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하이디 엘리어슨 지음 | 탐나는책
어느 중년의 일상 탈출 고백서
하이디 엘리어슨 지음
탐나는책 / 2020년 8월 / 415쪽 / 14,800원
그린 몬스터 : 2006년 8월 나는 그린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잔뜩 들떴던 마음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첫 운전 교습을 받으려고 강사와 잡아둔 약속이 방금 취소되었다.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캠핑카를 운전할 방법을 가르쳐 줄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9미터 길이의 캠핑카는 측면에 2가지 색조의 초록색 줄이 있었다. 캠핑카는 신중하게 생각해서 살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내 소유로 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서명을 하러 왔다. 그러고 나면 캠핑카를 몰고 로키 산맥을 넘는 일만 남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라스베이거스 RV 공원 사무실의 로비로 들어갔다. 방금 내 캠핑카를 끌고 온 마이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마이크가 제시한 서류 몇 장에 서명했고, 그는 내게 자동차 키를 건네며 물었다. “이제 완전히 고객님 차가 되었군요. 축하드립니다! 여행을 계획해 두셨어요?” “돌아갈 직장이 없어요. 얼마 전에 일도 그만두고 집도 팔고 갖고 있는 물건도 다 처분했어요. 1년 동안 쉬면서 캠핑카로 여행만 할 계획이에요.” “우와, 고객님 혼자서요?” “나와 반려견 둘이서요.”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행운을 빕니다!” 마이크는 나와 악수를 하고 일어섰다.
나는 시운전을 두어 번 했을 뿐, 캠핑카를 몰아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 이 거대한 자동차에 내 승용차를 연결해서 다녀야만 했다. 그 말은 곧 길이가 13미터도 넘는 차량을 운전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나는 그 차로 후진할 줄을 몰랐다. 그때가 2006년 8월이었고, 나는 다음 날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가서 21살인 내 딸 캐미를 차에 태울 계획이었다. 그런 다음 내가 성장한 미네소타 주로 곧장 가서 부모님을 만날 예정이었다. 캐미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직장에서 고작 일주일의 휴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내가 운전 교습을 받았든 안 받았든 길을 떠나 앞으로 3,000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승용차에서 작은 보더콜리 믹스견 라일리를 꺼내 다시 캠핑카로 걸어갔다. 라일리를 조수석에 앉힌 후 앞으로 빙 돌아 운전석으로 갔다.
심호흡을 하고 시동을 걸었다. 나는 변속 기어를 드라이브에 슬며시 넣고 거울로 몇 번이고 확인하며 고객용 주차 공간에서 천천히 나왔다. 나는 별다른 문제없이 주차장에서 야영지로 차를 몰고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난생처음 캠핑카를 몰고 1킬로미터를 무사히 달렸다! 풀스루 야영지를 예약해 두기를 잘했다. 여기서는 직진만 하면 되고 차량을 후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차의 폭이 워낙 넓다 보니 야영지가 도살장의 활송 장치처럼 좁게 느껴졌다. 내게는 그린 몬스터를 살살 구슬러 로키 산맥을 넘어 미네소타까지 가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첫 목적지에 불과했다. 내 계획은 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갑자기 심장박동이 세 배로 빨라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집을 팔고 직장을 그만두다니! 다른 직장을 못 구하면 어쩌려고? 게다가 이제는 이 덩치가 산만한 녀석을 관리해야 하다니. 도대체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는 내 인생이 기우뚱했던 그날과 이런 무모한 짓을 저지르게 만들었던 절박함을 돌이켜 보았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다른 수많은 회색빛의 단조로운 날들과 다를 바 없이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사람들로 가득한 통근열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따분하기 짝이 없는 직장으로 가고 있었다. 열차는 엠바카데로 센터에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지하역에서 사무실까지 세 블록을 가면서 노숙자들을 힐끔힐끔 보았다. 노숙자들은 잡담을 하고 빈둥거리고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특히 이날은 노숙자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나를 지배하는 감정을 노숙자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 감정이 어찌나 위협적인지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내가 향하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노숙자들에게 부러운 감정이 일었다. 그들이 마냥 부러웠다. 노숙자들은 갚아야 할 주택담보대출이 없고 지불해야 할 청구서도 날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며 사무실의 칸막이 안에서 매일 여덟 시간씩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노숙자들에게 시간은 무한한 상품이었다. 그래서 허둥지둥 서두를 필요가 없고,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활동을 하느라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다. 기울어진 나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무척…… 끌렸다. 나는 다람쥐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지쳐 있었다.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전통적인 성공 모델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살았다. 보수가 좋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온갖 덫을 구매하라. 매년 아주 짧게 주어지는 몇 주간의 휴가에 만족하라.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게다가 내게 방랑벽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내 딸 캐미 외에 내게 힘을 불어넣어 준 건 여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노숙자들이 부럽다고? 분명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는 변화, 인생의 중대한 변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여행을 할 때면 살아나는, 잃어버린 나 자신의 일부를 되찾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집을 구매 가격의 2배에 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잠시만이라도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시간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거대한 문이 활짝 열린 기분이었다. 1년 가까이 걸리기는 했지만 준비를 하면서 희망과 기대가 점점 커졌다. 이제 나는 그 출구로 나가고 있었다.
4개월 전, 나는 투손에 있는 대학 캠퍼스에서 3일 과정의 수업을 들었다. 하수 탱크를 비우는 일에서부터 간단한 RV 수리에 이르는 모든 것을 배웠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에 들어가 앞쪽에 있는 책상에 앉았는데, 내 맞은편에는 다정한 미소를 띤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여자는 45살인 나와 같은 또래로 보였는데, 이 수업에서 그런 나이는 드물었다. 나는 그녀가 금세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신디라고 했다.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이후 나는 몇 달 동안 조사를 했고, 라이프 언 휠스, 인터넷 포럼, 다른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쌓았다. 그러고 나자 RV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었던 내가 RV 아인슈타인으로 변모해 타이어 공기압 상대성 이론을 막힘없이 쏟아내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캠핑카 생활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다. 내가 지쳐서 침대에 쓰러져 바로 곯아떨어졌을 때는 늦은 시간이었다.
출발하다 : 2006년 8월~9월 다음 날 아침 승용차를 끌고 공항에 가서 캐미를 태워 그린 몬스터로 돌아왔다. 이후 연장 케이블을 설치하고 캠핑카 뒤쪽에 승용차를 연결하고 나니 오후 2시였다. 드디어 출발. 나는 혼잡한 고속도로에 서서히 진입했다. 320킬로미터쯤 달리고 나자 운전대를 너무 꽉 잡은 탓에 어깨가 아팠다. 중간에 하룻밤을 머물기로 했다. 나는 야영장을 찾아 주차를 했다. 나는 캐미와 라일리를 산책시키며 말했다. “이번 여행에는 풀스루 야영지가 있는 야영장에서만 머물기로 했어. 매일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힘이 드는데, 승용차를 분리하고 후진해서 주차까지 해야 하는 걱정은 없을 테니까.” 그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우리는 매일 어두워진 뒤에 캠핑장에 도착했고, 어느 날은 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왔다.
콜로라도 주에 접어들자 운전하는 것이 조금 더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로키 산맥을 넘었다. 이후 네브래스카 주를 횡단할 때는 단조로웠다. 바짝 말라 보이는 들판이 끝도 없이 수 킬로미터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사우스다코타 주를 향해 북쪽으로 달리다가 미네소타 주를 향해 동쪽으로 갔다. 일단 35번 주간(州間) 고속도로에 올라타고 다시 북쪽으로 가기 시작하자 낯익은 땅에 들어와 있었다. 덜루스,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에 가까이 이르자 나는 점점 마음이 설렜다.
자동차 정비사이자 카레이서였던 아빠는 이제 나이가 칠십대인데 아직도 바퀴 달린 기계에 관해서라면 자신이 전문가라고 자부했다. 엄마는 아빠보다 몇 살 어리고 말씨가 상냥했다. 나는 아빠와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그런 다음 진입로에 캠핑카를 주차하려고 하자 아빠가 거들어 주었다. 나는 아빠와 엄마에게 캠핑카 내부를 잠깐 구경시켜 주었다. 그다음 며칠 동안 캐미와 나는 숲속에 있는 아늑한 부모님의 집에서 그동안 못 쉰 것까지 한꺼번에 편안히 쉬었다. 이후 어느 날 내가 캐미에게 말했다. “네가 정말 보고 싶을 거야. 너를 두고 이 모험을 떠나려니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캐미가 말했다.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이제 엄마는 치열한 생활에서 벗어나 즐기실 때가 됐어요. 이건 엄마한테 딱 맞는 여행이에요. 이 여행을 하려고 그동안 정말 열심히 일하셨잖아요. 저도 엄마가 보고 싶을 거예요.” 나는 캐미를 안아 주었다. 내가 24살일 때 캐미가 태어났고, 그때부터 나는 혼자 캐미를 키웠다. 중간에 캐미의 아버지와 재회한 적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캐미는 콜로라도 주, 포트 콜린스에 있는 대학에 가기로 했다. 나는 캐미가 대학 생활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니 흥분했다. 하지만 막상 캐미를 기숙사 방에 데려다 주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캐미가 대학에 간 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는 거대한 바위처럼 무거운 것이 굴러 와서 나를 납작하게 짓눌렀다. 나는 내가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거울을 통해 바라본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내 친구들과 가족들은 이 시기에 내가 우울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탈진과 감정 마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스스로 빠져 들어간 실의에서 나를 일으켜 줄 긍정적인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모든 걸 두고 에어스트림 트레일러(여행용 트레일러의 미국 브랜드)를 끌고 어디로든 달아나는 공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노숙자들을 부러워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이제 나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다람쥐 쳇바퀴에서 탈출했다. 다만 에어스트림 트레일러 대신 캠핑카가 있었다. 2주 후에 나는 뉴멕시코 주에 갈 예정이었다. 라이프 언 휠스에서 만난 신디와 앨버커키 열기구 축제에서 RV로 여행하는 신디의 친구 몇 명을 만나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 어떤 눈총을 받게 될지 전혀 몰랐다.
어울림 : 2006년 10월 앨버커키 국제 열기구 축제는 매년 열리는 행사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열기구 축제이다. 나는 RV 주차장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따라갔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신디가 일러준 방향도 참고했다. 그린 몬스터를 주차를 하자마자 라일리는 조수석 밑에서 나타났다. 우리는 신디를 찾으러 출발했다. 나는 신디의 캠핑카를 발견하고 문을 두드렸다. 신디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모나와 함께 나왔다. 모나는 신디가 키우는 17살짜리 개였다. 라일리와 모나가 안면을 튼 뒤에 우리는 RV 지역을 돌아다녔다. 신디는 몇몇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고, 우리는 계속 산책을 했다. 걷다 보니 열기구를 띄우는 들판까지 갔다. 신디와 나는 장터와 노점을 둘러보고 각자 시간을 보낸 뒤, 나중에 만나기로 했다. 내 야영지를 향해 걸어가는데, 사람들 몇몇이 소곤거리며 이따금씩 그린 몬스터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가까이 가자 그들 가운데 한 명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만난 단체의 일원인 배리였다. “바퀴가 저렇게 레벨링 블록 측면 위에 떠 있으면 타이어에 안 좋아요.” 배리가 말했다. “아,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다시 해 볼게요.” 나는 벌게진 얼굴로 운전석에 올라탔고, 몇 사람의 도움으로 캠핑카를 후진해 레벨링 블록을 내려온 다음, 몇 번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한 끝에 마침내 일행이 만족하게끔 타이어 네 개를 전부 블록의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들은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나는 윗입술에 난 땀을 닦고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열기구 : 2006년 10월 다음 날 나는 라일리의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나는 누운 채 창의 차광막을 올려 하늘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열기구 수백 개가 이른 아침의 햇살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지나가는 이 색다른 광경을 보면서 나는 낯선 감정에 휩싸였다. 기쁨을 느꼈다.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노숙자들을 부러워하던 때를 회상했다. 삶에 지친 나머지 노숙자들의 ‘자유’를 부러워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이곳에 있지 않았을 터였다. 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때 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내 동료 여행객들 중 몇몇이 근처에 모여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신디도 있었다. 신디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고 다가왔다.
“여기 같이 오자고 초대해 줘서 고마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완벽한 출발이야. 이 열기구들처럼 나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나는 신디에게 말했다. “나도 그래.” 신디는 활짝 웃었다. 나는 내 야영지 근처에 주차한 다른 여자들 몇 명을 알게 되었는데, 자신감 있고 모험심이 강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루시는 화끈한 웃음소리와 넘치는 재치 덕분에 거의 모든 사람들과 만나자마자 친구가 되었다. 대화를 나누며 루시는 이혼을 했고 캠핑카 상시 여행자라고 내게 말했다. 애니는 몇 년 전에 루시와 친구가 되었고, 각자 캠핑카를 끌고 종종 함께 여행을 한다고 내게 말했다.
이 여자들은 캠핑카를 능숙하게 관리했고 타이어 공기압, 탱크 비우기, 엔진 정비 같은 주제에 막힘이 없었다. 나도 그들처럼 내 캠핑카를 자신 있게 관리하고 싶었다. 캠핑카는 이 단체를 결집시키는 핵심 주제였다. 나는 사람들이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캠핑카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했는지 보여주고, 차 관리에 대해 아주 상세히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경청했다. 그리고 우리 여덟 명은 길이가 7미터인 애니의 캠핑카에 우르르 타고 앨버커키 북쪽으로 한 시간을 달렸다. 주차를 한 후 우리는 등산로 입구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런 다음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우리는 등산을 한 뒤에 우리가 주차한 RV 근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잡아요!”하며 누군가가 소리쳤다. 불안해 보이는 닥스훈트 두 마리가 짖어대며 우리 쪽으로 달려왔고, 그 뒤를 쫓아오는 한 여자도 보였다. 그 개는 곧장 나를 향해 달려오더니 미친 듯이 날뛰며 내 다리를 기어오르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내가 껑충 뛰어서 피하는 동안 개를 쫓던 여자가 마침내 따라잡아서 개 목걸이에 줄을 잽싸게 맸다. 그러자 그 즉시 개는 진정되는 듯 보였다. “당신 개들이 꽤 흥분한 것 같아요.” 단체 구성원 중 한 명인 알렌이 말했다.
“제 개가 아니고, 제 옆에 있는 트레일러에서 지내던 남자의 개예요. 그 남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졌고, 이 개들은 오랫동안 그 남자와 함께 갇혀 있었어요.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들은 또 다른 이웃이 그 남자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러 갔어요. 그러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어요. 저는 그 사람들을 도우려고 이 개들을 산책시켜 주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가엾은 개들이 몹시 겁을 먹었어요.” 나는 이 일로 충격을 받았다. 혼자 여행을 하면 한순간 모든 일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 여행하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해 본 적 있어?” 나는 신디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깨달은 건 집에서 혼자 살든 캠핑카에서 혼자 살든 마찬가지라는 거야. 나는 뇌종양이 걸렸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미래에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어. 그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더 이상 그런 걱정은 안 할 거야. 대신 내 꿈대로 살 거야.” “나도 그럴 거야.” 나는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