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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스테파니 로젠블룸 지음 | 미래의창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스테파니 로젠블룸 지음

미래의창 / 2019년 7월 / 352쪽 / 15,000원



CHAPTER 1 봄 IN 파리



뤽상부르 공원_ ‘혼밥’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공간



매주 라스파유 대로에는 가로수를 따라 라스파유 시장이 형성된다. 이곳에 올리브, 양파, 생선 등이 진열된 형형색색의 방수포 테이블이 태양을 피해 늘어선다. 봄꽃으로 엮은 꽃다발을 든 소녀들이 행인들을 붙잡았다. 장사꾼 한 명이 내게 ‘봉쥬흐’ 하고 인사를 건네며 대추야자와 피스타치오, 마카다미아가 담긴 통 너머로 팔을 뻗쳤다. 그의 손에 그리스산 구운 아몬드가 담긴 알루미늄 국자가 들려 있었다. 나는 아몬드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겉면에 소금이 묻어 있어 짭조름한 맛이 났다.

꼭 레스토랑에서만 혼밥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라스파유 시장처럼 매주 열리는 시장을 둘러보며 혼자 밥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파리 9구의 마르티호가를 거닐다 보면 치즈를 파는 가게가 있고, 혼이 빠진 표정으로 쇼윈도를 엿보게 만드는 바바오럼과 프람부와진을 파는 파티세리가 있다. 마침 봄에 파리를 방문하게 된다면 뤽상부르 공원에서 혼밥을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뤽상부르 공원은 앙리 4세의 왕비인 마리 드 메디치를 위해 그녀의 고향인 피렌체의 보볼리 정원을 본 따 만들어졌다. 아침을 먹으러 그곳으로 간 나는 작은 스푼으로 요구르트를 조심스레 맨 위부터 야금야금 퍼서 입에 넣었다. 진한 레몬 맛이 나는 타르트였다. 요구르트가 든 병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문득 요구르트 제조자가 궁금해서 뚜껑을 집어 들었다가 흐린 주황색 글자로 ‘제조자 스테파니’라고 쓰인 것을 발견했다. 이런 우연은 확률 법칙에 따라 충분히 설명되며 내 이름이 그다지 특이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기뻤다는 건 심리학자들이 에고티즘이라 부르는 심리가 은연중에 반영된 것이리라. 이는 어떤 일에 있어서 나와 관련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말한다. 내가 올바른 장소에 있다는 익숙한 시금석이 없는 상황에서 이 우연은 지금 모든 게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작은 신호처럼 느껴졌다. 우주가 내게 슬며시 눈짓을 전하는 것 같았다.

한 친구가 세상은 어떤 대상이나 낯선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건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를 알아차리기 위해선 늘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 미주리 대학교 정보학자 샌다 에델레즈는 연구를 통해 ‘세렌디피티(운 좋은 발견)’는 꼭 우연하게만 오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운 좋은 발견을 위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윈도쇼핑_ 나의 뮤지 찾기



1964년 9월 《뉴욕 타임스》의 한 기사에서 몽마르트르 언덕 남쪽의 사우스 피갈(소피) 지역을 두고 ‘살과 깃털 쇼의 중심’이라고 표현했다. 오늘날 소피는 브런치 맛집과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 빈티지 기타, 펑키 정크, 핑거 인 더 노즈와 같은 상점들이 소위 ‘힙한’ 지역이다.

나는 앙리 모이네가의 뷔베트에서 아침으로 브후이예 소몽을 먹었다. 빵 위에 연어와 달걀 스크램블을 올리고 생크림과 짭짜래한 케이퍼 두 개를 곁들인 음식이었다. 식당 안에는 배경음악으로 재즈가 흐르고 열린 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주석 천장에 닿아 반사되었다. 바에는 라임과 레몬이 담긴 철제 바구니와 오렌지 주스와 포도 주스가 든 작은 유리병, 빨대와 블랙 올리브가 담긴 유리 용기가 전시되어 있고, 얕은 은그릇에 와인병이 쌓여 있었다. ‘프랑스다운 분위기’가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의외의 사실은 뷔베트 본점이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 있다는 것이다. 파리는 분점이다.

나는 음식 값을 치르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쇼윈도에 포탁스 카메라가 전시된 상점에 이르렀다. 중고 레코드가 담긴 밀짚 바구니가 보도까지 나와 있었다. 거기서 상점 몇 개만 더 지나면 커피와 디자인 용품을 같이 파는 부티크 카페 로켓십이 나온다. 상점에는 형광 분홍과 초록이 뒤섞인 까렌다쉬 펜과 형형색색의 점을 일일이 찍어놓은 핸드메이드 도자기 머그잔이 예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전날에는 백화점 봉마르셰에서 금속 용기에 든 흰색 연필이 마치 꽃병에 꽂힌 꽃의 줄기처럼 아름다워서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문구용품은 어쩜 그리도 매혹적인 걸까? 아마도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도 많고 굳이 누구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으니 나는 그대로 로켓십에 들어가 그랜드 보야주 가죽 일기장과 로켓처럼 생긴 핸드메이드 구리 램프, 비행기와 오토바이 모양의 상큼한 클립통, ‘잔지바르에 나와 함께 가자’라는 문구가 새겨진 빨강 금속 접시를 구경했다. 하나같이 내게 ‘우리 도망가자’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전부 갖고 싶은 마음에 어느 하나만 사서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즐거움이란 꼭 소유에서만 오는 건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가든파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처럼 떼 지어 있는 소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차 가게, 피자 매장, 인도 레스토랑이 노천에 펼쳐놓은 테이블을 지나, 녹음이 짙은 귀스타브 토두즈 광장의 수많은 파라솔을 지나쳐 걸었다. 그 길목에 상어 인형, 보헤미안 팔찌, 닭 모양 고무 인형을 파는 콘센트 스토어 뢰프가 있었다. 테디 베어 머리처럼 생긴 핸드백들이 매장 깊숙이 숨어 있는 밀실 같은 곳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흡사 아이가 자기 방에 상상의 부티크를 차려놓은 것처럼 엉성해 보였다. 이렇게 상점을 돌며 기분 전환하는 것을 미국에서는 ‘윈도쇼핑’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소비보다 흠모의 의미를 좀 더 살려 ‘윈도리킹’이라는 정열적인 단어를 쓴다.

몇백 년 동안 파리의 상점 주인들은 행인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다. 19세기 무렵 파리지앵들은 발자크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전경이 펼쳐지고, 걸작들이 끊임없이 전시되고, 슬픔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거리를 걷는 것에 익숙했다. 그들은 고상한 상점 간판 앞을 지나 다녔고 한때 백여 개의 상점들로 들어찼던 파리의 파사주(천장을 유지로 덮은 복도식 상가)를 활보했다. 갤러리 비비엔느, 파사주 슈아죌, 파사주 주프루아, 파사주 베르도와 같이 19세기부터 이어온 몇몇 파사주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랜턴, 양산, 분재 등을 취급하고 있다.

물건들이 아름답게 전시된 상점을 둘러보고 있으면 쇼핑을 한다기보다는 미술 전시회를 도는 기분이 든다. 그래픽 아트, 사진, 음악 및 패션 잡지를 살 수 있는 서점 겸 출판사 오에프알 서점 갤러리와 같은 곳은 실제로 미술관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는 획득이 아닌 경험을 위한 쇼핑을 한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여행 관련 책 사이에서 컴퍼스나 해시계 같은 공예품도 볼 수 있는 리브레리 마리팀 우트러메르도 나온다. 도자기 그릇을 파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나 장식용 수술을 파는 프티팡처럼 예술, 패션, 디자인, 식물 상점을 이리저리 둘러볼 때 내 집 거실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꾸밀 것인지, 더 나아가 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로켓십에서 본 문구용품은 내가 일하는 공간이 어떻게 보였으면 하는지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내가 무엇을 성취하고 싶어 하는지도 생각하게 했다.

미국 드라마 <걸스>에 출연한 배우이자 작가 레나 던햄은 혼자 있는 시간 덕분에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2016년 6월 《인스타일》과의 인터뷰에서 “대학교 시절 내내 뜨개질하고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지냈다. 그때 내가 가진 열정과 나는 누구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듄과 하버드 경영원의 마이클 노튼의 말처럼 절정의 행복은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에 관한 감각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무엇이 나를 흥분케 하고, 무엇이 나를 이끄는지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 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또한 열정을 좇는 자연스러운 행위는 근무 평가나 타인의 의견과 같은 외부적 동기부여가 아니라 ‘직관적 동기’ 혹은 ‘타고난 관심과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것’이라고 로체스터 대학교의 두 사회심리학 교수 리처드 라이언과 에드워드 데시는 말한다. “사람은 가장 건전한 상태일 때 활동적이고, 성가실 정도로 질문하고, 호기심을 보이고, 장난을 치는 생물체로서 어디서든 기꺼이 배우고 탐험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탐험하기 위해서는 단지 한 발을 다른 한 발 앞에 놓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걷기는 창조적 사고를 상당히 촉진한다. 산책을 통해 창조성이 촉발되었던 실례로 사상가, 예술가를 비롯해 우리 주변의 수많은 영희와 철수가 존재한다.

파리에서 나는 걸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걸었다. 생마르탱 운하를 따라 걷다가 벤시몽 스니커즈를 사고, 아타자르에 들러 커피 테이블과 관련된 책을 구경했다. 쓰레기와 빈 병이 운하의 탁한 물 위로 오리처럼 떠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하를 따라 길게 늘어선 가로수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육교 위의 연인을 역광으로 비출 때는 모네의 수련 연못 다리 못지않게 낭만적이었다.

“주변의 아름다운 것과 뛰어난 것에 열려 있는 사람은 인생에서 즐거움, 의미, 깊은 관계를 찾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소냐 류보머스키는 말했다. 파리는 그 가능성을 쉽게 이루게 해주는 곳이다. 멋지고, 매력적이고, 역사가 있고, 걷기에 좋기 때문이다. 나는 마레 지구의 중세 길과 불로뉴 숲, 몽마르트르의 자갈돌 언덕을 걸었다. “아, 파리를 산책해보라! 그 사랑스럽고 기분 좋은 느낌이란!” 발자크는 파리에서의 산책에 관해 이렇게 노래했다. “걷기가 그럭저럭 살기라면, 산책은 진정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사는 쪽을 택했다.



CHAPTER 2 여름 IN 이스탄불



기도를 위한 외침_ 듣자, 듣자



모스크의 미너렛에서 기도 시간을 알리는 무에진의 목소리가 오르타쾨이 부두를 지나 바다 밖까지 메아리쳤다. 그 소리는 확성기를 타고 바다에서 파도에 맞춰 까닥거리는 새하얀 요트를 타는 폴로셔츠 차림의 남자들, 셀카봉이 달린 분홍색 아이폰을 손에 들고 검은색 아바야(이슬람 여성들이 옷 위에 두르는 긴 천)를 착용한 여자들 사이를 마치 유령 해파리처럼 헤엄쳐 그들 귀에 가 닿았다. 한껏 들뜬 소규모의 사람들이 보스포루스 해협 가장자리에 자리한 오르타쾨이 모스크를 배경으로 추억 사진을 남기느라 바빴다. 이 모스크는 1973년 지어진 현수교와 돌마바흐체 궁전의 설계자이기도 한 건축가 니고야오스 바르얀이 디자인했다.

사람들은 가로등 사이마다 내걸린 터키 깃발 아래로 벽돌길을 걸으며 가판대에 나자르와 파티마 부적을 놓고 파는 파라솔과 천막을 지나쳤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동안 아이들은 돌고래 모양으로 생긴 공중전화 옆 놀이터에서 플라스틱 미끄럼틀을 타고 있었다. 무에진의 소리에 누구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름날 오후 부두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그의 목소리는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무에진의 목소리는 해가 뜨기 전, 잠들 때, 그리고 그 중간에 마치 신음, 노래, 갈망처럼 울려 퍼진다. 그것이 미너렛에서 남자가 기도 올리는 시간을 알리는 소리, ‘아잔’이다.

도시는 저마다의 음악적 파노라마와 특별한 화음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서는 지하철이 역사에 들어올 때 나는 소음과 아침마다 울리는 착암기 소리가 그것이다. 그렇지만 뉴욕 시민은 어떻게든 집중하며 책을 읽고 복잡한 프로젝트를 끝낸다. 하지만 아잔과 뇌리를 떠나지 않는 아름다운 선율은 내 속에 들어와 공기가 정적 속에서 떨릴 때까지 내 사고를 멈추게 했다. 며칠 동안 그 소리는 세속적인 나에게 고독을 위한 외침처럼 들렸다. 승려 틱낫한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마음 챙김의 종소리’였다. 매일 길을 걷던 8월,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그 소리는 더위에 지쳤을 때나 언덕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을 때 나를 회복시켜주었다. “언제나 우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말을 멈추고, 생각을 멈추고, 나에게로 돌아간다,” 『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에서 틱낫한이 한 말이다. 승려들은 잠시 모든 걸 멈춘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심호흡한다. 숨을 들이마실 때 가끔 “듣자, 듣자”라고 말한다.

기도를 부르는 소리는 구시가지의 복잡한 에미뇌뉘 선착장에도 밀려온다. 어딘가로 가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선착장의 배에서 쏟아져 나온다. 짐을 끌고 가는 여자들이 코카콜라 광고가 새겨진 빨강 파라솔 아래서 터키 일간지를 사기 위해 걸음을 멈춘다. 반바지 차림의 관광객들은 작은 황금색 돔 모양의 선상 레스토랑에서 낮은 스툴에 앉아 생선 샌드위치를 먹는다. 남자들이 옥수수를 2리라에 판다. 아이들은 빨강과 하양 줄무늬의 차양이 쳐진 손수레에서 시미트(가운데 구멍이 뚫린 윈형 모양의 터키 전통 빵)를 사 먹는다. 벤치에 앉은 커플이 바다를 함께 바라보고, 주황색 조끼를 입은 한 남자가 광장을 쓸고 있다. 갈매기들이 공중을 날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본다.

에미뇌뉘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번화한 선착장이다. 그 외에도 이스탄불의 선착장은 저마다 특색이 살아 있다. 손수레와 천막에서 꽃을 파는 남자가 있는 곳, 나무와 파라솔 아래 백발의 구두닦이가 놋쇠 상자를 놓고 앉아 있는 곳, 모퉁이에서 노랑 택시가 한가로이 손님을 기다리는 곳 등 다양하다. 한때 오리엔트 특급의 종착지였던 시르케지 기차역의 시계탑은 텅 빈 화물차 옆에 여전히 우뚝 솟아 있었다. 거대한 모스크의 돔들이 햇빛 속에서 반짝였다.

“콘스탄티노플에 혼자 있을 때 참 좋았다. 외롭지가 않았다.” 그레타 가르보가 1928년 영화 잡지 《포토플레이》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녀는 거의 혼자서 구시가지를 걸어 다녔다. “여행을 갈 때 반드시 친구가 있을 필요는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구시가지에는 사람이 넘쳐난다. 나는 분주한 도로 아래의 터널로 내려가려는 인파에 떠밀려가며 헤드폰, 샌들, 장난감 등을 파는 가판대를 구경했다. 길 끝의 계단까지 가서야 인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통 재래시장 그랜드 바자르에 가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나는 그랜드 바자르를 떠올리며 세상 그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향신료와 손수 짠 천이 쌓여 있는 미로 같은 시장통을 상상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의 거대한 석조 입구에 도착했을 때 타임스 스퀘어 기념품점처럼 플라스틱 선글라스가 깔끔하게 전시된 것을 보고 내가 순진했음을 깨달았다. 상점 입구에는 훨링 더비시 모양의 자석과 병따개 기능을 겸비한 자석들이 빽빽이 붙어 있었다. 물론 재래시장다운 소박한 물건들도 보였다. 하지만 15세기 모습을 상상해서는 안 됐다.

아치형 천장이 덮인 시장통으로 들어서니 훨씬 흥미로운 물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모든 게 섞여 있었다. 오래된 것, 새 것, 싼 것, 비싼 것. 향신료와 살구, 오디, 망고, 그레이프프루트, 파인애플, 딸기, 생강, 크랜베리와 같은 베리류를 말린 건조 과실, 그리고 키위, 레몬, 사과, 오렌지 향이 나는 차가 형형색색의 깡통에 담겨 층층이 쌓여 있었다. 무화과와 호두, 살구 그리고 아몬드와 꿀을 재료로 해서 만든 로컴(터키 사탕)도 보였다. 더 걸어가자 연분홍의 페이스트리로 채워진 바구니와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로컴이 진열된 유리 상자가 나왔다. 통나무 모양으로 빚은 이 로컴에는 생소한 각종 피스타치오가 가미되어 있었다.

이렇게 지붕 덮인 미로를 걷고 있으면 상인들이 여기저기서 금팔찌, 스카프, 도자기, 물담배를 사라고 소리친다. 전기가 들어오는 간판, 쇼윈도, 진열 선반 위로 액세서리와 가정용품을 전시한 가게들은 대형 쇼핑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재래시장은 뭔가 다를 거라고 기대했는데 일반 쇼핑몰과 월마트에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유명 브랜드와 싸구려 모조품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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