺾이고 만나며 복잡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있으면 어지럽다. 그만큼 갈 곳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다. 저 많은 길 가운데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이고, 어디로 가야 할까.
예전에 나들이하려면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도 차고 자드락길을 걷다 돌부리에 차이기도 했지만, 그저 길을 따라가면 되었다. 하지만 이젠 하늘길, 땅속 길까지 생기며 에움길을 전부 지름길로 만들었다. 몸은 덜 힘든데 머리가 힘들다. 까딱 잘못하면 오히려 되짚어 돌아가야 하는 에움길이 되 버리고 만다.
9호선을 타고 여의도역에서 막 내려 5호선으로 갈아타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한 젊은이가 뛰어오며 “개화역에 가려면 어디서 타야 해요?” 하고 묻는다. “아, 이거요.” 무심결에 지금 막 내가 타고 와서 내린 지하철을 가리키며 대답을 했고 그는 떠나려는 차를 타기 위해 뛰어 내려갔다. 순간, 아차 싶었다. ‘저건 개화에서 온 건데.’ 하고 얼른 돌아보았더니 열차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못 탔겠지.’ 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영 찜찜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알려 준 내 한 마디에 엉뚱한 곳을 헤매면 어쩌나 싶었다.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다시 계단을 서둘러 올라갔다. 아까 그 청년이 급하게 내려오더니 건너편 계단으로 뛰어오른다. 아마도 누군가가 제대로 알려 준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누군가 어디로 가는 길을 묻든 인생의 길을 묻든 섣부르게 대답하지 말자. 가벼운 한 마디에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섞갈리기 쉬운 홀림 길을 헤매게 만들 수도 있다. 엉뚱한 곳을 헤맬 그 사람은 어찌할 건가.
집으로 오는 길, 여의도에서 아까와는 반대로 9호선으로 갈아탔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으로 가려면 여의도에서 당산을 지나 선유도를 거치는데, 샛강을 지나고 있다. 지하철을 잘못 타는 바람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허겁지겁 노들역에서 내려 되짚어 타고 집으로 왔다. 다행히 얼른 알아챘기에 멀리 안 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인생길을 가다 잘못 간 길인 줄 알았을 때 얼른 바꿔 타야 한다. 끝까지 가 보자 미련을 떨 때도 있다. 돌아오는 길만 멀어지는데.
한 번은, 처음 가는 길에 난처한 일을 경험했다. 어느 쪽에서 무엇을 타야 하는지 헷갈렸다. 어림짐작으로 탔다가 다시 갈아타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 다른 이에게 물어보았더니 바로 가르쳐 준다. ‘아니, 이렇게 쉬운 것을?’ 속으로 혼자 웃었다. 물어보면 이리도 간단한 것을.
북극 탐험을 할 때, 물론 나침반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북극성을 바라보고 걷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오로지 북극성만 바라보고 가면 정확히 목적지에 갈 수가 없단다.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는 중간중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네 인생길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잘 가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지하철을 잘못 타 엉뚱한 방향으로 가듯, 전혀 다른 곳으로 가 버릴 수도 있다.
누가 길을 묻거들랑, 잘 살피고 알려 주자. 가다 또 물어보면서 가라는 그 말과 함께.
대가족 제도 부활론요즘 숭한 이야기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20일도 안 된 갓난아기를 때린 출산 도우미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아기를 마구 흔들고 던지는 모습, 산후조리원에서 아기를 떨어뜨리고도 말을 하지 않아 아기가 생사를 헤매게 된 일들…. 어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요즘엔 아기를 낳으면 전부 조리원이라는 곳엘 들어간다. 예전에는 친정에 가서 몸조리하며 산모는 친정 엄마의 정을, 아가는 외할머니의 보살핌과 정을 듬뿍 받지 않았던가.
그런가 하면 노인들의 고독사가 심심찮게 알려져 우리 마음을 아리게 한다. 갈 곳을 잃어버린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가족이 아닌 나라의 손길을 받고 있다.
광고에도 슬픈 모습이 등장한다. “허리를 다쳐 화장실을 못 가는데 아들은 회사 가고 며느리에게 시중을 들게 할 수도 없고….” 그러니 보험을 들어 간병을 해결하라는 광고이다.
결국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외롭고 힘든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중간에 있는 젊은이들은 아이 맡기고 노인네 맡길 돈 버느라 바쁘고 힘들다. 마음은 마음대로 불편하고.
작은 녀석이 아들을 보았다. 며느리 역시 조리원에서 조리하고 퇴원한 뒤 출산 도우미를 불렀다. 지금은 혼자서 아이를 보고 있는데 작은 녀석이 미국으로 출장을 가는 바람에 안사돈과 내가 교대로 가서 도와주고 있다.
집집마다 아이 양육 문제로 난리들이다.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하루씩 교대로 또는 격주로, 한 달 단위로 해서 교대로 봐주는 집도 있고, 그마저도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을 빌린다.
요즘 이런저런 사태를 보며 대가족제가 다시 부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이를 낳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주실 테니, 남의 손에 맡겨 아이 학대받는 일 없을 테고, 아픈 노인 계시면 가족들이 다 함께 돌봐 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가족이 많으면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생활을 배울 수 있으니 사회성을 기를 수 있고, 경험이 많은 어른과 오래 지내다 보면 자연히 삶의 경험도 저절로 전수받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젊은이들은 구세대적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진지하게 생각해 봄 직하다. 집도 여러 채 필요 없으니 주택난도 해결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