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헤의 시간
호르스트 리히터 지음 | 크레타
루헤의 시간
호르스트 리히터 지음
크레타 / 2021년 12월 / 274쪽 / 16,000원
누구나 사소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조금 짧은 여행을 하겠습니다나의 소형 밴은 도로를 내달렸다. 내 눈앞에는 멋진 여름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간혹 도로가 막히면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한동안 묵언 수도원에서 지낸다는 생각에 몹시 들떠 있었고, 그곳에서의 멋진 생활을 상상했다. 나는 대중과 매체,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서 ‘쾌활하고 명랑한 국민 삼촌’,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사람’ 등으로 불린다. 물론 나는 내 감정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내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지낼 수 있을지 스스로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고요를 찾아서: 코로나 봉쇄 후 어느 정도 지나자 다시 일상에 활력이 불기 시작했고, 나 역시 내가 좋아했던 일과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조금은 정상 상태로 되돌아왔고, 이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단지 손을 더 자주 씻고 마스크를 더 많이 쓸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고요함만이 나에게 평온함을 주지 못했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고요함이 나에게 평온함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표현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어쨌든 강제적으로 천상의 고요함을 조금 경험했고 더 많은 고요함을 경험하고 싶었다. 자, 수도원! 이제 묵언 수도원에서의 첫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요함’, ‘평온함’이라는 단어인 ‘루헤(Ruhe)’를 얼마나 자주 사용할까?
인생에 루헤 한 번쯤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수도원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본관 내부는 수도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천장은 아주 높고 사방 벽면은 모두 석고 보드로 훌륭하게 마감되어 있었다. 첨단 시설을 갖춘 리셉션 뒤쪽으로 두 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줄을 선 사람들도 모두 여성들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여기에는 왜 여성들만 있는 걸까? 3시간처럼 느껴진 15분이 지나자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리히터입니다. 제 이름으로 예약된 내용이 있을 겁니다.” 직원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뭘 예약하신 거죠?” “죄송하지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예약 내용이 어딘가에 적혀 있을 텐데요.” “저희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 선생님은 명상 강좌에 예약되어 있네요. 그런데 이 건물은 선생님이 주무실 곳이라 나중에 오셔야 해요. 먼저 저 옆에 있는 다른 건물에서 등록하셔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나는 ‘저 옆에 있는’ 건물로 가서 다시 줄을 섰다. 내 앞에는 아홉 명의 여성이 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내 앞에 젊은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고, 적어도 그는 나를 알아보았다.
“아, 리히터 씨, 이곳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명상 강좌를 들으시는군요. 정말 멋집니다. 그나저나 선생님은 무슨 작업을 하고 싶으신데요? 정원에서 일할 수도 있고 아니면 주방에서 일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주방일은 지금 코로나 때문에 불가능해요.” “그럼 정원 일을 선택하겠습니다.” “정원 일은 이미 다 찼어요. 그러면 선생님은 청소를 해야겠네요.” 망연자실한 나는 캐물었다. “청소 자리만 남았는데 왜 나한테 무슨 일이 하고 싶냐고 물은 거죠?” 무응답도 대답이다. 이 젊은 친구는 냉담한 표정으로 내가 아침 식사 후에 청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나에게 열쇠 하나를 주었고, 나를 여행 가방을 맡겨둔 본관 건물로 다시 보냈다. 마지막 지시사항도 잊지 않고 말해주었다. “청소 집합 장소는 분수대예요. 이제 오후 5시면 식사 시간이고, 선생님의 첫 강좌는 오후 7시에 시작합니다.”
방의 모습은 내가 묵언 수도원에 대해 기대했던 것과 대략 비슷했다. 나는 묵언 수도원 숙소에 라디오나 TV가 없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하물며 무선 인터넷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 나는 휴대폰을 꺼놓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단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해 아내와 통화를 한 번 하고 싶었다.
오후 5시가 되자 나는 식당으로 갔다. 마스크를 쓴 여성 한 명이 식당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무덤덤하게 곧바로 나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착용해 주세요. 식탁에 보시면 선생님 이름이 적힌 카드가 있어요.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 자리가 지정석이에요. 저쪽에 뷔페가 마련되어 있고요. 이제 드실 음식을 담고 저 뒤에 있는 선생님 자리에 앉으시면 돼요. 그리고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점을 유념해 주세요.” 뷔페 음식은 교도소 음식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끼고 빈약한 치즈빵 두 개를 집어 들고 내 자리로 총총 걸어갔다. 혼자 앉는 개인 자리는 없었고, 여덟 명에서 열 명이 함께 앉는 단체석이 있었다. 물론 코로나 위생수칙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빈 좌석을 하나 남겨두어야 했다. 나는 공손한 사람이기도 하고 물론 말을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식탁에 함께 앉은 사람들을 정중하게 바라보며 인사를 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어떤 운명이 우리를 이 공간에 한데 모이도록 했고, 우리는 적어도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모두가 그저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의 접시를 바라볼 뿐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온갖 생각에 잠겨 사람들에게 여러 번 접촉 시도를 하면서도 빵과 차를 싹싹 다 먹어 치웠고, 그 와중에 내가 오후 7시에 명상 강좌를 예약했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떠올렸다. 명상 강좌는 같은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아래층에 있는 홀 문 앞에 도착해보니 남성 참가자는 나를 빼고 몇 명뿐이라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적어도 서른 명의 여성이 강좌가 시작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직사각형의 거대한 강의실을 눈으로 둘러보았다. 강의실 중앙에는 직사각형의 매트가 1.5미터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받침대가 높게 쌓여 있었고, 그 뒤로는 안마당이 보이는 창문이 있었다. 폭이 아주 넓은 받침대에는 더 많은 매트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도 각각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강의실 뒤쪽에는 양초가 켜져 있는 커다란 촛대가 있었고, 벽에는 막대와 열쇠가 걸려 있었다.
10분이 지나니 나는 살짝 피곤해졌다. 아마도 각자의 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깜빡 잠이 들 때처럼 내 눈이 계속해서 저절로 감겼다. 그 찰나, 어떤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한 여성이 클라베(Clave) 두 개를 서로 맞부딪치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시 후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의 남성이 맨발에 흰색 옷을 입은 채 강의실에 들어왔다. 그 남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애에 빠져 있는 인상을 내게 풍겼다. 그는 기침을 크게 할 때 기도하듯 양손을 포갰고 시종일관 침묵했다. 이러한 침묵은 좌불안석이었던 나에게 꽤 적절했다. 그런데 지금 또 다른 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내가 앉아 있는 나무 벤치가 정말 너무 불편했다. 조금 더 높이 앉을 수 있을까 해서 나무 벤치를 매트 위에 올렸더니 착석감이 조금 나아져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기침하는 명상 스승은 그사이에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도 부동 상태에 빠져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명상 스승이 몇 분 지나서 또 기침을 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누군가 명상 스승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곧장 물을 마신 스승은 기침을 멈추었다. 그는 수련생 격인 우리에게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는 배웁니다. 아니, 오늘 우리는 배우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론 아직은 올바르게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올바르게 앉는 법을 배우기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만 저절로 배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에 있으니까요. 지금의 여러분은 아직 저절로 배울 수 없습니다. 단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에 있으면 언젠가 저절로 배울 수 있습니다.” 내 기억에 뭐 대략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적으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그 당시에 그의 말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명상 스승은 아마도 나의 당혹감을 눈치 챘는지 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 45분 동안 올바르게 ‘앉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올바르게 앉는 것이 그의 관심사였던 것 같았다. “앉아 있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과 가까이 있습니다. 당신이 올바르게 앉아 있는지 아닌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은 가장 훌륭한 기술입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언젠가 올바르게 앉는 것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는 홀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나,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올바르게 앉게 될 것이므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때 불행히도 이미 다음 단계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의 유연성에 정말 놀랐다. 농담처럼 말하자면, 그는 반(半) 가부좌 자세를 취한 후 마치 다리를 능숙하게 부러뜨리듯이 발을 어깨 위로 올리고 손으로 자신의 발을 어루만졌다. 정말로 아주 기이한 모습이었다. 마치 그의 손에 다른 사람의 발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다음 그는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했다. 그의 말인즉, 허벅지가 항상 바닥에 닿는 것, 그리고 우리가 당연히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과 저절로 그렇게 되리라는 것, 그런 비슷한 것만 생각하라고 했다. 어느새 그는 불상처럼 양발을 꼬아 완전한 결가부좌 자세로 앉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이런 저게 가능하다고?’ 한편 내 옆에 있는 남자도 무아지경에 빠진 채 양초처럼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그는 다른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의 이런 모습에 다시금 매료되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평온하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고요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느낀다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명상이라는 것은 참 훌륭한 것이다. 고요해지는 것, 내 안의 평온을 발견하는 것,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주변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 정신없이 빠르고 분주한 번잡함에서 멀어지는 것, 바로 이것이 수도원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명상 스승과 그의 방식을 따라가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본연의 모습에 가깝게’ 살아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단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있고, 나아가 이 견해를 함께 한다. 또 그가 우리 인간들이 대부분 과거나 미래에 ‘살고 있다’고 말했을 때도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수많은 사람에게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이니까 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즉 인간이 평균 80년을 살면서 정말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기간은 고작해야 8개월뿐이라는 것이다. 이때 나는 그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만 듣고 싶어졌다.
이어 나의 집중력은 완전히 사라졌고, 나는 속으로 ‘80년 중 8개월’이라는 명상 스승의 주장에 반대 이론을 펼치며 그에게 반감이 생겼다. 그의 주장이 옳지 않고 완벽하지 않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맑게 하려고 내가 즐겨 하던 것을 했다. 나는 그냥 산책을 나섰다. 문 앞에는 정말로 멋진 숲이 펼쳐져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수도원 부지는 여러 산책로가 있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몇 걸음만 성큼성큼 걸으면 불과 몇 분 만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내가 뭐 감금된 죄수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길을 나서서 산책하고 주변을 감상했다. 간혹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마주쳤지만 곧 익숙해졌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실험은 이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내가 명상 스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할까? 이 실험은 나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숲을 산책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의자에 앉아 나 자신을 책망했다.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나는 서늘한 숲의 냄새를 맡았다. 아름다운 시냇물을 듣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신경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호르스트! 강좌 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청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든, 혹은 다른 행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고요함과 평온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이곳에서의 나날이 도움이 될 거야. 모든 것을 보고 생각한 다음, 이것이 정말로 너한테 맞는지 아닌지 결정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 봐. 호기심을 잃지 말고 오만하고 거부하는 마음가짐을 갖지 마. 네가 왜 고요함을 추구하려고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봐. 이것이 정말 흥미로운 프로젝트일 뿐인지, 아니면 그 배후에 더 많은 것이 숨어 있는지 생각해봐.’ 이렇게 숲을 산책하면서 생각을 하고 결단을 내리니 마음이 정말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일단 내 방으로 갔다. 나는 전날 밤 쪽지를 하나 발견했는데, 그 쪽지에는 나의 다음 강좌에 대해 적혀 있었다. 5시 15분에 정원에서 시작되는, ‘올바르게 걷기’에 관한 강좌였다.
그래서 바람이 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어느덧 수도원 생활은 일상이 되었다. 나는 이미 이곳의 생소한 모든 것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달리기를 하는 수강생, 명상하는 수강생, 풀 뽑는 수강생…. 그 무엇을 보더라도 나는 더 이상 깜짝 놀라지 않았다. 그런데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놀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건물 밖으로 나갔는데 징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풀밭에 누워서 팔다리를 모두 쭉 뻗고 있는 한 여성이 보였다. 그리고 한 남성이 그 주변을 돌면서 징을 계속 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저 두 사람은 뭘 하는 거지? 음파가 그들에게 닿아서 그들을 진정시키고 최면 상태를 만드는 건가? 이 징 소리를 계속해서 들으면 정말로 마음이 진정되는 걸까?’ 여러분이 보다시피 내게는 정말 이상해 보였고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내 할 일을 했다. 그리고 나만의 하루 리듬을 만들기 위해 자전거를 구했다. 나는 연기처럼 빠르게 자전거를 타고 주변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자전거 덕분에 나는 완전히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고, 먹고 자는 데에만 수도원을 이용했다. 나는 침묵하면서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상황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국민 삼촌 호르스트가 묵언 수도원에 가서 입을 다물고 지내면서 아주 현명한 깨달음을 얻는다. 지혜롭고 말 없는 수도사가 된 호르스트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이렇게 시끄럽고 분주한 세상에서 내면의 안정과 평화를 찾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혹은 어려운 일인지 보고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정말 훌륭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가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침묵은 지키고 있지만 내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편 나를 사로잡은 건 완전히 다른 생각이었다. 큰 돌 위에 앉아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 인생의 몇 가지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던 기억 말이다.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면서 주변 상황이 점점 안 좋아졌다. 그 시기에 나는 TV 정규 프로그램을 4개나 맡아서 하고 있었다. <라퍼, 리히터, 맛있어>, <주방 대전(요리 경연 프로그램)>, <슈니첼약트(요리 여행 다큐멘터리)>, <리히터의 진품들> 등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에 대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잘 안 될 거라면서 말렸지만, 나는 그들의 이러한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프로그램을 기어코 시작했는데, 바로 골동품 감정 프로그램 <희귀품에 현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