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일인분 생활자

김혜지 지음 | 인물과사상사
일인분 생활자

김혜지 지음

인물과사상사 / 2019년 9월 / 236쪽 / 14,000원





1장 혼자 살지만, 혼자 사는 것 같지 않은



지옥고는 멀리 있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집을 나오기 전 나에게도 홀로 사는 것이 로망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 위해 아등바등 머리를 굴렸다. 작지만 내 취향이 묻어날 아기자기한 방,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독립적인 공간. 애인을 불러 데이트도 할 수 있는 그런 설렘을 꿈꾸었다. 물론 그 설렘은 오래전 첫 독립의 공간이었던 고시원 방문을 여는 순간 와장창 깨져버렸다. 부모님 집의 화장실만 한 방, 몸을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방, 옆방 누군가의 통화 속 대화가 들릴 정도로 엉망이던 방음. 그런 공간에서 섹스는 고사하고 애인을 부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취약한 방음이야 입을 서로 틀어막으면 될 일이었지만, 그보다 성인 두 명이 누울 공간 따윈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분명 홀로 사는 게 맞는데, 홀로 사는 것 같지 않은 홀로살이였다.

고시원을 거쳐, 또 비용을 아끼기 위해 친구와 함께 살던 원룸을 거쳐 드디어 온전히 홀로 살 수 있는 집을 구했다. 비록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옥탑방이었지만, 오래전 고시원 방문을 열기 직전처럼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두 개의 방으로 나눈 탓에 여전히 방음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문제가 있었다. 얇은 벽 너머로 살고 있던 이웃, 바로 집주인의 사돈 되는 분이었다. 그 분은 아래층에 사는 딸네 손녀ㆍ손자를 돌보기 위해 내 옆방에 살고 있었다.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늦봄의 달큰함에 취해 처음 애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선 날이었다. 내 방과 옆방 사이에 놓인 얇은 벽이 웬만한 소리는 모두 통과시켜버린다는 사실은 그 어른의 방귀 소리를 들으며 진즉에 깨달았다. 이 탓에 애인과 나는 마치 도서관에 있는 것처럼 소곤대야만 했다. 그래도 내 공간에서 마주 누워 있는 애인을 보니 행복했다. 그래, 그냥 서로 입을 틀어막자. 그럼 된다. 방음이 안 되는 불편함이야 충분히 견디고도 남을 정도였다. 드디어 내 집이, 내 공간이 생겼다!

그러나 안온함은 곧 깨져버렸다. 사건은 물을 사러 편의점에 가려고 현관문을 열어젖힌 순간 벌어졌다. 문을 열자마자 갑작스레 옆방 문이 활짝 열리더니 몹시 흥분한 이웃 어른이 뛰쳐나왔다. 그러고 나서 말을 그야말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얇은 벽 쪼가리를 통해 애인의 인기척이 흘러들어 갔나 보다. 이웃 어른은 적잖이 흥분한 탓에 말을 버벅거렸다. “남자 새끼.” “혼자 사는 여자.” “어딜 감히.” “들이지 마.” “여자가.” 대충 조합하자니 이웃 어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어딜 감히 혼자 사는 여자가 남자 새끼를 집에 들이냐.” 그리고 곧 예상 가능했던 협박성 대사가 쏟아져 나왔다. “너네 엄마도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아니?” “당장 너네 엄마에게 말할 거다.” “남자 새끼 들일 거면 당장 방 빼!”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우두커니 내 집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지옥고’라는 신조어가 혼자 사는 20대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졌다. 지옥고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을 이르는 줄임말이다. 지옥고는 20대 주거 현실을 기가 막히게 보여준다. 월세와 관리비는 나날이 오르고 공간을 더 잘게 쪼개 방을 지어 올린다. 법에서 정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집에 살거나 고시원, 비닐하우스, 지하 등 집 같지도 않은 집에 혼자 사는 청년이 서울에는 셋 중 하나 꼴이란다. 나도 그 지옥고를 거쳐 또 다른 지옥고에 살고 있었으나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도 여전히 지옥고였나 보다.

이 난리통을 겪고 나니 무언가 갑자기 억울해졌다. 내가 혼자 사는 여자라서 그런가? 내가 혼자 사는 남자였어도 이웃 어른의 반응이 지금과 같았을까? 남자가 여자 친구를 들였다고 남자에게 “어딜 감히 혼자 사는 남자가 여자 친구를 들이고! 너네 엄마도 너 이러고 사는 거 아니?”라며 순결과 문란함을 운운했을까? 하긴, 젊은 남자들도 연애 상대로 자취하는 여자가 최고라며 ‘엄지척’하지만, 막상 결혼 상대로는 자취 경험 있는 여자는 싫다는데, 나이 많은 어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여자 혼자 살면서 겪는 온갖 위험에서 생존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평판까지 신경 써야 할 판이다.

원룸에서 투룸으로

본가를 떠나 혼자 내 공간을 꾸리고 산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내 집의 공간이 본가의 내 방보다 훨씬 편하다. 돌이켜 보면 대학 시절부터 나는 내 집 혹은 내 공간에 대한 애착은 다른 사람에 비해 컸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쳤지만, 내부는 늘 비슷하게 나의 취향을 타고 ‘나의 집’처럼 자리 잡기도 했다. 그 동안 내가 거쳐온 내 집들은 부엌과 침실, 거실이라는 공간이 한데 마련된 원룸의 모양이었다. 실제 평수도 4평에서 6평까지 고만고만한 넓이였다.

이 집들은 모두 월세였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부터는 1년 동안 꼬박꼬박 저축해 보증금을 올리고 월세를 낮추었다. 10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서울의 보증금과 월세는 부지런히 올랐다. 직접 돈을 벌고 매달 1일마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보내고 있으니 자연스레 이 돈을 아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가 가진 코 묻은 돈으로는 엄두도 못 낼 거 같았던 전세금을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들은 대출로 마련하고, 월세보다 전세자금 대출의 이자로 내는 돈이 더 낮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원룸의 전세자금 대출 이자가 월세보다 적다면 조금 욕심을 내 집다운 집에 살아보는 게 어떨까? 어느 정도의 보증금도 모아놓았으니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 맞바람이 드는 창문 둔 개인 집에서 살고 싶어. 부엌 싱크대가 두 칸은 되는 집이면 좋겠어. 샤워 한 번 하면 변기와 걸어둔 수건까지 젖지 않는 화장실이면 좋겠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집, 요리를 해도 온 집안과 침대와 걸어둔 옷에 냄새가 배지 않는 집이면 좋겠어.’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니 생각보다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상품이 꽤 있었다. 연 소득 5,000만 원 이하 세대주이면서 무주택자인 사람에게 연 2퍼센트대의 이자로 최대 1억 2,000만 원까지 전세금을 빌려 주는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과 중소기업을 다니는 청년에게 최대 1억 원까지의 전세금을 1퍼센트대의 이자로 빌려주는 ‘중소기업 취업 청년 전월세 보증금 대출’ 상품이 대표적이다. 물론 최대 금액이 1억 2,000만 원이나 1억 원이라고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연소득과 지고 있는 빚 등 재무 상태를 고려해 최대 금액이 산정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나게 대출 가능 최대 금액에 현재 보증금을 더해 비싸고 좋은 집을 알아보다가 은행에서 기가 죽었다. 대출 최대 금액은 말 그대로 최대 금액일 뿐 자신의 고용 형태나 소득 등으로 은행과 관련 기관에서 정해준다. 대학 학자금 대출을 갖고 있으면 그 금액까지 고려해 대출 가능 금액이 나온다. 이외에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재정이 얼마나 튼튼한지, 우량 고객인지, 주거래은행인지에 따라서도 가능 금액이 오르거나 낮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대출 가능 금액을 알려면 재직증명서나 원천징수영수증 또는 소득 금액 증명원 등이 필요하다.

물론 내 월급은 적어, 모아놓은 돈도, 가능한 대출 금액도 적었다. 그리고 내 소득 증가 수준은 늘 오르는 집값을 쫓아가지 못한다. 서울의 평균 투룸 전세가는 2억 원대란다.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근 지역 투룸은 대략 1억 원 후반대였다. 평균 전세금에 내가 갖고 있는 보증금을 빼고 난 금액은 내 대출 가능 금액에 조금씩 미치지 못했다. 결국 그 금액 내에서 치열하게 덧셈과 뺄셈을 해야 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금액과 집의 상태는 아주 정확하고 정직하게 더해지고 빠졌다. 역에서 얼마나 먼지, 저층인지 고층인지, 빛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등에 따라 몇 백만 원 단위의 금액이 올라가거나 떨어졌다. 같은 건물이라도 층과 채광의 정도로 금액이 달라졌다. 그야말로 끊임없는 포기와 양보의 순간이었다. 물론 집의 상태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금액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반대로 집값이 조금 떨어지면 집의 상태는 드라마틱하게 떨어졌다. 게다가 환경이 좋지 않거나 금액이 떨어지는 많은 집은 불법 증축, 높은 융자 등의 이유로 전세자금 대출이 불가했다.

평균의 월급을 받는 사회 초년생과 청년을 위한 주거안정 전세자금 대출금 지원은 약간 좋은 원룸 정도의 금액이었고 그마저도 원룸은 전세 매물이 적었다. 보증금마저 없거나 적다면 서울에서는 이 모든 게 더 어려워진다. 원룸 월세보다 조금 적은 돈을 내며 좋은 투룸에 살 수 있을 거라는 내 꿈은 그야말로 순진한 꿈이었다. 욕심을 내 일반 은행권 대출을 받으면 월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이자로 내야 한다. 그 사이에서 계산기를 수십 번 두드리며 수십 가지 경우의 수를 정리해 고민한다.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지 한 달째, 살펴보는 지역이 회사에서 좀더 멀어졌다. 역에서는 진즉에 멀었다. 이제 투룸 대신 1.5룸을 살펴본다. 그래도 아직은 침실과 부엌이 분리되기를 바란다. 어차피 하루 종일 일하다 저녁에 들어오니까 한 줌의 햇빛도 포기했다. 앞으로 또 무엇을 포기하고 더 빼게 될까? 내게 집은 2년 동안 잠깐 머물다 갈 공간일지라도 정말 나의 집이라는 느낌을 주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 소박하지만 결코 소박하지 않은 바람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부동산으로 향한다.



2장 요즘 것들의 일인 라이프



욜로의 라이프는 없다

드레이크의 <더 모토>를 우연히 처음 듣게 되었을 때만 해도 ‘욜로’가 한국에서 이토록 핫한 키워드가 될 줄은 몰랐다. 정말로, 노래 내내 드레이크는 자기 자랑만 한다. 돈 자랑, 여자들의 인기 자랑. 돈 많고 한 번뿐인 인생, 그게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이제는 한국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신조어를 한 번쯤은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네 인생 한 번이야’ 따위로 해석되는 짧은 문장에 수십 가지의 해석이 일고 마케팅이 이루어지고 논쟁이 오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게 처음 욜로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드레이크를 비롯한 돈 많은 래퍼들 사이에서다. 적당히 돈이 있는 사람들이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남 눈치 보지 않고 즐길 것 다 즐기며 살다 가겠다’는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 욜로는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수입되기는 했지만, 결국 돈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욜로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게나 욜로인 것이다. 당장 편의점에서 800원짜리 삼각김밥을 먹다 알바비가 들어와 3,500원짜리 돈코쓰라멘을 먹는 게 욜로겠는가?

이런 문제의식이 20대들 사이에서 조금씩 퍼지고 있던 차에, 이상하게도 이 욜로족이 언론과 SNS를 통해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욜로족이란 미래 따윈 괘념치 않는, 대책 없고 철없는, 소비에만 빠진 20대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한국형 욜로, 지나치게 거창하다’, ‘욜로 좇다 골로 간다’, ‘병든 욜로’, ‘라이프스타일이 아닌 소비 중심 추구가 문제’ 등 욜로족 마케팅 기사들 사이에서 이런 비판 기사를 꽤나 찾아볼 수 있다. 대체 20대들의 어떤 행동들이 이들의 심리를 거스른 걸까?

20대인 나를 비롯해 내 주변에 있는 20대들 중에서는 대체 왜 욜로족을 찾아보기 어려운 건지……. 이들은 월급의 일정 금액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월세와 통신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그다지 많지 않은 평범한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사고 싶은 비싼 물건이 있으면 몇 개월씩 돈을 모아 구매하고, 가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휴가를 며칠 내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이 역시 요란하게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냐만은, 요란하게 여행할 돈이 없는 게 문제다.

나도 나의 욜로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몇 년 전부터 제대로 된 직장에서 20대들이 받는 평균 임금 정도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내 인생은 얼마나 욜로다워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막상 돈을 욜로답게 쓰는 곳이 없다. 언론과 어른들의 기대에 충족하려면 요란하고 거창한 소비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이어야 하는데! 월급의 절반을 적금에 넣고 남은 돈의 절반은 월세로 나간다. 나머지 생활비에서 조금씩 빼놓은 돈으로 가끔 여행을 간다.

대학생 때는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사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야만 했지만 이제는 읽고 싶은 책은 언제든 살 수 있다. 물론 엄청 많이 사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언제나 가장 싼 메뉴 언저리의 음식들을 시켰지만 이제는 가장 싼 메뉴를 덜 시킨다. 그리고 내 가치관을 드러내는 물건을 사기 위해 가끔 텀블벅에서 후원도 한다.

어떤 친구는 욜로 할 돈도 없다고 냉소했다. 어떤 친구는 욜로 좇다 골로 가기 전에 저임금에 중노동하다 골로 가게 된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20대를 두고 말하는 욜로의 라이프스타일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로 N포 세대의 조금 세련된 버전이다. N포 세대에서 욜로로 변화한 것이 포기에서 선택으로 간 것이라는 한 언론의 표현은 기만에 가깝다. 아무리 월급의 절반을 저축한다 해도 어느 세월에 전셋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결혼자금이 부담스러워 결혼을 꿈꾸지 못하는, 자기 하나도 건사하지 못할 것 같아 아이는 생각도 못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겠는가? 최저주거기준에도 미달하는 집에 살면서 월급의 4분의 1을 월세로 넣는 사람들이 나뿐일까? 그런 N포 세대라 불리는 20대들이 한 번 사는 자신의 삶을 위해 미래보다 당장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 게 어느덧 ‘대책 없는 욜로족’이라 불리고 있다.

홀로움에 대하여

몇 주 전 일요일 오전, 혼자 한강을 뛰었다. 가족과 연인들의 인파 속에서도 홀로 운동은 익숙하다. 후드를 쓰고 레깅스를 입고 노래가 크게 들리는 이어폰을 꽂고 집 근처 한강을 한참 뛰었다. 뛰다 보니 배가 고파져 근처 편의점에 앉아 은박지 그릇에 라면을 끓였다. 잠시 후 50대나 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자전거 라이딩 복장으로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아 혼자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맞은편에 앉아 라면과 함께 산 캔맥주를 들이켰다. 맞은편 아저씨는 도시락과 함께 초록색 페트병에 들어 있는 것을 컵도 없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이다인 줄 알았는데 페트병 소주였다. 어색한 기류 속에서 나는 맥주와 라면을, 아저씨는 소주와 도시락을 조용히 각자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어쩌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부녀지간으로 알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안 친하고 어색해 거리를 두고 앉아 함께 밥을 먹는 그런 딸과 아빠 사이. 그러다 문득 우리 아빠가 떠올랐다. 대구 본가에 있을 우리 아빠. 나도 아빠와 일요일에 이렇게 앉아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 텐데……. 아빠도 술을 좋아해 늘 혼자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나는 스무 살 때 대학에 간다고 본가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고, 혼자 서울살이를 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에 이제 본가보다 서울이 내게는 훨씬 더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분명 ‘혼자’ 사는 ‘서울’은 좋지만 소주를 들이켜는 아저씨를 보며 아빠가 떠올랐고, 어쩌면 그 대신에 ‘내가 많은 것을 놓치고 살 수도 있는 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ㆍ엄마와 나, 우리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어서 잘 떠났다는 생각을 늘 해왔지만, 반대로 어떤 것을 함께 겪고 나누고 공유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빠와 동네 하천을 함께 걷다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텐데. 엄마와 함께 분위기 좋은 찻집에 들어가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무뚝뚝한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 밑에서 태어나 자란, 똑같이 무뚝뚝한 딸이 안 그래도 서로 살갑지 않은데 몇 년을 떨어져 사니 일상의 거리는 더 멀어진 듯하다. 정말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은 엄마ㆍ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이 그립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