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길에서 나를 만나다
김상진 지음 | 아마존북스
김상진, 길에서 나를 만나다
김상진 지음
아마존북스 / 2019년 11월 / 247쪽 / 15,000원
평화의 길, 제주 올레
하루, 40대 중반에 홀로 떠나는 자유여행조급증을 앓은 나: 5월. 40대 중반의 나는 혼자 제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인 제주만 정하고 어떤 계획과 일정도 정하지 않았다. 비행기에 오르자 쌓였던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리고 내가 왜 이 길을 떠났는지 생각해 보았다. 인생을 90년으로 보면 이제 절반을 살아온 지점이다. 남은 인생이 살아온 인생보다 갈수록 적어지는 시한부 인생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내 인생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탑승 1시간여 만에 제주에 도착했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점심을 먹으며 오늘의 일정을 고민하기로 했다. 관광안내소에서 제주 안내지도를 얻고 눈에 보이는 한 평범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장어해장국을 시켰다. 안내지도를 펴놓고 여행계획을 세웠다. ‘첫날인 오늘은 배를 타고 우도에 가서 한 바퀴 둘러보자. 그리고 내일부턴 올레길 1코스에서 시작해 걷는 데까지 걸어보자’로 정했다. 이것이 나의 제주여행 계획 전부였다. 우도를 가려면 먼저 성산항으로 가야 했다.
투어버스 타고 우도 한 바퀴: 성산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우도 하우목동 선착장에 닿았다. 당초 우도에 들어올 때는 섬을 한 바퀴 걸어서 돌아볼 계획이었다. 그래서 배 승차권도 편도로 구입해서 탑승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사람들이 배에서 우르르 내리더니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각각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만 옆에 있던 버스에 올라탔다. 엉겁결에 대세에 휩쓸려 따라 탄 것이다. 이 버스는 말하자면 우도일주 투어버스였다. 투어버스를 타고 둘러본 우도는 아련한 추억을 남기진 않았다. 아무튼 왕복 탑승권을 구입하지 못한 나는 성산항으로 나가는 탑승권을 여객선 징수원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불하고 배에 올랐다. 다음에 다시 와서 꼭 걸어서 우도일주를 하고 싶었다.
이틀, 올레를 걷다법정과 함께 시작하다: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55분이었다. 오늘은 8시 무렵에 아침식사를 하고, 올레지기가 나오는 9시에 출발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출발하려면 아직 네 시간이나 남았다. 법정 스님의 법문집 『일기일회』를 꺼냈다. 올레길 여행을 출발하는 아침, 이번 여행의 종착지가 불현듯이 떠올랐다. 법정 스님이 젊은 승려시절 수행하였던 순천 송광사의 산내암자 불일암이다. 즉 이번 여행의 여정은 서울을 출발해 제주 올레길을 거쳐 순천의 불일암에서 마무리되는 일정이다.
아침 9시가 되었다. 부리나케 1코스 올레안내소에 들렀다. 스탬프를 찍는 패스포트를 사고, 올레 안내지도를 1부 얻었다.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얼마를 걸어가 당도한 곳이 말미오름이다. 말미오름 입구에는 구제역 발생으로 폐쇄조치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다음 코스인 알오름으로 가기 위해 산길로 들어섰다. 이윽고 올레길 첫 오름인 ‘알오름’에 올랐다. 섬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가슴으로 바람을 안아보았다. 한라산에서 성산일출봉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 이상을 걷다 보니 마침내 앞서 가는 올레꾼 2명을 만났다.
나에 대한 사색의 시작: 길을 걸으면서 현재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나는 40대 중반에 아내와 딸, 아들이 있는 4인 가족의 가장이다. 나에게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며, 행복감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단위이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양어깨를 짓눌러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한편 나는 청와대, 국가정보원, 중앙인사위원회, 국회 등 남들이 쉽게 가볼 수 없는 여러 기관에서 일을 해 본 매우 운이 좋은 놈이다. 나의 경제적 자산은 서울의 전셋집 하나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궁색하게 살지는 않았다. 남들이 하면서 사는 것은 나도 하면서 살고 있다. 이제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삶을 추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 계속 정치판에 있으려면 내 정치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미래를 계획할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인지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 나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성산포 해안도로를 걷고 있었다. 걷다 보니 ‘세계조가비박물관’을 만났고, 성산일출봉이 가까워졌다. 성산일출봉은 올레길 정규코스가 아니다. 입장료를 받는 곳은 올레 정규코스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과감히 입장료를 내고 성산일출봉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기암절벽과 성산포 앞바다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올레길 1코스는 성산일출봉 옆의 광치기 해변이 종착지이다. 오늘 시작해서인지 얼마든지 더 걸을 수 있었다. 2코스를 더 걷기로 했다.
올레길 2코스는 평범한 시골길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마을이 있고, 숲이 나타나고, 굽이굽이 올레길이 이어질 뿐이었다. 오후 6시가 넘어서 대수산봉에 이르렀다. 어둑어둑해진데다가 적막한 산에 혼자 오르려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더구나 이 산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다. 앞을 향해 걷다가 뒤를 돌아본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사람은 역시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혼인지를 돌아 2코스 종착지인 은평 포구에 오니 날이 어두워졌다. 2코스를 끝낸 스탬프를 찍고 숙소를 찾았다. 2만 5,000원을 들여 일출이 보이는 바닷가에 자리 잡은 괜찮은 민박집에서 묵기로 했다.
사흘, 무리하면 탈이 난다삶과 죽음의 조합: 올레 3코스는 22㎞나 된다. 8시 30분 출발했다. 3코스를 걷다 보니 올레길을 만든 개척자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올레길의 대부분은 바닷가에서 시작해 산으로 갔다가 다시 종착지인 바닷가로 돌아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바다가 지루해질 만하면 산길로 이어지고, 산이 지루해질 만하면 다시 바다 쪽으로 화살표가 안내를 하고 있었다. 제주도에는 또 다른 절묘한 조합이 있었다. 이른바 삶과 죽음의 조합이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많은 묘지가 밭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묘지가 있던 땅을 후에 개간했는지, 개간을 한 밭에 묘지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기할 정도로 밭 한가운데에 표지가 많았다. 그런데 밭과 묘지가 볼썽사납기보다는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었다. 돌멩이로 고르게 쌓은 돌담이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성처럼 서 있는 제주 해비치 호텔 옆, 3코스 종착지인 표선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해변으로 뛰어들었다. 넓은 모래 백사장에는 젊은 남녀 몇 명이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 달란다. 품앗이로 나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스탬프를 찍고 벤치에 앉아 쉬면서 발바닥을 보니 물집이 많이 생겼다. 이제는 무릎도 아파왔다. 콘크리트 길로 인해 발과 무릎에 무리가 온 것 같았다. 올레길이 오름 오를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시멘트길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해안도로는 아스팔트길이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민에게 강력히 요구하고 싶어졌다. “제주의 흙을 밟고 걸으며 아름다운 제주를 보고 싶습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범도민운동을 벌여 주십시오.”
오후 4시가 되었다. 한두 시간 더 걷다가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다시 4코스를 출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4코스를 걷는 올레꾼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올레꾼 대부분은 1코스부터 차례로 걷지를 않고 멋진 구간이라고 알려진 코스부터 먼저 걷는다고 했다. 그러니 아름다운 풍광이 적은 2코스와 4코스에서는 올레꾼들을 쉽게 볼 수 없었다. 세상살이도 이렇게 약삭빨라야 잘 산다고 하는데, 나는 융통성 없이 1코스부터 걷고 있었다.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내가 바보 같아서인가? 종잡을 수 없이 헷갈릴 때가 많다.
그나마 올레길은 이정표가 있어 다행이다. 올레길은 화살표가 이끌고 조랑말이 안내를 한다. 매 구간마다 끝나는 지점이 있다. 개척자가 앞서서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인생길은 다르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을 살고 있는 모두가 스스로 개척자가 되어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개척자의 길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약삭빠르게 살기보다는 묵묵히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생이 더 멋져 보이지 않은가? 저녁 7시경 제주 샤인빌리조트를 지날 즈음, 숙소를 수소문했으나 부근에는 민박이 없단다. 별수 없이 거금 6,000원을 주고 택시를 불러 표선읍에 나가 여관방을 잡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온몸에서 오한이 나고 꼼짝할 수 없었다.
나흘, 힘들 때는 쉬어라몸살인지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없이 곯아 떨어졌다. 깨어나 보니 아침 8시였다. 다행히 아내가 챙겨준 감기몸살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오한은 없어졌다. 몸을 씻고, 짐을 챙겨 아침밥을 먹으니 10시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어제 중단했던 4코스 그 자리에 다시 오니 11시다.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한 30분을 절뚝거리며 걸었더니 조금 괜찮아졌다. 그동안 15㎞ 정도의 올레길 한 코스 전체를 걸으면서도 한 번도 쉬지 않았는데, 오늘은 불과 2~3㎞만 걸어도 쉬어야 했다. 어제와 그제의 과욕이 부른 결과였다. 오늘은 4코스의 남은 14㎞만 걷기로 다짐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4코스 종점인 남원 포구에 도착했다. 근처 식당에 들러 회덮밥을 허겁지겁 먹고 나서 일찍이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닷새, 인생은 내리 사랑인가?늦게 일어났다. 눈을 떠 보니 9시 30분이었다. 몸은 가벼웠고, 무릎도 괜찮았다. 11시 30분쯤 느지막이 출발하였다. 위미리 부근의 바닷가에서 부서지는 파도가 너무 예뻐서 양말을 벗고 잠시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한층 여유가 생겼다. 이제야 진짜 올레꾼이 된 것 같았다. 콧노래가 나왔다. 기암절벽이 보이는 아름다운 해안절경에 취해 버려 발걸음을 재촉할 수 없었다. 문득 옆을 보니 초가집 카페 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위미 ‘내일학교’라는 대안학교였다.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매일 학원 숙제와 학교 숙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험에 쫓기고 있는 아이들,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분명 현재의 교육방법은 잘못되었다. 그런데도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이 하지 않으면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학원을 보내고, 더 공부를 시키려고 안달이고 닦달이다. 그렇다고 여기 내일학교의 아이들처럼 공교육을 포기하고 대안학교를 보낸다는 것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에 있는 딸과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해안가 바위들 사이로 하얗고 노란 부표들이 보였다. 노란 부표 밑에서 검정색 고무 옷을 입은 해녀들이 가끔씩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해녀 할머니들은 이렇게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삼, 멍게, 소라, 미역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자식들을 육지로 유학까지 보냈을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늘 논과 밭에서 일을 하셨고, 그렇게 얻은 곡식으로 자식들을 키우셨다. 아들들이 다 성장하고 나니 어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 10년을 투병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석촌호수를 한참 바라보다가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막둥아! 나는 막둥이가 제일 좋더라.” 오후 6시가 되어 5코스 종착지인 쇠소깍에 도착했다.
엿새, 올레와 휴머니즘쇠소깍에서는 제주 전통 목선인 ‘테우’를 타보기로 했다. ‘테우’는 물에 절인 통나무를 이어 만든 뗏목처럼 생긴 조각배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테우’ 체험이 쉬는 날이란다. 나는 쇠소깍과 이별하고 6코스를 출발했다. 해안가를 얼마나 걸었을까. 제주도 3대 폭포 중 하나인 소정방폭포에 도착했다. 폭포 아래로 내려가 보니 아이들이 옷을 벗고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나도 신발을 벗고 폭포수에 발을 담갔다. 고개를 돌리면 폭포요, 앞을 보면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같았다. 높은 오름에서 내려다보는 경관하고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구두미 포구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마치 높고 깊은 산의 능선을 타는 듯한 숲길이 길게 쭉 뻗어 있었다.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했다. 지리산의 능선을 제주 해안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를 들으며 산의 능선을 타는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런데 서귀포 시내로 향하는 방향에서 화살표를 잃어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걸어가다 보면 다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6코스의 종착지인 외돌개까지 이어지는 서귀포 앞 바다의 절경에 취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잘 단장된 길이 자연스러움의 멋을 감소시키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되었으나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7코스를 향해 다시 발을 옮겼다. 7코스를 걷다 보니 수많은 나무들 중에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있었다. 이른바 ‘팔손이’였다. 팔손이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했을 때, 현기 형이 보내주어 나와도 인연이 있는 나무다. 아내에게 곧바로 전화를 했다. 산세베리아를 제외하고 다른 화초와 나무에 물을 주라고 부탁했다. 저녁 6시가 되어서야 법환 포구에 도착했다.
이레, 전쟁과 평화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절경이 이어졌지만 비가 내리자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등산용 판초우의를 뒤집어썼다. 내리는 비가 얼굴에 부딪쳐 땅만 보고 걸었다. 한참 만에 고개를 들어보니 사방이 온통 현수막으로 덮여 있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강정 포구였다. 강정은 제주도에서 첨예한 민군 및 민민 갈등지역이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졌다.
오후 1시가 되었을 때, 8코스를 향해 출발하였다. 월평 포구에서 점심을 먹고 비가 그치길 기다려도 비는 계속 내렸다. 다시 길을 나섰다. 베릿내오름이다. 올레꾼은 나 혼자뿐이었다. 정상에 올랐으나 비바람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올랐던 길을 돌아서 내려왔다. 거의 내려왔을 즈음, 나무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왼쪽 팔을 다쳤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팔을 움직일 수는 있었다. 피와 땀이 범벅되어 얼마를 걸었을까? 하늘이 서서히 개면서 드넓은 해변이 눈에 들어왔다. 중문해수욕장이었다.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홀로 걸었다. 오후 6시가 되어 8코스 종착지인 대평 포구에 도착했다.
여드레, 비와 휴식 / 아흐레, 안개 낀 올레아침부터 장대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제주도에 호우 경보가 내려졌다. 오늘은 미련 없이 걷기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9시경 출발을 했다. 비가 그치자 풀냄새가 상큼했다. 9코스는 바다로 연결되지 않고 산으로만 이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산속을 걷고 있으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뿌연 안개 속에서 피어나는 유채꽃과 무꽃이 이채롭다. 하지만 안개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볼 수밖에 없었다. 12시경 10코스를 출발했다. 산방산과 송악산을 끼고 돌아가는 바닷가와 여유로운 해변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해안코스가 거의 끝나갈 때 즈음부터 안개가 완전히 앞을 가렸다. 오후 5시경 10코스 종착지인 모슬포항에 도착하여 여관에 짐을 풀었다.
열흘, 삶과 죽음의 공존올레 안내서를 보면 11코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이라고 나와 있다. 근대사와 현대사가 같이 녹아있는 길이라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공군병력을 집결시켰던 야욕의 알뜨르 비행장, 4ㆍ3사건 이후 최대의 양민학살이 자행되었던 섯알오름, 천주교 박해를 받았던 정난주 마리아 묘소 등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한편 11코스는 21.5㎞나 되는 장거리 코스였다. 지루한 밭길과 도로를 걷다가 지치기도 했다. 너무 힘들다 싶었는데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숲 못지않은 곶자왈 숲이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곶자왈은 북방한계 식물과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유일 비밀의 숲이란다. ‘정말 이런 숲도 있구나’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11코스의 종착지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무릉 2리의 ‘자연생태문화체험골’인데, 오늘 이곳에서 숙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