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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오수정 지음 | 미래북


그렇다고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잖아

오수정 지음

미래북 / 2022년 7월 / 232쪽 / 16,000원





직장인이 되는 게 이런 거였다고?



보통날


06:50, 오 양은 기상 알람을 들었다. 듣기만 했다. 아니, 손가락도 움직였다. 스마트폰 알람을 손가락 두 개 까딱거려 미뤄 두고, 다시 누운 방향을 바꾸어 눈을 감았다. 07:00, 오 양은 세상에서 제일로 짜증나는 그 소리를 다시 듣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실전 알람이다. 머릿속으로 엑셀보다 촘촘한 시간표가 대번에 그려진다. ‘여기서 뺄 수 있는 일은?’ ‘머리 감기.’ 그렇다. 오 양은 종종 머리를 이틀에 한 번 감는 습성이 있다. 머리를 묶고 가는 날은 대개 새로운 스타일링의 목적보다는 시간 절약의 목적이 더 크다.

‘15분 더 자도 됨.’ 오 양의 행복 회로가 적당한 시간(사실은 마지노선)을 계산해 냈다. 07:20, 이즈음에야 겨우 눈을 뜬 오 양은 잠시간 멍한 눈으로 스마트폰을 쓸데없이 들여다본다. 날씨 체크를 핑계로 시작되는 이 루틴은 오 양의 뻑뻑한 모닝 안구를 더욱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07:25, 더는 안 된다는 느낌을 오감 아니, 육감으로 강하게 받은 오 양은 드디어 발을 질질 끌며 욕실로 향한다. 구취를 지울 목적으로 양치를 벅벅 해낸 뒤, 클렌징폼을 이용하여 얼굴의 기름도 지워 낸다. 베개 피의 오돌토돌함이 얼굴에 복제되어 닿는 감촉이 좋지는 않지만, 9시 전에는 지워지리라 믿는다.

07:40, 스킨-로션-선크림을 바른 오 양은 갈등에 빠진다. ‘파운데이션 할까, 말까?’ 요즘, 마스크라는 강력한 방패를 앞세운 오 양. 파운데이션을 비롯한 화장이 점점 귀찮아지는 중이다. 어차피 얼굴의 반을 가리는데 괜히 화장품을 남발하는 것은 나뿐 아니라 지구에도 좋지 못한 행동일 거라는 합리화를 하는 중이다.

번뜩! 비 올 것 같은 아침. 듬성듬성한 구름을 뚫고 갑자기 햇볕 한 줄기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이럴 수가. 지난밤 01:30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오 양의 눈 밑이 무슨 나무껍질처럼 짙고 거칠게 보였다. 속이 상한 오 양은 어쩔 수 없이 파운데이션 펌프를 쭉 눌렀다. ‘옛날엔 밤을 새워도 괜찮았는데….’ 자꾸만 옛날을 떠올려 봐야 소용은 없다. 괜히 짜증이 난 오 양.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대충 끼얹고 스펀지로 퍽퍽 두들겨 본다. 어쩐지 같은 양을 발라도 눈 밑은 다른 부위만큼 밝아지지 않아서 더더욱 짜증이 난다.

08:00, 오 양은 코디에 젬병이다. 회사는 매일 보는 사람이 가득하기에 ‘매일 다른 옷’을 입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하다. 옷은 사도 사도 부족하고, 있는 옷을 믹스매치하는 능력은 더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충 사람처럼 보일 만한 셔츠와 슬랙스 따위를 걸치고 출근 가방을 걸친다. 회사에는 의외로 매일 소박한 런웨이를 선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어떻게 아침마다 저렇게 여유 있으며 패션 감각이 넘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오 양은 그저 어제와 똑같은 캔버스 운동화를 찍찍 끌고 현관문을 밀 뿐이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야 신발 뒤축을 세워 제대로 신발을 신는, 약간의 정성을 보였다.

08:20, 출퇴근길에서 자기 계발하는 사람만큼 대단한 사람이 있을까? 오 양은 시끄러운 지하철을 타는 동안 그저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 서핑을 할 뿐이다. 늘 새 글로 가득 찬 인터넷 기사 혹은 인기 글은 손가락 하나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 소식 창구다.

08:50, 머리를 안 감을 수 있어 다행이다. 회사에 늦지 않았다. 자리에 가방을 던지고 재빨리 탕비실로 달려가는 오 양. 계절에 따라 뜨겁게 혹은 차갑게 녹여 낸 카누는 ‘월급’과 함께 직장 생활을 이끌어 주는 쌍두마차다. 쌀쌀해진 날씨에 뜨거운 카누를 말아 낸 오 양. ‘오늘도 세이프 해서 다행.’ 안도가 섞인 입김을 음료 표면에 불어 가며 커피가 적당한 온도가 되도록 식혀 냈다.



‘딱 평균’의 어려움



딱 평균의 어려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뭐 대통령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는 딱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 어렸을 때 상상하던, ‘이 나이쯤 되었으면 이 정도는 되어 있겠구나.’ 싶은. 학창 시절에는 열심히 앉아 공부했고, 대학 시절에는 약간만 놀고 얼른 취업 준비도 했고, 이제 성실히 회사도 다녔으니, 이때쯤이면, 적어도 평균만큼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저축도 적당히 했을 것 같았고, 국산 중형차 한 대쯤은 몰 줄 알았다. 엄마 아빠가 결혼했던 나이쯤 되었으니, 나도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와 함께 살고 있을 줄 알았다. 정신머리는 또 어떠한가. 서른쯤 되면 생각은 저절로 성숙해지고 행동은 자연스레 어른스러워지는 줄 알았건만, 여전히 세상 대부분의 일은 어렵고 마주한 결정 앞에선 혼란스럽기만 하다.

‘오늘 회사 안 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아침마다 한다. 그냥 안 가면 안 된다면, 오늘 회사 주변에 싱크홀이 생길 확률은? 오늘 지하철이 모두 멈추어 서 버리는 탓에 회사에 정당하게 늦을 수 있는 확률은?

가까스로 도착한 회사에서도 별다를 것은 없다. 학생 시절에 담임 선생님을 따라 했듯 만만한 동기들 앞에서 부장의 성대모사를 해 대며 분노를 삭인다. 야간 자율 학습에 튈 때 그렇게 짜릿하더니, 근무 시간에 합법적 (혹은 합법적이지 않게) 외출하는 일이 여전히 짜릿하다. 덤벙거리는 탓에 실수 연발인 성격 역시, 좀처럼 변하지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양말을 종종 그대로 벗어서 빨래 통에 던져두는 바람에 신을 때마다 뒤집어서 신곤 한다. 옷은 옷걸이에 걸면 두 번 손이 안 가도 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지쳐서 번번이 허물 벗듯 땅에 벗어던지고 잊는다. 나도 매사에 여유로운, 멋진 어른이고 싶은데, 아직도 시간 관리에 실패해 종종 약속에 빠듯하게 도착하는 나는, 아직도 한참 먼 것 같다.

야식이 몸에 안 좋다는 사실을 안다. 밤에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다음 날 후회를 한다. 퉁퉁 부은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퍽퍽 눌러 바르며 늦은 후회를 해 보지만, 아마 다음번 유혹 앞에서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퇴근 시간에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정문으로 향하다가 종종 회사에 휴대전화를 두고 나온다. 다시 씩씩대면서 회사로 되돌아가자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없다. 어째 아직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 ‘더 나이 들어서도 똑같으면 어쩌지?’

무서운 생각이 든다. 주변을 돌아보면 (물론 좋은 것만 눈에 들어오니까) 이미 많이 가진 사람도 있고, 최소한 꿈을 찾아 정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가깝지 못한데, 아직 난 회사 안에서조차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은데, 요즘 집값에 비하면 통장 속 잔고는 언제나 짤랑대는 수준이다. ‘서울’ ‘중심’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말은 아닌데. 그냥 쾌적하게 살 만한 작은 집이라도 갖자면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는다. 일찍 결혼해서, 혹은 부모가 일찌감치 사 줘서 그 집만으로 이미 몇억 번 친구들을 보면 형용할 수 없는 서글픈 기분이 든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인생에 많다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너만의 길을 가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들어도 그 정도의 위안으로 안정을 되찾기에는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 버렸다. 입사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간 회사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개인 용무로 연차 쓰기가 입사 초기만 해도 꽤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연차를 써 여행이라도 다녀오자면 두 손 가득한 선물은 필수였다. 바뀌려면 이렇게도 얼른 변할 수 있나 보다. 부동산 계약, 애인과의 여행을 목적으로 당당하게 연차를 요청하는 분위기가 요 몇 년 사이 정착된 걸 보면, 나조차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동기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눠 보자면, 또 생각이 많아진다. 회사 분위기도 변했지만 우리의 마음가짐도 크게 바뀌었다. 동기들은 승진에 그리 목매지 않는 것 같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불투명한 시대 탓일까. 대부분 승진이라는 미래 가치보다 당장 통장에 확실한 돈이 꽂히는 재테크에 우선이다.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미래의 내 가치보다는 현재 내 자산 불리는 일이 최고 과업인 분위기다. 같은 마음이 들 때면, 이렇게 될 거 회사는 왜 그리 기를 쓰고 입사했나 싶지만, 입사를 통해 사회적 신용을 부여받고 투자의 발판으로 삼는 친구들이 점점 더 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할까? 회사 일? 나는 회사에서 매일 깨지기만 하는데? 회사 일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 이제 와 새로운 일을 찾자니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일어나서 회사에 가고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서 집에 와서 기절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회사에 가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보지만, 알아봐 주는 사람은 적고 작은 성과라도 퍼 가려는 사람은 많다.

승진? 아직은 멀어 보이지만 이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승진을 하자니 능력이 받쳐 줄지 의문이고 안 하자니 이 역시 속상할 것 같다. 위에서 가장 크게 갈굼받고 아래로부터 속 썩는 부장의 얼굴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 개인 발전? 이렇게 일하고 모아도 서울에 있는 집 한 채는 영영 못 살 것 같은데. 열심히 하면 뭐 하나? 나도 꿈꿔 오던 평균만큼은 살고 싶은데 노력하면 평균에는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 그런 건 더더욱 모르겠고.

회사 일이든 개인 발전을 위해서든 뭐든 열심히 하면 결국 평균만큼은 살 수 있을까? 당장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에 관해 생각이 닿으니, 아까 부장에게 까일 때 밀려오던 우울한 기운이 더욱 날뛰는 것 같다. 새까맣고 차가운 기운이 나를 침대 밑으로 끌어당긴다. 덮은 이불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다. 나는 침대 밑으로 떨어지다 못해 3층에서 2층으로,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주차장으로, 주차장에서 땅속까지 끌려 들어간다.



이상 : 현실 = 53 : 47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그럴 때가 있다. 이상하게 회사에서 급한 일이 없고 퇴근 후에도 매일 피곤한 사건 하나 터지지 않는 때. 그 덕분에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편안하기만 한 때. 이대로라면 평생 ‘회사원-1’로 살아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 때. 멈추지 않고 변화해 나가는 것에 더 매력을 느꼈었지만, 현실에 두 발 푹 꽂고 안정적인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좋을 때. 완전한 자율에서 오는 불안감보다 반자발적 구속에서 오는 평안함이 이제는 더 만족스럽다고 느껴질 때.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겨울의 한가운데에서는, 내가 두르고 있던 담요의 무게가 와닿지 않았다. 어쨌든 겨울에는 이마저 감사하기도 했으니. 담요를 미처 풀지 못한 채로 봄이 왔을 때에야, 그것의 존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팔다리까지 꽁꽁 싸매어 불편하다고 말만 하며, 여전히 그 속에 감겨 있는 나까지도. ‘회사원-1’로서 완벽 적응해 버린 내 모습은 이처럼 멀리 떨어져서 봐야 눈에 띄었다.

서른, 옛 표현으론 이립이랬다. 무려 ‘스스로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란 뜻이라는데, 과연 내게 그 칭호가 어울리는지 아직은 의문이다. 어딘가에서 서류에 나이를 쓸 때면 칸에 신나게 2자를 쓰다가 그 위로 두 줄을 죽죽 긋는 요즘. 10년간 써 오던 2N을 버리고 이제는 3N으로 새로운 10년을 채워 나가야 하는 지금. 익숙하지 않은 앞자리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다가오는 봄이 왔다.

한때는 세상 모든 일이 어렵게만 느껴져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떼쓰며 홀로 울던 때도 있었다. 앞자리가 변하며, 조금은 성숙해진 걸까? 어린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건 변함이 없다만 어린아이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도덕과 별개로 즐기는 마음과 사랑할 줄 아는 낭만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고.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 야이야이야이야이야 / 하는 일 없이 피곤한 일상 / 나른해 난 기지개나 켜 /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 선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 / 비 오는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 야이야이야이야이야- 자우림 《일탈》, 1997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재미를 꾸준히 챙기는 사람. 어떤 면에선 날카롭고 어떤 면에선 둥글둥글한 사람. (되도록 내 게으름에는 날카롭고 남에게는 유한 사람이 되면 더 좋겠고) 남들이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 밖과 안에서 모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 회사 일 같은 외부 사건보다 내 마음에도 관심 가져 주는 사람. 남만 칭찬하지 말고 가끔은 자신도 토닥일 줄 아는 사람. 남과 나를 동시에 크게 사랑해 주는 사람. 이립의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중이다.

휴, 생각은 많다. 그렇지만 오늘도 역시, 일단은 출근이다. 우리 회사 서쪽 벽에 뚫린 창문으로는 다른 오피스텔이 보인다. 몰랐는데 이제 보니 사무실과 주거 공간이 혼합된 건물인 것 같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 오피스텔에서 세탁물을 던지면 이 건물에 닿을 것도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굳이 계단으로 걸을 때만 그쪽 벽을 걷게 된다. 98%의 확률로 엘리베이터를 타기 때문에, 사실 그쪽 창문을 바라볼 일은 거의 없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사무실에 복귀할 때 괜히 6층까지 걷고 싶은 날, 운동하겠다는 핑계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한 무더기를 오르면 층과 층 사이의 공간이 나오고 다음 계단이 시작된다. 층과 층 사이 평지를 걷는 찰나에, 뚫린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2층, 3층, 4층… 경계층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란 역시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빛바랜 베이지 빛의 건물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보다 세로가 조금 더 긴 파란 유리창이 박혀 있을 뿐이었다. 살짝 썬팅이 된 채로 완전히 닫혀 있는 그 창문들은 그 속에 무엇들이 들어 사는지, 전혀 가늠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봄 날씨가 시작되었다. 그 공간의 몇몇 주인은 제 공간에 새 공기를 들이려는지 창을 열어 두기도 했다. 마지막 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예상치 못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 창가에 작고 귀여운 하얀 덩어리가 버티고 있었다. 인형보다도 더 완벽하게 귀여운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였다. 10m 떨어진 맞은편의 내 존재를 녀석이 인식했는지 모르겠지만, 털이 보슬보슬한 그 생명체도 이쪽을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천천히 껌뻑이는 두 파란 구슬. 언제 봐도 신비롭다.

‘고양이 주인은 지금 사룟값을 벌러 나간 모양이지? 주인 없는 고요한 집안은 지겨우니 텔레비전 보는 심정으로 밖을 관찰하는 중일 테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에 상상의 나래가 발동되었다. 우리는 츄르(고양이 간식)를 세게 던지면 닿을 만큼 가깝지만, 영원히 실제로 닿을 일은 없을 것이다. 저 고양이는 아마 내일도 자기 영역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지낼 것이고 나 역시 6시까지 이 건물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한참을 10m 떨어진 곳에 사는 공중 고양이를 구경하다 자리로 돌아왔다. 영원히 닿을 수 없으면서 창밖으로 궁금한 것을 구경만 하는 꼴이, 저 고양이와 내 처지가 다를 바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구경만 자주 하고 밖으로 나갈 각오는 별로 없는 점까지도 말이다. 애완용으로 계량된 고양이는 ‘스트릿-고양이’와 대결하며 골목을 누비기에 너무나 유약한 생명체니까.

나도 점점 회사에서 필요에 따라 기르는 애완 고양이화 되고 있는 건 아닐까? 발톱은 회사 키보드를 누르기에 딱 적합한 만큼 손질되어 있고, 주인이 주는 맛있는 간식에 입맛이 길든. 구름처럼 푸둥푸둥하니 살찐 몸과 털을 치장하며 오늘도 창밖만 내다보는 고양이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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