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처럼 일하라
마이클 록 지음 | 가톨릭출판사
베네딕토처럼 일하라
마이클 록 지음
가톨릭출판사 / 2019년 2월 / 232쪽 / 14,000원
서문 : 가치터라는 맥락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거나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문제인데, 그 핵심에는 업무 이탈(disengagement)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리를 이탈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감성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영성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영성적이란 궁극적으로 중요하고 의미심장하다고 보는 바를 따라서 살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오늘날의 위기상황: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탈하는 문제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이 문제의 징후로 우선 앱슨티즘(absenteeism)과 프레즌티즘(presenteeism)을 꼽을 수 있다. 앱슨티즘은 일하는 사람이 자리에 없는 것이고, 프레즌티즘은 자리에는 있지만,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만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징후는 우울증이다. 네 번째 징후는 업무 비효율이다. 미국인의 직장 상태에 관한 2013년 갤럽 조사에서는 적극적으로 업무에서 이탈한 사람들로 인해 생산성이 매년 4,500억 달러에서 5,500억 달러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비효율성은 사람들의 창조적인 역량을 감퇴시키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협동적 사고를 할 수 없게 한다.
일을 재평가하기 -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 규칙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베네딕토 성인이 마주친 격동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지혜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다. 그의 지혜는 일과 삶과 인간의 여러 감정을 포용하며, 그의 영성은 우리의 일 처리에 통찰력을 준다. 특히 베네딕토 성인은 사람들이 업무에 전념하도록 하려면 일하는 그 사람을 인정하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 일 자체를 강조하다 보면 사람을 소홀히 여기기 쉽다는 것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로마 문명이 쇠락하고 암흑 시기가 시작하던 교회 분란의 시기에 살았다. 그는 어린 시절에 공무원이 되려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패를 보고서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공부를 포기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탈리아 수비아코 계곡의 한 동굴에서 한동안 엄격한 독수 생활을 했다. 그런 다음 몬테카시노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자신의 첫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그곳에서 『수도 규칙서』를 썼다. 베네딕토 성인은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하고자”(머리말 45) 『수도 규칙서』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현재의 직장 생활에 길잡이를 제공하기 위해 그가 마련한 원칙을 빌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수도 규칙서』는 한 가지 핵심 단어와 세 가지 중심 원칙으로 시작된다. 한 가지 핵심 단어는 “경청(Obsculta)”인데, 이는 마음의 귀로 듣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주의자인 베네딕토 성인은 답변하기 위해서 듣지 않았다. 성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오만이라고 생각했고, 배움과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경청에는 아주 다른 그 무엇이 필요했다. 곧 겸손이 필요했다.
그의 세 가지 중심 원칙 가운데 첫째 원칙은 정주(stabilitas)다. 이는 뿌리 내림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다. 정주는 현재 순간에 정성을 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베네딕토회 소속인 조안 치티스터 수녀가 말했듯이, 그것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서 살고 일한다는 의미다. 정주는 우리에게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머무르라고,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를 성장과 변화의 토대로 보면서 여기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라고 요청한다. 둘째 원칙은 구체적인 변화를 다루는 것으로 회심(conversatio morum)이라고 불린다. 회심하는 삶을 살려면 절대로 정적이어서는 안 되며 예측 불가능한 일상생활에 신중하게 열려 있고 적응해야 한다. 괴테는 이를 “내어줌과 받아들임”이라고 간결하게 묘사했다. 그리고 베네딕토 성인에게, 그것은 수도원 생활을 통한 끊임없는 정진을 의미했다. 이는 신입 사원이 작업 환경의 문화와 사회적 특성에 날마다 계속해서 맞춰 나가는 것과 유사하다.
셋째 원칙은 정주와 회심에 따르는 것으로 순종(oboedientia)이라고 불린다. 이는 오늘날 “깊은 경청”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실제로 『수도 규칙서』에서는 첫 문장부터 “경청(Obsculta)”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에는 순종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베네딕토 성인은 순종이란 지금 이 순간과 시대의 표징들을 기민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피드백에 열려 있다(예컨대 모든 각도에서 열려 있다)고 하는 것을 순종으로 본 것이다. 곧 순종이란 내가 누구인지를 진정으로 알고자 깨어 있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밖에도 균형, 절제 그리고 유연성 또한 『수도 규칙서』의 중심에 있다. 특히 균형은 『수도 규칙서』전체에 배어 있다.
한편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 규칙서』에는 실용성이 배어 있다. 금욕주의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은 어떤 신비적 체험이 아니라 매일매일 살아가는 현실에 집중한다. 그는 하루를 여러 부분 - 충분한 수면 시간, 기도 시간, 성경과 영적인 글을 읽는 시간, 손수 노동하는 시간(5시간) 등 - 으로 나누었는데, 이는 그가 물려준 또 하나의 유산이기도 하다. 그는 기도, 일, 공부, 휴식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수도 규칙서』는 오늘날의 일터에 더욱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데, 일에 대한 베네딕토의 접근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핵심 특징이 있다.
먼저 일은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베네딕토 성인은 사람들이 아무 일이나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은 일하는 사람에게 의미를 준다. 그렇기에 일을 잘 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람과 장소와 사물을 존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미덕이다. 또 일은 섬김이다. 일에는 깊은 사회적 책임 의식이 들어 있다. 또 일은 공동체적인 것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일이 세상에 주는 우리의 선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우리의 풍요로운 사회적 결실이라고 가르친다. 또 일은 사람을 키운다. 『수도 규칙서』는 일 자체에 활력을 주고, 삶을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뭔가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아울러 일은 기도이다. 『수도 규칙서』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베네딕도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이다.
핵심 비전
일은 부르심이다 : 성숙과 정주 - ‘일’을 위한 비전
인간 본성에 대한 베네딕토 성인의 통찰은 대단했다. 그는 부산함이 사람을 흐트러지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이 비유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씨는 자라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날 기업들은 직원이 ‘다중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으면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중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기억력에도, 활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물론 베네딕토 성인은 다중 과제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수도자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을 염려했다. 정주를 강조하는 그의 『수도 규칙서』의 핵심에는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뿌리 내림이 필요하다는 그의 감성적이고 영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한편 베네딕토 성인은 확실히 일을 삶 자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부르심이라고 보았다. 어쩌면 삶을 일이 반드시 필요한 부르심으로 보았다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표현일지 모른다.
삶과 일이 부르심으로 체험될 때에, 다른 뭔가가 발생한다. 일상성과 진실하게 연결될 때 ‘지금 여기’나 일상 삶의 저변에는 외적인 영역뿐 아니라 내면의 영역도 생겨난다. 뿌리내림에서 오는 내적 확신이 내면의 영역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업무에 전념하는 데에 필요한 외적인 평온함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내면성은 사람들이 감정적ㆍ영적으로 우아함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내면성이 완전한 평온을 가져다준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일상생활과 일에서 오는 좋은 일이나 궂은일을 더 쉽게 포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오늘날 사람들은 직장에서 유혹이 다가오면 불안해하고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베네딕토 성인은 질서를 원했다.
이 질서는 천편일률적인 규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은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성인이 말하는 질서는 인간의 성장과 성숙 과정을 고려하는 질서인 것이다. 그와 같은 질서가 미진하면 사람들은 내면의 경청을 먼저 발전시키기보다는 분주한 일상생활의 요구들에 함몰되고 만다. 캐나다의 가톨릭 철학자 장 바니에는 이런 분주함을 “들뜬 활동”이라고 불렀다.
사람은 정주함으로써 성숙할 수 있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우리 내면의 자아가 의식적 자아에 계속 정보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주에 전념할 때에야 모든 인간적 변화가 내면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성숙하지 못하면 내면에 질서를 유지하는 원칙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직관을 잊거나 부인하는 것, 그래서 내적인 삶을 포용하는 것을 잊거나 부인하는 것은 성숙의 과정보다는 속이 비어가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정주는 우리를 우리 자신, 다른 이들, 또 주변의 더 넓은 세계와 묶고 이어 주는 저 연결성을 우리에게 약속한다. 베네딕토 성인은 업무에 전념하는 것과 내면성이 서로를 포용한다고 보았다. 이 내면성이 없다면 노동을 부르심으로 체험할 수 없다. 『수도 규칙서』에는 일을 부르심으로 보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기본이 되는 것은 서문에서 언급한 정주, 수도자다운 생활, 순종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를 수도원 생활을 하는 데에 기반이 되는 중요한 세 가지 중심 원칙으로 제시했다. 물론 이 세 가지 가치는 직장에서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전반에도 극히 중요하다.
베네딕토 성인이 뜻하는 부르심의 관점에서 보면, 일은 제아무리 저급한 형태라 할지라도 영성 생활과 서로 결부되어 있다. 베네딕도회의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격언은 수도원 생활을 위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기도, 거룩한 독서, 육체적인 일이 그것이다. 같은 조건을 일반적인 무대로 옮기면 비슷한 모델을 이렇게 제안할 수 있다. ‘① 가장 근본적인 것에 먼저 주의를 집중하기. ②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성찰하기. ③ 분명한 자세로, 중심을 잃지 않고 일하기.’
이 세 가지 차원을 고려할 때, 일은 그 나름의 ‘금욕’ 혹은 수덕의 차원을 지닌다. 그리고 그것은 ‘영성 생활’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 일을 영적인 부르심으로 체험하고자 나아가는 길은 참된 경청에서 출발한다. 경청은 이렇게 우리의 내적 자아를 깊이 체험하게 해 준다. 경청하기 시작할 때에, 우리는 삶이 우리에게 주는 저 더욱 깊은 직관들을 의식하게 된다. 그것이 일과 관련될 때, 우리는 삶이 일터에서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고, 그다음에는 더욱 의미 깊은 내용을 보게 된다. 우리는 뿌리내림에서 출발해 어떻게 투신해야 하고 그 투신이 우리와 우리의 비전을 어떻게 형성하도록 하는지를 점차 배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서서히 완전해진다. 우리는 더욱더 본연의 우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 여정의 목적이다.
직장에서 지켜야 할 황금률 : 존중 - ‘일에서의’ 실천
베네딕토 성인은 일과 삶의 공동체적 본성을 끊임없이 새기고 증진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공동체가 언제나 개인들로 이루어지는 어떤 것임을 이해했다. 베네딕토 성인은 공동선과 개인 둘 모두를 존중했다. 이는 그의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의 변함없는 부분이었다. 우리의 직장 생활을 위해 이런 유형의 지혜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공동체 전체의 노력과 그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을 동시에 다 존중할 수 있을까?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 규칙서』에는 우리에게 통상적으로 일하는 날뿐 아니라 우리가 때때로 직면하는 특별한 상황들도 헤쳐갈 수 있도록 해주는 구체적인 팁 12가지가 나온다.
1.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내거나 깨닫지 못한 채 지내는 것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을 받아들여라.2. 언제나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는 습성을 버려라. 그렇게 하려면 종종 다른 이들의 피드백이 필요하다.3.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투신을 요구할 수 있고, 우리가 투신한 정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라.4. 어둠을 몰아내려 하기보다는 빛을 더 밝혀라. 이것은 사방이 공허하게만 보이는 힘든 상황에서도, 진리와 의미의 핵심을, 긍정적인 것을 발견해야 함을 의미한다.5. 언제 어떻게 가면을 치우고 그냥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하는지를 배워라. 이것은 세상이나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여 주는 가식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의 심리 상태를 벌거벗겨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이들에게 더욱더 투명해지도록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가꾸라는 것이다.6. 남과 맞추는 법을 배워라.
7. 당신에게 있는 그늘진 측면을 외면하지 말고 해결하라! 이런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그늘진 측면, 특히 우리 자신의 부정적인 부분이 뜨거운 감자처럼 되고, 우리는 그 감자를 다른 이들에게 투사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수’로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그늘진 측면도 더는 해결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8. 가치를 신뢰하고 공유하는 길을 존중하라.
9. 적게 말하고 많이 경청하라. 이는 베네딕토 성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10. 다른 이를 조롱하지 마라. 솔직하라!
11. 불화가 아닌 평화를 키워라.
12. 고요함을 드러내라. 이는 내면과 외부가 같다는 것을, 안과 밖이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깨달을 때, 인간성의 더욱 충만한 의미가 드러나고, 더욱 전인적인 인간이 태어난다.
베네딕토 성인의 이러한 팁들, 곧 겸손의 12단계 팁을 종합하면, 우리를 위한 하나의 길이 조성된다. 그 길은 삶 자체를 위한 길이자 우리의 직장 생활을 위한 길인데, 이 길에서는 관계들이 깊어지고 놀라울 정도로 친밀해진다. 그리고 그 길은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길, 생각하기(머리)와 사랑하기(마음)가 습관이 되어야 하는 길이다. 그런 존중을 통해서, 곧 우리가 황금률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존중을 통해서 우리는 지혜를 발견한다.
일에서의 실천
리더십과 의사 결정 - 고용주
리더십의 목적은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맥락은 베네딕토 성인이 『수도 규칙서』를 쓴 주된 목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수도자들이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듯이 공동체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게 되기를 원했는데, 이 과제를 수행하려면 경청이 중요하다. 시끄러운 일상 활동 속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대항 문화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실용주의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려면 리더십에 대한 베네딕토 성인의 지혜가 필요하다.
리더십의 지혜: 오늘날의 조사 연구 결과를 보면 베네딕토 성인이 소중히 여겼을 뭔가에 주목하고 있다. 곧 리더십에 부합하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비판적 역할을 하는 지혜가 그것이다. 위대한 학자들도 지혜를 인간의 최고 역량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것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베네딕토 성인은 오늘날 강조되는 리더십이 양적이고 경쟁적인 것에만 초점을 두고 있음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을 것이다. 양적이고 경쟁적인 것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이윤과 능률을 조직의 최우선 자리에 두는 것이다. 물론 베네딕토 성인은 이윤과 능률을 배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도원 생활의 질을 유지하려면 생산량과 질적 탁월함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생산량과 탁월함을 이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를 리더십의 원천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산물로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