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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보듬 홈스쿨

한진희 지음 | 서사원
누리보듬 홈스쿨



한진희 지음

서사원 / 2019년 1월 / 424쪽 / 16,800원





학교 유감



잘 길들여진 아이가 만나는 대학



‘왜 자꾸 공부하라고 하느냐?’는 아이의 물음에 우아하게 답변을 포장하자면 “아는 것이 힘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주체가 되어야지”라고 말하지만 그 속뜻은 ‘공부라도 잘해야 먹고살 수 있다. 돈 잘 벌어야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거다’, 이것이 아닐까?

학교와 가정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는 모순이 있다. 아이들이 학교 교육에 잘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상보다는 현실이 가깝다. 학교 교육이 요구하는 경쟁 위주의 삶에서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먼저 사회적 성공의 잣대에 맞게 자리 잡을 수 있는가가 현실이다. 부모들도 길들여지지 않을 때 자신의 생각이 나 의지가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치관 성립의 과도기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 속에 방황해봐야 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기다려주기가 쉽지 않다. 기다려주기만 해도 남들과 다르 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또 가정에서도 한 아이의 능력과 인성이 또래 집단 내에서의 경쟁과 줄 세우기로 판가름 난다. 중등교육은 이렇듯 잘 길들여진 아이들을 줄 세워놓으면 할 일을 다 했다 한다. 줄 앞의 아이들이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아이들의 인권과 무관하게 이름 석 자를 커다란 플래카드에 박아 자랑스럽게 교문 앞에 내건다. 잠깐 생각으로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 수십 명씩 SKY를 보낸 학교에서는 플래카드를 걸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런 플래카드를 보면 이미 존재 이유가 없어진 학교가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그렇다면 고등교육은 좀 다를까? 아이들의 소질과 재능, 관심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할 ‘대학’이 잘 가르치는 경쟁은 하지 않고 뽑기 경쟁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뽑기 경쟁만으로도 대학들은 자신들의 서열을 좀 더 확고히 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가 우리나라는 ‘학벌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미 확실하게 서열이 매겨져 있는 대학에서 한 단계라도 상위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은 졸업 후 얻게 될 사회적 지위나 인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서열화된 대학과 학벌주의가 버티고 있는 한 아무리 획기적인 ‘대입제도 개선안’이나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들고 나와도 뽑기 경쟁의 정도를 낮추지도, 사교육을 줄이지도 못한다.

한때 ‘한 명의 천재가 몇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그런대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안정적인 고용과 개천에서 가끔씩 용 나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자. ‘몇 만 명이 한 명을 살찌우기 위해 일하고 있다’라고 표현하면 너무 극단적일까? ‘아는 것이 힘이다’란 말도 있었다. 진리 탐구가 교육의 목표라 믿었을 때 그 힘의 의미 또한 그렇게 해석되었다. 그러나 그 힘 이 경제적 힘이라는 변질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지 꽤 되었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고민에 빠지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를 시작한다. 현실이, 상황이 이러한데 언제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뽐낼 수 있냐는 말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직장 가지고 사회의 주류가 되어 소비의 주체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내 아이가 잘 길들여진 아이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우리가 거부한 것은 알면 알수록 피하고 싶었던 한국의 중등교육(중학교, 고등학교)이었다.



스승의 날에 쓰는 교수의 반성문_ 출처: 스승의 날, 이의용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 2013.

1. 학생을 ‘제자’가 아닌 ‘수강생’으로 대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2.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 역할을 소홀히 하고, 정보지식 유통업자처럼 정보와 지식만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3. 학생들에게 행복한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를 가르치기보다는 성공의 처세술을 가르친 것을 반성합니다.4. 학생의 잘못된 삶을 보고도 꾸짖지 않고 방관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5. 학기를 마칠 때까지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6. 가슴 두근거림 없이 매년 신입생을 맞이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7. 학생들의 고민 상담을 귀찮아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기피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8. 여러 고민으로 아파하는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기보다는 획일적인 잣대로 냉정하게 질책하여 넘어지게 한 것을 반성합니다. 9. 제자들이 졸업 후 살아갈 직장사회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지 않고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10. 세상은 급변하고 직업이 요구하는 내용도 달라지고 있음에도, 시대에 뒤진 내용을 매 학기 그대로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11. 학생에게 현재 필요한 것, 앞으로 필요할 것보다는 교수가 배운 것, 교수가 연구한 것을 우선적으로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12. 다른 학문과 융합하지 않고 내 전공 분야만 고집함으로써, 학생들을 편협한 학문의 세계에 묶어두려 한 것을 반성합니다. 13. 학생들이 학교 밖 학원을 다니며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따로 배우게 한 것을 반성합니다.14. 수업 내용과 방법을 제대로 알 수 없는 부실한 수업계획서를 제시하거나 수업 계획서와 다른 내용과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15. 사명감이나 열정 없이 시간 때우기로 학생들을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16. 실제 수업 시간에도 못 미치는 짧은 시간 동안 수업을 준비하고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17.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업을 정성껏 설계하여 가르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18.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지 않고 교수 혼자 수업을 주도하며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19. 학생들과 상호작용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20. 시간 부족, 진도를 핑계로 체험을 통한 수업방식을 생략하고 이론을 암기시키는 방식으로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21. 현재의 수업 방식을 개선하지 않고 늘 같은 방법으로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22. 낮은 수업 성과의 원인을 학생의 책임으로만 돌려온 것을 반성합니다.

23. 학생의 개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우수학생을 중심으로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24. 제 시각에 수업을 시작하고 제 시각에 마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25. 교과 내용의 암기 수준으로만 학습 성과를 평가하고, 채점하기 쉬운 방법으로 출제를 함으로써 학습자의 학습 풍토를 왜곡시켜온 것을 반성합니다. 26. 편견이나 개인적인 관계 등 공정하지 못한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27. 학생의 학습 성과는 철저히 평가하면서, 교수자신의 교수성과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가르쳐온 것을 반성합니다. 28. 학생이 오랜 시간 작성한 과제물을 성실하게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짧은 시간에 대충 평가하고 성의 없이 피드백해준 것을 반성합니다. 29. 강의평가 결과에 급급하여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소신 있게 가르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30. ‘연구’ 때문에 ‘교육’을 못하고 ‘교육’ 때문에 ‘연구’를 못 하겠다고 변명했으며, 개인적인 연구실적만 중시하고 가르치는 일은 뒷전에 미뤄온 것을 반성합니다. 31. 교수는 ‘현자(賢者)’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학생의 창조적인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교수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한 것을 반성합니다. 32. 학생의 학습보다 교수의 연구자료 수집을 위해 과제를 내준 것을 반성합니다.

33. 학생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자료를 교수의 학술자료로 활용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34. 교수를 ‘갑’으로, 학생을 ‘을’로 여긴 나머지 학생에게 시간적, 금전적 부담을 부당하게 줘온 것을 반성합니다. 35. 타과 수강생, 부전공 수강생, 복수전공 수강생을 차별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36. 소속 대학을 ‘우리 학교’가 아닌 ‘이 학교’로 칭함으로써 학생들의 자존감을 손상시킨 것을 반성 합니다. 37. 교수 자신과 자신의 영역 외에는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 여기며, 대안 없이 비판만 해온 것을 반성합니다. 38. 커리큘럼과 강사 선정의 최우선 기준을 학생들의 학습 성과에 두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39. 교수 사이에 서열과 신분을 지나치게 중시했으며, 비정규직 교수를 동료로 충분히 인정하고 배려하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40. 교육이나 연구는 부업으로 여기고, 학교 외부 활동을 본업으로 삼아온 것을 반성합니다.



몰랐으면 놓쳤을 길에서 행복했던 취학 전



다른 삶을 만나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내다



그 전까지 반디와 나는 바깥활동보다는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조금 정적인 삶을 살았다. 가능하면 아이를 깔끔하고 정돈되게 기르는 것이 괜찮은 엄마라 착각했었다. 반디가 태어나기 전 꽤 오랜 시간 잘 정돈한 집 안이 아이 하나로 엉망이 되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바로 제자리에 정리해놓고 책을 보고 나면 그 또한 있던 자리에 다시 꽂아야 했다. 바깥에 나가 아이가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만지려 하면 “안 돼. 지지야!”로 그 호기심을 서둘러 막아버렸다.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는 갔지만 놀이터에서 노는 것에조차 한계를 뒀다. 아이는 충분히 놀이에 빠지지 못했다. 손에 모래가 묻으면 털어내느라 바쁘고 옷에 무엇이 묻을까 봐 마음 편히 놀지를 못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 집에 처음 놀러갔을 때 집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반디의 표정을 잊지 못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종종 16년 전 그날에 대해 친구 엄마와 이야기하곤 한다. 현관문 앞 에서 반디는 얼어붙어 꼼짝을 못했다. 책과 장난감, 온갖 자질구레 알 수 없는 것들로 온 집 안이 발 디딜 틈 없었다. 아이와 놀이가 끝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찾아가 바닥은 늘 단정했던 우리 집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발로 물건들을 쓱쓱 밀며 겨우 들어선 그 집 남매들은 손에 닿는 대로 책을 보다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또 어디 체험학습장에서 만들어왔을 허접한 완성품들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놀았다. 온 집 안이 탐험장 같았다.

집 안으로 들어간 반디는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뒤죽박죽인 블록 상자를 뒤지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블록 상자 안에는 블록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블록도 레고 따로 카프라 따로. 아, 난 도대체 지금까지 아이를 어떻게 길렀던 것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구 엄마는 오히려 그런 반디 모습에 놀라워했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정리에 싫증을 느꼈는지 잠깐 동안 어색한 움직임으로 이쪽저쪽을 둘러보고 남매들의 행동을 관찰하던 반디는 금세 신세계를 만난 듯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것도 모르고 집안 구석구석의 신기한 가지가지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그 집과 거의 매일 어울려 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디에게 나타난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반디는 놀이터에서 모래 놀이를 하려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지 일단 모래에 물을 붓기 시작하더니 온몸이 모래투성이가 되는 것도 개의치 않고 놀이에 깊이 빠졌다. 손에 묻은 모래를 겁먹은 얼굴로 털어내고, 신발에 모래가 들어갈까 봐 조심조심 걷고 옷을 버릴까봐 무엇을 하기 전에 엄마 눈치부터 살피던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의 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무장했던 시절도 아니고 컴퓨터도 잘 모르던 그 엄마가 대전 구석구석의 체험학습 현장 소식을 빠짐없이 꿰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으나 아는 이들이 부지런함으로 누릴 수 있는 각종 연구소, 특별한 기관, 도서관들의 체험을 해마다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엄마 덕분이었다. “반디 엄마 OO연구소에서 자기부상열차 무료시승이 있다니까 빨리 들어가서 신청하세요”, “카이스트에서 이족보행로봇 휴보를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행사가 있다니까 빨리 신청하세요”, “문화 예술의 전당에서 명작 연극 만들기 장기프로젝트가 있다 하니 빨리 신청하세요” 등.

친구가 사는 집은 국립중앙과학관에서 다리 하나 건너 있는 아파트였다. 아이들과 다리 건너 과학관을 놀이터처럼 이용하던 집이었다. 다리 양쪽 끝에 대형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곳에 각종 체험행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1년 내내 바뀌어 걸렸던 것이다. 보는 대로 메모하고 기억했다가 홈페이지 들어가 관련 정보를 얻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전해지는 각종 행사 일정을 아이와 함께 챙겨보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아이와 골라보고 기관에 다니지 않았던 아이와 종일을 그리 놀았던 것이다. 우리 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유모차 끌고 두 아이와 버스로 이동하면서.

아이의 성장을 되짚다가 종종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그 때 그 집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취학 전 그 시기, 반디와 함께 했을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옳다고 믿었던 좀 다른 방향이었을 것이다. 직접 체험보다는 수고와 위험이 덜한 간접 체험에 만족하며 그걸로 잘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상황이나 환경 속에 풀어놓고 아이 스스로 성장하는 기회를 주지 못했을 것 이다. 의도를 가지고 상황을 만들어주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개입하는 잘못된 정성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반디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 호기심도 독창성도 적극성도 자발성도 유연한 사고 또한 덜 발현될 수밖에 없는 심심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살면서 우연찮은 인연이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몰랐으면 놓쳤을 길에서 아이는 많이 행복해했고 몸도 마음도 쑥쑥 자랐다.

초등 입학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설득



대부분의 부모가 첫 아이 취학통지서를 받으면 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건강하게 잘 커준 아이를 보며 대견하고 흐뭇하고 약간의 감동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아이와 달리 엄마는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수많은 생각으로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몇 년 동안 대안교육을 기웃거리고 홈스쿨링 자료를 찾아 모았다. 대안교육의 핵심인 대안학교가 우리 집에는 대안이 될 수 없을 거란 결론을 내리고 홈스쿨로 마음이 가고 있었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내 의사를 밝혔다. 아이가 곧 8세가 될 무렵이었다.

남편도 깊게는 아니었지만 아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에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아이 교육을 나에게 맡기고 지켜봐주는 쪽이었다. 가끔 아이 교육 에 대해 혼자서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부담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예전 우리 때만 생각하고 도움 되지 않는 간섭으로 부부가 아이 교육에 마찰을 일으켜 다투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았기에 믿고 맡겨주는 남편이 고맙기도 했다. 내가 정식으로 남들과 다른 길을 갔으면 한다는 의사를 비쳤을 때 남편도 나름 그동안 많은 고민 속에서 얻은 자신만의 답을 내놓았다.

남편은 지방 소도시 면 단위에서 국민학교를 나왔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논두렁 밭두렁을 가로질러 학교에 다녔고 학교가 끝나도 해질녘까지 여름이면 목에 줄때 끼고 겨울이면 손등이 갈라지면서 지금은 책에서나 만나 봄직한 놀이들을 직접 전부 해보면서 큰 사람이다. 군 단위에서 중ㆍ고등학교까지 마친 남편은 아직도 초중고 동창, 동문 모임이 활발하다. 남편은 그것이 보통 남자들의 사회생활이라 생각하는 전형적인 1950년대 생 끄트머리 세대다. 그런 남편인데 아이를, 그것도 사내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아내의 말에 쉽게 동의할 리 없었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한국에서 학연ㆍ지연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이에게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부모 생각으로 아이의 미래를 결정해버리는 것도 맘에 걸린다는 것이다. 남편의 결론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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