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신비한 산사 답사기
이종호 지음 | 북카라반
아름답고 신비한 산사 답사기
이종호 지음
북카라반 / 2018년 10월 / 387쪽 / 18,000원
불교의 유산
한국의 건축
한국 건축의 주체는 목조 가구식(架構式) 건축으로, 이는 중국ㆍ일본ㆍ한국의 공통 성격이다. 그러나 기후와 풍토 등 많은 요소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건축 공간을 구성하는 기본부터 다르게 출발한다. 중국의 건축은 광대한 대륙에 기반을 두어 척도에서 장대하고 웅장한 맛을 주고, 일본의 건축은 섬나라 환경을 토대로 기계적이고 날카로운 맛을 준다. 반면 한국의 건축은 반도국으로 중용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소박한 맛을 기본으로 한다.
한국 건축의 특성은 건물마다 위계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마당과 마당이 서로 고저가 다른 단을 형성하며, 여기에 다시 주와 종의 관계로 기단의 고저 차이를 이룬다. 통도사처럼 거의 평지에 건축된 사찰일지라도 바닥의 위계나 건축 기단 자체로 건물의 위계를 느낄 수 있다. 한국 건축의 또 다른 특성은 비대칭성이다. 이는 공간이 형성하는 중심축과 관계있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되게 건물이 배치된 예를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예로 불국사도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탑을 배치해 언뜻 좌우 대칭으로 볼 수 있으나 전체적인 배치를 생각하면 비대칭이다.
한편 해외의 명승지 건축물과 한국 건축을 비교하면, 한국은 지붕면이 정면이 되고 박공면이 측면이 되므로 대형 건축물이라 할지라도 진입 방향에서 공간의 깊이를 느끼지 못하는 반면, 서양 건축에서는 박공면이 정면이 되어 신전이나 서당에 들어갈 때 상당한 공간의 깊이를 느끼도록 유도한다. 그러므로 한국 건축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건물과 건물, 마당이 구성하는 외부 공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물론 한국 건축의 여러 특성은 한국의 건축 재료에도 기인한다. 예로 한국 건축의 주요 부재는 육송(陸松)인데, 육송은 건축 재료로 볼 때 결코 좋은 수종은 아니다. 장대한 부재를 얻기 어려운 것은 물론 똑바로 자라는 경우보다 구부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진이 많아 치목(治木)이 어렵고 또 치목한 후에도 나무가 잘 터지고 비틀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육송이 한국 건축의 주력이 된 것은 육송 이외의 재료 공급이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수들은 육송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여러 창의적 노력을 주저하지 않았다.
기단 / 초석: 기단은 건물이나 탑 등 건축물의 토대가 되도록 높이 쌓은 받침을 말한다. 기단의 역할은 건축물을 주변보다 높임으로써 태양빛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고 낙수가 튀는 것을 방지하며, 지하에서 습기와 해충이 올라오는 것을 막아준다. 한국의 건물은 건물의 규모나 용도에 상관없이 기단 없는 건물은 없다. 한편 초석은 기단 위에 돌을 놓아 기둥을 받치며 기둥을 통해 전달받은 상부의 하중을 지반이나 기단으로 전달하는 구조물로 주춧돌, 주초석 등으로 부른다.
기둥 / 공포: 기둥은 상부 가구의 하중을 받아 초석이나 지반에 전달하는 기능을 갖는다. 기둥의 종류는 길이에 따라 긴 것을 고주(高柱), 작은 것을 평주(平柱)라 부른다. 한옥의 지붕은 ‘ㅅ’자 모양을 가지므로 안쪽에 놓이는 기둥은 밖에 놓이는 기둥보다 길게 된다. 그래서 안쪽에는 고주가 놓이고 밖에는 평주가 놓인다. 한편 한국 건축의 기본은 기둥과 같은 수직 부재와 보나 도리와 같은 수평 부재를 적절하게 포집하는 가구 방식이다. 그런데 두 수평 부재가 그냥 만나면 연결 부위가 불안정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둥과 수평 부재 사이에 받침목을 댔는데 이것이 공포다. 공포는 한국 목조 건물의 백미라고도 볼 수 있는데, 기둥과 지붕 가구 사이에 있어 보를 통해 전달받은 지붕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해주며, 처마를 길게 뽑아 수평적인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가구(架構): 가구는 기둥 위나 공포 위에 얹어 지붕의 틀을 구성하는 부재들이다. 넓게는 기둥에서 종도리까지, 좁게는 기둥 상부에서 도리까지 집의 뼈대를 이루는 부분을 말한다. 가구는 보(樑), 도리(道里), 대공(臺工) 등의 기본 부재로 이루어지며, 이들 구성 부재는 서로간의 맞춤이나 형태 등에서 일정 형식을 갖는다. 보는 위치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누는데 대들보ㆍ중종보ㆍ퇴보(대들보보다 짧은 보)가 그것이다. 한편 도리는 일반적으로 직각 방향으로 있는 횡가구재이며 가구재의 최상부에 놓이는 긴 부재로 지붕의 하중을 직접 받는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도리를 종도리, 고주 위의 도리를 중도리, 그 위에 놓인 도리를 중상도리, 그 아래에 놓인 도리를 중하도리라고 한다.
천장(天障) / 지붕: 천장은 가구재가 노출되거나 은폐됨에 관계없이 건물 내부의 기둥 윗부분을 총칭해 부른다. 한편 지붕은 기와나 초가 등으로 이은 건물의 최상부 구조재를 말한다. 공간을 덮어 내부 공간을 형성하고 하중을 이용해 건물 자체의 안정성을 도모한다. 또 지붕에 올린 흙은 습도와 열을 조절하며, 깊은 처마는 계절에 따른 태양광선의 실내 유입 여부를 조절하며 벽체나 창호에 빗물이 들이치는 것을 방지한다. 지붕면이 정면을 형성하면서 전체 입면의 약 1/2을 차지하므로 시각적으로 중요하며 한국 건축의 곡선미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를 담당한다.
사찰
한국은 약 70퍼센트가 산이고 그 산에는 대부분 사찰이 있다. 사찰이라는 말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로 상가아라마인데, 이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옮긴 한자말이 승가람마이며, 승가람마를 줄여서 ‘가람’이라 한다. 상가아라마는 무리 또는 모임이라는 뜻을 지닌 ‘상가’와 정원 또는 담장을 두른 집이라는 뜻의 ‘아라마’가 복합된 말이다. 이 말을 번역해 중원ㆍ승단ㆍ승원이라 하는데, 모두 수행자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곳, 즉 ‘절’을 뜻한다. 사찰에는 부처를 봉안한 여러 불전에서부터 강의를 위한 건물, 참선하는 건물, 승려들이 거주하는 건물은 물론 식당, 부엌, 종루, 고루에 이르기까지 쓰임새에 따라 분리되어 건설된다. 그런데 많은 사찰을 방문하다 보면 각 건물들이 유사한데도 건물의 현판을 보면 다른 이름을 갖고 있어 헷갈리기 마련이다. 이는 사찰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일주문 / 중문: 사찰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당간지주(幢竿支柱)에서 시작된다. 당간지주는 2개의 돌기둥과 철로 된 긴 통으로 되어 있는데, 이 철통(당간)을 기둥 사이에 넣어서 깃대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당간지주를 지나면 일주문이 나오는데, 부처의 나라는 일주문부터 시작된다. ‘일주’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일심’을 상징한다고 설명된다. 불교에서는 이 우주가 가장 깊은 속마음인 일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을 지나면 이제 속세와는 이별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나 아직 부처의 세계에 온 것은 아니고 중간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형 사찰에서는 보통 일주문부터 본전에 도달하기까지 개울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부처를 만나러 가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뜻과 다름없다. 한편 사찰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어느 정도 걸으면 문이 하나 더 나온다. 이는 천왕문으로 이 문 안에는 험상궂게 생긴 4명의 장수가 있다. 이들은 사천왕으로 원래는 힌두교의 신이었는데, 불교가 갖고 와서 불교를 수호하는 ‘보디가드’로 만든 것이다.
대웅전: 일주문과 중문을 지나면 각 사찰의 보궁으로 들어가는데, 보궁의 이름은 어느 부처를 모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웅전(大雄殿)은 도력과 법력으로 세상을 밝힌 위대한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가람의 중심 건물이다.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사찰 본당의 대명사로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를 대웅세존이라 부르는 것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석가단독불을 봉안하기도 하지만,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三世佛)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삼세불에 각각 보현(普賢), 대세지(大勢至), 관음(觀音), 문수(文殊)를 협시해 총 7구의 불상을 봉안하기도 하며, 이 경우에 대웅보전이라 한다. 수덕사 대웅전, 불국사 대웅전, 통도사 대웅전 등 많은 걸작품이 남아 있다.
극락전: 대웅전과 더불어 조선시대 2대 불전으로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극락전(極樂殿)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안치하고 있는 법당으로, 극락세계에서 영원히 평안한 삶을 누린다 하여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한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인데, 무량한 지혜와 무량한 덕, 무량한 수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량수불’로 표현되어 무량수전으로도 불린다. ‘나무아미타불’은 무한한 생명과 지혜로 부처에 귀의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는 구호다.
미륵전 / 관음전: 미륵전은 사찰에서 미륵불을 주불로 봉안한 법당이다. 석가가 열반한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나면 말세가 되는데, 도솔천의 미륵보살이던 분이 사바세계 용화수 아래 내려와 성도하고 미륵불이 된다. 그는 석가가 다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제도한다. 한편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세상을 구하고 생명이 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아무런 인연이 없는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마음속에 새겨서 섬기면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불상
삼국시대 불상은 대체로 동과 청동으로 만든 불상에 금을 입힌 금동불(金銅佛)로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광배에 부처와 보살을 함께 모신 ‘일광삼존(一光三尊)’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초창기 불상은 좁은 공간에 모실 불ㆍ보살을 함께 조성했기 때문으로 남북조 시대의 불상을 차용했다. 그러나 이들 불상은 한국 지역에 맞는 불상으로 바뀌기 시작하는데, 6세기 중반 신라보다 먼저 불교를 받아들인 백제 불상 양식이 신라에 전파되면서 점차 풍만한 모습으로 바뀐다. 불상의 머리 모습은 꼬불꼬불한 머리카락(나발)보다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상투 모양(육계)이 훨씬 커지고 눈꺼풀이 두툼해지며 볼에 살이 붙으면서 입술 주변이 들어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띤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 육계가 작아지고 눈썹과 코를 잇는 선이 뚜렷해지며 입가에 미소가 점차 사라진다. 불상의 얼굴 또한 깊은 사색에 빠진 근엄한 얼굴로 변하는데, 이는 신라 불교의 철학과 사상이 심오하게 발전해가는 시대상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한편 불상은 깨달은 사람, 즉 각자(覺者)로서 격을 갖추고 있는 부처를 형상화한 것인데, 한국의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고, 또 어느 때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수많은 부처가 존재한다. 따라서 석가모니불을 비롯해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 미륵불 등과 53불 1,000불상이 만들어진다.
불탑
탑은 한마디로 ‘붓다의 무덤’이라 볼 수 있다. 탑이란 명칭은 원래 고대 인도어인 스투파(stupa)에서 시작되었다. 인도에서 스투파는 본래 ‘쌓아올린다’는 의미를 가진 말로 죽은 사람을 화장한 뒤 유골을 묻고 그 위에 흙이나 벽돌을 쌓은 돔 형태의 무덤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탑의 원래 의미는 ‘유골을 매장한 인도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고대 인도인들에게는 부처의 무덤이나 일반 인도의 무덤이나 모두 똑같은 스투파다. 한편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자 부처의 스투파가 중국에서 솔도파, 스도파, 탑파 등으로 발음되어 한자로 표기되다가 마침내 줄여서 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탑을 파고다라고도 부르는데, 이 용어는 포르투갈어 ‘빠고데(pagode)’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진다.
탑의 배치와 장엄: 사찰 안의 탑은 사찰의 여러 건물과 어우러져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는데, 이때 탑과 건물이 어떤 관계로 배치되어 있는지를 ‘가람 배치’라고 한다. 예를 들면 탑과 금당의 관계에 따라 1탑 3금당ㆍ1탑 1금당ㆍ쌍탑식 등으로 분류한다. 1탑 3금당식 가람 배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으로 주로 고구려에서 그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탑을 한가운데 두고 북쪽에 1개, 동ㆍ서에 1개씩 금당이 있어 금당이 탑을 삼면에서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1탑 1금당식 가람 배치는 남ㆍ북축 선상에 탑과 금당을 1개씩 두는 형태와 동ㆍ서로 탑과 금당을 두는 형태가 있다. 백제시대의 탑은 남북축 선상에 탑과 금당을 두는 형태로 군수리사지, 정림사지, 미륵사지 등이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쌍탑식 가람 배치는 통일신라시대 사천왕사지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망덕사지ㆍ보문사지 등에서는 목탑, 감은사지ㆍ천군동사지ㆍ불국사 등에서는 석탑으로 나타난다. 이후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이런 쌍탑식 가람 배치가 기본이 된다.
한편 탑과 같은 형태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탑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탑은 다음 2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륜(相輪)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리의 봉안이 석가의 무덤임을 알리는 실질적인 내용이라면, 상륜은 인도 스투파를 축소시킨 상징적인 형식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탑에는 상륜이 있다. 목탑이나 전탑에서는 주로 금속으로 만들었고 석탑은 돌로 저마다의 형태를 조각해 올려놓았다. 물론 불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건립되는 모든 탑에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실 수가 없어 후대에는 다른 승려들의 사리나 불경, 작은 금동불 등 공경물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탑 안에 모셨다. 그래서 사찰에 들어가면 부처를 모신 법당 안에 있는 탑에 합장해 예배하거나 탑돌이를 하며 기원하는 것이다.
한국의 산사
경북 영주 부석사
한국의 자랑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첫 번째 답사로 부석사를 선정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수많은 사찰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역사와 자랑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건축학자들은 부석사가 불국사와 함께 한국 사원 건축의 정점이라고 말한다. 불국사가 인공미의 극치라면 부석사는 자연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불국사의 전면 석축이 목구조 형식을 본떠 쌓은 것이라면, 부석사의 석축은 생긴 대로 아래에서 위로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것이다. 사람이 쌓았지만 불국사처럼 인공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 두고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주에는 신라시대부터 사찰이 많이 들어섰지만, 태백산 줄기를 이어받은 봉황산 자락에 화엄세계를 펼치려고 의상대사가 세운 부석사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예술 면에서 으뜸을 자랑한다. 세월을 거듭하면서 부석사는 규모와 위엄이 더해져 배불숭유의 조선시대에도 상당한 사세를 유지했다. 성종 24년(1493)에는 조사당을 단청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1555년에 소실된 안양루를 20년 뒤인 1576년에는 중건하는가 하면, 범종각도 1746년 불탔을 때에 곧바로 다시 건축했다. 그만큼 부석사가 힘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16년에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해체ㆍ수리하고 무량수전 서쪽에 있던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기고 취현암이라고 했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전체 사역을 정비하면서 일부문, 천왕문, 승당 등을 새로 지었으며, 1996년 초에는 유물각을 개수해 유물전시각으로 꾸몄다.
부석사 가람 배치: 부석사의 공간은 크게 아래에서 일주문 공간, 천왕문 공간, 안양루 공간, 무량수전 공간이 차례로 이어지고, 무량수전 뒤쪽으로 조사당과 자인당 공간이 있는데, 얼마 전만 해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다 하여 더욱 유명세를 탄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 곧바로 오르면 보물 제255호인 당간지주가 보인다. 높이 4.28미터의 두 지주가 1미터 간격으로 동서로 상대해 있는데, 마주 대하는 내측면과 바깥면에는 아무런 조식(彫飾)이 없으며 바깥면의 양쪽 모서리의 모를 약간 죽였다. 양 지주의 꼭대기에는 내면 상단에서 외면으로 내려오면서 호선(弧線)을 그리며 외부로 깎여졌는데, 1단의 굴곡을 두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杆)은 한 곳에만 간구(杆溝)를 마련해 장치했던 것인데, 내면 상단에 장방형의 간구를 파서 간을 끼우게 되어 있다. 양 지주 사이에는 간주를 받는 원형으로 된 대석(臺石)이 있어서 간대(杆臺)임을 알 수 있는데, 이 간대는 1석으로 되었다. 아래쪽 간(기둥)받침에는 지름 30센티미터가 되게 둥근 구멍을 파 간을 받게 했으며, 그 주변에 깔끔하게 연꽃무늬를 조각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마 단조로움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