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나와 결혼할까?
후이 지음 | 미디어숲
나라면 나와 결혼할까?
후이 지음
미디어숲 / 2022년 8월 / 256쪽 / 16,800원
첫 번째 속삭임_ 사랑
품위와 결혼하다대학 시절에 호감을 느낀 남자 선배가 있었다. 큰 키에 잘생기고 공부도 잘했으니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그러다 그 선배와 함께 과 모임을 기획하게 됐다. 난 동기들에게 연락하는 일을 맡았고, 선배는 음식점을 예약했다. 전화를 돌리는 사이사이 선배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곳에 예약 전화를 하는 선배를 보고 이상함을 느낀 나는 물었다. “다 예약이 안 된대요?” 그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아냐. 여러 곳 잡아 둔 거야. 예약하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애들 모이면 어디로 갈지 물어보고 그리로 가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선배가 졸업한 뒤, 나는 더는 그와 연락하지 않았다.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버티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만약 손님이 예약해 놓고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손해가 클까? 그런데도 예약금을 요구하지 않고 예약을 받는 까닭은 암묵적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했으니 올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아무렇지 않게 저버리면서 양심의 가책 하나 느끼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품위가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타인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겠지. 많이 배운다고 품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식에 자기 수양이 더해질 때 비로소 품위가 생긴다.
사소하지만 작은 행동으로 품위를 지킨 누군가의 기억도 있다. 연인과 그의 어린 조카를 데리고 음료수를 사러 갔을 때였다. 아이가 무턱대고 음료 냉장고 문부터 열려 하자 그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먼저 무얼 살지 고른 뒤에 문을 열면 어떨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를 고르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아이가 칭얼댔다. “외삼촌, 나 이 두유 안 마시고 싶어졌어요. 여기다 놔둬도 돼요?” 그는 두유를 받아 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원래 자리에 갖다 두자. 아무 데나 두면 다른 사람이 대신 치워야 하잖아.” “네.” 아이는 대답하고 그와 다시 음료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날 그는 수수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지만 내 눈에는 중세시대 귀족만큼이나 우아해 보였다.
공부를 많이 하고 가정교육을 잘 받았어도 반드시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품위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구분선이다. 품위 있는 사람은 반성할 줄 알고, 예의를 지킬 줄 알며, 쉽게 흥분하지 않고 자기 고집에 매몰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적절하게 행동하고 늘 여유 있으며, 마음은 선의와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하다. 나에게 자신을 왜 사랑하느냐고 그가 물었다. 나는 나와 다툴 때조차 자신의 잘못을 먼저 생각하는 그를 사랑한다. 내가 우울감에 빠졌을 때 나를 더 힘들게 만들지 않고 무던하게 나의 상처를 위로해 주는 그를 사랑한다. 품위 있는 연인은 상대의 인생에 풍랑이 아니라 등대가 되어준다. 그래서 결혼은 꼭 품위 있는 사람과 해야 한다. 사랑은 포기해도, 품위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라면 나와 결혼할까?결혼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벌이는 탐색 과정은 ‘구인-구직 과정’과 비슷하다. 면접 때 고용주는 수많은 질문을 하지만 결국 면접자를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다. ‘당신은 내게서 무엇을 얻기 원하는가?’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당신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상대가 기대에 부응하는 대답을 한다면 채용이 결정된다. 채용을 했어도 얼마간은 검증하는 기간을 갖는데, 기대한 바와 맞지 않거나 차이가 크면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앞둔 쌍방은 상호 검증 과정을 거친다. 위 세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서로 암묵적으로 관계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감정이 끌린다는 이유는 한참 부족하다. 내가 상대에 대해 확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역시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대에게 증명하고 확신과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몇 년 전, 동네의 한 청년과 알게 됐다. 막노동을 하며 열심히 사는 젊은이인데, 동네를 돌아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시킬 일이 있으면 불러 달라고 말하는 모습이 여간 넉살 좋은 게 아니었다. 하루는 짐을 옮길 일이 생겨서 청년을 불렀다. 힘든 일이라 품삯을 후하게 불렀더니 그는 반색하며 싹싹하게 그 많은 짐을 다 날라 주었다. 땀투성이가 된 그에게 마실 것을 대접하며 왜 그리 열심히 사느냐고 물어보았다. 평소에도 별의별 잡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 일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돈도 버니 좋잖아요. 돈 모아서 장가도 가려고요.” 지금까지 얼마나 모았느냐고 묻자 그는 의외로 큰 액수를 말했다. 나는 놀라며 그 정도면 장가가고도 남겠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아직 멀었다고,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 했다. “전 내세울 게 없어요. 그나마 젊었을 때 열심히 벌어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여자가 저랑 살려고 하겠어요?”
나는 돈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자신은 ‘만일의 경우’가 아니라 ‘모든 경우’에 대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 살면서 누가 자신의 인연일지, 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모르는데 어떻게 요행에 기대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지요. 더 많이 벌어서 고향에 집도 마련하고, 미래의 아내를 위해 최대한 벌어 두자고. 누가 나한테 시집올지 몰라도 어쨌든 자기 집에서는 귀하게 자란 딸이니까, 시집오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나를 선택해도 좋을 만한 이유는 줘야 하지 않겠어요? ‘이 사람이라면 같이 살아도 괜찮겠다.’ 하는 확신 말이에요. 일단은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 목표예요.”
“장가 못 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겠는데요. 생각부터 훌륭하잖아요!” “생각이 훌륭하면 뭐 해요,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결혼은 인륜지대사라는데 신중하게 따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내 아내가 될 사람이 그렇게 한다 해도 원망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나 역시 따지거든요.” 그 순간만큼은 내 앞에 서 있는 깡마르고 볼품없는 행색의 청년이 인생의 지혜를 깨달은 현자로 보였다.
결혼을 앞두고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마음 편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 결혼으로 내 남은 인생이 불행해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어야만 비로소 용기를 낼 수 있다. 어디선가 이런 반박이 들리는 듯하다. “그럼 사랑은? 사랑이 제일 중요한 거 아냐?” 중요하다. 심지어 다른 조건을 덮고도 남을 절대적 가치가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사랑도 어디까지나 평등한 상호 교환의 대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당신의 따스함과 나의 성실함을 바꾸고 나의 유머와 당신의 학식을 교환하는 것. 그리고 당신의 땀과 노력의 반, 나의 땀과 노력의 반을 더해 우리가 함께할 집을 꾸리는 것. 결혼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조건을 갖춘 데다 나를 사랑하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결혼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빈털터리지만 나를 향한 사랑 하나만은 지극한 사람은? 물론 때로는 지극한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을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생활이 실체를 갖고 덮쳐 오기 시작하면 빛나던 사랑은 초라하게 바래고, 내 인생의 구원자 같던 사람은 원수로 보이기 시작한다. 남는 것은 돌이킬 수도, 치유할 수도 없는 상처와 후회뿐이다. 어쨌든 사랑은 비단 위에 더해진 꽃이지, 목숨 걸고 잡아야 하는 지푸라기는 아니니까.
두 번째 속삭임_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편해지는 인생모 결혼 정보 회사에서 개최한 미팅 파티, 한 남자가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미팅 파티에 매번 참석하는데 한 번도 커플 매칭에 성공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오지라퍼가 그에게 다가가 비아냥댔다. “어때요, 이번에는 잘 풀릴 것 같아요?” 남자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이네요. 난 돈도 많지 않고, 잘생긴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당황해서 웃겠거니 했던 예상을 뛰어넘는 직설적인 대답이었다. 오히려 질문한 사람이 위로의 말을 찾아 줄 정도였다. 그런데 오지라퍼를 더욱 민망하게 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내가 부족하다는 건 인정해요. 인정하니 오히려 낫더라고요. 괜한 자존심에 매달릴 때보다 편해요. 겸허해지기도 하고 말이죠. 오늘은 정신 수양하는 심정으로 나왔어요. 연회비가 아깝기도 하고.” 주변에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다들 솔직담백한 그에게서 의외의 매력을 느낀 듯했다. 그중에 그에게 조금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 여성이 있었다. 그의 솔직함에 끌린 그녀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마침내 두 사람은 사이좋게 파티장을 떠났다.
반대로 ‘인정하지 못해서’ 화를 당한 사람도 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본 기사다. 한 연인이 데이트를 하다가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었다. 불량배들이 여자를 향해 음담패설을 던지고 휘파람을 불어 댄 게 원인이었다. 처음에 남자는 여자친구를 달래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너 남자 맞냐, 지켜 주지도 못하는 남자를 어떻게 만나냐.’며 몰아붙이자 어쩔 수 없이 불량배들에게 맞섰다.
말다툼은 곧 주먹다짐으로 번졌고, 결국 남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만약 그가 자신의 불리함을 인정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인정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때와 장소, 상황을 잘 따져 판단해야 한다. ‘적절한 인정’은 불필요한 갈등과 다툼을 피할 수 있는 합리적 후퇴이기도 하다. 인생은 바둑과 같아서 늘 이길 수만은 없다. 누구든 패배를 인정하고 승복해야 할 때가 온다. 그리고 승복해야 할 때 승복하지 못한 결과는 대개 하나같이 비참하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지 않는다면, 결국 스스로 목을 조르는 자충수를 두게 마련이다.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인정하면 새로운 길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세상을 향해 손을 들고 항복하는 것도 현명한 삶의 방식이다. 자신이 놓인 자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적당히 엄살도 부리고, 솔직히 열세를 인정하면서 도움을 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평범한 인간으로 잘 살아남으려면 최소의 투입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어 내는 것이 최선이다. 승복하되 굴복하지 말고, 강해지되 강한 척하지는 마라. 그리고 기억할 점은, 이 세상은 나를 도울 만한 힘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아북쪽 지방의 마을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와 친구가 되었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그녀는 남편과 아들을 일찍 잃고 홀로 손녀를 키우며 사셨다. 며느리는 일찌감치 재가해 연락이 끊어졌고, 애지중지 키운 손녀딸이 올해 유명 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다행히 시골 인심이라고 해야 할까? 며느리가 떠난 후 젖먹이와 단둘이 남겨진 할머니의 사정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도왔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온 마을이 도와가며 손녀를 키운 셈이다. 그러니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다들 자기 일인 양 기뻐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제 할머니에게는 행복할 일만 남은 듯했다. 괴로운 날들이 많았겠지만 결국 이렇게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었던 데는 좋은 사람들을 이웃으로 둔 덕이 크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밝히자 할머니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많은 사람이 도와준 건 맞지. 하지만 나 역시 평생 도움 받은 걸 기억하고 보답할 거여. 그리고 결국 나를 가장 많이 도운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여, 바로 나 자신이여.”
할머니는 얼마 전 손녀에게 인터넷 방송하는 법을 배워 농작물 따위를 온라인으로 팔고 있다고 했다. 수입도 짭짤하다며 미소를 짓는 모습이 소녀 같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건 정분이고, 내가 나를 돕는 건 본분이여.” 세월이 만들어낸 정답을 툭 던지신 뒤 할머니 말씀이 이어진다. “만약 내가 나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법이여. 다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니께 도와줄 생각도 하지. 만약 내가 싹수 노란 게으름뱅이라면 누가 신경이나 쓰겄어?”
어떤 모임에서 젊은 배우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연기파 중견배우와 영화를 찍는데 스트레스가 많다고 했다. 그 선배는 뺨 때리는 장면이 있으면 눈에 불이 번쩍할 정도로 세게 때리며, 우는 장면에서는 감독이 사인을 보내기도 전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고 했다. 자신이 맞는 장면에서 상대 배우가 힘을 다하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내니, 무서울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분명한 발음으로 대사를 소화해 내는 것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며 그는 말했다. “선배가 치는 대사 한마디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돼요. ‘저걸 어떻게 받아, 어떻게 이겨’ 이런 생각이 절로 들어요.” 내가 안됐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는 “하지만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라고 했다.
“매니저가 위로하면서 그러더라고요. ‘괜찮아. 졌다 싶은 순간에 넌 이긴 거니까.’ 저는 그게 뭐냐고 물었죠. 매니저는 말했어요.” “지금까지는 너보다 실력 없는 배우와 선배님 소리 들으면서 연기했잖아. 그들을 보며 압박감 느낀 적 있어? 기계적으로 연기해도 그들보다 나으니까 늘 쉽게 이겨 왔던 거야. 하지만 이 선배와 일하면서부터 넌 대본을 달달 외우고 몇 번씩 모니터링하고 캐릭터 분석도 하지. 왜? 선배 앞에서 부끄럽기 싫고, 못 한다는 소리 들을까 겁나거든. 넌 졌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 덕에 더 나은 배우가 되어 가고 있어.”
목표가 없는 사람은 더 나아지고 싶어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모른다. 이럴 때야말로 가장 공허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일단 목표가 생기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생겼기 때문에 투지를 불태우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시간과 노력뿐이다. 실패해도, 패배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발견이다. 성장이라는 주제에서 보면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실패와 패배로 인해 완벽해 보이던 나의 작은 세계가 깨어질 때, 우리는 껍질 밖의 더 크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된다. 그러니 졌다고 비탄에 빠지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
세 번째 속삭임_ 외로움
거절 못 하는 당신에게지난 명절, 본가에 간 나는 엄마와 한 가지 ‘약조’를 맺었다. 이번 연휴 기간에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모녀끼리 오붓하게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 뒤 둘이서 쇼핑하고 수다를 떨며 연휴를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약조는 엄마한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와장창 깨졌다. 엄마가 전화를 받더니 쇼핑 약속을 잡는 것이 아닌가. 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고, 엄마는 내 시선을 피했다. “엄마, 찜질방 가기로 했잖아요. 난 찜질방 가려고 모임도 미뤘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흔쾌히 대답할 수가 있어요?” 엄마는 곤란해하며 말했다.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는데 어떡하니.”
그렇다. 우리 엄마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다. 엄마는 친구가 많은데, 거절을 못해 종종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여보세요. 유나 엄마. 내일 열 시에 온다고? 그래, 와요.” “여보세요. 미영 씨. 내일 열 시? 응, 내일 봐.” “여보세요. 언니? 내일 오전? 알았어요.” 나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엄마, 내일 오전에 대체 몇 사람이랑 만나기로 한 거예요? 겹치는 거 같은데?” 엄마는 내 말을 듣고 그제서야 곤혹스러워했다. “어쩌면 좋지? 하지만 다들 그때 만나자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