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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북극 출장 중

이유경 지음 | 에코리브르
엄마는 북극 출장 중

이유경 지음

에코리브르 / 2019년 10월 / 264쪽 / 15,000원





과학자 되기



그건 과학반에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과학자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중학생이 될 때도 무슨 꿈이나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 과학 시간에 선생님의 권유로 과학반에 들어갔다. 원래 동아리는 일주일에 한 번만 모이는데, 과학반은 과학 실험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수업이 끝나면 과학실로 가서 실험을 했다. 중 2 때였던 것 같다. 과학 시간에 선생님이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가 기본!”이라고 하더니 얼마 뒤에는 “모든 생물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가 기본 단위”라고 하셨다.

궁금해졌다. ‘그럼 원자와 세포는 어떤 관계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을 쫓아가서 물었다. “저 선생님, 세포랑 원자 중에서 어느 게 더 큰가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정말로 궁금했고 또 진지했다. 다행히 선생님은 이런 엉뚱한 질문도 잘 받아주셨다.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 세포를 이룬다. 나에게는 물리학과 생물학의 첫 만남이었다.

과학자의 꿈은 TV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TV에서 어떤 아저씨가 2차원의 세계에서는 사과가 바닥에 접한 부분만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코스모스〉라는 과학 다큐멘터리였고, 광활한 우주가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책도 한몫을 했다. 인근에 중고 서점이 있었는데, 거기서 청소년을 위한 과학 잡지 《학생과학》을 만났다. 한 권 두 권 《학생과학》을 모으며 아폴로 달 탐사와 알쏭달쏭한 블랙홀 이야기가 차곡차곡 내 속에 쌓여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성남 시립도서관에서 《학생과학》과는 차원이 다른 과학 잡지를 발견했다. 바로 《뉴턴》과 《과학동아》였다. 내용도 아주 신선했다. 특히 유전공학에 대한 기사가 많았다. 그 무렵 고등학교에서 과학경시대회에 나갈 후보자 명단을 교육청에 보냈는데, 나는 물리 분야에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교육청에서 대회에 나갈 학생을 선정해 학교로 명단을 보냈는데, 내 이름은 물리가 아닌 생물 분야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생물학으로 진로를 정했다.

평소보다 대학 입학시험 성적이 잘 나와서 서울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서울대에는 생물학과가 없었다. 대신 동물학과, 식물학과, 미생물학과가 있었다. 유전공학이 유행할 때라 미생물학과는 의대보다 커트라인이 높아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물학과에 가면 개구리나 토끼를 해부해야 할 텐데 동물을 죽이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셋 중 제일 무난해 보이는 식물학과에 지원했다.

해조류가 궁금해졌다

식물학과는 1학년부터 4학년이 모두 모여 1년에 두 번 채집 여행을 갔다. 전공을 시작하는 2학년은 이때 채집한 식물과 해조류를 표본으로 만들어 과제물로 제출했다. 생물학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학문의 기본인 분류학을 이렇게 배우는 것이다. 3학년은 채집 여행 행사를 직접 준비하고, 4학년과 대학원생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2학년의 채집과 3학년의 행사 준비를 돕는다. 그럼 1학년은? 2학년을 따라다니며 식물 이름을 익히고 채집과 표본 제작을 거든다. 한편 2학기 때 바닷가로 채집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바닷가 웅덩이를 처음 보았다. 조그만 물웅덩이에도 말미잘과 삿갓조개, 해조류가 붙어 있었다. 해조류는 단단한 바위가 있어야 그 위에 터를 잡고 자란다. 바닷가 바위는 대개 미끈거린다. 이 미끈거림의 실체는 박테리아다.

박테리아는 수시로 몰려오는 파도에 쓸려나가지 않으려고 서로의 몸을 잇대어 얇은 막을 이룬다. 그러고는 끈적끈적한 물질을 세포 밖으로 내보내 자기 무리를 감싸서 보호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바이오필름이라고 부른다. 바이오필름은 다른 생물이 자리 잡기에 좋은 바닥이 된다. 물속을 떠다니던 수많은 생물의 포자와 알이 이 끈적끈적한 물질에 붙어서 성장한다. 해조류 포자도 바이오필름 위에 꼭 달라붙어 일생을 시작한다.

해조류 표본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물이 빠진 바닷가 바위 위를 돌아다녔다. 채집을 마치면 숙소로 돌아와 바닷물과 채집물이 든 비닐봉지에 포르말린을 적당히 부어 해조류를 고정시켰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해조류가 물컹물컹해지면서 썩기 시작한다. 채집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실험실로 돌아가 흐르는 수돗물에 포르말린을 씻어낸 뒤 해조류 각각의 이름을 찾고 표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임해 실습(臨海實習) 시간에는 표본을 만드는 것 외에 해조류를 직접 키우는 실험도 했다. 대학원 선배님들이 실험용으로 키우던 홍조류를 일부 분양받았는데 정말 너무너무 예뻤다. 그중 비단잘록이라는 홍조류는 하나의 세포에 핵이 수십 개에서 수백 개까지 있고, 크기가 제법 커서 맨눈으로 세포가 보일 정도였다. 원래 크기보다 10배 정도 확대되는 해부현미경으로 이 홍조류들을 관찰하면 세포 하나하나가 매력 있어 보였다. 우리는 가느다란 붓으로 세포에 묻은 먼지와 미생물을 조심스럽게 떨어내고 깨끗한 바닷물(불순물을 걸러내고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멸균까지 했다)로 갈아주었다.

새로운 세포가 하나둘 나오는 걸 보면 마음이 뿌듯했다. 어느 날 이 조그만 생명체는 수줍은 듯이 생식세포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커버글라스를 홍조류 밑에 깔아 이들이 떨어뜨린 포자를 받았다. 포자는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 드디어 세포 분열을 시작했다. 살아서 자손을 남기려는 생명의 위대한 본성에 빠져들 무렵 한 학기가 끝났다. 이대로 홍조류와 헤어지기 싫어서 교수님을 찾아가 홍조류를 계속 키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그러라고 하셨다.

외국인 교수님들을 통해 더 큰 세상을 만나다

방학을 보내고 3학년이 되자 홍조류를 키우는 설렘은 수그러들었고, 바닷물도 자주 갈아주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비단잘록이한테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분명히 암배우체였는데, 가지 하나가 수배우체로 바뀌었다. 암수한몸이 된 것이다. ‘도대체 얘네들은 암수가 어떻게 결정되는 거지?’ 예쁜 홍조류의 성생활이 궁금해졌다. 나의 지도 교수는 우리나라의 조류학을 개척한 이인규 교수님이시다.

내가 대학 3학년 때 일이다. 이인규 교수님이 외국인 교수님을 초청했다. 고프 박사와 콜먼 박사였는데, 이들은 생물의 DNA 양을 알아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은 DAPI로 꽃가루를 염색한 뒤 꽃가루가 발아하는 과정에서 DNA 양이 변하는 것을 측정했다. 4학년 여름 방학 때는 일본 고베 대학교의 계절 학기에 참여했다.

한편 당시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원에 가는 분위기였다. 가끔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서울대 식물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실험실을 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가장 최신 학문인 분자생물학이나 유전학 연구실이 인기가 있었지만, 나는 홍조류를 버릴 수 없었다. 홍조류의 성분화는 아직도 신비로운 세계였고, 그 비밀을 풀고 싶었다.

좌절 90, 성공 10

나는 석사 과정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시작했다. 학부 때 키우던 홍조류에서 암배우체에 수컷의 생식기가 만들어지거나, 수배우체에 암컷 생식기가 만들어지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도대체 암수가 어떻게 결정되기에 이런 혼란이 생긴 건지 궁금했다. 때마침 내가 키우던 비단잘록이에서 상처가 재생되는 현상이 알려졌다. 비단잘록이는 세포 하나를 핀셋으로 찌르면 세포가 톡 터져버린다. 세포벽 덕분에 세포들이 그대로 붙어 있기는 하지만 터진 세포의 세포질을 붓으로 살살 털어내면 투명한 세포벽만 유령처럼 남았다. 그런데 이걸 그대로 놔두면 위와 아래에서 새로운 세포가 자라나오다 서로 붙어서 하나의 세포가 된다. 이것을 ‘상처 재생’이라고 하는데, 재생된 세포는 점점 두터워진다.

이렇게 세포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물속에 그냥 놔두면 비단잘록이가 저절로 움직여 암ㆍ수가 서로 만날 수 없다. 그래서 한천으로 물렁물렁한 고체 배지를 만들고 살짝 홈을 판 뒤 거기에 상처 재생 세포가 나오는 비단잘록이를 반쯤 파묻었다. 그러면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다. 아래쪽에 암배우체를 두면 위쪽엔 수배우체를, 아래쪽에 수배우체를 두면 위쪽엔 암배우체를 놓았다. 그리고 마르지 않도록 멸균한 바닷물을 홍조류가 잠길 정도로 살짝 부어준 뒤 세포가 융합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렇게 암ㆍ수 세포를 융합시킨 뒤 어느 정도 튼튼해지면 융합세포만 떼어내서 따로 키웠다. 하나의 융합세포에서 다시 세포가 분열해 나오고 점점 하나의 개체로 모양을 잡아가다 드디어 생식세포를 만들었다. 과연 암ㆍ수 융합세포에서 만들어진 키메라 비단잘록이는 어떤 성을 갖게 될까?

어떤 개체는 암배우체, 어떤 개체는 수배우체로 자랐지만, 많은 개체가 암수 생식기를 둘 다 갖는 암수한몸이 되었다. 심지어 어떤 키메라는 염색체가 두 벌인 복상 세대(2n)의 특징, 곧 사분포자도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이렇게 나온 사분포자를 받아서 키워보았다. 애지중지 포자를 받아서 생식기를 만들 정도의 어른으로 키워보니 이번에도 암배우체ㆍ수배우체뿐만 아니라 암수한몸과 사분포자까지 만드는 개체가 또 나왔다. 암수한몸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어떻게 사분포자까지 만들어지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 번째 가설은 암배우체와 수배우체의 세포가 서로 융합할 때 일부 핵도 융합해서 2n의 핵이 되고 이 융합핵이 사분포자를 만드는 데 관여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설은 사람의 X, Y 염색체처럼 비단잘록이도 성염색체가 있는데, 이들이 한 세포 안에 함께 있으면서 사분포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가설은 핵도 융합하지 않았고 성염색체도 없이 그냥 유전자 수준에서 모든 핵이 암배우체ㆍ수배우체와 사분포자체의 생식기를 만들 유전자를 갖고 있다가 비정상적으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검증하려면 우선 핵이 융합했는지를 밝혀내야 했다. 석사 과정은 가설을 세우는 것으로 끝내고, 가설의 검증은 박사 과정으로 넘겼다.

박사 과정의 연구 목표를 이 가설을 검증하는 걸 넘어 성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는 것까지로 잡았다. 첫 번째 핵융합 가설은 기각되었다. 이제 남은 가설은 성염색체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냥 유전자 수준에서 조절되는 것인가였다. 나는 처음에 염색체 찾기를 시도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염색체는 포기하고 성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기로 방향을 바꾸었고, 피재호 박사님과 후배의 도움을 받아 DNA와 RNA를 뽑는 데 성공했고, 성분화 유전자를 찾기 위한 첫 번째 장애물을 넘었다.

박사 학위를 받다 - 나의 20대는 어디로 갔을까

비단잘록이의 성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는 실험을 무한 반복하며 거의 1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드디어 성분화와 관련이 있음직한 유전자를 하나 찾았다. 암배우체에서만 나오고 수배우체나 포자체에서는 발현되지 않는 유전자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반대로 암배우체에서는 나오지 않고 수배우체와 포자체에서 발현되는 유전자도 하나둘 나왔다. ‘졸업은 할 수 있겠구나!’ 희망이 보였다. 이제 이 유전자들의 정체를 파악할 때가 되었다. 이후 후배의 도움을 받아 실제 암배우체에서만 hsp90 유전자가 발현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논문을 발표했다. 정말 다행히 마감 시간 전에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를 통과하고, 학위를 받았다. 내 이름 뒤에 ‘박사’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이유경 박사!



과학 하기



내가 과학자인가, 직원인가

남극은 그 누구의 땅도 아니다. 남극에서 주권을 주장하지 않고 군사 활동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남극조약이라고 하는데, 남극조약에 가입한 국가는 매년 정부 대표단이 모여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를 연다. 그런데 북극은 좀 복잡하다. 북극엔 주권 국가들(러시아, 캐나다, 덴마크, 미국,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이 있고 이들이 북극이사회를 만들었는데, 이 8개국은 북극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옵서버로 회의에 참관할 수 있을 뿐이다.

2000년대 들어서 북극 관련 행사가 많아졌다. 북극에서의 과학 협력을 논의하는 북극과학위원회(IASC)가 만들어졌고, 이것과는 별도로 북극관측회의(AOS)도 생겼다. 그런데 한국이 북극이사회 옵서버 자격을 얻으면서 우리나라 과학자도 이와 관련한 회의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 나는 북극과학위원회 실행위원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봄에는 북극과학위원회에, 가을에는 북극이사회 관련 회의에 참석해, 우리나라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알아보고, 한국의 북극 모니터링 활동도 소개한다.

이 와중에 극지연구소에서도 보직을 맡았다. 극지생명과학연구부의 부장 직책으로 70여 명의 연구원이 올리는 서류에 결재를 하고, 각종 회의에도 참석했다. 나중엔 북극환경자원연구센터의 센터장이 되기도 했다. 북극 현장에 나가 연구하거나 국제 학회에 참석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다른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하지만 국제기구에서 개최하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국가 또는 극지연구소를 대표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연구 계획서와 보고서, 논문도 써야 했다. 게다가 북극을 소개하는 누리집인 ‘북극지식센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홈페이지를 만드는 동안 100일 넘게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나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 행정 일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해마다 줄어드는 툰드라처럼 나의 연구 능력도 해마다 사라져가는 기분이었다.

과학자에게는 비움과 몰입이 필요하다

과학자의 통찰력은 언제 생길까?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한 과학자는 산책하는 시간에 고민하던 문제가 풀리거나 생각이 정리된다고 했다. 나는 연구를 하면서 그 노벨상 수상자의 말을 공감하게 되었다. 과학자에게는 몰입만큼이나 비움도 필요하다. 고민하던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머리를 쉬게 할 때 더 창의성이 차 오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산책을 하거나 멍하니 있거나 잠을 잘 때, 우리 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잠을 잘 때도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우리가 쉴 때 뇌는 비로소 정보를 처리할 시간을 얻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멍 때리던 둘째가 큰 소리로 이런다. “엄마, 난 지금 정보를 처리하는 중이야.” 과학자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비움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성이자 엄마로서



엄마의 출장은 냉장고에서 시작된다

막연하게 과학자를 꿈꾸던 중ㆍ고등학생 때 내가 상상한 과학자의 모습은 조용한 숲속 연구실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실험을 하는 퀴리 부인이었다. 사실 퀴리 부인도 한적한 숲속이 아니라 파리 시내에 살았지만, 내 상상 속의 과학자는 속세(?)를 떠나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고독한 천재였다. 흔히 과학자는 연구실에서 하루 종일 실험을 할 것 같지만, 사실 분야에 따라 하는 일이 다양하다.

생물학자 중에는 주로 컴퓨터로 데이터를 분석만 하는 과학자도 있다. 그리고 실험실을 벗어나 현장에 나가야만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분야도 있다. 극지연구소에는 이런 분들이 많은데, 해양학자의 경우 쇄빙연구선을 타고 남극해나 북극해로 가서 바닷물이나 해저 퇴적물을 가져온다. 지질학자의 경우 남극 화산 근처에 가서 암석을 채집하고, 남극 대륙 한복판에 들어가 운석을 찾아오기도 한다.

나는 극지연구소에서도 동토생태학 연구팀에 속해 있는데, 우리는 북극에서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나는 빙하가 녹아 사라진 뒤 새로 드러난 맨땅에서 극지 생물은 어떻게 자리를 잡을까 이다. 한마디로 ‘빙하 소멸 지역의 육상 생태계 천이’를 연구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유기물이 많은 습지 툰드라 지역에서 토양 미생물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발생에 얼마나 기여할까 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를 하기 위해 우리는 해마다 여름이면 북극으로 간다. 요즘은 주로 연구원들이 샘플링을 가지만, 연구 지역을 처음 선정하는 첫해와 두 번째 해에는 내가 직접 북극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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