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다리를 지켜보면 세상이 보입니다
박용철 지음 | 레드우드
여섯 다리를 지켜보면 세상이 보입니다
박용철 지음
레드우드 / 2019년 8월 / 256쪽 / 13,800원
작가의 말
농촌에서 태어난 저는 어린 시절부터 벌레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벌레는 장난감 또는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소를 방목하던 시절이라 삽을 들고 들에 나가면 소똥 밑에서 큼지막한 소똥구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종일 소똥구리를 데리고 놀았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잠자리도 잡곤 했습니다. 어린 날의 놀이와 생활이 저의 무의식을 움직였는지 벌레를 전공하게 됐습니다. 미국에서 곤충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국내 대학에서 근무하면서 벌레를 사진에 담는 일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벌레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백만 종, 우리나라에는 만여 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종이 얼마나 더 나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벌레는 지구 어느 곳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끓어오르는 온천수 주변에서도, 영하 수십 도 이하인 극지에서도, 높은 산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사막에서도 벌레는 스스로 자연에 적응해 가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이 많고 사는 곳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벌레 이야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벌레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인간 세상을 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다수를 좋아하는 개미는 버려진 깡통 속을 들락대다 그만 쓰레기차에 실려 갑니다. 집도 목숨도 잃는 상황에 처합니다. 때로 인간은 잡기와 향락에 빠져듭니다. 인간도 개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냥 평범한 생물의 한 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지런한 이미지로 부각되어 온 꿀벌은 혹사당하고 있지요. 인간이 꿀을 자주 거두어갑니다. 꿀벌은 더욱 열심히 꽃을 찾아야 합니다. 과로로 인해 꿀벌은 일찍 생을 마감합니다.
불결하다고 여기는 파리는 궤양이나 종양을 먹어 치웁니다. 이른바 구더기 요법이 나온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파리는 화분 매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벌레는 품질이 아주 좋은 단백질원입니다. 바퀴벌레는 앞날을 위한 대체식량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동남아에서는 식용 귀뚜라미 산업이 번창하고 있으며, 북미에서는 식용벌레를 대량으로 키우는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날씨가 좋으니 들로 가볼까요? 온갖 벌레가 나와서 볕을 쬐고, 먹고, 사랑을 나눕니다. 벌레의 사랑은 노골적이고 뒤끝이 없습니다. 메뚜기는 한껏 먹고서 양지에서 배를 쭉 내밀고는 사색을 즐깁니다. 시를 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당개구리가 갑자기 웅덩이에서 뛰어오릅니다. 한 생명이 순식간에 무당개구리 배 속으로 들어갔지요. 차가 시골길을 쌩쌩 달립니다. 바닥에 있던 나비 몇 마리가 그대로 옆으로 눕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에 부딪혀 머리를 잃은 잠자리가 자동차 바람에 쓸려 뒹굽니다.
백만 종이 넘는 벌레의 삶은 우리 인간사 못지않게 파란만장합니다. 지금부터 그 세상을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Part 01. 생물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혹시나 하고
봄바람을 타는 나비처럼 작은 새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가까이에서 제대로 찍고는 싶은데 달리 방법이 없어 미리 한 곳에 초점을 맞춰 놓고, 작은 새가 적선 베풀기를 바랄 뿐입니다. 작은 새는 뒤늦게 움트는 봉오리를 따 겉껍질을 버리고 연한 속을 먹는 것 같습니다.
작은 새의 이름을 알아냈습니다. 뱁새로 더 많이 알려진 붉은머리오목눈이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다소 운명론적인 우리나라 속담 중에 ‘황새와 뱁새’의 그 뱁새는 곡예비행을 잘할 수 있는 훌륭한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랑이 걱정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답니다. 몹시 잘난 척하던 그 황새는 우리나라에서 멸종했다지요!
과거에는 평균과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중간에 대충 묻어 사는 사람들의 세상이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개개인의 개성과 역량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넘쳐납니다. 전문지식도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 지식들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적당하게 묻어 살기를 고집한다면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선택지가 무수히 많기에 굳이 다리 길이로만 우열을 가리는 편협한 세상으로 들어서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을 믿고 잘 가꿔 봅시다.
고추잠자리
머리부터 꼬리 익어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 마음도 익어
한눈에 사물을 참되게 보고 살고
날개는 맑아
그늘 작게 드리우고
잠자리는 외형과 색깔이 비슷비슷해 종을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배 부분이 붉어 고추잠자리라 생각하는 잠자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짜 고추잠자리 수컷은 날개 대부분을 빼고는 온통 잘 익은 고추 색입니다. 반면에 암컷은 새빨갛지 않아 다른 잠자리와 헛갈립니다. 하나잠자리 수컷도 고추잠자리 수컷처럼 온몸이 붉습니다. 날개 기부에 적갈색 무늬가 더 넓게 퍼져 있으면 하나잠자리로 보면 됩니다.
조선 후기의 가객 이정신이 지은 사설시조 <밝가버슨 兒孩들이>에는 발가숭이 아이들이 거미줄 잠자리채 들고 발가숭이(동음이의어, 잠자리)를 보고 ‘이리 오면 살고 저리 가면 죽는다’고 노래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서로 구분이 되지 않는 발가숭이가 발가숭이를 해코지하는 세태가 작가 눈에는 딱하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학자 이덕무는 <잠자리>에서 잠자리를 전혀 다르게 봅니다. 멱을 감는 아이는 웅덩이를 어지럽히며 오리를 몰고 이에 질세라 잠자리는 아이들을 뒤쫓는 내용입니다. 이덕무의 <잠자리>는 그야말로 맑은 그림 한 편입니다.
눈동자
생물마다 눈의 구조와 기능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매는 먼 곳에 있는 먹이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고 두더지는 눈이 있으나 사물을 볼 수 없으며, 인간은 세 가지 원색을 보고 갯가재는 인간보다 몇 배나 많은 원색을 봅니다. 플라나리아는 밝기만 알아챌 수 있는 단순한 눈을 가졌습니다. 또 어떤 벌레는 머리 양쪽에 몇에서 수천 개, 때로는 수만 개에 이르는 작은 눈이 모인 겹눈이라고 하는 커다란 눈을 가집니다.
좀사마귀의 투명한 겹눈에는 흑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흑점이 눈동자처럼 보입니다. 흑점은 우리가 보는 각도에 따라 위치가 변합니다. 가운데를 보다가 갑자기 아래를 보고 이번에는 옆을 봅니다. 하지만 흑점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사되는 빛에 의해 나타나는 착시현상입니다.
가을이면 사마귀가 눈에 자주 띕니다. 알을 낳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사마귀를 밟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마귀가 눈을 깔고 있으면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하고, 정면으로 보는 모습에는 슬픔이 엿보이기도 하지요. 사마귀도 가을을 많이 타나 봅니다.
벌레를 만나면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벌레는 약 백만 종이랍니다. 저는 벌레를 만나면 별 생각이 다 떠오릅니다. 다쳐 땅 위에서 퍼덕이는 나비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가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기를 만나면 생각이 바뀝니다. 내릴 때 같이 나오려는 모기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에 어떡하든 죽이려고 합니다. 출근길 복도에서 밟혀 죽은 나방을 보면 가엾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불빛에 모여드는 나방이 자꾸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날면 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메뚜기를 보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킵니다.
아주 오래 전 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논둑에서 거머리가 청개구리에게 짝 붙어 피를 빨고 있었지요. 힘이 많이 빠진 청개구리가 불쌍해 보이기에 거머리를 떼어 냅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한 마디 거듭니다. 거머리도 생명이고 거머리가 살아가는 일을 하는데 누구라도 간섭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명문장가 이규보는 『슬견설』에서 이나 개, 메추리나 대붕은 모두 생명으로 같은 지위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연암 박지원은 『여초책』에서 매미와 지렁이가 내는 소리가 시나 글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앞줄 노가리 패거리
서둘러 집을 나옵니다
거리에 겨울이 없으면 좋겠어요
월 화수목
수업이 끝나자마자 택시 불러
통학버스 기성도로로 향합니다
모자 쓴 사람이 물끄러미 보고 있겠지요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뭐 직장을 갖겠지요
이런 것이 아닌데
이런 것이 아닌데
문득 불안감이 밀려옵니다
외롭습니다
머물듯 물은 몇 번 돌다가 늘
빠져나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속이 휑하니 들여다보이는 꼰대
별이 나고 죽기를 수없이 거듭하는데
이끼 가득 붙은 성벽을 다독이며
가끔 철없는 발음이나 하고
이런 것이 아닌데
이런 것이 아닌데
뭘 먹을까
집에 가서 먹어야 하나
술이나 한잔할까 보다
깨어나면 허물을 쓱 벗을지도 몰라
난다 날자
속은 왜 이리 쓰리고 머리가 아플까
그래 노가리는 까봐야 안주감이지
진짜 허물을 벗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벌레님
날개 벌레님
히히 이미 알고 있잖아 몸이 굳어서 그렇지
바람 즐기는 함박꽃이 온 세상을 감싸는구나 방학 잘 보내고
Part 02. 살아간다는 건 그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습니다
어린 메뚜기
가을이 되면 어미 메뚜기는 좋은 터를 정성껏 골라 땅속에 산란합니다. 봄이면 알에서 나온 어린 메뚜기 떼가 어른 허리 높이 정도 되는 쑥 줄기나 작은 나뭇가지에 빼곡이 모여들어 볕을 쪼입니다. 더러는 가지 위쪽으로 쭉 올라가고, 더러는 어찌하여 되돌아 내려오고, 더러는 땅바닥이 좋은가 봅니다.
모두들 사이좋게 속삭이지만 그것도 잠시뿐입니다. 며칠이 지나면 메뚜기 무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정해진 좋은 길은 없습니다. 각자 가고 싶은 곳으로 가 온몸으로 자기 삶을 살면 그만입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며칠 내내 비가 쉬지 않고 내려 개미집에 식량이 동났나 봅니다. 축대 배수공에 살고 있는 거미를 작은 개미가 사냥하려고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개미는 거미집을 에워싸고 입구에 있는 거미줄을 끊습니다. 거미줄이 끊어지지 않으면 좀 더 앞으로 나와 거미줄을 다시 물고 뒤로 걸으며 잡아당깁니다. 거미줄은 인장력의 한계점에 도달해 맥없이 끊어집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거미가 황급히 집을 빠져나옵니다. 거미는 항상 거미줄을 뿜고 다니지요. 개미는 냄새와 거미줄을 흔적으로 삼아 거미를 추적합니다. 개미가 거미 다리로 접근하면 거미는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 자리를 잽싸게 옮깁니다.
관찰을 시작한 지 다섯 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이제 날은 어두워지고 수직인 축대 벽에 비가 들이칩니다. 개미는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개미는 거미가 먹다 남긴 작은 벌레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것도 몸의 일부만 남은 벌레지만요. 한참을 쫓겨 다니다 겨우 숨을 돌리게 된 거미는 남이 버린 집에 들어가 밤늦도록 새집을 지어야 하니, 몹시 피곤하겠지요. 왜 안 그렇겠어요. 새삼 느낍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녹록하지 않은 고된 일이지요.
각자 제 삶 살지요
인간은 오감 중에 주로 시각에 의존해 사는 생물입니다. 피아노로 치면 건반 팔십 개 중에서 오직 한 개에 해당하는 빛의 파장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지요. 같은 사물을 보고 있어도 벌레와 사람은 색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벌레는 사람과 달리 적색과 황색을 보지 못하는 대신 파장이 짧은 자외선을 잘 봅니다. 꿀벌은 노랑, 녹색, 청록을 노랑으로, 보라색을 청색으로 인식합니다.
공간을 함께하면서도 벌레와 사람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비교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각자 살지요. 누가 우월하고 누가 열등하다고 우기는 것은 근거 없는 허구입니다. 오만한 인간이 갖는 상상일 뿐입니다. 생물 중에 인간만이 몸이 따르지 않는 관념과 그릇된 믿음에 갇혀 살다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발품 파는 전문가
메뚜기이긴 한데
긴날개밑들이메뚜기로 뜬다
벌레 사진과 이름을 인터넷에 올린 애호가님 덕이다
강의 시간에 활용할 수 잇는 질 좋은 동영상이 넘친다
학생은 몇 학기 내에 교수를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수 있다
사물을 사랑하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버릇을 더하면 천재가 된다
전문가만을 위한 지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재능 있는 자가 여기저기 불쑥불쑥 잠에서 깨어난다
앉아만 있을 수 없지
Part 03.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유영
몸길이가 3밀리미터 정도 되는 소금쟁이가 수면에 누워 허물벗기를 합니다. 많은 벌레가 그러하듯 크기가 1센티미터도 안 되는 생명체는 물의 응집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세상에 있습니다. 특별한 수단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작은 벌레는 물에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물론 소금쟁이는 물에서 편히 떠다니기 위해 쉬지 않고 다리와 몸에 기름칠을 합니다.
대장균과 같이 아주 작은 생명체는 응집력과 전하가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늘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인간은 중력이 크게 작용하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우주로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애씁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 칼새는 최소 수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내려오지 않고 하늘에서만 지낼 수 있답니다. 하늘에서 벌레를 먹고 하늘에서 잠을 잡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을 치듯 칼새는 하늘에서 유영을 합니다. 하지만 새끼를 키울 때면 땅을 밟아야 합니다.
정신세계에는 물리적 제약이란 것이 없습니다. 다만 미리 생각을 닫아버린다면 말라가는 물방울 하나에 갇힌 공기 방울과 같은 신세가 되지 않을까요?
물방개
작은 물방개가 도롱뇽 사체를 먹고 있습니다. 물방개는 왜 꽁무니에 공기 방울을 달고 있을까요? 대기 중에는 산소가 21%, 질소가 78%나 됩니다. 물속에 있더라도 공기 방울은 이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물방개가 산소를 소비하면 물에 녹아있던 산소가 공기방울 안으로 들어가 산소와 질소의 비율을 맞춥니다. 질소는 물에 잘 녹지 않아 공기 방울이 쉽게 줄어들지 않도록 합니다. 그러니 질소는 물에 녹아있는 산소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셈입니다.
물방개의 호흡을 통해 생기는 이산화탄소는 물에 빨리 녹아들어 사라집니다. 이렇게 해서 물방개 꽁무니에 있는 공기 방울은 잠수부가 휴대하는 산소통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방개 외에 물속에 사는 딱정벌레들도 공기 방울을 잘 사용할 줄 압니다. 물거미는 물속에 공기 방울로 된 집을 짓습니다. 물거미도 역시 물에 녹아있는 산소를 얻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요.
누군가 논에 놓아 준 외국산 새끼 거북을 데리고 와서 어른 물방개와 함께 잘 살아 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목이 뜯긴 채로 거북은 죽어 있었지요. 삽사리가 갖는 다른 이름은 방개입니다. 방개는 용맹한 개라는 뜻이지요. 감히 대들 자가 없는 물에 사는 방개가 물방개입니다.
새똥과 개미
쥐똥나무 잎에 새가 똥을 쌌습니다. 개미가 새똥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새똥은 흰색인 요산이 주성분입니다. 요산은 질소대사 과정에서 나오는 최종 산물로 새, 파충류, 일부 벌레가 배설하는 물질이빈다. 특이하게도 바퀴벌레는 요산을 몸에 저장합니다.
바퀴벌레의 세포 내에 있는 공생 미생물에 의해 요산은 아미노산으로 변합니다. 개미 소화기관 또는 세포 속에 있는 미생물이 요산을 아미노산이나 핵산으로 전환할 수 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개미가 주로 먹는,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단물에는 질소성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개미는 새똥을 마다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