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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김소민 지음 | 서울셀렉션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김소민 지음

서울셀렉션 / 2019년 3월 / 328쪽 / 15,800원





생존탐구생활 치열하지만 우아하게



라디에이터는 난방기구가 아니다



부부 싸움의 계절이 다가온다. 기온이 떨어질수록 전의는 달아오른다. 지난해 겨울은 길었지만 여전히 승부는 나지 않았다. 네 살갗은 특수 재질이냐는 의심만 커져갔다. 독일인 남편과 나 사이 온도전이다.

이 집 라디에이터는 난방 기구인가. 나는 그 분류에 반대한다. 발바닥부터 감싸 안아 피를 데워주는 온돌 정도는 돼야 난방입네 할 수 있다. 집 라디에이터는 반경 5센티미터를 데우자 풀이 죽었다. 전기, 기름 먹고 힘은 어디다 쓰는 걸까. 강도를 세게 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쉭쉭거리며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소리를 서라운드로 들려준다. 추위보다 더 등골 서늘한 소리다. 스웨터 두 개씩 껴입고 요실금 라디에이터 위에 앉아 지난겨울을 났다. 집 안팎이 무슨 차이냐 푸념하면 돌아오는 답은 항상 똑같다. “뭘 좀 많이 입어.” 집에서 장갑도 껴야 하나.

그중 가장 추운 곳은 침실이다. 바깥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난방기구 켜는 법이 없다. 침실 문을 열면 냉기가 덮쳐 잠을 추방한다. 뜨끈한 방바닥에 근육이 노글노글해져야 그 사이로 잠이 스며드는데 이건 정신이 번쩍 나 수능 수학을 펼쳐 들어야 할 판이다. 나는 근육과 정신 모두 각성 상태인데 옆에서 두꺼운 담요 위로 얌체같이 코만 내밀고 동면하는 그를 보고 있으면 이불을 확 들춰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의 주장은 그렇다. 두꺼운 이불이 있는데 왜 연료를 낭비하는가. 난방 틀면 공기가 탁해져 건강에 더 안 좋다. 여기선 다 이렇게 잔다. 마지막으로 실제로 그렇게 춥지 않으며 네가 너무 곱게 자라 피부가 공주병이다.

냉기로 척추 디스크끼리 밀착할 것 같은 어느 날 밤, 그의 주장을 박살내기 위한 증거 수집에 나섰다. 온도를 쟀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냉골에서 자고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이럴 리 없는데 16도 정도다. 내 세포는 시베리아 유배 중인 것 같은데 실제 온도는 봄날의 비웃음을 날렸다.

둘째, 네가 이상하다는 확증을 뒷받침해줄 이웃의 증언을 들어봤다. 아래층 발레리, 겨울에 난방은커녕 창문도 좀 열고 잔단다. 지난 3월 아직 찬바람이 암팡진데 앙겔라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기가 잠드니 얼굴만 빼고 담요로 똘똘 싸 바구니에 담고 베란다에 내놓았다. 그래야 더 잘 잔단다.

어디나 통하는 다용도 카드는 아직 남았다. ‘나는 너랑 다르다’다. 네가 어떻게 살았든 내 살갗은 전기장판에 길들여진 앙투아네트다, 네 방식을 나한테 강요 마라. 결국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 자러 가기 직전 10여 분 동안만 강도 1로 라디에이터 켜기 협상에 성공했다. 그날 평화로운 밤이 지나고 지구전이 시작됐다. 몰래 켜면 몰래 끄고 켜면 끄고…….

한쪽 다리를 이불 밖으로 내놨다. 냉기에 화들짝 깬 다음 날이면, 나는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준 멸치로 국물을 우려냈다. 거기에 마늘까지 다지면 복수극에 쓸 재료가 완성된다. 부엌은 이미 냄새가 정복했다. 코를 쥐고 괴로워하는 그를 보며 통쾌해하는 일만 남았다. 나와 마디마디 다른 이 남자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널렸다. 올 겨울엔 엄마에게 멸치를 더 보내 달라 해야 할 것 같다.

김밥이 터지기 전에 주인 속이 먼저 터졌다



임금 줄까 안 줄까? 독일 한국 분식집의 ‘인턴’ 마지막 날인 나흘째, 주인아줌마의 입은 오리무중 닫혀 있다. 정식으로 일하게 되면 시간당 7유로를 약속했는데 테스트 기간엔 얼마 줄지 어물쩍 서로 합의가 없었던 터다. 독일 거주 한인 카페에 가끔 올라오는 한국 식당 성토기도 내 불안에 한몫했다. 팁을 떼먹거나 임금이 짠 곳이 많단다.

이 예민한 것들. 안에 아보카도와 오이, 게맛살을 품은 캘리포니아롤은 닿는 손끝이 거칠다 싶으면 그새 자폭해버렸다. 낯을 가리는지 내 손 끝에만 그리 까탈을 부렸다. 아줌마가 썰 때는 10년 키운 애완견처럼 그렇게 척척 들러붙더니 내가 주무르려 들면 아보카도를 게워냈다. 하나 썰 때마다 긴장해서 벌벌 떠니, 캘리포니아롤의 뱃가죽이 터지기 전에 주인아줌마의 속이 먼저 터질 지경이었다.

이것들이 만약 인간이었다면 이것은 인해전술이었다. 채 썰 무와 당근이 그랬다. 강판 칼은 어찌나 호전적인지 무든 손가락이든 닥치는 대로 갈아버리겠다는 듯 번득였다. 당근 다섯 개째에서 피를 좀 보고 말았다. 피는 왜 붉은가. 그리도 선명하게 내 어수룩한 실력을 주인아줌마에게 일러바쳤다.

접시는 때로 위로를 준다. 점심시간은 12시 30분부터 1시 30분, 주인아줌마와 조수인 나, 주문받는 청년은 비빔밥에 들어갈 계란을 부치면서 만두를 찌고 김밥을 말다가 불고기를 볶아대야 하는데 나는 덤으로 아줌마의 속도 볶는다. 손님 대부분이 독일인인데 우중충한 날의 라면 맛은 또 어찌 알았는지 하늘이 궁상을 떨면 가스레인지 위 라면 냄비가 불이 난다. 그렇게 가게 안 테이블 다섯 개 사이로 정신을 빼놨다가 개수대 앞에 서면 그 안에 잠수하고 있는 접시들이 입 무거운 친구 같을 때가 있다. 비빔밥처럼 손님이 채식주의자인지에 따라 고기를 넣고 빼야 하는 집중력을 요구하지도 않는 접시들은 닦아주기만 하면 말이 없다. 그것도 처음 몇 개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말 없는 접시는 눈송이와도 같다. 한 송이씩 내릴 땐 포근한데 떼로 내리면 집 천장을 무너뜨리듯 내 어깨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나흘, 하루 세 시간씩 캘리포니아롤 비위 맞추고 접시에 뒤통수 맞다 보니 임금이 간절해졌다. 단 몇 유로라도 만지고 싶었다. 간절함 중에 돈이 90이라면 나머지 10은 거창하게도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세상의 어떤 예의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지 못한다면 사는 게 너무 두려워질 것 같았다.

마음이 다칠까봐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안 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달라 했을 때 그 어색한 상황은 어떻게 무마해야 할까, 그러다 이 알바마저 잘리는 건 아닐까. 마지막 날 최대한 천천히 앞치마를 벗었다.

주인아줌마는 한국 무 한 덩이를 들고 있었다. 길쭉한 독일 무 같이 맹탕이 아닌, 알싸한 진짜 한국 무다. 비닐봉지를 받아 드는데 주인아줌마가 40유로를 쥐여 줬다. 주인, 청년, 내 몫으로 3등분한 팁도 동전으로 줬다. 밥 먹고 가라며 앞으로 언니라고 부르라고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내에 4층 높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섰다. 나는 무 한 덩이와 40유로를 세상이 살 만하다는 증거품인 양 품고 그 곁을 걸었다.



경계탐구생활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나라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같은 과에 20개국 출신 29명이 모여 있으니, 하루걸러 한 번씩 싸움이 났다. 그날 저녁 이란계 독일인 무함마드와 낄낄거릴 때만 해도 장난이 몰고 올 욕설 태풍을 까맣게 몰랐다. 모두 같이 간 뮌헨 여행 마지막 밤, 그냥 자기 서운해 악질 장난을 꾸밀 때는 즐겁기만 했다.

장난은 일곱 살 눈높이에 맞아야 제 맛이다. 새벽 2시께 프런트 데스크인 척 학생들 방으로 전화해 교수가 세미나 일로 급하게 부르니 304호로 당장 가보라고 협박하고, 304호에서 ‘왁’ 놀라게 하자고 작당했다. 무함마드는 존경스러웠다. 코만 막았는데 목소리가 바로 프런트 데스크다. 강철 심장 인도네시아 두 친구만 교수건 뭐건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할 수 없다며 계속 자버렸고 나머지는 슬리퍼만 발에 낀 채 헐레벌떡 희생양이 됐다. 방글라데시인 압둘은 긴 천을 두른 전통복을 입고 왔다. 다들 떼굴떼굴 굴렀다. 잠이 덜 깬 몽골 친구는 우릴 보고도 사태 파악을 못 한 채, 교수 방이 어디냐 물었다. 나만 당할쏘냐. 한 명씩 희생자가 늘어가며 304호는 몸만 늙은 국제 어린이 조직의 은밀한 아지트가 되어갔다.

우크라이나 친구 아나도 골려줄까, 투표가 붙었다. 성질이 활화산이니 잘못했다간 우리 모두 유황불에 데는 수가 있다. 역시 ‘너도 당해라’가 승리했다. 무함마드는 한술 더 떠 아나에게 사진을 찍으니 셔츠까지 다려 입고 오라고 했다. 아나는 잠결에 셔츠를 다리다 문득 깨닫고 결심했다. ‘이것들, 요절을 낸다.’ 먼저 진짜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해 한밤의 홍두깨질을 해버렸다. 그 밤 데스크 청년은 주리를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찌 알았는지 내 페이스북 메시지함은 아나가 보낸 욕설로 배가 터져버렸다. 정화해 말하자면 ‘너 때문에 밤잠 다 설쳤고 네가 무슨 권리로 날 웃음거리로 만들려 하느냐’는 거였다. 너한테만 장난친 거 아니다, 미안하다, 여러 번 사과해도 다 반사했다. 욕설의 강도가 표도르 발차기 급이다. 그때쯤 내 맘속에서도 분노가 몰아쳤다. 진짜 황당한 건 아나보다 내 뇌였다. 내 이성은 장식인가 보다. 이성은 점잖게 말한다. ‘아나는 네가 아는 단 한 명의 우크라이나인인데 그와 일이 틀어졌다고 우크라이나 전체에 꼬리표 붙이는 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한국 다 뒤져도 너랑 똑같은 사람 없지 않느냐.’ 지당하다. 그런데 무력하다.

월급 통장에서 돈 빠져나가는 눈부신 속도로 편견은 자란다. 자라, 솥뚜껑, 압력밥솥 안 가리고 막 번진다. 편견은 날쌔다. 이성이 엉거주춤 일어설 때쯤이면 벌써 상황 종료되기 일쑤다. 하루 전 산 옷 바꾸러 갔는데 사장이 우크라이나 억양으로 안 된다 하면 ‘하여간 이 사람들은 다 공격적이고 불친절하지’ 이렇게 마음이 돌아간다. 처음 만난 사람이 우크라이나 출신이라고 하면 난데없이 경계 태세다. 어이없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옆에 있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내 마음속에서 한 꾸러미에 담기기도 했다. 친구는 내 고민을 듣다 ‘너 이러다 인종주의자 되겠다’고 꼬집었다.

나는 대체로 선량하고 편견에 쉽게 휩쓸릴 만큼 그리 미련하지는 않다 믿었건만, 나는 그렇게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나와 내가 혐오하는 인간 사이의 차이라는 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눈 깜짝할 새 넘나들 두께일 뿐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내 마음이 그리 움직이는 걸 무능하게 쳐다볼 때면 묻게 된다. 나라는 너는 대체 누구냐.



행복탐구생활 변하거나 변하지 않거나



팀푸의 낮과 밤 사이



부탄에서 첫 토요일, 아침 8시부터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팀푸 시내 중심 광장인 시계탑 주변으로 전통식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손에 책 한 권씩을 들었다. 다 영어책이다. 선생님들의 구호 소리가 마이크로 울렸다. 아이들 500여 명이 정렬해 자리를 잡자 4대 국왕의 환갑 맞이 책 읽기 행사가 시작됐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고 쓰는 사람이 이끄는 사람이 됩니다.” 키라를 입은 열 살 소녀가 똑 부러진 영어로 대표 연설을 했다. 이어 20여 분 동안 다 같이 침묵 속에 책을 읽었다.

개들마저 조용한 와중에 열한 살 소년 페마는 근질근질한가보다. 두루마기 형태의 고에 긴 양말을 신은 그는 라면땅을 닮은 과자를 살짝 꺼내 부숴 먹었다. 인도 과자인데 양파오일을 뿌려 먹는 것만 빼면 내가 한국에서 중독됐던 바로 그 맛이다. 사진 찍어도 되냐니까 갑자기 책을 펼쳐 들고 읽는 포즈를 취했다.

페마보다 세 살 많은 초뎀은 정신연령으로 보면 누나라기보다는 이모다. 단짝 친구인 칼둥과 우산을 나눠 썼다. 햇살이 쨍했다. 둘이 들고 있는 영어책 두께는 300쪽은 족히 넘어 보인다. 칼둥은 수줍어하고 초뎀은 카리스마가 있다. 문장 마지막까지 힘주어 읽는다. 엄마뻘인 내가 주눅이 들었다. 나보다 영어가 유창하다. 그 친구들은 부탄 공식 언어인 종카어보다 영어로 읽고 쓰는 게 더 편하단다. 쐐기 형태의 종카 문자는 어찌나 복잡한지 부탄 사람들한테도 단어마다 지뢰밭이다. 모험소설을 좋아한다는 초뎀은 일본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부탄 전통이 자랑스러워요. 외국인들이 다 그래요. 오염되지 않고 특별하다고요. 그래도 세상이 변하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팀푸를 현대적인 도시로 만들고 싶어요.” 친구 칼둥은 나중에 한국에서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더니 까르륵 웃었다. 무대엔 초록색, 파란색 옷을 입은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서 있고 곰으로 분장한 소년이 그 사이를 정처 없이 오락가락했다. 초뎀은 사는 동네 이름과 부모님 핸드폰 번호를 적어 줬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종카 랭귀지 스쿨’은 산 중턱에 난데없이 서 있었다. 택시 운전사는 비포장도로를 아슬아슬 올라가며 추가 요금을 불렀다. 외국인인 내가 다짜고짜 종카어를 배우겠다니까 학교 안내실 직원이 난감해했다. 여기는 어학원이 아니라 한국으로 치자면 외국어고등학교쯤 되는 곳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직원이 ‘칠립’ 폭탄을 교장선생님에게 넘겼다. 설립자인 타시다. 배우 백일섭을 닮았다.

부탄에선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수업은 영어로 한다. 종카어로 가르치는 수업은 두 과목, 종카와 문학뿐이다. 종카어가 공식 언어이지만 네팔어, 샤르촙어까지 대표 언어만 세 가지다. 11, 12학년이 되면 학과정이 예술, 과학, 경제로 나뉜다. 앞으로 전공하고 싶은 분야를 대충 정하는 거다. 국립학교는 전 과정이 무료인데 사립학교는 1년에 약 55~85만 원을 내야 한다. 종카 랭귀지 스쿨은 부탄에서 유일하게 종카어에 방점을 둔 사립학교다. “언어를 잃는 건 우리 문화를 잃는 거예요. 종카어는 불교사상에 맞닿아 있는 언어라고요.”

타시는 3년 전 사비를 털어 학교를 세웠는데 입학생 수가 2014년 273명에서 1년 만에 120명으로 반 토막 났다. 내년엔 더 줄까봐 속이 탄다. “돈 있는 집 부모들은 자식들한테 경제나 공학을 가르치고 싶어 하죠. 종카어는 ‘라스트 초이스’인 것 같아요.”

타시의 또 다른 걱정은 딸 넷이 한국 드라마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거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단다. 나는 말 안 듣는 거야말로 진정한 딸들이란 증거라고 위로했다. 그래도 딸들이 공부를 잘 한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큰딸은 국립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나머지 셋은 다른 사립학교에 다닌단다. 왜 이 학교에 안 보냈냐고 물으니 타시가 당황했다. “하하, 좋은 질문이에요.” 부탄 백일섭 씨의 볼이 붉다. “저도 아버지잖아요. 이 학교 나와 딸들에게 좋은 미래가 열릴까 걱정되는 거죠.”

타시는 부처님상이 모셔진 학교 제단 사진 촬영도 허락해줬다. 음악실에선 기타를 닮은 전통 악기의 현도 몇 가닥 튕겼다. 멋지다니까 “치는 척만 해본 거”라며 쑥스러워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수업이 이어지는데 막 점심시간이 됐다. 책상을 붙여 둘러앉은 학생들은 보온도시락 통을 꺼냈다. 운동장 농구 골대 옆에 앉은 여학생 두 명은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러브 스토리》를 읽었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난리다. “<드림하이>를 좋아한다”며 한국인들은 다 그리 예쁘고 피부가 곱냐고 하기에 날 보라고 답해줬다.

낮의 팀푸 거리를 거닐면 족히 반 이상은 전통복 차림이다. 직장이나 학교 등에선 전통복이 필수다. 특히 행정기관이자 종교기관인 ‘종’에 갈 때는 키라와 고 위에 숄 형태인 라추도 걸쳐야 한다. 네마는 “키라를 입으면 우아해지는 느낌이 든다”며 “특히 긴 치마라 신발을 아무거나 신어도 되는 게 편하다”고 했다. 오후 5시, 퇴근 러시아워가 끝난 뒤 밤의 팀푸는 옷을 갈아입는다. 명동 거리에 데려다놔도 어색하지 않을 멋쟁이들이 술집으로 향한다. 부탄 남자 킹가는 우스개처럼 말했다. “나는 오전 9 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부탄 사람인가 봐.” 전통복 입은 모습만 봤던 킹가가 가죽점퍼와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을 때 나는 그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이제 좀 외롭고 싶다



팀푸에선 물건보다 사람 만나기가 쉬웠다. 여섯 달 동안 전신거울을 못 샀다. 이 낯선 땅에 도착하고 일주일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내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 이래저래 안면이 팝콘 터지듯 터지는 곳이다. 인구 8만 명 정도인 이 수도 주민들은 한두 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이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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