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제인 수 지음 | 미래타임즈
산다든가 죽는다든가 아버지든가
제인 수 지음
미래타임즈 / 2022년 5월 / 255쪽 / 15,800원
이 남자, 혈육이므로우리 집은 새해 첫날 반드시 성묘를 간다. 그런데 ‘우리 집’이라고 표현했지만 77살이 된 아버지와 42살의 외동딸로 이루어진 가족이며, 새해 첫날에 성묘를 가는 게 우리 집 연례 행사가 된 것은 18년 전 어머니가 저승으로 주민 등록을 옮기고 나서부터다. 한편 아버지와 약속하면 늘 내가 지각한다. 지각하는 버릇은 아버지를 쏙 빼닮은 것이라 유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근래 들어 아버지가 좀 달라졌다. 노인이 되고부터는 시간이 넘쳐 나는지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해 주변을 서성이곤 한다.
2016년 첫날도 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고코쿠지(도쿄도에 있는 사찰)에 도착해 있었다. 차콜색 중절모에 유니클로 회색 라이트다운을 입고 석재점(묘역 근처에서 묘석 등을 관리하고 꽃이나 향 등을 판매하는 가게)의 큰 시계 아래에 앉아 있었는데, 온종일 TV를 보면서 소파에 누워 있었던 탓인지 꾸부정하게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고, 그런 아버지를 보는 마음이 안 좋았다. 요즘은 화려한 색상의 옷을 즐겨 입었는데, 오늘은 왠지 우중충한 차림새다. 웬 묘석 같은 남자가 다 있네, 했더니 아버지였다.
새해 인사를 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일전에 그 블루종이 참 멋있었는데…. 오늘은 다른 옷을 입고 오셨네요?” 석재점 여주인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지난번 성묘 때 아버지는 새빨간 블루종에 크림색 머플러를 두르고 나타났다. 여기에 내가 사 드린 보르살리노 모자를 쓰고 있어서 무슨 조직의 보스인가 싶을 정도였다. 꽤 근사했기 때문에 “와~ 전혀 무일푼으로 안 보여!”라고 찬사를 보냈다. 수입차라도 타고 다닐 듯이 번지르르한 차림새가 잘 어울리지만, 이 남자에게는 전 재산을 깡그리 말아잡수신 전과가 있다. 뭐 당신이 번 돈이고 내가 부모 밑에 있을 때 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어서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입장은 아니지만 ‘참 거하게도 까먹으셨네.’ 감탄스러울 때도 있었다.
곧이어 가게 안쪽에서 할머니가 나오더니 “아이고야, 오늘은 빨강 블루종이 아니시네?” 하면서 아버지한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잠시 후 여주인 남편이 나오더니 또 블루종을 두고 똑같은 말을 했다. 지난번에는 가게에 없었던 두 사람이 빨간색 블루종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보면 여주인이 말한 게 분명하다. 여주인은 아버지의 빨간색 블루종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아버지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남자다. 참고로 아버지와 나는 따로 살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두 번 정도 같이 살아 볼까 시도를 해 봤지만 서로 맞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 마하반야바라밀다.” 아버지는 묘석을 향해 합장하더니 가락을 붙여 『반야심경』을 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최소 십 년은 매일 아침 불단 앞에서 합장하고 경을 외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마하반야바라밀다’밖에 못 한다. 그렇게 어설프게 『반야심경』을 외고 나면 “미치코 님, 신이치로 님, 치카코 누님, 조상님, 항상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딸아이도 저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무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 비슷한 이야기도 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의식이다. 미치코는 엄마 이름이고, 신이치로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다. 아버지는 삼 형제 중 막내로 위로 형님만 둘 있다. 치카코 누님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아마 일찍 죽은 누나가 아닐까 싶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데는 이유가 있다. 아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함께 지낸 세월 동안 일어난 일은 알고 있지만, 부녀로 살아온 사십 몇 년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낀 것 말고는 치카코 누님이 누구인지 모르듯 전혀 모른다. 내 인생 중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인데도 나는 아버지에 대해 무지하다. 어머니는 내가 스물네 살 때 예순넷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밝고 총명하고 유머 넘치는 멋진 분이셨지만, 나는 ‘어머니’로서의 어머니밖에 모른다. 당신에게는 아내로서의 얼굴도 있었을 것이고 여자로서의 인생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머니에게 당신의 인생에 대해 직접 듣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아버지만큼은 같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미워할 수 없는 남자아버지가 이사를 했다. 이사하기 전,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던 고이시카와(도쿄 중심에 있는 동네) 집을 나와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가나메초라는 동네에서 오 년 정도 살았었다. 아버지는 가나메초 집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새집을 구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새 거주지는 도쿄 도심의 23구 안에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도심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주택가 아파트 단지다.
꽤 이전부터 “혹시 이사를 하고 싶으면 몇 달 전에 말해 줘.”라고 아버지한테 단단히 일렀다. 왜냐하면 이사 비용 등을 내가 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보태는 건 싫지 않다. 고생의 ‘고’자도 모르고 자란 나로서는 고이 키워 준 은혜를 살아 계신 동안 갚고 싶다. 이런 마음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 절실해졌다.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아버지한테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들은 적도 없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서 눈곱만큼의 후회도 없다. 그래도 귀여운 손주 얼굴을 아버지에게 보여 드리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곤 하는데, 이런 미안함을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몇 개월 전부터 아버지는 ‘이사 계획 중’이라는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일하는 곳 근처까지 왔으니까 좀 보잔다. 아버지의 방문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로 드문 일이라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어 친구와 같이 나갔다. 제삼자가 있으면 아버지도 나도 흥분을 가라앉히며 이야기할 수 있고, 마침 또 이 친구가 부동산 빠꼼이다. 은행 앞에서 만나 찻집으로 들어갔고, 아버지는 로열밀크티를 주문했다. 나는 아버지 옆에 보란 듯이 놓여 있는 부동산 로고가 박힌 쇼핑백 속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른 척하고 앉아 있다. 이런 밀당의 고수 같으니!
결국 참을성이 바닥난 나는 “그거 뭐야?”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쇼핑백에서 부동산 자료를 꺼냈다. 벌써 이사할 곳을 정한 것 같았다. 어째 의논 한마디 없이 정해 버렸을까.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료를 슥 훑어봤다. 그때 아버지가 말했다. “녹지가 많은 곳이야. 가을엔 단풍이 아주 끝내준대. 사진도 찍어 왔는데, 볼래?” 아버지가 가방에서 디지털카메라를 꺼냈다. 친구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진을 열었다. 빨강과 노랑으로 물든 가로수 풍경이 정말 아름답기는 했다.
집은 어땠냐고 묻자 그것도 찍어 왔다고 했다. 난 버튼을 눌러 사진을 열었다가 공포 영화 <블레어 위치>인 줄 알았다. 벽장, 문 등이 마구 흔들린 채 찍혀 있었다. 친구와 나는 사진을 보다가 그만 웃음보가 터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우리들의 웃음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맞바꾼 셈이다.
나는 아버지가 내민 부동산 자료를 보다가 눈을 의심할 뻔했다. 아버지가 얻으려는 집은 60제곱미터, 그러니까 18평이 넘었다. 짐이 많은 남자긴 하지만 이건 너무 넓다. 도면을 보니 방 두 개에 거실과 다이닝 키친까지 있다. “그런데 얼마야?” 나는 가슴이 벌렁거리는 걸 겨우 진정시키며 물었다. 아버지가 집세를 말했다. 미안하다거나 주눅이 들었다거나 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한 금액은 당신이 매달 받는 연금보다 만 엔 정도 많았다. 늘 날 부르던 아버지가 왜 일부러 먼 길을 납셨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버지는 모른 척하며 계속 말했다. ‘수입이 없는 사람은 일 년 치 월세를 미리 내야 한다, 찜해 놓고 왔으니까 얼른 입금해야 한다.’ 어쩌고저쩌고….
“알았어.”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깜짝 놀라 “야, 너 제정신이야?!” 소리쳤다. 뭐, 괜찮다. 작년에 나는 운이 좋아서 좀 많이 벌었고 또 저축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나이 든 아버지를 모른 척할 순 없으니까. 게다가 아버지가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집에서 사는 걸 보는 것도 마뜩잖다. 다양한 측면에서 아버지의 프레젠테이션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내가 조건 없이 돈을 내는 건 아니었다. 나도 꿍꿍이가 있었다. 나는 말했다. “그 대신 아버지 이야기를 쓰게 해 줘.” 돈이 걸려 있으니 아버지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좋아.” 아버지도 흔쾌히 대답했다.
이케부쿠로(도쿄 북쪽에 위치한 번화가)에서 30분 정도 전철을 타고 아버지가 이사한 동네로 갔다. 약속한 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잠시 후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가 운전을 그만둔 지는 꽤 됐지만 아버지가 걸어 다니는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일흔일곱의 나이에 비해 건강해 보일 때도 있고 자기 연배로 보일 때도 있는데 오늘은 후자다. 아버지를 따라 걸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다카시마다이라 지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교, 병원, 우체국, 공원, 마트 등 주변 편의 시설이 잘되어 있는 이 단지는 지어진 지 30년 하고도 조금 더 되었다고 한다.
단지에 들어선 지 꽤 됐는데도 여전히 걷고 있다. 아버지도 아직 따끈따끈한 신참 주민이라 헷갈리는지 오른쪽으로 갔다 다시 왼쪽으로 갔다 빙빙 돌아간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뒤를 열심히 쫓아갔다. “다 왔다.” 아버지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 그제야 뒤따라오는 날 돌아봤다. 과연 나는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벌써부터 걱정되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짐으로 가득했다. 안 쓰는 건 버리고 나서 이사하라고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얘기했지만, 도대체 사람 말을 어디로 듣는 건지. 우산만 해도 열 개가 넘었다. 큰 우산꽂이에 삐죽삐죽 넘치도록 꽂혀 있는 우산이 마치 식물 같아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거실로 들어가자 다이슨 선풍기가 두 대나 있었다. 그것도 찍어서 보냈다. 나는 아버지의 이사를 돕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참 정나미 떨어지는 딸이다. ‘이사를 도우면 틀림없이 싸울 게 뻔하니까. 그게 싫어서….’라는 게 겉으로 내세운 이유지만, 진짜 속내는 다르다. 어쩐지 고이시카와 집을 떠나 이사하던 장면이 떠올라 아버지가 또 패배하듯 이사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새집 집세를 일 년 치 먼저 내긴 했는데 내년에는 어떻게 하지?’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집세야 어떻든 아버지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런 내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국 대통령 선거 뉴스를 보면서 아버지가 말했다. “나, 요즘 트럼프를 보며 용기를 얻고 있어.” 우울함이나 뭐 그런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사람, 네 번이나 파산했는데도 매번 재기했어. 엄청나지 않냐?” 트럼프의 정치 능력이나 문제 발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트럼프에겐 미워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 사업이든 뭐든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돼.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야지. 그런 매력이 있는 사람은 꿈을 보여 주거든. 사람들에게 꿈을 갖게 해. 그런 사람은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아버지에게 거울을 보여 주고 싶어졌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할아버지는 흔치 않다. 그래, 센티멘털해진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 어떻게든 될 거야.
둘만 아는 것나는 맑은 겨울 하늘이 좋다. 우리 집의 경우 ‘일요일’, ‘맑은 하늘’이라고 하면 성묘가 떠오른다. 팔월 중순이나 춘분, 추분 그런 절기에 상관없이 편하게 어머니를 자주 찾고 있다. 내가 어머니의 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니까 동네 산책하듯 나올 수 있어서 더 좋다.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탔고, 택시가 폭주한 덕에 내가 먼저 고코쿠지에 도착했다. 석재점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평소에는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는 곳이다. 가게 밖에 아버지가 보였다. 빨간 가죽점퍼에 중절모, 여기에 베이지색 캐시미어 머플러를 두른 채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다. 스타일은 좋은데 걸음걸이는 불안하다. 운동 좀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근육을 좀 단련시켜야 한다. 못 걷게 되면 내가 곤란하니까.
“아버님, 멋지시네요.” 오졸오졸 겅둥겅둥 걷는 아버지를 보고 석재점 여자 점원이 말했다.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들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부녀가 성묘를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 가게에 있었으니까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우리 부녀를 봐 온 셈이라 오늘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멋져 보일 리는 없을 텐데…. 하긴 세상일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나.
아버지를 보며 멋지다고 말하는 여성이 꽤 되지만 난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이야기를 해 보면 흥미로운 사람이지만 나이도 꽤 먹은 할아버지라서 멋지다는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다른 여성이 아버지에 대해 그렇게 말할 땐 아버지에게 다소 반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이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혈연관계인 나 말고 다른 여성에게만 보이는 아버지의 매력, 뭐 그런 게 있는 걸까? 아버지가 멋지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버지가 가게로 들어오자마자 “춥다, 춥다.” 하며 투덜댄다. 오늘은 비교적 따뜻하다는 것, 걸음새가 불안정해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쪽 다리를 앞으로 크게 내디디고 체중을 실어서 앉았다 일어서는 하반신 단련 운동을 알려 줬다. 워킹 런지라고 하는 것이다. 큰 근육을 움직이면 몸이 따뜻해진다.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옆에 의자를 두고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했다. 다음부터는 만날 때마다 꼭 이 운동을 시켜야지.
꽃과 향을 사서 어머니 묘로 올라갔다. 묘지 안쪽에 있는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고 동박새 두 마리가 가지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가 그걸 보고 “곧 봄이네.”라고 해서 “그러네.”라고 대답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리가 내렸었는데…. 우리 부녀는 성묘를 하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어머니 묘를 청소하고 꽃을 놓고 향을 피운 후 묘석을 향해 합장했다. 이십 분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성묘 왔다가 후딱 돌아가 버리잖아. 그거 안 좋은 것 같아. 따뜻해지면 주먹밥 싸 가지고 와서 여기서 먹자.” 아버지가 언덕길을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한 십 년 동안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지만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슥 왔다가 후다닥 돌아가 버린다. 다음 성묘에 진짜로 주먹밥을 싸 가지고 오면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할아버지와 중년 여자가 묘 앞에 서서 주먹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얼마나 해학적인가.
아버지는 이빨 상태가 어떻다 저떻다 하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아~” 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부분 틀니를 하고는 있지만 충치도 없고 착색도 없고 치아도 고르다. 참으로 정갈한 구강이다. 일흔여섯 살치고는 상당히 관리가 잘되어 있다 싶었는데 잘 보니까 왼쪽 아랫니가 빠져 있다. “이건 왜 이래?” “이빨 뿌리가 안 좋아져서 뺐어. 의사가 임플란트를 하라고 하는데 이 나이에 무슨 임플란트야.”
“아버지, 여기 좀 봐.” 나는 아버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손가락으로 입 안을 가리켰다. “너도냐?” 아버지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나도 아버지도 입이 작아서 말하거나 웃을 때 말고는 거의 이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왼쪽 아랫니가 빠져 있다. 나 역시 의사에게 임플란트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수술이 무서워 그냥 이가 빠진 채 살고 있었다. 부녀가 똑같이 이가 빠져 있다니 참 한심하다. 꼴불견이지만 둘이 똑같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