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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트와이스(Mr.Twice)

차민수 지음 | 문예춘추사


미스터 트와이스

차민수 지음

문예춘추사 / 2021년 1월 / 247쪽 / 13,800원



내 이름은 ‘미스터 트와이스’




내 이름은 ‘미스터 트와이스’


하룻강아지 자신감이 하늘을 뚫다: 저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7일간 꼬박 밤을 새운 처절한 포커게임이 비로소 끝나는 순간이었다. 매일 평균 15시간씩 105시간이 넘는 대장정에서 나는 칩 리즈을 쓰러뜨리고 전리품 50만 달러를 얻었다. 칩 리즈와 처음 게임을 한 것은 1986년 여름이었다. 그때까지 사람들에게 ‘차민수’는 세계랭킹 3위는커녕, 30위도 겨우 할 것 같은 어떤 겜블러에 지나지 않았다.

칩 리즈와의 첫날 대결은 스튜이 헝거의 가벼운 휘파람으로 시작되었다. “자, 즐겨보자고.” 내가 있는 테이블에는 8명이 둘러앉았다. 우리는 스터드(Stud)와 홀덤(Holdem), 로우볼(Low-Ball)을 번갈아가며 했다. 게임은 잔잔하게 흘러갔고, 시간이 꽤 지나니 테이블에는 세계랭킹 3위 수준의 잭 루이스, 자타공인 챔피언 칩 리즈, 그리고 내가 남았다. 나는 3만 달러 정도를 잃고 있었고, 칩은 5만 달러쯤 따고 있었다. 잭은 본전 비슷했다. 우리 앞에는 카드가 날아다녔다. 게임이 잘 풀리던 칩은 조금 더 이기고 싶은 눈치였다. 마침 승부보기를 좋아하는 우리도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판이 트리플 미만으로 승부가 났다. 3사람이 다 참여해 부딪히는 큰 판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숏핸드가 되자 나의 공부가 빛을 발했다. 죽을 판과 싸울 판에 대한 판단이 리듬을 타며 나아갔다. 작은 판들의 연속이었지만 내가 이기는 판이 점점 더 많아졌다. 내 앞에는 칩이 쌓여갔다. 내가 첫날 승기를 잡은 계기는 칩의 블러핑(Bluffing)이었다. 블러핑은 약한 패를 쥐고 있으면서도 상대에게 강한 패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공갈을 치는 것을 말한다. 포커판의 신사라고 불리는 그가 블러핑을 치는 것은 나로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공갈에는 공갈이 약이니: 나는 킹 페어를 쥐고 있었다. 칩은 강하게 레이즈를 했고, 나는 고심 끝에 패를 내려놓았다. 칩이 싱글벙글 웃었다. 그는 말도 되지 않는 떡패를 나에게 보여주고 판돈을 가져갔다. 내가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이 친구가 날 데리고 놀 작정이구나. 기 싸움에선 끌려 다니지 않으면 된다. 공갈에는 공갈이 약이지.’

“야, 칩. 이거 열 받는데.” 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어 말했다. 칩이 다시 웃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무조건 반사적인 플레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판이 많아지자 칩이 말했다. “지미, 콜 할 것이라곤 생각 안 했는데.” “에이 난 또, 네가 또 블러핑 친 줄 알았지. 떡패 가지고 장난치는데 콜을 안 하고 배겨? 그러게, 블러핑 패는 보여주지 말았어야지.” 칩은 다른 사람에게서 딴 돈에 자기 돈을 5만 달러를 보태 나에게 주고 일어섰다.

다음 날, 어떤 타짜가 구상해도 만들기 쉽지 않을 장면이 벌어졌다. 둘째 날 오후 3시경 바이시클 클럽에 갔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문을 여니 도올 브론슨이 먼저 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도올은 농구선수 출신으로 키가 2미터에 육박한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도올에게 물었다. “칩 리즈가 제일 잘하는 게임이 뭐지?” “그야 홀덤하고 스터드지.” “그래요? 거 참 이상하네. 칩 실력에 대한 소문이 과장된 거 아냐?” “뭔 소리야?” “오늘 새벽까지 붙었는데 세다는 느낌을 못 받았거든.”

도올이 말을 전하길 바라는 일종의 약 올리기 작전이었다. 물론 이런 말에 흔들릴 칩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았다. 이 말은 오히려 내가 나에게 하는, 오늘 새벽에 이은 승리를 바라는 강한 암시였을 것이다. 4시 조금 지나 칩 리즈가 클럽에 들어왔다. 예상대로 도올이 실실 웃으며 그에게 가 약을 올렸다. “지미지미가 그러는데 자네 실력이 과대평가가 된 것 같다는 거야.” 순간 칩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가 싶더니 바로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 오늘 다시 한 번 내 운을 시험해보지 뭐.”

승리의 ‘패’는 나에게로: 그때 하미드가 들어왔다. 그는 월드 챔피언까지 먹은 일류다. 셋이서 숏핸드로 제대로 붙었다. 게임을 시작한 지 세 시간도 안 됐을 즈음 큰 판이 벌어졌다. 세 사람이 한꺼번에 엮인 판이었다. 스터드 게임을 할 때였다. 4구째 칩이 9트리플이 되면서 내가 이길 확률은 점차 줄어 나에게 위기가 왔다. ‘저들끼리 알아서 치고받아라.’ 하며 눈치를 살피는데, 5구에서 26분의 1의 확률을 뚫고 나에게 유리한 패가 떨어졌다. 포켓 킹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킹이 떨어지면서 K트리플이 되었다.

갑자기 내가 앞선 것이 확실해졌지만,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체크(Check: 베팅 차례에서 베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 가진 패가 별 볼일 없는 것처럼 상대방이 느끼게 하기 위한 위장 전술로도 쓰인다)로 베팅을 넘겼다. 칩은 숨은 9트리플이었고 하미드는 A페어에 플러시 드로를 하고 있어 저희끼리 치고받았다. 둘 다 좋은 패였다. 그들은 최대치인 3200달러까지 베팅했다.

6구째, 하미드는 플러시를 맞추었고 내 보드에는 내가 기다리던 페어가 떨어졌다. K풀하우스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전히 나의 패에 대해 눈치 채지 못했고 맥시멈 베팅에 들어갔다. 마지막 장을 받았다. 하미드는 어떤 카드를 받아도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칩이 나를 이기는 카드를 받을 확률은 49분의 1이었다. 앞서 내가 26분의 1의 확률로 역전을 했으니, 칩이 이기는 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행운은 칩을 외면했다. 3만 3900달러짜리 큰 판은 내 차지가 되었다.

세계 1위를 7일간 이기다: 칠일 째 되던 날인가. 칩이 새벽녘에 저지른 실수는 그가 칼날 앞에 서 있음을 알려줬다. 아무리 일류라 해도 게임이 15시간 가까이 계속되면 집중력에 틈이 생긴다. 그날 칩 앞바닥에 8 스페이드가 떨어졌다. 내가 보기에 그건 쓸모없는 패였다. 그런데 그는 태연히 베팅을 하였다. 나는 그 베팅을 강력한 레이즈로 응수했다. 순간 바닥에 깔린 패를 확인한 그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8 스페이드를 7 혹은 9 스페이드로 잘못 본 것이었다. 정말이지 그의 운은 지친 듯했다.

어떤 판에서는 칩 앞에 Q 8 하트가 깔렸고, 내 바닥에는 Q 9 스페이드가 깔렸다. 둘 다 플러시를 기대할 수 있었다. 내 손에는 A K 스페이드가 얌전히 숨어 있다. 그런데 칩 손에는? 거기에도 A K 하트가 숨 쉬고 있었다. 마지막 장으로 칩은 J 하트가, 나도 J 스페이드가 나왔다. 우리는 둘 다 바라던 플러시를 만들었다. 할 수 있는 베팅을 이미 다 한 상태였고, 우리는 패를 오픈했다. 나는 A K Q J 9 플러시. 그는 A K Q J 8 플러시. 평생 두 번 나오기도 힘든 경우였다.

끝을 알 수 없는 게임을 하다 보면 많은 운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게임은 수없이 계속된다. 실력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운이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프로의 게임에서는 자그마한 것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15시간에 걸친 게임으로 우리는 모두 지쳐 있었다. 딜러가 다시 카드를 돌리려는 순간,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의 운에 관한 시험, 이제 그만하지. 내 운이 조금 지친 듯해서 말이야. 나는 오늘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야겠어. 당분간 거기 있을 거야.”

나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봤다. 아침이었다. 게임이 끝난 것이다. 내가 세계 1위 칩 리즈를 상대로 돈을 얼마나 많이 땄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를 연거푸 이겼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지미지미 실력이 엄청나네. 칩을 이긴 게 절대 우연일 수가 없지. 7일간 계속 이겼잖아.” “지미지미 성적이 이대로 한 달 이상 가면 나도 그를 ‘미스터 트와이스’라고 부를 거야.”

지미지미, ‘미스터 트와이스’: 미국에서 ‘미스터’는 한국어 의존명사 ‘님’과 비슷하다. 내 이름은 ‘지미 차’였지만 그때까지 LA 카지노계에서 나는 지미지미라고 불렸다. 내가 게임을 할 때 베팅을 너무 세게 해서, 나 혼자 두 명의 몫을 한다며 친구가 내 이름을 두 번 반복해 부른 게 그 별명의 유래다. ‘지미’라는 이름이 두 번 반복된다는 소름끼치게 논리적인 이유로 나는 ‘트와이스’가 되었다. 더 소름 돋는 사실은 나도 그 터무니없는 별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오우! 미스터 트와이스(Mr. Twice).” “땡큐, 칩.”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칩 리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제1위의 포커 선수. 그가 나를 ‘트와이스님’이라고 불렀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와 달리 칩은 120킬로그램의 거구를 가볍게 흔들며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고 두 손을 펴 보인 뒤 클럽을 빠져나갔다. 그의 등에 서린 피곤만큼이나 나도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승부의 시간을 통해 서로의 실력과 수준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칩은 게임 매너나 실력으로 당대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칩은 체중을 과다하게 빼다가 그 후유증 탓인지 심장마비로 수년 전 사망했다. 칩과의 대결 이후 나의 성적은 승승장구했다. 사람들은 약속대로 나를 미스터 트와이스라고 불렀다.



담대한 여정, 세계 최상급 플레이어가 되기까지




이것저것을 섭렵한 어린 시절


1ㆍ4 후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1951년 피난처인 수원 인근 발안 장터에서 나를 낳았다. 서울 수복 후, 어머니는 나를 안고 영등포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나에게는 나보다 일곱 살 많은 큰누나, 그 두 살 아래 형, 또 두 살 아래 작은 누나가 있었다. 어머니는 ‘만약 내가 잘못되면 내 재산은 큰 아이들이 다 가지고 어린 동생은 주지 않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나에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운동, 그리고 돈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셨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운동으로는 당수, 쿵푸, 스케이트, 수영, 탁구, 음악으로는 바이올린, 기타, 피아노를 배웠다. 바둑에도 재주가 있어 1974년에 프로에 입문했고, 미술은 뒤늦게 조동화 선생님께 배워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가보니 어머니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머릿속에 넣을 수 있는 지식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재산보다 무궁무진했고, 심지어 그것을 보관하거나 도둑맞을 물리적 장소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의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었으면 했다.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목사가 되어 목회자의 길을 가길 바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어머니의 소망은 소망으로만 남았다. 내가 학교 공부에 취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적도 벼락치기로 간신히 유지만 하는 정도였다.

결혼의 기쁨, 그리고 라스베이거스


나는 1972년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그 다음해에는 석진이를, 1975년에는 영은이를 낳았다. 그런데 작은누나의 결혼식 때문에 미국에 다녀온 후로 어머니는 줄곧 나에게도 미국에 가라고 성화였다. 바둑과 친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국을 떠날 이유가 없었지만, 1976년 군복무를 마친 후 결국 어머니 뜻대로 미국에 갔다.

결정적으로 마음을 바꾼 계기는 당시 열풍이었던 007이란 첩보영화였다. 내 눈에 그 미국 영화의 주인공인 숀 코네리는 너무나도 멋있었다. ‘나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저렇게 한번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미국행을 택했다. 미국에 가면 운동을 특기삼아 CIA에 들어가려고 그 후 운동도 더 열심히 했다. 하지만 미국 생활은 생각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당장 나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었다. 네 식구의 호구지책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의 높은 장벽에다 더 높은 언어의 장벽까지 더해지니 007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아보자는 나의 새파란 꿈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를 본 이후에 내 꿈은 180도 바뀌었다. 처음 본 라스베이거스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라스베이거스의 공기는 백열등의 불빛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불야성 앞에서 나는 황금의 보고인 서비스산업, 그러니까 카지노 업계에 발을 담그기로 결심하게 된다.

5달러에 목숨을 걸다


미국에 온 지 며칠이 안 되어 주유소에 취직했다. 내가 취직한 주유소는 카사블랑카 갱들의 활동 반경에 있어서 밤만 되면 총소리가 심심찮게 들렸는데, 저녁 파트에 일하는 사람들이 일주일도 안 돼 그만둬준 덕에 그 자리는 영어도 잘 못하는 내 차지가 되었다. 어느 날 하루는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3명이 기름을 넣으러 왔다. 시동을 꺼달라고 했지만 배터리가 나빠 시동을 한번 끄면 다시 걸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기름값을 안 내고 그대로 도망갈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역시나 그들은 기름을 넣던 중간에 갑자기 차를 몰고 주유소를 빠져나가려 했다. 나는 문이 열린 채 출발하는 차의 문과 핸들을 움켜잡고 달리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소림 쿵푸에서 배운 ‘루’라는 초식으로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목을 잡아 밖으로 내동댕이쳤고, 그 사람을 못 움직이게 하려고 목을 밟고 있는데, 내 발 아래 있는 사람이 옆에 차고 있던 30센티 정도 되는 대검을 뽑으려고 꾸물댔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이 미국의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집이나 직장에서 무기를 가진 침입자와 싸우다 상대가 죽으면 정당방위라고 했다. 미국법을 실전에 적용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감복하며 슬쩍 비켜줬다. “뽑으면 죽는다.” 영어가 서툴러 혼내준다는 말이 영어로 뭔지 몰랐다. 산다, 죽는다는 말만 할 줄 알아서 그렇게 말했다. 그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칼을 뽑지 않았다. 그때 차 안에 있던 두 명이 내리려고 했다. “내리면 죽는다.”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은 순순히 5달러짜리 지폐를 내놓았다. 기름값은 3달러 79센트였다. 1달러 21센트를 거슬러 주었다.

카사블랑카 갱과 친구가 되다: 며칠 후 밤 10시가 다 되었을 무렵,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해놓고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갱들이 주유소를 향해 오고 있었다. ‘아, 이 사람들이 바로 유명한 카사블랑카 갱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스카페이스였다. 며칠 전의 악연. 난 오늘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다. 그러자 어머니와 아이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우선 가게로 밀고 들어오는 그들을 다시 밀고 밖으로 나갔다. 주유소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가 뚱뚱한 나무 하나를 등지고 섰다. 상대의 수가 너무 많으니 뒤를 보호해야 했다. ‘3분만 버티면 살 수 있겠지.’ 지나가는 차에서 누군가 우리가 싸우는 것을 보고 경찰에 연락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왜 왔어?” 나는 태연한 척 물었다. 그러자 우두머리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지금 우리가 몇 명인 줄 아냐고 물었다. 그들은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였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 “너 도대체 뭐냐?”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바로 몸을 날려 내 등 뒤에 있는 나무에 공중 돌려차기를 했다. 그러자 나뭇가지 하나가 뚝 소리를 내며 부러져 축 늘어졌다. “Wow, Are you Bruce Lee?” 그들은 탄성을 내뱉더니 갑자기 내게 ‘이소룡’이냐고 물었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난 적도 없는 이소룡은 그렇게 나의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한국에서 이민을 왔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영어는 잘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백인이면 죽이려고 했는데, 동양인이고 게다가 한국인인 것이 맘에 든다며 그들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카사블랑카 갱들과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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