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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백은영 지음 | 버튼북스


준비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백은영 지음

버튼북스 / 2021년 9월 / 240쪽 / 14,000원





1부 상처를 주고받는 가족이라는 이름



1장 위기에 선 아이들

중독되는 아이:
“컴퓨터게임만 하지 말고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짜증을 내요. 숙제를 다 했으니 좀 내버려 두라는 거예요. 교과서 말고 책도 좀 읽으라고 하면 재미없다면서 잠깐 읽는 시늉만 하다가 그만둡니다. 정말 답답하네요.”

중독의 어원 addition은 ‘어딘가에 달라붙어 그것의 노예가 된다’라는 의미이다. 중독된다는 것은 무언가 미해결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심리적 문제를 암시하는 지표가 된다. 게임에서 폭력성을 드러내거나 스마트폰에 자신을 표현하는 행동은 뒤틀린 자아가치를 표출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뒤틀린 자아가치와 폭력성에 온 마음이 가 있는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잃어버리고 중독 대상에 의존하며 결국 노예가 되고 만다. 그래서 중독된 아이는 주도적이지도 않고 에너지가 분산되어 공부에 몰입할 수도 없으므로 학업성취도가 떨어져 학업 문제로 부모와 부딪치는 복합적 양상을 띤다.

학업에서 유능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지는 경험을 계속하는 아이는 삶 속에서도 지는 경험을 기피하기 위해 무언가에 도전하려는 의욕이 없어진다. 그리고 가상현실 속에서만 이기는 경험에 몰두해 부모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자신에게서 소외를 느끼며 더욱 중독 대상에 빠진다.

아이가 무언가에 중독되는 이유는 아이의 욕구와 관련이 있다. 유아기에 애착 형성이 잘된 아이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주도적인 통제력이 길러져 조절력이 있고 엄마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관심사가 확대되어간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조절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욕구가 엄마를 통해 해결되지 못했으므로 엄마를 대체할 통제 대상을 찾는데 그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대상에 중독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욕구를 가지고 있고 각자 다른 욕구 프로파일이 있어서 욕구의 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 전문가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 박사는 인간의 욕구를 생존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힘의 욕구, 즐거움의 욕구, 자유의 욕구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 다섯 가지 욕구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욕구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가 자신의 결핍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행동하며 미래 삶의 질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부나 게임을 하면서 채우려고 하는 욕구는 아이마다 다르다. 미래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공부하는 아이는 ‘생존의 욕구’가,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공부하는 아이는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 강하다. 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는 ‘힘의 욕구’가, 공부가 즐거워서 하는 아이는 ‘즐거움의 욕구’가 강하다. 마지막으로 다른 것을 하기 위해 빨리 공부를 해치우는 아이는 ‘자유의 욕구’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생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게임을 하는 아이가 가장 불쌍하고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생존에 필요한 것을 받으면서 안전함을 느낀다. 그러나 게임에 중독된 아이는 엄마와의 애착 문제부터 엄마에게서 받을 사랑, 즉 자신의 삶을 꾸려갈 에너지를 받지 못하는 아이이다.

이런 아이의 엄마는 워킹맘이어서 시간이 없거나 전업주부라 해도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몰두해서 아이에게 전혀 시간을 내어주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엄마가 키운 아이는 다섯 가지 욕구 중 중독 강도가 가장 심하며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살기 위해서, 이것마저도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게임을 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생존의 욕구로 게임을 하는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엄마의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 아이는 자신의 생존과 엄마가 연결(애착)되지 않았으므로 엄마와 아이의 생존을 연결하는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당연히 엄마의 노력이 가장 필요한 유형이다.

‘사랑과 소속의 욕구’로 게임을 하는 아이는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게임을 한다. 이 아이는 친구 사이에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게임을 따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관심 영역이 수시로 달라진다. 게임을 하는 친구가 주변에 많으면 본인은 별 재미를 못 느껴도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 게임을 하기 때문에 중독도 덜 된다. 친구가 운동을 좋아하거나 독서를 즐기면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는 아이이다. 이런 욕구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의 관심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취미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추천해주거나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여가를 제공해주면 좋다.

‘힘의 욕구’로 게임을 하는 아이는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아이는 주로 <리니지>, <바람의 나라>와 같은 점수나 무기를 거래하는 게임을 선호한다. 자신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이다. 이 욕구가 강한 아이도 생존의 욕구로 게임을 하는 아이처럼 중독 정도가 심하다. 이런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를 인정해주는 칭찬이나 아이가 게임 외에 잘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지원, 욕구를 발산할 수 있는 운동이나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서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아이가 힘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즐거움의 욕구’로 게임을 하는 아이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즐거움의 대상을 바꿔주기만 하면 금방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문이나 책에 종종 나오는 '게임 폐인'이었던 사람이 서울대를 간 사연이나 IT 관련 사업의 CEO가 된 사연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욕구를 가진 아이는 열정과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즐거움의 종류만 바꿔주면 금방 선순환을 할 아이이다.

사실 공부와 게임은 공통점이 많다. 이 두 가지는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고 노력을 통해 단계를 높일 수 있으며 성과에 대한 보상이 주어진다. 부모는 왜 아이가 게임에서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공부에서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공부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아이는 학업의 기초가 누수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초가 다져지지 않아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이가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게임에 몰입하는 것이다.

공부나 게임 모두 단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낮은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높은 단계로 갈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는 게임을 통해 이 엄연한 진리를 알고 있다. 아이가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는 단계와 단계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튼튼해야 한다. 게임은 그것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공부는 단계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단단하지 못하고 스스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국사 과목을 못 하는 아이도 역사 드라마는 재미있게 본다. 드라마를 보면서 흥미롭게 역사 공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는 어느 시대 어느 왕의 업적을 단순 암기해야 한다. 이러한 암기는 아무리 머리가 좋은 아이도 한계를 느낄 수 있다. 역사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스스로 이 연결고리를 찾아 암기보다는 이해해가며 공부하는 아이이다.

수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 방정식을 배워야 하고 방정식의 공식은 어떤 과정으로 나왔으며 이 방정식을 실생활이나 일을 할 때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 없이 아이는 단순히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푼다.

공부든 게임이든 연결고리가 단단해야 레벨업이 된다. 따라서 즐거움의 욕구로 게임을 하는 아이는 공부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공부로도 즐거움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것은 공부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때 가능한 일이다.

‘자유의 욕구’로 게임을 하는 아이는 자유를 갈구하는 아이이다. 공부나 시험공부 등 자신이 해야 하는 의무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싶은 아이이다. “숙제를 다 하면, 시험을 잘 보면 게임 시켜줄게.”라고 조건을 거는 부모의 아이가 이에 속한다.

이 아이에게는 가치관 교육이 필요하다. 삶에 대한 책임, 시간 활용법, 자유는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등 아이가 어리더라도 부모가 모델이 되어 차근차근 가르치면 자신의 소중한 자유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게임보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경험을 한 아이는 어딘가에 중독되지 않는다. 그런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중독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는 중독이 된 아이를 탓하기에 앞서 아이에게 주었던 사랑의 양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2장 상처받는 엄마

착한 아이로 키우는 엄마: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착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하지만 나도 사람인데 욕구가 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엄마는 남들의 시선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내 욕구는 늘 안중에도 없었죠. 언젠가 내 생각을 말했더니 엄마는 ‘얘, 누가 들을까 겁난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언제나 내 생각, 내 감정, 내 욕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만 전전긍긍해요.”

부모는 내 입에 혀 같은 아이를 좋아한다. 이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는 대개 똑같은 말을 한다. “얘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키웠어요. 정말 착한 아이였지요.” 나는 이 말이 얼마나 끔찍한 말인지 안다. 이런 아이는 한 사람으로 가질 수 있는 아니 가져야만 하는 자신만의 생각, 욕구, 감정이 모두 훼손된 아이이다. 어떻게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내보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반면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랐던 아이의 부모는 또 한목소리로 말한다. “저 아이는 키우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부모만 아니었다면 갖다 버렸을 거예요. 꼭 저 같은 아이를 낳아서 키워봐야 해요.” 사실은 이런 아이가 생명력 있는 아이이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아이이다. 나는 이런 아이가 멋지게 살 거라고 확신한다. 단, 부모가 더 큰 목소리로 아이의 목소리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가짜 나’를 만드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입에 혀 같은 아이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원망이 자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자신의 본모습을 가장하고 살아가야 하는 데 대한 분노 말이다.

착한 아이로 키우는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잘 키운다고 착각하며 아이의 주도성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노예가 되어 자녀에게 착한 아이가 되라고만 강요한다. 이런 엄마의 자녀는 착한 아이가 되지 않으면 엄마의 사랑이 거둬지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착한 아이로 남아 있으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착한 아이도 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아이라고 할 수 있다.

착한 아이는 자신의 생각보다는 엄마의 생각을 먼저 헤아리고 엄마를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만약 엄마의 요구에 맞춰주지 못할 때 죄책감에 시달린다. 결국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엄마와 똑같이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들이 만든 감옥 속 노예처럼 평생을 착한 아이로 살게 되는 것이다.

착한 아이로 키우는 엄마는 어떻게 보면 희생적이고 교육에 헌신하는 엄마로 비쳐진다. 모든 부모는 자녀를 위해 희생한다. 희생에는 기쁨과 보람이 뒤따른다. 하지만 자녀를 위해 희생한 부모가 어느 순간 상실감과 분노를 느낀다면 그것은 자녀를 위한 진정한 희생이 아니라 자녀를 빌미 삼아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사회심리학적 시각으로 현대인들의 소외 양상을 유형별로 고찰하고 근대적 세계 속에서 인간이 참다운 자기를 실현하여 가는 길을 찾은 심리학자. 저서로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등이 있다.)은 이런 어머니는 이기적인 어머니와 유사한 영향을 아이에게 주며 심지어는 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착한 아이는 어머니를 도덕적이라고 생각하여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미덕의 가면 속에서 삶에 대한 혐오감을 배운다. 또한 착한 아이는 엄마를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판단력을 점점 잃어간다. 아이는 사춘기가 되면 부모를 판단하며 정체성을 갖는데 비판할 수 없도록 만드는 엄마 때문에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착한 아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과 욕구와 감정이 있음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가지 못한다. 게다가 만약 자신을 착한 아이로 키웠던 엄마의 본모습을 보게 되고 자신이 끊임없이 조정 당해왔다는 것을 아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 더없이 착한 아이가 부모를 살해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이다. 자신의 주도성을 찾기 위한 아이의 마지막 몸부림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착한 심성과 악한 심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기준도 사회의 통념이나 타인에 의해 합의된 기준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감정이 치밀어올라 화를 내기도 한다. 단 그것이 사회에 해를 가져오는 행동이 아니라면 아이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해주어야 한다.

공감은 동감이 아니다. 동감은 아이와 똑같이 생각하고 아이의 감정 상태와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공감은 그러한 감정과 생각을 갖게 된 아이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마음이다. 동감을 하면 아이의 감정이 누그러들지 않지만 공감해주면 아이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자신의 생각을 바른 방향으로 가져간다.

착한 아이로 키우는 엄마는 아이에게 공감해주지 않는 엄마이다. 본인도 자유롭지 못했던 타인의 시선이라는 잣대를 아이에게 들이대고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 엄마이다.

아이는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착한 아이로 크는 아이들은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남들 눈에는 착해 보여도 마음이 언제나 허전하고 남들의 칭찬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착한 아이가 성장하면서 착한 아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우는 마음의 균형을 잃은 결과이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주도성이 회복되고 있는 증거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엄마는 착한 아이보다는 생각이 있는 아이로 키우고 그 아이의 생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교육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2부 이렇게 하면 자녀와의 관계를 망친다



1장 자녀를 망치는 부모의 행동

깨닫지 않으면 계속되는 게임:
우리는 각자 의식수준을 갖고 태어나지만 살아가면서 의식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만난다. 호킨스 박사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바르게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면 평생 의식수준을 5점 정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고통’을 통해서라고 한다. 고통은 인간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의식수준의 도약대인 셈이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선물을 건네받고 포장을 뜯은 후 이 선물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아차릴 때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그의 의도를 파악한다. 나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에 감사를 표한다. 이것이 선물을 받았을 때 우리가 취하는 행동과 마음가짐이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에게 맞는 선물을 주는데 그 선물을 고통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은 선물을 받기도 전 고통이라는 포장지에 놀라 이 선물은 내 것이 아니라며 밀어내는데 이 경우 내 선물이라고 받아들일 때까지 고통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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