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 않은 사랑
주서윤 지음 | 모모북스
가난하지 않은 사랑
주서윤 지음
모모북스 / 2022년 2월 / 260쪽 / 15,000원
나를 사랑하기
방치된 관심“엄마. 난 어릴 때 어땠어?”
“너? 순했지. 착하고.”
“그리고?”
“잠 많고…… 손이 많이 안 갔어. 네 오빠는 손 많이 가서 고생했는데.”
나는 어렸을 때 좋게 말하면 얌전한, 나쁘게 말하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아이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키 158cm, 혈액형 A, 생일 1월 11일과 같은 ‘외적 정보’ 빼고는 나에 대해서 잘 몰랐던 아이였다. 그땐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말로 진짜 문제였다.
어느 날 친오빠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이름에 ‘석’ 자가 들어가서 ‘석이 오빠’라 불렀다. 석이 오빠는 바가지 머리에 안경을 낀 친절한 오빠였다. 나는 그런 석이 오빠를 위해 <파스타>(2010)라는 드라마에서 본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재료는 면, 식용유, 소금이 끝이었다. 우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둘렀다. 그리고 익힌 파스타 면을 프라이팬에 넣고 볶았다. 그다음 소금을 넣었다. 끝! 레시피도 안 보고 간도 안 본 최악의 오일 파스타였다. 맛은 안 봐도 뻔했다. 석이 오빠에게 말했다.
“맛있겠지~.”
석이 오빠는 상기된 목소리로 물어봤다.
“오. 네가 만든 거야?”
“응. 먹어봐!”
석이 오빠는 내가 준 포크를 받고 오일 파스타를 먹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파스타 면을 씹기만 했다. 석이 오빠가 말했다.“맛있네.”
석이 오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포크를 돌려주었다. 나는 석이 오빠가 건넨 포크의 의미를 몰랐기에 오일 파스타를 입에 가득 넣고 씹었다. 먹기 전 생각했다. ‘이건 분명 맛있을 거야!’ 그러나 알게 됐다. 석이 오빠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었는지.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단 걸 알게 됐다. 그리고 뒤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무엇을 잘하지?’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르게 물어보았다. ‘그럼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역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는 건가? 그럼 진짜 큰일이잖아…….’ 나는 그동안 내가 특별하지 않아서, 관심을 가질 이유조차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땐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말로 진짜 문제였다.
눈과 귀를 닫은 신생아처럼 나에 대해 아는 게 너무나도 없었던 나. 특별하지 않아서 관심을 가질 이유조차 없었던 나. 내가 나를 방치하고 사랑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었다.
나의 MBTI 변천사요즘 MBTI가 유행한다. MBTI란, 인간의 성격을 16가지로 분류한 성격 유형 테스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카페에서 들은 대화>
사람 1 : 너 MBTI 유형 뭐 나왔어?
사람 2 : 나 뭐 나왔더라. 잠깐만, 나 ISFJ.
<전철에서 들은 대화>
사람 1 : 나도 이제 사회화가 됐나 봐.
사람 2 : (웃으며) 너 사회화 된 인팁(INTP)이야?
사람 1 : 어~. 사회화된 인팁(INTP)이다~. (웃음)
전문가들은 MBTI를 신뢰성 있는 테스트로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MBTI는 과학이야!”라는 유머를 던진다. MBTI 덕후들은 이쯤 되면 내 MBTI도 궁금할 것이다. 나의 MBTI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12~13살: ISFP
액세서리, 옷에 관심이 많았고, 외모 꾸미기를 좋아했으며, 셀카 찍기를 즐김.
15~19살: INFP
감수성이 풍부했고, 음악 듣는 걸 좋아했으며, 심리학 책 읽기를 즐김.
20~22살: ENFP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거의 매일 술을 마셨고, 물건 빠트리는 일이 많아졌음.
22~25살: INTP
사람이 조금 (사실 많이) 싫어졌고, 두뇌 회전이 빨랐으며, 비판적 사고를 즐김.
26~28살: INFJ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매일 밥 먹듯이 고민함.
그 이외: INTJ, ENTP
INTJ는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하고 싶을 때 나오는 유형. ENTP는 자신감 가득일 때 나오는 유형. 둘 다 회사 생활할 때 가끔 나옴.
사람들이 나에게 MBTI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INFJ요.”라고 대답하긴 한다. 하지만 사실은 빼먹은 말이 있다.
“(이번엔) INFJ요. (언제 또 바뀔지 몰라요.)”
그 어떤 유형도 각자의 색깔로 사랑스럽다.
일상을 사랑하기
일상의 변화요즘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어렸을 때 불멸의 마마와 자주 간 곳은 백화점이다. (불멸의 마마는 엄마의 별명이다.) 옛날에는 백화점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많이 줄었다.
백화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옷 매장이었다. 2층 옷 매장에는 언제나 사람이 많았는데, 그곳도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 요즘 불멸의 마마와 나는 백화점에 가도 옷을 사지 않고 그냥 나왔다. 사람이 없어서 흥이 떨어진 걸까? 불멸의 마마는 “집에 옷이 너무 많아서 이젠 살 게 없네.”라고 부자처럼 말했다. 옷에 대한 욕망은 충분히 충족되었다는 의미였다.
나도 불멸의 마마에게 “나도 그래~. 이제 옷 안 사도 돼.”라고 말했으나, 사실은 남자친구가 없어서 옷을 사지 않은 거였다. 바이러스 시대에 연애를 하지 않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절망이다. 아니, 정말이다…….
언젠가부터 꾸미는 걸 줄이기 시작했다. 일단 마스크를 끼면 얼굴의 절반이 안 보였으니 화장을 줄였고, 사적 모임 제한으로 인해 사람을 만날 일이 없어서 옷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행에 목숨을 걸지 않기도 했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여행 강박(?) 같은 게 있었다. 인생은 한 번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강제로 모임을 줄이고, 만남을 줄이고, 외출을 줄이니, 지루함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져서 여행을 가지 않아도 괜찮게 됐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가 줄어들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모임을 강제로 간 적이 몇 번 있다. 내 인간관계는 어쩌면 의무로 가득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바이러스로 인해 모임에 가지 않을 핑계가 자연스레 생겼다. 그 점은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코로나바이러스는 하루빨리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요즘이야말로 평범한 일상이 너무 소중해지고 있다. 평범하게 온정과 사랑을 나누던 그때가 그립다.
최초의 능동적 사랑초등학교 앞에는 늘 세 명의 어른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 무언가를 팔았다. 그중 가장 특별한 걸 파는 사람은 ‘병아리’를 파는 아저씨였다. 병아리는 박스 안에 빈틈없이 모여 있었다. 마치 백화점에서 ‘특별 할인! 90% 세일!’이라고 적힌 곳에 놓인 물건처럼. 병아리인데 병아리 취급을 받지 못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안 살 거면 만지지 마.”
병아리 아저씨가 경고의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알겠어요. 안 만질게요…….’
나는 속으로 대답하고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가 “언제부터 자본주의의 슬픔을 알게 되었나요?”라고 물으면 “병아리를 만지지 못했을 때부터요.”라고 대답했으리.
다음 날, 나는 용돈을 받아 기어코 병아리를 샀다. 그리고 집에 데려오자마자 모이를 줬다. 병아리는 모래처럼 생긴 모이를 작은 부리로 톡톡 쪼아 먹었다.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살짝 찍어 먹으려던 찰나, 불멸의 마마가 말했다. “곧 죽을 거야.”
이 말을 들은 건 병아리를 데려온 지 하루 만이었다. 불멸의 마마의 음성은 너무나도 담담해서 “밤이 되면 어둠이 올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병아리는 오래 못 살아?”
“아니. 오래 살아. 근데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금방 죽어.”
그 무심한 한 마디에 알기 싫은 진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정 주지 마.”
불멸의 마마는 내가 나중에 슬퍼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마치 오래 산 사람의 지혜 같았다. 비가 오기 전 우산을 챙겨 가라는 당부처럼 믿을 만했다. ‘왜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는 금방 죽을까?’ 어린 마음에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 것 같기도 했다. ‘어른들은 돈이 되면 뭐든 하는구나.’
생명은 숭고하다고 교과서에서 봤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도 들었다. 그런데,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완벽한 거짓말! 숭고하지 않게 취급되는 생명도 있다. 사랑받지 못하는 생명도 있다. 마치 학교 앞에서 판매되는 병아리처럼…….
“엄마. 내가 키울게. 닭 될 때까지…….”
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 병아리 죽었어?”
“아니. 안 죽었어.”
병아리는 박스 안에서 “삐약”거리며 돌아다녔다.
“엄마! 오늘은 병아리 죽었어?”
“아니. 안 죽었어.”
여전히 병아리는 박스 안에서 “삐약”거렸다.
“엄마! 오늘은?”
“안 죽었어.”
“오늘은?”
“안 죽었…….”
“오늘은?!”
불멸의 마마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오늘도 살아있어.”
신이 어린아이에게 동물을 맡긴 이유는 사랑의 속성을 알려주고 싶어서일지도 몰랐다. 사랑에는 상실에 대한 공포도 동반한다고.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도 사랑이라고. 생명에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내가 이토록 병아리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사랑을 배운다. 나는 사랑을 배우고 있었다.
“엄마! 병아리 털이 이상해!”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금방 죽을 거라는 불멸의 마마의 경고와는 달리 병아리는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 노랗던 털은 베이지색으로 변했고, 울음소리도 묘하게 달라졌다. 친구들은 “쟤네 집에 병아리 있어!”라고 말하지 않고 “쟤네 집에 닭 있어!” “아니야! 병아리야!” “아니야, 닭이야!” 하며 싸웠고, 병아리는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른 정적이 흘렀다.
“병아리는……?”
“땅에 묻었어.”
슬픔의 본질은 사랑이다. 슬픔은 좋아하는 대상에게만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기에.
“죽었어……?”
한순간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됐다.
‘날지 못하는 새가 하늘로 갔다면 새의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려나.’
어른이 된 지금은 냉소적인 농담을 하며 그날을 회상한다. 어른이 되면 슬프고 싶지 않아서 슬픔을 냉소와 분노로 위장하나 보다. 나는 그 작고 연약한 병아리를 사랑했다. 곰돌이 인형보다 더 부드럽던 털을, 작은 부리로 노래하던 목소리를, 뒤뚱거리며 거실을 돌아다니던 모습을. 연약한 생명체는 내 일상을 바꾸고 사랑을 알려주었다.
사람을 사랑하기
외면과 오해“걔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뭐가?”
“걔가 그 이모티콘을 안 썼으면 좋겠어.”
“그리고?”
“걔가 내 눈을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또?”
“걔가 말할 때마다 내 말에 웃어줬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너는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구나.”
오로지 맞는 말만 해서 마음에 화살을 꽂는 ‘화살 팩폭러’가 있다. 화살 팩폭러는 나와 아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성별은 남자가 될 수도, 여자가 될 수도 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높아지면 남자로 변하고,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높아지면 여자로 변한다. 화살 팩폭러의 나이는 컨디션에 따라 7살이 될 수도, 93살이 될 수도, 17살이 될 수도 있다.
화살 팩폭러는 나의 또 다른 자아이다.
나는 인간관계에 서툴다. 연애도 서툴고 우정도 서툴고 사회생활도 서툴고 가족 관계도 서툴다.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포탄에 맞은 것처럼 아프다. 깃털처럼 작은 반응에도 묵직한 상처를 느끼니, 상대의 입장에서는 난처할 게 분명하다.
그런 일도 있었다. 누군가가 내가 한 행동에 오해를 해서 크게 서운해한 적이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별 의미 없는 작은 행동이었고, 악의 또한 전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배려심이 없는 성향도 아니었고, 늘 언행을 조심하는지라 상대가 서운해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 그런데 상대방이 너무 크게 화를 내며 서운해하니까, 내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당황스러워서 화도 안 났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이 일을 겪었어도 서운해했을까……?’
그래서, 내가 믿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는데 걔가 서운해하더라. 이게 그렇게 서운할 일인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라고 했다. 그 서운함은 걔의 주관에 근거한 서운함이라고 했다. 객관적인 상황만 놓고 보았을 땐, 서운해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했다.
아.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친구가 나에게 서운해했을 때 내가 당황했던 것처럼, 나도 상대에게 작은 일로 서운해한 적이 있다. 그때 상대도 내가 느꼈던 당혹감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나의 과오를 반성하기 위해 이런 사건이 벌어진 건가 싶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벌을 받은 것 같았다. 오해를 받는 건 엄청나게 억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 공격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상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은 채 사과했다.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감정이 정당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당함의 근거는 분명 논리보다 감정이 앞섰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논리 체계가 분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기분이 상한 건 분명했으니까 사과받을 이유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또한 나로 인해 기분이 상한 게 맞다면 사과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상대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한 후 사과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상대의 입장이 이해가 안 돼서 조금 답답했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내 감정이 비합리적이라고 느껴지면 상대 탓을 하기 전에 나를 한 번 더 돌아보자고 다짐했다. 그 아이 덕분에 나의 부족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인정할 수 있어서 그 점은 고마웠다. 나는 그동안 그 아이처럼 사람들을 함부로 오해했고,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했다. ‘내가 서운하니까 네가 잘못한 게 맞아!’ 하고. 그런데 그건 감정일 뿐이고 감정은 판단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판단의 근거는 오로지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내가 서운한 게 있으면, 서운함을 느끼는 근거가 사실인지 상대에게 정중히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해를 받으면 상대는 공격으로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살 팩폭러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너는 공격적인 인간관계를 해왔으면서 공격받는다고 착각한 건 아니냐. 착각이 아니더라도 그냥 외면하는 게 더 이득 아니냐. 인간관계에 시간 낭비를 할 거면 좀 더 유익한 방향으로 낭비하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